투자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땅을 사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펄쩍 뛰었습니다.
며칠 동안 복덕방을 찾아가 땅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궁합이 맞지 않는 일은 어차피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니다. 젊은 아줌마(당시 30대 중반)가 땅을 산다고 하니까 (깔보고서) 잘 팔리지 않는
땅을 억지로 떠넘겨 바가지 씌우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적극적으로
방 아저씨를 무시하고 땅을 샀더라면 인생이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역시 재테크에서
고작 30만원만 건진 뼈저린 아픔을 겪었다(이 사연은 나중에 소개할 예정이다).
지만 그게 다 그렇게 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5억7000만원을 날린 뒤 500만원
밝혔다.
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35평 아파트를 살 때도 이런 재테크 방법을 적용했다. “당시
시가는 1억3000만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시세대로 다 주고 사는 것은 재테크 원칙
에 맞지 않습니다. 복덕방에 얘기해 둬 급매물로 나오는 것만 소개해달라고 해서 시
1000만원 정도다.
것이다. 또 둘째 아들을 위해서도 아파트를 한 채 더 살 계획이다.
렵고 여러 가지 비용이 들어갑니다. 청소를 위해 파출부를 부르는데 돈이 들고, 전기
료 수도료 가스료가 더 비쌉니다. 이런 비용은 한번 지불하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
습니다. 왜 어렵게 번 돈을 그렇게 헤프게 씁니까? 그럴 돈이 있으면 주변에 못사는
L씨는 이 속담이 뜻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운명의 시간이 외환위기를 향해 달
려가고 있던 1997년 4월말, 남편이 출근하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진 한마디가 그
를 한동안 회복불능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았다.
“친구 중에 ××증권 ××지점장이 있는데 주식투자를 아주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더
군. 이제 주식투자 한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 친구한테 5000만원만 보내서 맡겨
보지 그래?”
종합주가지수가 1994년11월 1100선을 넘어선 뒤 2년 넘게 줄곧 하락해 주식투자를
귀신처럼 잘 하던 L씨도 상당히 고전하던 때였다.
L씨는 “맡기기는요, 주식투자는 스스로의 책임과 판단에 따라 스스로 해야지요.”라고
웃으며 가볍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해서 5억원 이상 벌고 난 뒤에는 주식
투자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당뇨병 증세가 나타나 주식투자로 스트레스
를 받으면 증상이 더 악화될 우려도 있었다.
잘 한다는 증권사 지점장에 5억7000만원 맡겨 5개월만에 30만원만 남는 깡통
‘그래, 이제는 잘 하는 지점장에게 맡기고 건강을 챙기면서 즐겁게 살자’는 생각이 새
록새록 피어났다. L씨는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 지점장에게 이왕 맡길 바에는 쩨쩨하
게 5000만원만 맡기지 말고 5억원을 보내볼까’라고 생각하며 옆집의 새댁에게 “이제
주식투자를 직접하지 않고 잘 하는 지점장에게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평소
에 자신을 어머니처럼 믿고 따르던 옆집 새댁은 자기 돈도 함께 맡겨 불려 달라며
7000만원을 주었다.
그는 한달쯤 고민하다가 자기 돈 5억원과 옆집 새댁 돈 7000만원을 합해 5억7000만
원을 ××지점장에게 보냈다. 1997년 6월초였다. 물론 남편에게는 5000만원만 보냈다
고 얘기했고, 그 지점장에게도 남편이 물으면 5000만원만 보내왔다고 대답해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하지만 그해 7월, 태국이 외환위기에 휩싸이고 기아자동차가 쓰러지면서 한국 경제
도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종합주가지수도 ‘600선이 쌍바닥에 철판바닥이어서 조만
간 반등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달리 상승은 약하고 하락은 많은 약세장이
이어졌다.
L씨는 느낌이 좋지 않아 3번에 걸쳐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주식을 모두 팔고 현금화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지점장은 그
때마다 “이제 바닥인데 지금 팔면 엄청난 손해”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며 주식
을 팔지 않았다.
그리고선 1997년11월24일, 한국은 마침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자금을 신
청하면서 외환위기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600선에서 등락하던 종합주가는 순
식간에 400선 아래로 수직 낙하했다. 그의 계좌는 깡통으로 바뀌어 남은 돈은 고작
30만원이었다.
L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돈 5억원이야 내 잘못으로 날렸으니 그나마 견
딜 수 있었다. 그런데 옆집 새댁 얼굴을 떠올리니 앞날이 캄캄했다. 남편이 알면 왜
5000만원만 보내랬더니 5억원이나 보냈고, 옆집 사람까지 끌어들였느냐며 추궁당하
고 이혼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옆집 새댁돈도 함께 맡겼다 깡통 차
일단 남편 모르게 수습에 나섰다. 옆집 새댁을 만나 “사정이 이렇게 됐으니 내가 매월
100만원씩 줄테니 자신의 남편이 알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투자신탁회사에는 매월 100만원씩 납입하면 5년 뒤에 8300만원이 되는 적립식
상품이 있었다. 가서 그 통장을 만들어 오면 대신 넣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새댁
은 그냥 매월 100만원씩 달라고 했다.
당시 남편 월급은 140만~15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100만원을 새댁에게 주고 나머
지로 생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불어 닥친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일요일 오전, 늦은 아침을 마치고 남편이 모처럼 낮잠을 자겠다면서 안방에
들어간 지 10분도 안돼서 초인종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옆집 새댁과 신랑이 쳐들어
온 것이다.
남편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두 집안을 풍지박살을 내냐”며 벼락같이 화를 냈
다. 결혼한지 20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노여움이었다. 찬바람이 휭휭 불었다.
하지만 L씨는 워낙 저지른 죄가 큰 탓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남편의 처분에 맡겼다.
10여일 쯤 끙끙 앓던 남편은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일을 하면 갈라서겠다"며 “앞으
로는 잘 살아보자”고 했다.
옆집 새댁에게는 절반을 물어주기로 하고 어렵사리 ‘합의’를 보았다. 평소에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옆집 새댁이 그렇게 난리를 친 것이 너무 서운했지만 세상인심이 그런
것이구나 하며 속으로 삭혔다.
그렇게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 L씨는 남편에게 “도저히 이대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
으니 1000만원만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옆집 새댁에게 1000만원이라도 더 주어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남을 믿
고 맡기지 말자’는 다짐을 하면서 새로운 출발의 결의를 다졌다.
L씨는 ×××지점장에게 5억7000만원을 맡겼다가 깡통을 차고 ‘이혼위기’에 몰려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점(占)을 보러 갔다. 매일 매일 죄인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지내는
데 어느날 친구가 와서 위로로 “근처에 아주 용한 점쟁이가 있는데 한번 보러 가자”고
권유한데 따른 것. ‘이렇게 망가진 판에 웬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나빠
지기야 하겠느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은행을 다니다가 역술을 공부해서 역술원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는다던
젊은 ‘점쟁이’는 뜻밖의 말을 했다. “앞으로 7년 동안 돈이 물밀 듯이 들어 온다”고.
‘지금 이혼을 당할지가 코앞에 닥친 일인데 이혼 당하지 않을 방법이나 알려주지 않
고…’
힘없이 “왜 이렇게 인생이 꼬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시할아버지가 심술을 부
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시할아버지가 왜 나한테 이렇게 심하게
심술을 부리시냐”고 되물었다. “시아버지가 매우 효자였는데도 시할아버지가 며느리
(시어머니)를 매우 미워했다.
시누이는 시할아버지 제사를 잘 모셔 아주 잘 사는데 당신은 시할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해서 그렇다. 앞으로 제사를 잘 모시고 부적을 써 줄테니 시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태워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점이 예언한 대박.."이혼 위기 넘기면 7년 동안 돈이 밀물처럼 들어올 것"
L씨는 하지만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비싼 부적을 어떻게 사느냐며 복채(5000원)만
주고 나왔다. 복채를 얼마 내야 하느냐고 하자 알아서 달라고 해서 그때 가진 돈이 그
것밖에 없어서 5000원만 주었다고 한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있는 것을 톡톡 털어 준 복채 덕분이었을까? 며칠을 고민하던
남편이 “이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고 그냥 살자”고 했다.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리
고 외환위기로 주가가 폭락했던 1998년 6월. 종합주가지수가 320까지 폭락했을 때
500만원으로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앞에서 소개한 그대로였다. 500만원은 7년이 지난 현재 40억원 이상으로 불
어나 있다.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돕는데 쓴 돈을 합하면 더 많이 벌었을 것이다. 그
점쟁이의 말이 옳았는지, 아니면 그 때 주가가 원래 많이 올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
만, 정말 돈이 밀물처럼 벌렸다.
“하루에 1억원 안팎을 벌 때가 많았고 한 번은 1억3000만원을 벌기까지 했습니다. 밀
물이 아니라 해일이라고 할 정도였지요.”
상황이 이처럼 바뀌자 사람의 마음도 변했다. 7000만원을 잃어 난리를 쳤던 옆집 새
댁은 가끔 새벽에 전화해서 흐느껴 운다고 한다. “어머니처럼 믿으며 친하게 지냈는
데, 아줌마한테 너무 심하게 해서 병(당뇨)이 더 악화된 것 같다”며 뉘우친다는 것.
며칠 전에는 떡을 해서 집으로 찾아와 꼭 끌어안고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며 “앞으
로 자주 찾아 뵙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요즘은 거의 아픈 과거 이전의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중이다.
남편도 “당신을 만나 내가 사람 노릇을 하며 산다”고 고마워한단다. 신혼 초에 남편이
월급 거의 대부분을 시댁에 갔다 주어도 이렇다할 불만을 하지 않았고, 요즘도 남편
이 직장 동료들에게 가끔 저녁을 대접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
다.
처녀 때 절실히 느꼈던 “돈이 있어야 사람 노릇을 하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
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꿈이 보내주는 경계.."코스닥에서 돈 벌 수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자제"
L씨는 현재 주식을 한주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4월7일 삼성전자 주가가 60만원을
넘어서던 날 59만원에 판 뒤 주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3월말부터 코스닥의
IT주식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을 보고 코스닥에 들어가는 것을 고려했으나 지
금은 유보상태다.
“1999년말에 거래소 종목을 모두 팔고 2000년 1월에 코스닥 종목을 사서 이익을 많
이 봤습니다. 지금도 거래소는 당분간 쉬고 코스닥이 갈 것이라는 느낌은 확실합니
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식투자를 (가급적) 하지 않고 쉴 생각입니다.”
코스닥 주식을 사면 돈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가 코수닥 주식매수
를 유보한 것은 최근 잇따라 꾼 꿈 때문이다. “최근에 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잃
어버리고, 남편이 아들에게 사준 아반테 승용차를 끌고 나가 티코로 바꾼 꿈을 꾸었
습니다.
또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는 분이 내가 집안을 도둑맞았다며 혼을 놓고 우는 꿈을 꿨
다고 말해 주면서 조심하라고 얘기했습니다. 7년 동안 돈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라
고 하던 점을 본게 1998년 6월이었습니다. 만7년이 되려면 2달도 안남았습니다. 7년
마다 돌아오는 운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주식투자에 그 어
느 때보다 조심할 생각입니다.”
점과 꿈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점을 믿고 좋은 것에 대해선 과감하게 실천하고,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리미리 조
심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L씨처럼 크게 성공하는 사람의 살아가는 지
혜다.
9. "돼지가 되지 마라".."번만큼 베풀어야 더 번다"
대전 L씨의 별명은 ‘일본 아줌마’다. 전기 한등, 수돗물 한 방울도 아낄 정도로 억척스
럽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는 그다지 아까워하지 않는 그를 보고 남편이 지어준
것이다. 그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돈만 챙기는 구두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다.
L씨의 좌우명 가운데 하나는 ‘돼지가 되지 마라’는 것이다. 그는 “사소한 것에는 ‘또순
이’처럼 알뜰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아껴서 모은 돈을 쌓아 두지만 있어서는 안된
다. 그런 사람은 먹을 것만 찾아 꿀꿀대는 돼지와 진배없다.
주위의 못사는 사람들에게 베풀며 사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강조한다. ‘부(富)는 똥
과 같아서 한 곳에 쌓아놓으면 썩어 냄새가 진동하지만 널리 골고루 나누면 농작물을
키우는 것처럼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키운다’는 격언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십일조는 내지 않지만 달걀 라면 쌀 및 학자금 등 어려운 이웃 도와
그는 달걀이나 라면을 한판이나 한 상자를 사는 때가 거의 없다. 8판, 10판, 10상자를
산다. 근처에 있는 할인점에 가서 이렇게 사면 무슨 장사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개
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다. 4만5000원 하는 20kg 짜리 쌀을
사서 근처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들에게 주기도 한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어렵게
애를 키우면서 교육하는 경우에는 학자금도 대준다.
L씨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 십일
조를 내 봐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쓰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합하면 십일조가 되도록 노력합니다. 십일조
라는 말이 성경에 나와 있으면 지키겠지만, 신약성서 어디를 봐도 10계에 십일조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제가 그냥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것과 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합하
면 거의 십일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는 것을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 것
으로 믿습니다.”
교회에서 들으면 화를 낼 소리이지만, 그의 말은 거침이 없다. “남을 도와주면 스스로
가 즐겁습니다. 아까운 것이 아니라, 떳떳합니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미안할 뿐입니다.”
전기 수도 가스는 끔찍히 아껴 별명이 '일본 아줌마'
L씨를 ‘일본 아줌마’라고 ‘놀리는’ 그의 남편도 남 도와주기를 좋아한다. “남편은 아버
지(시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36세의 젊은 홀어머니와 형님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 때부터 장학금을 받으면서 어렵게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 뒤 6년 동안 받은 월급을 모아 형님에게 집을 지어주고, 그 뒤 1년 동
안 모은 돈은 여동생 결혼자금으로 썼을 정도입니다.”
시골에서 (다른 형제자매보다) 공부를 잘해 어렵게 대학을 다녀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 것이다. ‘나 때문에 형이나 동생, 누나와 여동생이 고등학교 대학교 갈 꿈을 포기
하고 일찍 생활전선에 나섰다. 내가 대학에 졸업해서 취직하면 가족의 생계는 내가
떠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하루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L씨의 남편의 경우가 이와 똑같다. 남편의 형님도 공부를 잘 하셨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였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동생에게 대학교 진학을 양보하고, 농사일을 했
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것마저 시기한 탓인지, L씨가 결혼한 지 2년 반쯤 지난 뒤
시아주버니께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남편은 술 한 잔 제대로 못 마시고,
학생들에게 ‘단벌 신사’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형수와 조카 4남매의 뒷바라지를 도맡
았다.
“남편은 결혼한 지 10년 동안 집에 돈 갖고 온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많이 울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그게 다 운이 7
년 동안 돌아서 많은 돈을 벌게 해준 밑천으로 작용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10. 성공한 5가지 이유..의지와 준비, 실천력
‘50대 초반의 아들 둘을 둔 여고 졸업한 전업 주부 아줌마.’
단돈 500만원으로 7년 동안 800배가 넘는 40억원 이상으로 불린 대전 L씨는 매우 평
범한 보통 사람이다. 그의 경력과 외모 등은 매일 출퇴근길에서 마주치는 옆집 아줌
마와 똑같다.
그런 L씨가 주식투자를 잘 해서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개미(소액 개인
투자자)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신출귀몰하는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대박의
환상’을 버리고 냉정하게 자신이 정한 투자원칙을 지키면 돈은 저절로 벌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큰돈 버는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잘 될 싹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한다.
사람도 사회에 처음 발디딜 때 어떤 준비를 하느냐로 평생이 좌우된다. 어떤 직업을
택하고, 어느 직장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5년, 10년, 20년 뒤의 인생이 달라진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어느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말이다.
대전 L씨도 몇 가지 눈에 띄는 독특한 점이 있다.
부자 되겠다는 의지=첫째, 그는 부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그 누구보다 강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군 부자’였던 집안이 급속도로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의 태도가 달
라지는 것을 보고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을 한번도 의심하
지 않았다.
말 뿐이 아닌 철저한 준비=둘째, 부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한창 친구
들과 어울려 돈쓰고 돌아다닐 시절인 스무 살에서 스물다섯 살까지 5년 동안 악착같
이 돈을 모았다. 친구를 만나지 않아 ‘외톨이’가 됐고, 연애는 돈 모은 뒤에 근사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꾹 참았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가난한 이유가 있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사람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돈 버는 것보다 돈 쓰는 것을 먼저 배
우기 때문이다. 외상(신용카드)으로 외식을 자주하고 비싼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평
생 그럴듯한 내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전세와 임대아파트를 전전한다”는 것이다.
톡톡 튀기=세째, 부자될 준비가 끝난 뒤부터는 뭇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기 위해 톡
톡 튀는 옷차림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을 믿고 최신 유행 패션으
로 몸을 꾸몄다. “싼 옷을 걸치기가 싫었습니다. 돈을 어느 정도 모아 앞으로도 돈 버
는데 자신이 생기자 이제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
학을 나오지 않은 시골(지방 중소도시) 처녀가 결혼을 잘 하려면 촌티를 내지 않고 서
울 멋쟁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실천력=네째,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실
천력이 강했다. 그는 신랑감으로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고 직장도 튼튼한 의사나
대학교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교 선생님인 남편과 결혼한 것도 좋은 대학을 나왔
고 처음 만났을 때 외모가 훤칠하고 인상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결혼한 뒤 남편에게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교수가 되도록 자신이
(돈 벌어) 학비를 대면 교수 사모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 버는 일이야 지
금이나 그 때나 자신 있었거든요.”
하지만 ‘교수 사모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남편이 “선생님으로 만족한다. 대학원
보낼 돈이 있으면 (대학원 다닌 것으로 생각할테니) 나에게 달라. 어려운 살림에 대학
등록금과 하숙비를 대준 형님께 갖다 드렸으면 좋겠다”면서 대학원 가기를 ‘거부’했
기 때문이다.
운명에 거역하지 않는 유연성=다섯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는 저항하지 않고 받
아들여 내편으로 삼는 유연성이 있었다.
L씨는 정형외과 의사와 결혼할 뻔했다고 한다. 인물이 귀공자처럼 훤칠했고 그가 원
하던 의사였다. 하지만 한 가지 흠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사고로 다리를 다쳐 절룩거
리는 것이었다. 선을 본 뒤 네번 만나자 약혼하자고 해서 결혼하려고 마음먹었다. 그
러나 부모님과 오빠 동생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꼭 결혼하고 싶었으나 ‘내 배필이 아
닌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는 1997년말 외환위기 때 5억7000만원을 날렸을 때도 ‘운명이려니’하고 받아들였
다. 2개월 이상 스트레스를 받아 혈당치가 위험 수준까지 올라가자 ‘이러다 큰일 나겠
다’고 생각해 마음을 다잡았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치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
소털처럼 많은 앞날을 준비하자고 생각을 다르게 하자 인생도 밝은 쪽으로 바뀌었다.
11. "사고 싶을 때 참아야 주식투자 성공"
주식투자의 귀재인 L씨가 가장 강조하는 말은 “사고 싶을 때 매수하는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월7일 삼성전자를 59만원에 판 뒤 아직까지 주식을 사지
않고 있다.
“28일 오전에 포스코를 사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단기적으로 많이 빠져 반등이 나올
것을 예상한데다 실제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 경제가 어렵다고 미국
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보도를 생각하고 꾹 참았습니다.” 28일 포스코를 샀으면
29일 엄청난 손해를 봤을 것이다.
“29일에도 종합주가가 20포인트 정도 하락하면 사볼 생각으로 개장 전에 돈을 MMF
에서 증권계좌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더 떨어질 것 같아 손이 나가지 않아(그는 HTS
로 주문을 내기 때문에 클릭을 해야 함) 오전 11시쯤 다시 MMF에 넣으라고 전화했습
니다. 종합주가가 860선까지 떨어지면 단기 매수를 고려해볼 생각입니다.”
그는 “주식을 사서 먹을 때의 기쁨보다 현금을 갖고 있는데 주가가 떨어질 때 느끼는
기쁨이 더 클 때가 많다”며 “현찰을 갖고 있으면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때 높은 수익
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만큼 섣불리 나서기보다 주가가 충분히 떨어졌을
때까지 참고, 참고, 참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고, 참고, 참아야 주식투자에서 돈 번다
그의 이런 참을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결혼한 뒤 10년 가까이 이렇다할 말 한마디 못
하고 참고 참으며 지낸 덕분이다. 그는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속담을 실제로 지켰다고 한다.
“결혼하고 처음 3년은 입을 막고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 다음 3년은 눈을 가리고 거
슬리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다음 3년은 아예 귀까지 막고 쓸데없는 소
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진짜 식구
로 인정해 주더군요.”
L씨가 이렇게 10년 동안 참을 인(忍)을 마음에 새기며 산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
다. 하나는 남편이 월급을 거의 대부분 시어머니와 형님 댁에 갖다 준 것이다. “남편
에게 가끔 애들에게 자장면이라도 사주어야지 월급을 모두 시댁에 갖다 주면 어떻게
하느냐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씨도 안 먹히는
말이었습니다.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다른 하나는 시어머니의 ‘질투(?)’였다. “시어머니께서 집에 오시면 남편과 나 사이에
서 주무시곤 했습니다. 결혼한 지 27년 동안 시어머니와 살갑게 지내지 못했고 내내
무서워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살 바에야 이혼하자’는 생각이 가끔 들었지만 ‘내가
남편하고 사는 거지 시어머니와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생각을 고쳐먹었습니
다.”
10년 동안의 ‘3-3-3년 인(忍)’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그는 비교적 젊을 때부터 당뇨가
생겼다. “혈액형이 O형이어서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소
리 한번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 보니 속병이 생긴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에 대해 그다지 원망하지 않는다.
10년 동안의 인내, 시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이혼 위기도 넘겨..남은 인생은 탄
탄대로
“시어머니께서 올해 초에 10만원을 보내셨습니다. “너처럼 착한 애가 없다”시면서
“이 돈 갖고 병원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그
렇게 오랫동안 나를 미워한다고만 느꼈는데 이제야 겨우 사람대접 받는구나라는 생
각이 들자 그동안 했던 마음고생이 오히려 인생에 도움이 됐구나하고 느꼈습니다.”
L씨는 지금까지 2번의 이혼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지난 7회에서 소개했던 것
으로 남편 친구인 ×××지점장에게 5억7000만원을 맡겼다가 ‘깡통’을 찼을 때였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가슴찡하고 그떄 그떄 위기를넘기고 살았기에 지금에위치에 있지않았을까 합니다... 정말개미들의 희망을한가닥 잡을수있는 얘기였습니다 *^^*
존경 합니다.....
좋은 정보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