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의 수유수 [ 落花有意 隨流水 ]
유수무심 송낙화 [ 流水無心 送落花 ]
떨어진 꽃잎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을 따라 가지만
흐르는 물은 무심히
꽃잎을 떠 보내네
진제 스님
'1995년 동화사 금당선원 하안거 결제 법어 중에서'
숭산 스님이 미국에 있을 때였다.
미국 제자가 하루는 숭산 스님에게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의 차이를 물었다. 스님은 "좋은질문"
이라고 말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깨닫기 전에 하늘을 볼 때는 하늘이 푸르고 나무가 청록색이라고 알았다. 그런데 깨닫고 난 뒤에도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청록색이더라"고..
스님은 "우리는 깨달음이 영화처럼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피곤할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순간순간 이 세상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선을 공부하는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병은
이른바 선병(禪病)이다. 선정(禪定)이라는 것이 무언가 일상적이지 않은 경계로서, 어떤 노력을 통하여 들어가 유지해야 하는 특별한 상태라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선병이다.
수행이라는 이름의 조작을 행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병에 걸려 있다. 이러한 조작이 병인 이유는 이법(二法) 이기 때문이다. 선으로 들어가니 선에서 나오니 하면서 선을 들어가고 나오는 경계로 여기고, 선정 상태에서는 세계를 불이(不二)의 세계로 관(觀)하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분별심으로 세계를 바라본다고 하여, 나오고 들어가는 이법을 근거로 불리를 내세우고 있다.
불이법이란 어떤 경계로 들어가 어떤 안목으로 볼 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벌써 이것은 들어감과 들어가지 못함, 안목을 갖춤과 갖추지 못함, 실현됨과 실현되지 못함이라는 둘이 있게 되니 불이라는 말은 해당 될 수 없는 것이다.
불이는 바로 지금 이대로가 불이일뿐, 그 무엇을 행하여 불이의 상태를 얻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대로가 불이이므로 불이는 불이가 아니라 불이라는 이름일 뿐이다.
어리석음이니 깨달음이니 밝음이니 어두움이니 번뇌니 해탈이니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것들은 망상이요 꿈이다. 망상이요 꿈인 것을 실재라고 여기며 끌려 다니는 전도몽상을 당장 그만두라. 오직 이 순간이 자리에서 단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
김태완「바로 이것! 禪으로 읽는 신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