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박경리 선생님의 체취를 찾아 강원도 원주를 찾았다. 몹시도 가물었던 가을이었건만 우리가 찾은 날은 그 가뭄을 해갈 할 수 있는 가을비가 일정 내내 동행을 해준 축복받은날이었다. 산천의 단풍은 더욱 곱고 진하게 반겨주었다.
첫 도착지는 원주시 단구동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
문학공원 안에 있는 단구동 옛집은 1989년 택지개발로 살아질 뻔 한 것을 전국 각지의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박경리 선생님의 옛집으로 남게 되었다. 말 그대로 공원화 되어 있는데 크기가 약 3,200평이다. 3,200 이란 숫자 속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토지속 서희가 평사리에서 용정까지 이동한 거리와 같은 숫자이다. 박경리 문학의 집, 북카페. 단구동 옛집, 평사리 마당, 용두레벌, 홍이동산 등 여섯 개의 테마로 꾸며져 있다.
1층은 사무공간이고 2~4층까진 전시실, 5층은 세미나실로 구성되어 있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열심히 경청하는 독클가족
잉크가 잘 마르지 않아 몽블랑 만년필을 애용하셨다 한다.
선생이 곁에 두고 글 쓰는데 참고했던 국어사전
손수 옷을 만들어 입으셨다. 옷을 만드실 때 사용했던 재봉틀, 남편과 사별 후 통영으로 내려가서 수예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충무시(지금의 통영)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박금이.
통영 초등학교를 입학한 기념으로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해서 책상 밑에 소설책을 숨겨놓고 읽었다. 진주여자고등학교에 진학, 책방에서 쫒겨날 때까지 책을 읽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한다.
남편 김행도와의 결혼 사진!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찍 결혼을 했다.
1945년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통영의 우체국에서 잠시 근무하다 결혼했으니 스무살 나이였으리라.
6,25 전쟁! 시대가 남편을 빼앗아 갔다. 공산주의자로 오인받아 조사를 받던 중에 남편이 숨졌다. 선생의 자전적 소설인 '시장과 전장'이라는 작품에서 궁금했던 남편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 한 토막을 발견한다.
「투옥된 남편에게 옷을 빨아 넣어주면 얼마 뒤 더러운 옷이 나왔고, 그 옷을 보면서 아직 살아계시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넣어주었던 옷이 나오지 않아 돌아가셨구나 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이후 선생은 생전 남편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셨다 한다.
박경리 선생의 가족사진! 행복해 보인다.
결혼 후, 그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48년 남편이 인천 전매국에 취직하여 인천 금곡동으로 이사하고, 아들 김철수가 태어났다. 헌책방 (현 인천 배다리 마을)을 운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1949년 서울 흑석동으로 이사하고,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 전쟁이 터지자 서울로 돌아왔다. 1954년 1월부터 1955년 2월까지 한국상업은행에 근무하면서 습작에 힘썼다. 1954년 6월 한국상업은행 사보 <천일>에 박금이 라는 본명으로 장시 '바다와 하늘'을 발표하였다. 퇴사 후인 1955년 10월에 '박경리'라는 필명으로 소설[전생록]을 <천일>에 게재하기도 하였다. 돈암동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 등단 후 서울 신문사에 근무했다. 1955년 [현대문학]에 추천되었다. 이듬해 단편소설 [흑흑백백]으로 2회 연속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 본젹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 자료 출처-원주박경리 문학제 자료집
1부~5부까지 토지 중에 4부와 5부를 원주에 정착하면서 마무리했다.
왜 원주였을까? 1980년 사위(김지하)는 원보가 태어난지 일주일 만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신처럼 아비없이 자라야 하는 손자와 남편없이 살아야 하는 딸이 살았던 곳이다. 손자 이름이 원주의 보배 (원보) 인 것처럼 박경리 선생이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핏줄인 딸과 손자가 원주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 먼 말
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 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난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
1956년 아들인 철수를 교통사고로 치료 중 잃었다. 이 일이 소재가 되어 나온 자전적 소설 '불신시대'가 있다.
선생의 나이 스물 아홉! 일찍 잃은 아들 때문이었을까? 손자 원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더욱 깊고 각별했다. 손자가 그린 그림을 당신의 책 표지에 사용했을만큼 사랑은 극진했다.
박경리 선생과 딸 김영주
김영주는 1973년 시인 김지하와 결혼하였으며, 현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과 <토지문화관> 관장직을 맡고 있다.
'Q씨에게'라는 수필집에서 이전의 작품은 모두 습작이라며,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 대하소설『土地』를 탈고.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자택에서 대단원을 마무리한 박경리 씨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면서도 "아직도 써야 할 것이 잔뜩 밀려 있는 것 같다" 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제시대 민족 수난사를 다룬 이 작품이 묘하게도 광복절에 맞춰 탈고된데 대해서는 "의도한 것은 아닌데 자꾸 원고를 손질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대답.
"마흔 셋이던 69년에 「현대문학」에 첫 원고가 실렸으니....꼭 25년이 걸렸군요. 어려움이 많았지만...연재를 시작한 바로 그 해 암 수술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박경리 문학공원 전시실에서 내려다 본 옛집의 모습
옛날의 그 집
달빛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땅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난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만난 해설사분은 울 가족들을 위해 예정시간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활해해서 푸짐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었다. 덕분에 알찬 토지탐방이 된듯하다. 단구동 옛집 거실에서
박경리문학공원 내 옛집, 선생의 집필실에는 두루마기, 청 멜빵 바지, 부채 등 선생의 손떼가 묻은 물품들인
책상과 원고지, 사전, 찻잔, 읽던 책이 전시되어 있다. 소설 토지 4부와 5부를 이곳에서 집필했다. 대하소설 토지가 완성된 역사의 현장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생전 친하게 지냈던 박완서 선생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집필실이다. 앉아서 바라보면 멀리 치악산 자락이 보였다 한다. 볕이 잘 들어 환하고 소박해서 더욱 정갈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죽음 / 박경리
해야만 했던 일 끝나면
춤을 배워볼까
하얀 버선발 세우고
학이 날개 펴듯
두 팔 허공에 띄우며
나도
예쁘게 춤을 출 수 있을까
주변 가지런히 챙겨놓고
노래라도 배워봤으면
접은 부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나도 신명내며
노래할 수 있을까
학과 같이 춤을 추고
소쩍새같이,
아니 아니 그냥
신명내어 노래 부르다
죽었으면 참 좋겠다
지샌 밤 / 박경리
토인비의 역사연구를 읽다가
재봉틀 앞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묵은 유행가책 꺼내어
노래를 불러본다
무한한 것은 저만큼 서 있었고
생활은 내 곁에 어질러져 있었고
장난기도 좀 부려보았는데
갑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에
웃었다
창백한 형광등
커피는 식어 있고
원고지는 난무하고
시각마다 시체가 되는 사물
지겹게 울어대던 개구리
밤새 울음도 멎고
까치 소리에
창문 밖 내다보았더니
옥색 아침이 열려 있었다
잠시도 손을 놀리면 안 된다며 뜨개질을 하고 채소를 갈았다. 일을 하고 난 후 쉬었던 바위, 옆에는 책과 호미 고양이가 보인다. 하루에 두 끼만 드셨다. 음식물이 남으면 개, 고양이, 새에게 주셨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집에서 소각장을 만들어 처리하셨다. 고양이 한 마리 두 마리에게 밥을 챙겨주다 보니 30마리 정도로 숫자가 늘어나서, 길 고양이들을 먹이기 위해 정부미를 사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이셨다. 볕이 잘 드는 어딘가에 자리 잡고 한가롭게 졸고 있었을 고양이가 연상된다. 거위 한쌍도 있었는데 2년 전 마지막 한 마리가 죽었다 한다.
삶 / 박경리
대개
소쩍새는 밤에 울고
뻐꾸기는 낮에 우는 것 같다
풀 뽑는 언덕에
노오란 고들빼기 꽃
파고드는 벌 한 마리
애끓게 우는 소쩍새야
한가롭게 우는 뻐꾸기
모두 한목숨인 것을
미친 듯 꿀 찾는 벌아
간지럼 타는 고들빼기 꽃
모두 한목숨인 것을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문필가
붓끈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참여다
박경리 선생은 문학에 대한 뛰어난 재능과 열정으로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한 작품을 무려 26년 동안 집필하였고, 그 분량이 200자 원고지 4만 장 분량이나 된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가장 격동적인 시대와 민초들의 삶을 700여명이 넘는 등장인물로 녹여내었다.
[토지]는 한마디로 “소설로 쓴 한국근대사”라 할 수 있는 한국 문학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 토지안에 박경리 선생의 전 삶이 녹아들어 있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토지 외에도 수십권의 중, 단편 소설과 시집이 있다.
원주에 살면서 출간한 시집 '우리들의 시간', 유고 시집으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가 있다.
우리가 문학을 이야기 할 때, 토지와 박경리 선생은 든든한 고목이며 우뚝 솟은 산과 같은 존재이다. 그 산과 숲 안에서 토지안에서, 쉴 수 있는 인생과 후배 문인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함께 할것이다.
거목이었던 선생이었지만, 한 여자로서, 인생으로 던진 말씀이
지금 이순간에도 가슴을 울린다.
"내가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거에요."
박경리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한 해설사분과 기념촬영
회촌마을의 풍경
까치설
음식이 썩어 나고
음식 쓰레기가 연간 수천 억이라지만
비닐에 꽁꽁 싸이고 또 땅에 묻히고
배고픈 새들 짐승들
그림의 떡, 그림의 떡이라
아아 풍요로움의 비정함이여
정월 초하루
회촌 골짜기는 너무 조용하다.
그해 여름3
분홍빛 내리닫이 입고
딸에게 친구들에게
손 흔들며 작별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었던 그해 여름
눈을 떴을 때
하루 사이
세계지도같이 기미가 쓴
딸의 얼굴이 보였다.
글 쓰는 굴레 벗어버리고
고뇌와 분노의 굴레 벗어 버리고
미움과 절망도 다 벗어 버리고
그 해 여름은 불행하지 않았다.
빗물에 색이 더 곱고 진해진 단풍 뒤로 토지문화관이 보인다.
토지문화관의 모습
토요는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 토지문화관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농가맛집이다. 이곳은 박경리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약 8년을 살았던 동네이다. 토지 작품처럼 땅의 소중함과 생명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인듯 이 지역에서 농사지은 작물로만 지역주민들이 돌아가며 토요를 찾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생명 밥상을 차려낸다. 회촌마을 주민들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식당이다. 원주에 간다면 다시 찾아보고 싶은 정직하고 건강한 밥집이다. 특히, 가마솥 밥이 인상적이었고, 우리 독클 가족님들 접시에 음식을 듬뿍듬뿍 얹어서 여러차례!!! 갖다 드시는 모습이 생각난다.
한식 뷔페이고 가격은 8천원~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드셔본 독클 가족 모두가 인정했답니다. ~ㅎ
독클 가족분들 근처에 가시게 되면 토지문화관과 더불어 꼭 찾아보시라고 추천한다.
맛난 생명밥상으로 배불리 채우고 즐겼으니 이제 토지의 신령스런 기운을 맘껏 받으며 걸어보는 시간을 갖는 시간!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어 준 가랑비가 마치 숲이 선물로 주는 천연 미스트처럼 느껴진다는 회원의 말이 인상적이다.
일상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던 도시인들에겐 답답함에서 벗어난 해방감으로 마치 고향으로 회귀한 생명처럼 자연을 느꼈을 것이다. 나도, 우리 모두 자연의 일부인데~모두가 흐뭇한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그렇게 두 시간 이상을 걸었다.
내 몸을 밀어내는 아스팥트와는 달리, 밞으면 충분히 머금은 수분 덕분에 스폰지처럼 내 몸을 완충시켜주고 받아들이는 흙길은 넉넉했다. 걷는 내내 파르르 떨리며 추락하는 가을 낙엽을 동무삼아 나의 시선과 마음도 수직으로 좌우로 함께했다.
가을 향기와 숲의 바람이 더해져 깊은 호흡을 내쉬며 내 마음도 흔들렸다. 생을 다하고 기다리는 것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쉼의 시간이란 속삭임으로 들렸다.
출발 전에는 숲길 걷는 것을 꼭 해야 하느냐고 묻는분도 있었고, 비가 와서 괜찮을까요? 아이가 있은데........,
그런 생각은 모두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말을 안해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땅을 밟고 자연에게 온전히 나를 맡기며 걷는 행위가 건강한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는 특권이었고 그 자체로 감사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멋진 시간을 함께 연출해주신 독서클럽 가족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토지 정모를 참석해서 완독을 할 수 있도록 서로가 격려해준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원주 토지문화관 탐방을 함께 할 수 없었지만, 후기를 보시고 지난 봄, 여름 토지를 읽고 토론했던 시간들이 고운 추억으로 자리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함께 가신분들의 간략한 소감=======================
전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가정사가 마음 아프면서 그런 아픔과 슬픔을 글로 녹여내서 대작을 완성시켜 주신 부분과 사마천의 사기에 비유하실만큼 험난한 삶을 사셨고, 암으로 힘드셨을텐데 내색하지 않고 마지막에 편안하다고 쓰신글이 마음에 남습니다 /이쁜아이님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했던 힘든 삶.
빛바랜 원고지에 꼭꼭 눌러쓴 글자에 담긴 고단한 삶의 흔적.
닳아서 뭉둥거린 호미에 아픈마음 담아 흘려보내고 하는 말...,
"자연은 언제 나를 이렇게 단단하게 치유시켰을까.
내 뜰에는 햇빛이 가득하다."
땅을 존경하고
동물을 아끼고
사람을 사랑하던
검소한 성품의 농군작가
박경리의 흔적이 정말 좋았습니다. /치리아님
근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토지.. 오늘 박경리 문화공원, 토지 문화관 다녀오고 토지를 올해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장장 26년에 걸쳐 집필하신 작품을 맘 먹은기간내 읽어야겠다 싶은... 토지는 곧 생명이라는... 박경리 '토지', 펄벅의 '대지' 모두 땅에서의 생명을 상기시켜주는 거 같아요. 오늘 감동 많이 받고 왔는데 좋은 기회 마련해주신 독서클럽 책만세에 감사드립니다.^^ / 더불어숲님
다른 작가들 재우고 입히며 보금자리 만들어주신 토지문화관, 선생님 살아실 제 얼마나 가 보고 싶었던 곳이였는지요.
/서지기님
이전엔 매스컴을 통해서만 접했던 우리나라의 대작가님이셧는데 이번 탐방을 통해서 좀 더 친근하고 가까운 느낌으로 선생님을 느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다시 읽는 토지는 그래서 친근할 것 같아요. 다른 선생님의 작품들을 볼때면 집필하셨던 서재와, 소박했던 주방이 떠오를 것 같아요. ^^ / 시애님
전혀 카페 활동 안했는데 우연히 확인한 카페 쪽지 보고 냅다 신청했죠..토지를 워낙 재밌게 읽었던 추억이 있어서요.
인간 박경리의 삶에 대해 알게 되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레몬차님
토지 이전의 작품들은 토지를 쓰기 위한 습작이었다.
박경리 선생님도 캣맘이셨고, 손수 옷을 지어 입고
농사를 지어 드시는 소박하신 삶을 사셨다. 요즘 말로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셨지만
시대에 편승한 아버지의 이중살림으로 금수저를 누리지 못한것도
좋은 남편을 만나 못다한 공부를 이어가고
교편생활도 시작했으나 전쟁과 남편의 죽음
소설같은 선생님의 삶,
모질게 억척맞은 여자가 되었을수도 있었지만
소박하고 다정한 성품으로 좋은글 남겨주셔서 박경리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 햇살바람님
가슴이 울리는 하루였어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세상으로 바라보는 기준들이 많이 바뀌어 가는데..
자연친화적 소박한 삶..마음에 많이 와 닿았아요.
제게 치유를 선물해 주신 박경리작가의 삶과 오늘 하루 감사합니다. / 꿈마을님
아래 후기도 읽어주세요^^
청화님의 후기
http://cafe.daum.net/liveinbook/T2x/820
치리아님의 후기
http://cafe.daum.net/liveinbook/6SKr/16523
레몬차님의 후기
http://cafe.daum.net/liveinbook/6SKr/16517
첫댓글 ^-----------------^
토지만큼이나 대서사시 같은 후기네요.
함께 하지 못했지만 함께 한 이상으로 생생한 글이예요. 친절한 해설사님께 박경리 선생의 일대기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은 느낌~
수고하셨어요.^^
김작가님 감사합니다^^
참석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번 송년회 함께 가시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9 11:1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9 16:24
김장 하다가 허리 아파서 잠시 짬내어 들어 왔더니.....
이렇게 큰 독서클럽을 이끌어 가는 예쁜 글씨님의 숨은 영향력이 글속에 묻어 납니다.
역시 선장님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된 박경리문학관체험 글
감동으로 읽었구요. 이런글 읽을 수 있는 독서클럽 가족이라 행복합니다.
아마도 예쁜글씨님 올리신 글을 몇번은 다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아씨님 많이 부족한데 이쁘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허리 다치지않게 무리하지 마시고
조심하세요^^
박경리 선생님의 일생과 문학세계를 예쁜글씨님께서 잘 정리해 주신 듯 합니다.
가을의 정취가 가득한 곳에서 해설사님의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져서 독클가족들에게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글들이 슬픈 가족사를 몸소
겪으시며 짜내신 정수임을 짐작해 봅니다. 항상 온화한 미소를 간직하신 분이라 더욱 마음이
애잔해집니다. "토지"를 다시 꺼내 읽고 싶도록 만드는 예쁜글씨님의 후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덕무조아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번 탐방을 통해 알게된 내용이 많습니다
같은 곳을 다녀왔어도
이렇게 다양한 후체험을 할 수 있다는게
우리카페의 매력...
좋은글 한편 잘 읽고 배불리 먹은 기분이예요.
역시나~
멋진글입니다.ㅎ
종합했을뿐 별다른것은 없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문학작품을 풍요롭게 만나고 나누는 카페가 되길 바랍니다.
치리아님의 후기는 문학소녀답게 매우 감성적이었다는것~
감사합니다^^
원주 어디에 또랑광대만 사는 줄 알었는디......
이유가 하나 더 늘었으니 내년 여름에는 악착같이 가바야겄다. 이쁜글씨님 고미버유!!
오국지 작가님요. 이쁜 아니구요. 예쁜글씨님입니다요.ㅎㅎ
작가님 잘 지내고 계시지유? 이렇게 라도 뵈니 반갑구먼유!
가슴찡함. 그저 ..
우와~~ 오랫만에 왔어요... ㅎㅎ 예쁜글씨님 글만으로도 다녀온듯....
잘 지내시죠?..ㅎㅎ
뒤풀이 때 꼭 오세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31 02:25
그날 그현장에 같이 갓다온듯 싶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사진들 생생하게 잘보고 갑니다
토지의 많은 주인공들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그들과 같이 그렇게 살고계실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