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학기가 시범 운영 3년 만에 전면 확대되었습니다. 제도 취지를 이해하는 공감대 부족과 학교 현장의 구조적 어려움 등 해결 과제가 없지 않습니다.
자유 학기의 의미를 알지만 성적이 떨어질까 불안하다는 중등맘의 우려 역시 여전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 학기에 대한 인식이 차츰 개선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2015년 자유 학기제 운영 만족도 조사’ 결과에서도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대체로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등 시기에 꿈의 싹을 틔우고 꾸준히 가꾸면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할 희망을 발견한 것입니다.
<미즈내일>이 자유 학기로 달라진 교실 모습을 조명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 학생 사례를 모았습니다. 진로 탐색의 출발점인 자유 학기, 그 중간 성적을 점검합니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사진 전호성
도움말 문승태 과장(교육부 진로교육정책과)·서유정 교사(서울 동작중학교)·오인 교사(서울 상봉중학교)
이승정 교사(경기 봉일천중학교)·이상민 교사(서울 세곡중학교)·조연행 팀장(강남청소년수련관 청소년사업팀)
황유진 교사(서울 연희중학교) 참고 자료 ‘2015년 자유 학기제 운영 만족도 조사’·‘자유 학기제 연구학교 사례 연구 종합 보고서’
사진 제공 김동건·박주미·석지훈·신현규 학생
편집부가 독자에게 ...
자유 학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학업 공백이 고입과 대입후폭풍으로 이어지면 책임진대?” 올해 중등 학부모가 된 친구가 제게 따지듯이 묻더군요. 철없이 초등 시절을 보내고 중학생이 됐으니 ‘이제 좀 제대로 공부하려나?’ 하고 기대했는데 자유 학기를 만나 계획이 틀어졌다고요. 올해 자유 학기제가 전면 시행되었지만 불안감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네요.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진로를 탐색하며 행복해하는 상황이 그나마 위로가 될까요. 제도에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 학기가 아이들에게 ‘이유 있는 쉼표’가 되도록 기다려주자!” 인생은 내일을 알 수 없는 여정. 대입을 향해 가는 고단한 마라톤을 준비하며 아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바로 자유 학기입니다.
_홍정아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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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학기
어디까지 왔나?
취지에 공감,
대체로 만족
자유 학기를 경험한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 상승폭은 다른 학교 학생의 2배 수준. 교사나 친구 등 구성원 간 관계 만족도는 4배나 올랐다. 지난해 중학교 학교 폭력 발생률이 급감한 것이 자유 학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자유 학기제 전면 시행을 앞둔 지난해 말, 시범 연구학교의 우수 사례가 쏟아졌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15년 자유학기제 운영 만족도 조사’ 결과, 자유 학기를 운영한 학교가 ‘수업 방법 개선’ ‘학생 수업 참여’ ‘학교생활 행복감’ ‘교육 결과’ ‘학교 구성원 간 관계’ 등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일반 학교보다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표 참조).
교육부 진로교육정책과 문승태 과장은 “학부모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학교 학부모 만족도가 3.92점에서 4.09점으로 0.17점 오른 반면, 일반 학교는 0.05점 오르는 데 그쳤다. 자유 학기를 경험하면 처음 기대한 것보다 흡족하게 느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실제로 학부모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추세. 다양한 수업 모형을 개발해 학생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학교 활동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중3 아들을 둔 함윤숙(44·서울 은평구 연희동)씨는 “지필시험이 없으니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자유 학기의 다양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통해 내성적이던 아이 성격이 밝아지고, 학습 동기가 부여되면서 성적이 올랐다”고 전한다.
자유 학기에는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기 때문에 융합이나 실생활 연계, 프로젝트 수업 등을 활성화하기 좋은 여건. 경기 봉일천중 이승정 교사는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보람이다. 자유 학기에 따른 수업 개선 부담이 없지 않지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수업 방법 개발과 평가 영역에서 교사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말한다.
융합형·활동 중심 수업을 지향하는 자유 학기
자유 학기 운영 시기는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다. 교장과 교사, 학부모가 의견을 수렴해 1학년 1~2학기, 2학년 1학기 가운데 한 학기를 선택한다. 자유 학기라고 해서 단순히 진로 체험만 하는 건 아니다. 서울 세곡중 이상민 교사는 “오전에 국어·영어·수학 등 기본 교과를 배우고, 오후 시간을 활용해 자유 학기 활동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업 역량이 떨어질 것이란 걱정은 기우”라고 말한다.
실제로 서울 동작중은 2013학년에 입학해 자유 학기를 보낸 학생들의 특목고 진학률이 예년보다 6~7배 올랐다. ‘진로 연계 체험 학습 수업’ ‘교과 간 융합 수업’ ‘프로젝트 수업’ ‘토의토론 수업’ 등을 체계적으로 진행한 것이 특징. 이 학교 서유정 교사는 “여러 가지 요건이 맞물려 나타난 결과겠지만 학교생활기록부에 다양한 자유 학기 활동을 기록한 것이 면접에서 유리하게 작용한 듯하다. 자유 학기 이후 학습 부진아 비중도 3분의 1로 줄었다”고 설명한다.
자유 학기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최근 고입과 대입에서 주목받는 자율·동아리·봉사·진로 등 비교과 영역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 융합 활동을 유연하게 시도할 수 있다. 학생의 능동적·주도적인 수업 참여 기회가 늘어난 것 역시 반가운 신호.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에 ‘원과 부채꼴’ 단원을 배우면, 친구들과 호떡을 구워 나눠 먹으며 ‘중심각의 크기와 부채꼴의 넓이가 비례한다’는 핵심 개념을 익힌다. 종전 수업 방식에 비해 문제 풀이 비중이 작다고 느낄 수 있지만, 뒤처지거나 포기하는 학생 없이 모두 즐겁게 수업에 참여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
핵심은 다양한 체험 통해 ‘나’를 찾는 것
자유 학기를 이용해 ‘학생 참여’와 ‘활동 중심 수업’을 구현하는 학교가 늘었다. 부산 화명중 ‘교과 연계 독후 수업’, 인천 부평동중 ‘교과 통합 진로 교육’, 광주 화정중 ‘주제별 교과 간 융합 활동’, 경북 문경서중 ‘전문 예술 수업’, 제주 서귀중앙여중 ‘예술·체육 활동’ 등은 자유 학기 우수 운영 사례로 꼽힌다.
서울 연희중은 예술·체육 활동 프로그램 15개, 주제 선택 활동 프로그램 17개를 특화한 곳. 황유진 교사는 “1학년 1학기에 10개 반을 대상으로 학생의 희망과 수요를 조사해 반영한다. 자유 학기 전후에 나타난 학생의 변화와 성장을 기록해 학생·교사·학부모가 상호 피드백 하는 자료로 활용하는데 호응이 높다”고 전한다.
서울 상봉중 오인 교사는 “자유 학기를 잘 보내야 상급 학교 진학 설계가 수월하다. 자기 탐색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 직업군을 정하고, 해당 분야에 진출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로 희망 고교를 선택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조언한다.
청소년 단체나 기관, 진로직업체험센터 등에서 마련한 자유 학기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운영에 참여하는 센터가 전국 200여 곳. 지역사회 체험처를 발굴하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 학교와 매칭하고 프로그램을 컨설팅하는 일을 맡는다. 강남청소년수련관 청소년사업팀 조연행 팀장은 “아이의 성향과 관심 분야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라며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하기 바란다”고 덧붙인다.
4인 4색 진로 탐색 스토리
자유 학기는 이유 있는 쉼표,
나를 찾는 느낌표!
초등학생 때 방과 후 수업을 통해 요리를 처음 접한 서울 개포고 1학년 석지훈 학생. 중학생이 되어 진로 탐색의 과정을 거치며 요리사라는 꿈에 확신이 생겼다.
“수서청소년수련관 자유 학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요리와 제과제빵에 흥미를 느꼈어요. 떨어져서 아쉽지만, 서울관광고에 진학해 요리를 전공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였죠.”
장래 희망을 구체화한 데는 엄마 역할이 컸다. 선입관이나 편견 없이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든든한 지원군인 것.
“파티쉐·요리 봉사 활동에 한 달에 두 번씩 참여해요. 다른 요리 수업에서 느낄 수 없는 보람이 있어 훨씬 더 즐거워요.”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재능기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봉사 시간이 쌓여 중학교를 졸업할 땐 연간 100시간을 훌쩍 넘겼다. 덕분에 청소년 봉사 부문 구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다음 목표는 한식·양식·중식 조리사와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따는 것.
“내년 연말쯤엔 요리 대회에 도전할 계획이에요. 중학생 시기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한 덕분에 고등학교 생활이 즐겁습니다.”
서울 연희중 2학년 김동건 학생의 꿈은 과학자다.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고,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협력·공동 과학 연구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소극적이고 소심한 성격이 걸림돌.
“홀랜드 진로발달검사를 했는데 탐구력·논리력·분석력은 높은 반면, ‘사회형’이 낮게 나왔어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어려웠죠.”
그래서 선택한 자유 학기 프로그램이 ‘공감 두드림’ 활동과 상담 전문가 직업 체험. 부족한 대인관계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던 중에 ‘2015 청소년 진로박람회’에서 갈등 조정사라는 직업을 알았다고.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는 일을 하는 점에 끌렸어요. 친구들과 모여 팀 연구를 자주 진행하는 제게 꼭 필요한 부분이죠. 직업 체험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해 친구들 사이 갈등을 줄이고 팀 과제를 무사히 마쳤어요.”
동건 학생의 단기 목표는 고등학생이 참여하는 청소년 학술 포럼에서 발표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불과 1년 전만 해도 진로 계획 없이 소극적이었지만, 자유 학기 활동을 통해 소통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대전여고 1학년 박주미 학생은 자유 학기를 보내며 작가의 꿈을 찾았다.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 건 진로 직업 체험과 예술·체육 프로그램 덕분.
“학교 기자단에서 기자로 활동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기획부터 취재, 기사 작성, 편집에 이르는 신문 제작 과정을 경험하면서 ‘글 쓰는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죠. 교내 밤샘 독서 캠프에 강사로 온 조윤형 작가를 만나고 마음을 굳혔어요.”
주미 학생의 꿈 찾기는 ‘책 만들기’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독서와 글쓰기 연습에 파고들다 보니 작가라는 꿈이 더욱 선명해지더라고.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 중이다. 많은 이에게 공감을 주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 권위 있는 상을 받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한 글을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미 학생은 자유 학기를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느냐에 남은 인생의 행복이 결정된다며 후배들에게 “자유 학기를 즐겨라”라고 주문한다.
“자유 학기에 만든 첫 신문 ‘가양나비’가 성적 우수상이나 표창장보다 귀하고 값져요.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설레고 두근거리죠. 신문 제호처럼 ‘나로부터 비롯된 변화’를 경험하는 건 특별하고 행복한 일이에요.”
서울 구산중 3학년 신현규 학생은 자유 학기를 보내며 꿈이 달라진 사례. 1학년 1학기에 적성검사를 할 때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꿈이었다. 근처 세명컴퓨터고를 찾아가 직업 체험을 했고, 2학기엔 프로그램 세 개를 선택해 참여했다.
“목공·과학·인성·세계 등 키워드를 주제로 활동하며 초등학교 교사라는 새로운 꿈을 만났어요. 자유 학기가 끝나는 2학기 말에 ‘꿈 발표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죠. 더 값진 것은 대회를 준비하면서 교사라는 직업을 깊이 있게 탐구한 것이에요.”
현규 학생이 꼽은 자기 특성은 봉사 정신과 지적인 호기심이 강하다는 것. 묘하게도 교사라는 직업을 탐구할수록 환자를 위해 봉사하는 의사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고.
“지적인 호기심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의사야말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의사로 꿈을 바꾼 뒤 직업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면서 관련 책을 많이 읽었죠. 무엇보다 학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요 과목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동아리를 만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단다. 의대에 진학해 의술을 익히고 임상 경험을 쌓은 뒤 노인 전문 병원을 여는 게 최종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