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풍산중학교를 다녔는데
우리풍산중학교는 교정이 굉장히 넓었단다
풍산중학교는 풍산고등학교랑 같이있어서 넓은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는 안동으로 고등학교를 가면 우리중학교보다
몇배로 넓은 아름다운 교정에서 여고생이 된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단다
경안여상에 입학 시험치기 하루전날 예비소집이라서
여상을 찾아갔는데 어떤 공장입구에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라는 글씨가있길래
공장입구를 지나야만 경안여상을 가는줄알았는데, 아뿔싸
여기가 내가 다녀야할 학교라고?
너무 기가 막혔다.
그것도 경안여중과 같이있는 학교가 이렇게 운동장도없고...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학교 옆에있는 밸트공장이 우리학교인지
우리학교가 밸트공장인지 구분도 어려웠겠지?
지금으로 말하면 아파트형 공장 그자체였다
예비소집날 나는 앞이 캄캄했다
이런학교에 합격을 한들 여기서 어떻게 3년을 다닌단 말인가?
나는 우리언니를 억수로 원망햇다
그날 예비소집에 경안여상이란학교를 다녀와서 억수로 많이 울었던 기억이난다
그후 여상에 입학을 해서
우리언니와 나는 법상동에서 자취를 했는데
저녁늦게 비가오는 날이면 언니의 우산을 갖다주려고 안동여고에 자주갔다
인문계 고3 학생들이라 10시까지 공부를 하는데 우산을 주려고
교실 뒷문을 살며시열면 공부하는 언니들은 하나도 안보이고
모두들 엎드러서 잠만자고있엇다,
안동여고는 높은곳에서 안동시내가 한눈에 짝 들어왔다
나는 안동여고의 그 야경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그땐 안동시내가 굉장히 큰 도시로보였었지....
우리학교 교정엔,
잔디한조각 푸른나무도 하나없은 교정이였지만
전교생이 옥상에서 예배를 보고,
옥상에서 체육대회 준비를 하느라고
(안동에있는고등학교끼리의 교련복입고 공설운동장에서의 체육대회)
프랭카드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군가는 "멸공의햇불" 시이~작~하면서~
나의 기억을 더듬어서 몇곡을 불러보련다
- 아름다운 이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폭탄의 불바다를 무릎쓰면서 고향땅 부모형제 사랑을위해
전우여 내나라를 내가 지킨다
멸공의 햇불아래 멸망은없다
-피와 땀이스며있는 이고지 저능선에
쏫아지는 별빛은 어머님의 고은은혜
전우여 이 몸바쳐 통일이된다면
사나이 한 목숨 무엇이 두려우라
그때 교련복을 입고서 우리가 연습한 그 아련한 노래들이지
모두들 한번 불러보게나,
우리가 고3때 여름부터 교련복이란 옷이 영원히 사라진 기억을 하는지?
이유는 북한에서 남쪽 사람들은 여고생까지 동원해서
군기훈련한다는 소문때문에...
그래도 하얀 칼라의 교복과 더불어 교련복을 입고 등교하는날이면
씩씩한 우리들의 다른 보습도 볼수있어서 좋았지 않았겠니?
그래서
우린 비록 교정없는 비좁은 공간이였지만
그 덕분에 서로 몸을 많이 부딪쳐야하는 스킨쉽을 많이했기에
아마도 우리들의 우정이 더 새록 새록 쌓이지 않았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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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긴글올렸는데 너무 지루한 글이 되진 않았는지?
준영이 기억이 짱이다. 다 사실이다.나도시골출신으로서 여상이 뭐하는지도 잘 모르고 오직 기독교 재단인것만 알고 왔음.(유학왔음) 3년동안 배운게 컨닝실력밖에,,,그러나 참고로 지금은 잘 사용하고있음.친구들은 추억의 모교를 좋아하니까 우리도 그냥묻어가고 ,,참 김정길샘이 장노님이시라고? 사춘기때 별거아닌것
갖고 미위했는데 지나고 나니 우리를 위해서 한말씀 주신거야 그치? 그동안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도도 많이 하셨나봐, 우리들이 다 바른길가고 선생님을 존경하니까,,,너도 개구리샘에게 아픈상처가 있다고 했지? 우리가 이렇게 커서 이해할때가 되니 세상이 다 그런거야,,,넌 교련군가도 기억하네,,동요만 부르
준영아 정말 기억력짱이야!! 그래 니네언니말처럼 그땐 여상나와 은행들어가는게 정통코스였지 그래서1차 여상선발후 인문계로 가지 않았나?? 글구 여상 안갔으면 지금 이케 좋은 친구들이랑 인연이 안되었을지도모르지 그쟈~ 지금껏 별탈없이 살아온것도 경제감각이 있는것도 모두 돌아보면 학교를 잘 나온덕이지 후후
성숙아 그케 잼난 기억이 있었나?니도 한 행동 했었네 난 이런 기억이 난다 최종학샘(별명 개구리)그때 영어 숙제를 한명이 안해가지고 왔는데 뒤에서 수업태도가 좀 불량한 아이들도 있었고,, 그래서 괴씸죄에 걸려 모두가 그땐 교실이 2층에 있었고 1층 수돗물 나오는데가지 실내화벋고 한바퀴 돌아오라그랬거든 그
또 있지 그때 류창훈 교감샘 보강수업 들어오셔서 문제하나 물었는데 답을 말하지 못해 또 괴씸죄에,,, 모두다 의자 두손으로 들었!! 오메 우리 겁먹어부렀지 그때 나는 3번째 줄이었는데 방석을 엉덩이에 살알짝~ 앞에서부터 맞는소리 짝~짝 퍽~ 앞에서부터 다시맞았다 그러기를 와 끔찍했어 그땐 (겁이많아서)
야들아 이 모든게 아련한 추억이고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이학교를 선택( 자의든 부모의 의해서든,,,)해서 그래도 이만큼 누리고살지 않을까? 안문계를 나왔다고 인생이 뭐예 그리 달라졌겠냐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르는일인데,,, 그저 주어진 오늘 하루하루를 즐겁게 잘~ 살았다 생각하면 젊어진데요~~
첫댓글 그때 우리 1학년때 군가 시~작~ 하면서 앞에서서 율동 가르쳐준 3학년 조춘옥언니 이름이 아직도 생각난다. 나의 기억력 대단하지않니?
얘들아 들어보니 마산상고 얘기갔네? 학교가 불나서 학적부가 불타 그 지역 사람들은 모두 마산산고 나왔다고 우겼다더니....넘 우습다. 나도 우겨 볼까나...난 콘크리트 학교를 중 고 6년을 다니며 나이롱 신자 노릇까지 했다. 그냥 다니는 거라고 다녔다.
그때 그시절을 아십니까? 그때 팔팔했던 공수부대 출신 교련선샘 요즘은 마니 늙었드라예 가끔씩은 만나곤 한단다(나니 나만보지)50세가 넘었겠네~욕도 잘하고 급한성질하며 공수부대 ㅎㅎㅎ
얘들아~1학년 입학했을때 김정길선샘 학습세례 받았는디 지금 장로님이셔 그리고 교감선샘이야 이것이 기적이잖네?? 내가 젤 좋아했던 샘이라 관심이 많지용ㅎㅎㅎ축하합니다~추카합니데이~
준영이 기억이 짱이다. 다 사실이다.나도시골출신으로서 여상이 뭐하는지도 잘 모르고 오직 기독교 재단인것만 알고 왔음.(유학왔음) 3년동안 배운게 컨닝실력밖에,,,그러나 참고로 지금은 잘 사용하고있음.친구들은 추억의 모교를 좋아하니까 우리도 그냥묻어가고 ,,참 김정길샘이 장노님이시라고? 사춘기때 별거아닌것
갖고 미위했는데 지나고 나니 우리를 위해서 한말씀 주신거야 그치? 그동안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도도 많이 하셨나봐, 우리들이 다 바른길가고 선생님을 존경하니까,,,너도 개구리샘에게 아픈상처가 있다고 했지? 우리가 이렇게 커서 이해할때가 되니 세상이 다 그런거야,,,넌 교련군가도 기억하네,,동요만 부르
나도 교육시책이 달라져서 그런걸로 어렴풋이 기억 나는데...워낙시간이 흘려서 .... 쥔장님 글 공감이 가네. 그때 난 교실만 이동 했어도 치마입고 학교 다니는게 좋았는데...나중에 그치마가 입기싫어 체육복 바지, 교련복 바지로 보냈지만....카페등급업 추카하네
까맣게 잊고 지냈던일이 었는데 친구들이 옛날일들 얘기하니까 필름이 막 까마득히 지나가네 코스모스 고마요~~~
어찌이리 상세히도 적었을꼬. 준영이 기억력은 아무도 못 따라 가겠다. 우리시절에는 여상이 최고였어 그래서 나도 부모님 등살에 밀려서 여상다녔다.졸업한후에는 여고시절 추억도 많고 3년동안 참 재미있게 지냈는 것 같아서 후회없단다.지금도 열심히 잘 살고 있잖아......
준영아 정말 기억력짱이야!! 그래 니네언니말처럼 그땐 여상나와 은행들어가는게 정통코스였지 그래서1차 여상선발후 인문계로 가지 않았나?? 글구 여상 안갔으면 지금 이케 좋은 친구들이랑 인연이 안되었을지도모르지 그쟈~ 지금껏 별탈없이 살아온것도 경제감각이 있는것도 모두 돌아보면 학교를 잘 나온덕이지 후후
준영아 내가알기로는 교육부 시책때문이 아니야 우리가 그때 7반애들이 책이나 뭐 빌리려 오면 안주고 옆반으로 놀러만 와도 무시해버렸단다 7반애들 자체가 진학반이라는게 부담스러웠나봐 자기네들도 반기를 들고 없애자고 했지
종란아 니공부못한다고 구박했던 김정길 선생님이 지금 경안여중에 교장선생님이시다 한번전화드려봐
덕순아 니 컴 앞이구나 니가 영옥이한테 죄값으로 신청한 노래 올려주려구 찾아봐도 최진희의 그것은 사랑이죠~가 없다고 하는데 제목 확실한건감??
막 니네 집에 전화하려구 동기생연락처에서 전화번호 적어서 보니 니글이 올라왔길래,,,,
그노래 찾기가 쉬우면 내가하지 하도오랜된노래가 어디에 가도 잘없다 제목을 확실하다 "19홉이 되었을때 우린우연히 만났었죠 늘 무엇인가 주고싶던 그것은 사랑이죠..."라고 시작하는거란다
알았당~열심히 찾아보라할께~오늘밤은 둘이서하나되는날이란다 덕순아~
쥔장! 그때 그시절이 그립네 어째 골케도 꼼꼼하이 적었노... 옥사에서 아카시아 향기맡으며 사진박아대고(추억 남길라꼬) 참 야들아 내하고 담치기 하던 아들은 하나도 까페 안나타나네 예비고사 쳐놓고 담몇번 넘다가 들키갖고 혼나고 말년에 수업거부(일명 뭐라카노..)하고 탁구장으로 극장(우리 오래비한데 들키가
가지고 뒤지게 혼난(우리오빠왈|몬생긴것들이 어델 활보하고 다니노..)그땐 우리오빠땜에 극장 티켙 환불도 못받고 친구들 마캉다 끅려 간 시절도 있었단다 ㅎㅎ 하루는 띠리하게 미팅이란걸 하다가 어째소문이 났는지 학생과에서 방송해가지고 내려가니 야! 담임께서 (이혜주 선생님)불러서 학생과장님 한테
넘겨서 교무실 입구에 않히드라꼬 지나다니는 선생님들께 오만 갖은 구박받으며 밤(퇴근시까지)까지 혼났다카이 근데 미술 선생님은 왜 부르는데 근데 왜 밀때가지고 겁주는데 ㅇ야들아 올 밤은 고만 할란다 친구들 안뇽이다~~
아또있다 쓸라카이 끝이없네 교목실에 오라카데? 반성문 30장 쓰라카데 각장마다 틀리게 써야 된다케가지고(동기가) 머리 쥐나는줄 알았다 그때니까 30장 썼지 지금 쓰라카면 쓰것나! 또 안뇽
성숙아 그케 잼난 기억이 있었나?니도 한 행동 했었네 난 이런 기억이 난다 최종학샘(별명 개구리)그때 영어 숙제를 한명이 안해가지고 왔는데 뒤에서 수업태도가 좀 불량한 아이들도 있었고,, 그래서 괴씸죄에 걸려 모두가 그땐 교실이 2층에 있었고 1층 수돗물 나오는데가지 실내화벋고 한바퀴 돌아오라그랬거든 그
래서 한명씩 그 흰양말에 시커먼 구정물같은거 묻혀서 오면 합격 교실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아~ 그땐 정말이지 죽는줄 알았지 생각해봐 흰양말에 흰실내화,,,
또 있지 그때 류창훈 교감샘 보강수업 들어오셔서 문제하나 물었는데 답을 말하지 못해 또 괴씸죄에,,, 모두다 의자 두손으로 들었!! 오메 우리 겁먹어부렀지 그때 나는 3번째 줄이었는데 방석을 엉덩이에 살알짝~ 앞에서부터 맞는소리 짝~짝 퍽~ 앞에서부터 다시맞았다 그러기를 와 끔찍했어 그땐 (겁이많아서)
그땐 대답못한 학생만 벌 주면 되는데 뒤에서 끼기덕 거리는 아이들 땜에 단체로 기합많이 받은편이지,,,
셩숙아 넘 재미있다...연숙이도..다들 그런 추억하나쯤은 갖고 살아가겠지.....쥔장 우리의 여고시절 교정에선 낭만이니 멋이니 찾을 수 업지만 우리 가슴은 그래도 뜨겁지 않았냐...
준영이 글 읽고 나의 추억 또한 새록새록 떠오를라칸다. 나또한 너와 마찬가지로 아쉬움도 진로에 대한 결정에 후회도 많아서 공부를 포기하고 그럭 저럭 학교 생활을 마무리 한거 같애. .... 다 지난 일이고 아쉽지만 이렇게 잘 살고 있지!!
도시락까먹은 놈들 운동장 10바퀴 뛰기 죽이데 그것도 컴정타이즈만신키가지고서리 어째그렇케도 먹어댔든지 하루에 여섯끼쯤먹었을껴 그래서 난 졸업하고도 마니 컸지 연숙아 내 키높이 양말 절대 안신었는데 크지? ㅋㅋㅋ
줜장님! 나 꼬리글이 안올려 지네요. 우칙위반하다가 근신당했씁니까?
종란아 반성 너무 많이 하지 마라. 쥔장은 백성을 사랑하는 너그러운 사람이시다. 종란이 너 같은 사람도 있어야 카페도 한번씩 웃고 살지. 계속 열시미 꼬리글 올리고 선생님께도 인사드려라.
야들아 이 모든게 아련한 추억이고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이학교를 선택( 자의든 부모의 의해서든,,,)해서 그래도 이만큼 누리고살지 않을까? 안문계를 나왔다고 인생이 뭐예 그리 달라졌겠냐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르는일인데,,, 그저 주어진 오늘 하루하루를 즐겁게 잘~ 살았다 생각하면 젊어진데요~~
울~친구들 즐겁게살자~~
경안여상에 오게된 계기와 여상에 다녔던 얘기를 나도 한번 글로 올릴게 조용할때... 그때 재밌게 읽어줘야해~
경숙아 말하면뭐해 당근이지,,
그래 경숙아 너도 잼나게 올려봐라.
준영아 장문에다 쥔장다운 기억력 대단하구나. 누구나 그당시 학교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은 조금씩은 있을끼다 아마.더군다나 우리땐 유학와서 자취생도 많았던것 같은데... 지나고 나니 3년이란 세월도 너무 빨랐던것 같지. 모두 좋은 시간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