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決戰의 날이 밝다
동굴(洞窟),
거대한 암벽에 빠꼼이 뚫어진 동굴은 철문(鐵門)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안에서 그 철문을 부서질듯 세게 두둘기고 있었다.
쿵! 쿵! 쿵!
대체 무엇인가?
무려 한 자 두께는 되어보일듯한 철문은 금방이라도 박살날 듯
굉렬한 굉음을 토해 내고 있는데..
그 굉음과 함께 모골송연하게 터져 울리는
극악(極惡)한 마성(魔聲)의 절규가 있었다.
"끼아아아-! 문을 열어!"
누군가 안으로부터 철문을 깨려 안간힘을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오송학은 한동안 그 철문앞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는 그 섬뜩한 절규성이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상아! 불쌍한 녀석..'
그는 드디어 철문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얼굴엔 진한 아픔이 배어 있었다.
'상아..어쩌면 이 오빠가 너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제발 네게 깃든 그 저주 속에
이 오빠에 대한 한 줄기 생각이라도 남아만 있어다오.
그러면 우리는 예전의 그 다정한 오누이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송학의 발길이 철문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 세워졌다.
우르릉-
"오호홋홋홋..!"
철문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곧 부서질 듯 떨어 댔지만
결코 부서질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다.
그의 옆으로 백골처럼 마른 몸집의 한 노인이 유령같은 신법으로 다가왔다.
그는 오송학을 향해 뱀처럼 차가운 눈길을 던졌다.
"당신이 오면 노부는 이 철문을 열어주게 되어 있소."
그는 철문의 한 귀퉁이를 만지며 말을 이었다.
"귀하가 들어가는 순간 철문은 닫힐 것이오.
귀하는 환우대마녀를 제압시킨 후 스스로 철문을 부수고 나와야 하오."
"후후..너무 무정한 수법이로군 그래."
오송학의 차가운 말에 혈포인은 이제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한순간 혈포인의 손이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철문의 구석구석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철문의 기관이 작동하며 날카로운 음향이 진동했다.
파앗!
혈포인의 자신이 자부하고 있는 최고의 신법(身法)을 시전해서
번개처럼 몸을 뒤로 빼내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녹상아의 손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번쩍!
오오..
대체 저 불가사의한 움직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혈포인은 눈깜짝할 사이에 이미 십여장이나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상태였다.
철퍽!
혈포인은 사방에 피를 뿌리며 바닥 위에 떨어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즉사한 것이다.
순간 오송학은 똑똑히 보았다.
녹상아가 전신으로 피빛 마기(魔氣)를 자욱하게 발산하며
걸어나오는 모습을...
그녀는 오송학을 보자 두눈에 핏빛 광채를 뿜어내며
이를 드러내고 섬뜩한 괴성을 토해냈다.
"끼아아아-!"
오송학의 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는 추호도 방심할수 없음을 알고 공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뇌전(雷電)같은 검기를 발출해냈다.
녹상아가 맨손으로 그 검기를 막아낸건 거의 동시였다.
꾸우우웅!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녹상아의 몸이 뒤로 퉁겨져 날아갔다.
허나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녹상아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있었다.
오송학은 전율했다.
'맨손으로 내 검을 막아냈는데도 멀쩡하다니!'
허나 그에겐 생각을 굴릴 여유조차 없었다.
그는 녹상아가 다시 철문을 나오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 마치 한줄기 빛살처럼 그의 몸이 이내 안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그가 문안으로 통과하기가 무섭게
기관장치가 안배된 철문이 원래대로 굳게 닫혔다.
콰앙!
오송학은 녹상아와 불과 삼장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아아...
핏빛 혈의(血衣)를 침침한 어둠 속에서 나부끼며
피빛 시선으로 서 있는 소녀,
대체 저 가공할 마기를 뿜어내는 소녀가
어찌 그 옛날의 청초한 녹상아란 말인가?
파팟..!
다가서는 오송학의 눈과 한 손을 비스듬히 치켜든 녹상아의 시선이
허공중에서 정면으로 부딪혔다.
순간 녹상아의 몸이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것을 본 오송학의 눈가에 한가닥 간절한 빛이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날 알아보고 있다!'
그는 그녀가 물러선만큼 앞으로 다가섰다.
"상아!"
그는 안타까운 음성으로 그녀를 불렀다.
순간 녹상아가 한 걸음을 더 뒤로 물러서더니
머리를 싸안고 괴성을 토하기 시작했다.
"끼아아아!"
오오...
핏빛 저주로 가득 찬 머릿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송학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의 표정은 차례로 바뀌어갔다.
극도로 노한 표정, 슬픈 표정, 다감한 표정 등으로..
영혼을 핏빛 저주에 빼앗기고 만 녹상아,
허나 어릴 때 그녀의 뇌리에 새겨진 오송학의 영상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 그것은 그녀가 지닌 모든 감각과 본능의 이전 것이었다.
'상아! 반드시 널 예전으로 돌려놓고 말겠다!'
오송학은 주체하기 어려운 격동을 느꼈다.
'서둘러야 한다.
상아가 나를 기억할 순간은 잠시뿐일수도 있다!'
그는 괴로워 몸부림치는 상아의 앞에 털퍽 주저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합장했다.
순간 한 줄기 청광이 그의 가슴에 모여진 두손으로부터 서서히 떠올라
녹상아를 향해 뻗치기 시작했다.
"마녀여..나는 그대의 주인...
마골지정(魔骨之精)은 그대를 다스리는 주인...
마녀여...마골지정의 명을 받으라."
오송학의 음성이 구천유부(九泉幽府)에서 원혼을 달래주는 염왕의 주문처럼
을씨년스럽게 울려 퍼졌다.
순간 광란의 몸부림을 치던 녹상아의 몸이 우뚝 멈추고,
그녀는 빛을 찾은 듯 평온한 모습으로
자신을 향해 뻗어 드는 청광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마골지정(魔骨之精)!
그렇다.
그것은 바로 죽은 벽라천군의 몸에서 나온 푸른 빛 구슬이었다.
녹상아의 손이 마골지정을 받아 들었다.
순간이다.
"갈(喝)!"
오송학은 벼락같은 외침이 토하며 두 손을 뻗어
마골지정을 잡은 녹상아의 작은 손을 움켜잡았다.
치이익!
무엇인가 섬뜩한 음향이 일었다.
"이마제마(以魔制魔)! 마기(魔氣)는 마기로 다스린다!"
마골지정이 녹상아의 손을 통해 그녀의 몸안으로 스며들었다.
오송학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마성이 주체지 못할 정도로 극한 상태로 치닫는다는 사실을.
바로 그때가 기회인 것이다.
이마제마의 수법으로 그녀의 마성을 파괴시키고
다른 것을 주입시킬수 있는 유일한 기회!
후류류륭!
오송학은 불사회혼대법(不死廻魂大法)과 동시에
회천도인공(廻天導引功)이라는 천외기환인의 신공을 펼쳤다.
그순간 두 사람의 몸은 한 치의 틈도 없이 굳세게 포옹된 상태였다.
한순간,
녹상아는 두눈으로 가공할 피빛 마기를 뿜어내며 무섭게 몸부림쳤다.
"끼아아아아-비켜라!"
오송학을 밀쳐내는 그녀의 힘은 실로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허나 오송학은 이를 악물고 사력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았다.
떨어지면 끝장이다!
"끼아아아-!
대략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리라.
허나 그 시간은 오송학에겐 천년처럼 지루한 것이었다.
바로 그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녹상아의 몸에서 뿜어지던 마기가
거짓말처럼 빠르게 소멸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피빛 눈빛이 원래의 영롱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변한건 그 직후였다.
...해냈어...
오송학은 엄청난 희열에 사로잡힌채 망연자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녹상아가
어지러운듯 한차례 휘청거리더니 신음성을 발했다.
"으음...여기가 어디지?"
"상아!"
"오...오빠...?"
녹상아의 눈이 이내 기쁨의 빛을 가득 담은채 휘둥그래졌다.
오송학은 와락 그녀의 동체를 껴안았다.
"상아..그래...참으로 잘 참아주었다..."
"오빠...정말 보고 싶었어...정말이야..."
녹상아는 한쌍 봉목에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며
한없이 그의 품에 파고 들었다.
* * *
콰아앙!
우르르릉...
불과 세번의 진동이 철문을 뒤흔들었을때였다.
마치 용광로에 던져진듯 철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엿가락처럼 휘더니
이내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치이이익..
그 구멍으로 오송학이 축 늘어진 상아의 몸을 안고 빠져나온건 그 직후였다.
그는 이내 십여 장 앞에 유령처럼 서있는 수많은 노인들을 발견했다.
노인들의 숫자는 대략 칠십여 명 가량 되어보였다.
한결같이 회의를 걸친 노인들,
그들은 이순간 경이의 표정으로 오송학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순간 그들 중 한 노인에게서 무심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암흑칠십이로(暗黑七十二老)는 그대를 인정하오."
"암흑칠십이로라.."
오송학은 비로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천주에게 전하시오.
십일월 초하루에 하북대평원(河北大坪原)에서
천하를 놓고 승부를 겨루자고 말이오."
그 말을 남기고 오송학은 천천히 녹상아와 함께
그들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암흑칠십이로는 일제히 좌우로 갈라지며
멀어지는 그를 지켜보았다.
* * *
그는 이미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
어쩌면 무종금강력(武宗金剛力)의 단계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가 아무리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 해도
암흑마천 전체에 도전장을 낼 수는 없다.
틀림없이 그의 배후에는 거대한 세력이 있으리라.
천주와 합의해 본천의 전력을 모아야 한다.
하북 대평원의 싸움에서 모든것은 결판이 날 것이다.
파드득!
서천목산 정상에서 한무리 은빛 비둘기 떼들이 날아올랐다.
그것은 암흑마천의 특급전령조(特急傳令鳥)인 전서구들이었다.
수만 마리의 비둘기는 대륙의 구주팔황(九州八荒), 삼산오악(三山五嶽)과
해외변방(海外邊方)을 향해 흩어져 날아갔다.
한 장씩의 특급전령을 가지고..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하북대평원으로 집결하라!
* * *
<천하에 고(告)하노니...
무림의 운명(運命)을 걸고 최후의 일전(一戰)을 결할 것이다.
장소는 하북대평원(河北大坪原)...
일시(日時)는 십일월 초하루 오시(午時) 정각>
그것은 오송학이 천하무림에 선포한 포고문이었다.
오송학은 이미 암흑의 세월 속에서 떠오른 찬란한 태양이었다.
허나 그 포고문은 그 태양을 다시 하늘로 바꾸어 놓았다.
정도무림의 하늘...
엄청난 흥분과 긴장의 도가니 속에서
무림인들은 초조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직 그들의 가슴에 드리워진 암영(暗影)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혈검낭인이 과연 암흑마천을 이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너도나도 하북 대평원을 향해...
너나 할것 없이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하북대평원의 결전이야말로
정도무림의 존망(存亡)을 결정지을 최후의 기회라는 것을..
그렇다.
그들은 반신반의속에 직접 천하의 운명을 지켜보려는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인파는 많아졌고...
결전 전야(前夜)에 이르러서는 중원인 모두가
하북대평원에 모인 듯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그리고..
십일월 초하루의 태양이 마침내 떠올랐다.
이제 저 태양은 누군가의 피로 물들 것이다.
그리고 그 태양과 함께 모여든 무림인들은
대평원의 빛깔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그 대평원의 중앙,
마치 태양이 내려앉았다가 떠난듯 새까만 흑색의 대지(大地)가 있었다.
거대한 원형을 이루며 헤아릴 수 없이 꽃혀있는 흑ㅅ의 삼각 깃발들과
천(千)인지 만(萬)인지 헤아릴 수 없는 흑의인들...
그렇다.
그 흑색의 대지에는 금세라도 땅을 가를 듯한
암울한 마기(魔氣)가 회오리쳐 오르고 있었다.
암흑마천(暗黑魔天)-
천 년의 세월 동안 진정한 모습을 내놓지 않은 암흑의 실체(實體)가
한꺼번에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암흑마천주 이하 암흑칠십이로(暗黑七十二老)가
각각 일천(一千)의 수하를 거느렸으니
도합 칠만이천(七萬二千)의 숫자다.
어디 그 뿐인가?
암흑마천주의 직속인 암흑철기대(暗黑鐵騎隊) 일만(一萬),
염왕(閻王), 유명(幽鳴), 구천(九泉) 등
삼부(三府)의 고수 삼만(三萬)이 다시 웅크리고 있었으니
실로 고금미증유의 세력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헌데 그들과 마주한 곳,
바로 오송학과 그의 세력이 있어야 할 자리일진데...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휘이이잉!
서서히 말라 가는 대지 위로 추풍(秋風)만이 갈색으로 분다.
그 자리엔 오송학은 커녕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대평원에 운집한 천하각지의 무림인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아무도 없으니...
벌써 오시(午時)가 다 되어 가는데.혹시 혈검낭인은 겁을 먹은 게 아닐까?
그럴만도 하지. 저 암흑마천의 위용을 좀 보게.
혈검낭인이 그 동안 아무리 많은 세력을 모았다고 해도
어떻게 암흑마천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던 한순간이다.
구름같은 인파속에서 빠져나와
암흑마천 진영의 맞은 편 자리로 천천히 올라가는 한 인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바로 오송학이라는걸 알아보고는 일순 넋을 잃었다.
-혼자란 말인가..?
암흑마천의 십만여 고수 진영을
오송학이 홀로 맞서 등장할 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허나 정확히 말해서 오송학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아내가 된 아름다운 절세가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빙옥교의 품에는 갓 태어난 아기가 안겨 있는 것이다.
때는 태양이 중천(中天)에 정확히 걸린 오시(午時),
오송학은 단아한 백색유삼에 치렁한 흑발을
어깨 뒤에서 표표히 날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암흑마천 진영의 십만여 고수는 일순 쥐죽은듯 고요해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예상치 못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감히 오송학을 비웃을수 없었다.
'뭔가...잘못되었다..!'
그렇다.
분명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알수없는 불길한 느낌이 암흑마천 고수들의 심기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불길한 느낌의 원인에 대해 그들이 전전긍긍 하고있을 무렵,
스윽...
오송학이 조용히 바닥에 정좌(正坐)의 자세로 앉더니 눈을 내리감았다.
그런 그의 몸에선 마치 대평원에 홀로 있는듯 고요한 평온감마저 느껴졌다.
그는 그순간 땅의 일부였으며 동시에 하늘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의 몸에선 서서히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말그대로 무심(無心)의 경지였다.
그러나 그순간 그를 바라보는 세 여인의 눈빛은 초조감에 가득 물들어 있었다.
아기를 안은 빙옥교와 단목청,
그리고 유벽군과 천진스러울만큼 귀여운 녹상아였다.
둥둥둥...
한순간 웅장한 쇠북 소리가
하북대평원의 뽀얗게 이는 황진 속으로 덧없이 울려 퍼졌다.
오시(午時),
운명의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 * *
하북대평원에서 십만대일(十萬對一)의 대치가 이루어진 바로 그 시각-
오송학의 대계(大計)에 따라 대의정천맹에 소속된 정도무림인들은
일제히 서천목산(西天目山)의
암흑마궁(暗黑魔宮) 본거지등을 총공격하고 있었다.
"와아아아-!"
"악마의 주구들을 이땅에서 몰아내라!"
소림장문(少林掌門) 철목신승(鐵目神僧)등을 비롯한
구대문파(九大門派)는 물론이고,
삼장사보(三莊四堡)로 일컬어져 온
강호칠방(江湖七幇)과 변방삼대세력(邊方三大勢力)....
남궁(南宮), 북궁(北宮), 황보(皇甫), 단목(端木), 단리(丹里),
헌원(軒猿)가의 고수들까지
일제히 동시에 암흑마천을 몰아내기 위한 총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라고나 할까?
이미 하북대평원으로 대부분의 노른자 고수들이 빠져나간 상황이니
그들의 공격은 거칠것이 없었다.
그렇다.
암흑마천이 접수했던 중원의 땅은
눈깜짝할 새에 다시 정도무림에게로 되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희열을 느끼기 전에 비장함에 먼저 사로잡혀야만 했다.
이것은 혈검낭인 오송학,
그가 암흑마천주와 겨루어 동귀어진을 하기로 결심한 댓가이다.
그렇다.
십만(十萬)의 암흑마천 고수들을 홀로 맞이하러 간 오송학의 존재가
그들의 뜨거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 * *
암흑마천주와 오송학,
드디어 그들은 서로 십여장 거리를 두고 마주섰다.
암흑마천주는 여전히 철립을 깊이 눌러 쓴 모습이었다.
오송학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눈앞의 인물은 바로 자신의 부친이 아니던가?
'하늘이여..나는 이제 천륜을 어기려 하오.
이땅의 무림을 위해 나는 내 아버지라는 저 자를 죽일 것이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자신도 그 뒤를 따르겠소!'
오송학은 가슴이 미어지는듯한 고통을 느꼈으나
이내 길게 심호흡을 하며 손을 검으로 가져갔다.
바로 그때다.
암흑마천주의 입에서 놀라운 일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다른사람의 들을수 없는 전음성이었다.
"너는 계략은 참으로 훌륭했다.
하지만 날 죽이고 중원땅을 다시 점령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너는 절대 천륜을 어겨선 안된다."
오송학의 몸이 벼락을 맞은듯 부르르 경련했다.
오오...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암흑마천주는 바람처럼 무심한 어조로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너를 처음보았을때 나는 네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슴의 반점을 보였을때 네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내 아들임을 알았다."
"후후...내가 당신의 아들임을 거부한다면 어쩔 셈이요?"
오송학의 두눈에서 활화산같은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단 한번도 타인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암흑마천주가
철립을 천천히 벗어든 것이다.
나타난 얼굴은 믿을수 없을만큼 청수한 얼굴이었다.
마치 학문(學文)에 뜻을 둔 고아한 선비같다고나 할까?
그런 그의 모습을 목격한 장내 중인들 사이에
경탄성인지 뭔지 모를 소리들이 새어나왔다.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천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암흑마천주의 모습이 저토록 단아할 줄이야.
허나 빙옥교와 녹상아 등은 그순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닮았다...너무나!'
그녀들이 어찌 두사람의 관계를 알겠는가?
암흑마천주의 전음성이 다시 이어진건 바로 그때였다.
"내가 얼굴을 드러낸 것은
잊어버렸던 석도강(石道江)이라는 내 이름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암흑마천의 천주라는 신분과
중원정복의 야망을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천주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한 천하제일을 자부했던 나의 무공은 이미 소멸된지 오래다."
오송학은 일순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오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암흑마천주의 신분과 중원정복의 야망을 포기했다니..
게다가 천하제일을 자부했던 무공까지도 소멸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대체..당신은 무엇때문에?"
"후후..이유는 단 하나, 그 가지 보다도 더 소중한걸 되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여기까지 결심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네 어머니가 살아있었다면 나는 아마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고통을 잊기위해서 몸부림쳐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암흑마천주의 자리에 오른 나자신을 발견할수 있었다."
암흑마천주, 아니 석도강은 그 말을 끝으로 서서히 등을 돌렸다.
"내가 나를 아버지로 인정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약속했던 대결은 정정당당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내 후계자인 새로운 암흑마천주에 의해서.."
"잠깐!"
오송학은 신음처럼 그를 불러세웠다.
"한 가지만 묻겠소. 당신은 왜 내 어머니를 버렸소?"
순간 석도강의 전신이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잠시 굳은 상태로 입을 열줄 모르더니
시선을 들어 허공을 공허로이 올려다보았다.
"내가 네 어머니를 버렸다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고서야..."
석도강은 허공을 응시한 채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결코 네 어머니를 버린 적이 없다.
네 어머니 스스로 암흑마천을 탈출했던 것이다."
"탈출...?"
석도강은 나직이 탄식했다.
"이제와 무엇을 숨기겠느냐.
네 어머니는 너로 인해 암흑마천을 탈출했던 것이다.
바로 네가 천강치우지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게다가 그녀는 천외기환인의 후손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본래부터 암흑마천에 몸을 담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암흑마천의 조사이신 암흑마왕과 천외기환인과의 관계는 너도 알고 있을 터..."
서서히 풀려 나가는 운명의 비밀...
"네 어머니는 네게 미칠 화(禍)를 두려워한 나머지 내 곁을 떠났다."
"그래서...어머니를 죽이라 명하셨소?"
오송학의 음성은 격앙되어 있었다.
석도강의 입에서 다시 탄식이 새어나왔다.
"나는 당시 네 어머니의 탈출을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면 내 목숨을 걸고라도 말렸을 것이다."
"나는 그때 천년마왕동(千年魔王洞)에 입동(入洞)해 있었던 것이다."
석도강의 끝말은 가늘게 떨려 나왔다.
그리고 오송학은 그런 그의 두 눈에 언뜻 물기가 배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랬었던가..
이것도 내게 주어진 운명의 한 단면이었던가?
누구에게도 원망할 수 없는...
마음같아선 당장 석도강을 향해 아버지라고 외쳐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오송학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마음을 다져먹었다.
상대만 바뀌었을뿐 그에겐 여전히 새로운 암흑마천주를 이겨내야 할
막중대사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때 석도강의 무심한 음성이 그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승부는 승부다.
네가 만약 암흑마천주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무림은 다시 정복되고 말 것이다."
말은 하는 석도강의 시선은 암흑마천 진영의 한 흑색 막사(幕舍)에 고정되어 있었다.
촤륵..
굳게 닫혀 있던 흑색 천막의 휘장이 천천히 말려 올라간건 바로 그때였다
. 동시 한 묵의청년(墨衣靑年)이 허리까지 흘러내린 검은 흑발을 출렁이며
당당한 풍모를 드러냈다.
그 묵의청년을 대하는 순간 오송학은 숨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오오..
태산이라도 단번에 밀어낼듯한 저 가공할 기도라니!
허나 그보다 더욱 오송학에게 충격을 준 사실은
상대의 얼굴이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냉무강, 바로 네가 새로운 암흑마천주였단 말이냐!
그렇다.
그는 바로 냉무강이었다.
놀랍게도 냉무강은 최후까지 모든 관문을 돌파하고
석도강의 뒤를 이어 마도제일인(魔道第一人)의 권좌까지 올랐던 것이다.
한때 사신도혼(死神盜魂)으로 고혼유찰(孤魂幽刹)의 살수 신화에 도전했던 바로 그...
그리고 오송학 자신의 영원한 친구이자 호적수이기도 했던 그가
이제 최후의 대결을 위해 걸어오고 있었다.
둥! 둥! 둥!
웅장한 북소리가 암흑마천 진영에서 울려퍼지고..
누군가가 하북대평원을 뒤흔들어놓는 사자후의 일성을 발한것은 거의 동시였다.
"암흑마천주신위(暗黑魔天主神威)-!"
순간 거대한 하북대평원은 쥐죽은듯 고요한 긴장속에 가라앉았다.
구름처럼 몰려든 중인들은 그제서야 석도강이 암흑마천주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석도강과 오송학이 주고받은 대화를 어찌 알겠는가?
아니 그런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현존(現存)하는 최고의 두 강자(强者)!
중인들은 무림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두 정상(頂上)의 대결을 보러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드디어 무림사상 한번도 기록된 적이 없는
최고의 승부가 벌어리려 하고 있었다.
...오오 시작인가..
* * *
"송학, 오랜만이군..."
한점 억양도 없는 음성...
냉무강의 신색은 그저 고요했다.
"자네..천년마왕동의 마기를 완전히 이겨냈군...'
오송학의 얼굴에 미미한 격정이 일었다.
냉무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정리(情理) 따위를 생각할 시기는 지났다.
단지 천하(天下)의 향방을 결정짓는 문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가.."
오송학은 두눈에 복잡한 빛을 떠올렸다.
그때다.
암흑칠십이로 중 수좌(首座) 암흑일로(暗黑一老)가
십만의 암흑마천도(暗黑魔天徒)들을 향해 사자후의 일성을 발했다.
"암흑마천의 제자들이여! 천상암흑집회(天上暗黑集會)의 권한으로 선포한다!
암흑마천은 오늘의 대결을 시점으로 삼아
십년마다 무림지배권을 놓고 일대일(一對一)의 승부만을 겨루기로 결정하였다!"
"이 십년대결(十年對決)은 더이상 대량살상으로 인한
무림의 피폐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미 천하제일의 힘을 확인한 본 암흑마천의 결정인 이상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의 대결에서 이기는 쪽이 금후 십년간 무림을 지배하게 되리라!"
대체...
대체 이게 무슨 느닷없는 말인가?
오송학은 물론이고, 대평원에 운집한 무림인들,
심지어는 암흑마천의 고수들까지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암흑일로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이 일은 전대 암흑마천주 석도강과
현 암흑마천주 냉무강이 공동으로 발의(發意) 한 사항이며,
본 천상암흑집회는 그 뜻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그 사자후의 일성이 막 끝난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중원무림 만만세!"
하북대평원은 미치 해일이 이는듯 엄청난 환호의 물결로 뒤덮혔다.
오송학은 순간 전신의 피가 일시에 끓어오르는듯 격한 감동을 느꼈다.
그것은 정녕 그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제안이었다.
그것은 또한 암흑마천의 마도(魔道)를 포기하고
정도(正道)의 길을 선택했다는 엄청난 의미이기도 했다.
그는 뜨거운 눈길로 석도강과 냉무강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무강..!'
그렇다.
이제 그는 자신있게 석도강을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헤아린듯 석도강의 입가에 일순 희미한 미소가 스쳐갔다.
그때 냉무강이 안면근육을 실룩거리더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우리의 삼년지약(三年之約)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
하지만 싸우기 전에 먼저 네놈에게 말해주마.
사부님께선 이 대결에서 분명 내가 이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그러셨단 말이지.."
오송학은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채 힐끗 석도강을 돌아보았다.
상황으로 보아 냉무강은 이미 자신과 부친의 관계를 알고있는듯 했다.
바로 그때 석도강의 전음성이 그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허허..넌 절대 내 제자를 이기지 못한다.
냉무강은 내 모든 무공은 물론이고 내공까지 이어받았다.
그를 이긴다는건 곧 나를 이긴다는 것인데 어찌 가능하겠느냐?"
순간 오송학의 입가에 신비로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의 전신에서 피가 무섭게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절대 질수 없다는 승부사의 본능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씨익 웃으며 냉무강에게 말했다.
"후후...무강 넌 절대 날 이기지 못해."
휘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바람은 눈발을 담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눈발은 점점 거세어져 하북대평원을 서서히 설지(雪地)로 만들어 갔다.
그 눈발 속에 그들은 마주섰다.
흑(黑)과 백(白)이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아니 하북대평원 전체가 침묵으로 일관했다.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하북대평원에 모인 수십만의 시선은
한결같이 긴장의 눈으로 그들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하의 운명을 짊어진 그들은 필시 무림사에 남을 명승부를 연출해 내리라.
하북대평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휘이이이잉...
바람도 거세어지고 눈발도 거세어졌다.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오송학이었다.
"먼저 검을 뽑아라 무강.."
냉무강의 눈가에 일순 날카로운 예기(銳氣)가 번뜩였다.
"나는 오래끄는 싸움따위는 질색이다.
세 초식 안에 승부를 가리자. 이번엔 절대 무승부는 없을 것이다."
"삼 초식이라.."
오송학의 두 눈에 잔떨림이 일었다.
비로소 운명의 결전은 시작되고야 마는가?
오송학은 느릿하게 혈혼검을 들어 올렸다.
냉무강도 허리의 묵검(墨劍)을 뽑아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그런 상태로 두 사람은 이 장여의 거리를 좁혀 우뚝 멈춰섰다.
휘이잉!
눈보라가 그들의 석상(石像)처럼 미동도 않는 그들의 몸을 할퀴듯 스쳐 지났다.
순간이었다.
"암흑마마류(暗黑魔魔流)!"
급기야 냉무강의 신형이 허공으로 번뜩 떠오르며 일진의 검강을 폭사시켰다.
번쩍!
때를 같이하여 오송학의 신형도 혈혼검과 함께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분광환영검(分光幻影劍)!"
번-쩍!
파파파파팟...
귀청을 가를 듯한 소성이 하북대평원을 진동시켰다.
흑과 백의 두 그림자가 전광석화처럼 교차되었다.
오오..
대체 무엇이 어찌된 것일까?
중인들은 눈을 부릅뜬채 장내의 상황을 주시했다.
한차례 눈보라가 지나간후
어느새 본래의 자리에 우뚝 서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문득 냉무강이 신음처럼 입을 열었다.
"대단하구나. 송학...내가 들어온 과거의 분광환영검이 아니로구나."
"암흑마마강이라 했더냐? 훌륭하다. 가히 암흑마왕의 비예(秘藝)답다."
"이번엔 조심해라. 송학, 이번 초식은 암흑경천뢰(暗黑驚天雷)라 한다."
냉무강의 신형이 허공으로 무려 십여 장이나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오송학은 요지부동 태산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번쩍-!
우르르르르-
경천뢰음(驚天雷音)이 하북대평원을 진동했다.
허공 십여 장 높이로 떠오른 냉무강의 묵검 끝으로부터
눈이 아릴 듯 극렬한 묵검광(墨劍光)이 폭사되었다.
바로 검신합일(劍身合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송학의 전신이 찰라지간 팽팽히 긴장되었다.
검신합일의 상태에서 허점을 찾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
헌데 돌연 요지부동 움직일 줄을 모르던 오송학이
지척으로 짓쳐든 냉무강을 향해 맹렬히 혈혼검을 떨쳐 냈다.
순간이다.
폭죽이 터져 오르는가?
아니면 무지갯살이 번져 오르는가?
오오... 변(變)!
무한한 변(變)의 연출,
냉무강의 전신이 일순 혈혼검에서 폭출된
수천, 수만의 무수한 검화(劍花)속에 파묻였다.
냉무강의 신형이 빛살처럼 빠르게 위로 치솟아 오른건 그 직후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모습을 나타낸 곳은 역시 본래의 자리...
"이번엔 너의 반 초 승리다."
잘게 떨리는 음성이었다.
오송학은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나는 변칙을 쓴 것이니 이번에도 무승부다. 자, 최후의 승부를.."
"으음..."
휘이이잉!
바람은 이제 광란하듯 몰아쳤다.
눈발도 시야를 가릴 정도로 드세어졌다.
중인들은 그들의 대결을 목격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두눈을 부릅 치떴다.
오오..
도대체 저것은 무슨 무공이란 말인가?
오송학과 냉무강의 몸이 마치 두 마리의 용(龍)이 승천하는듯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비상하고 있었다
한순간 중인들의 시야게 그 두 용(龍)이 서로를 향해
뇌전같은 벼락줄기를 뿜어내는걸 보았다.
번--쩍--!
두줄기 창백한 섬광(閃光)이 이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음순간 중인들은 그들이 다시 원래의 자리에 돌아와
석상처럼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똑같이 변화가 없었다.
허나 두 사람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승부가 끝났다는 것을...
냉무강의 무표정한 얼굴 입가로 한줄기 선혈이 새어나온건 바로 그때였다.
그의 눈에 이내 형용할수 없는 회의(懷疑)의 빛이 짙게 드리워졌다.
"송학... 네가 이겼다...헌데 왜 갑자기 오 푼의 공력을 거두었느냐?"
오송학은 무겁게 탄식했다.
"네가 죽으면 내가 외롭기 때문이다."
냉무강의 몸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오송학은 두눈에 신비로운 광채를 발했다.
"십년 후에 다시 무림대권을 놓고 싸울 상대가
다른 자라면 내가 섭섭하지 않겠나."
냉무강은 그제서야 입가에 창백한 미소를 떠올렸다.
"지겨운 놈 같으니.."
오송학의 시선이 문득 부친 석도강에게로 향했다.
석도강은 그저 미소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송학은 천천히 석도강을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그의 앞에 우뚝 멈추어선 오송학은
은은히 떨려나오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님..."
석도강의 신색에 일순 격동의 빛이 물결쳤다.
오오..
...아버지..
도대체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석도강은 애정어린 눈으로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들아, 네가 자랑스럽구나."
"아버지...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오송학은 문득 한쪽에서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빙옥교를 돌아보았다.
아기는 새근새근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아버님의 손자(孫子)입니다. 이름을 지어 주셨으면 합니다."
"송학.."
석도강은 급기야 격정을 참지 못했다.
그의 눈에선 뜨거운 이슬이 ㅁ히고 있었다.
그때 오송학의 부름을 받은 빙옥교가 조심스럽게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오송학은 아기를 건네받고는 부친에게 내밀었다.
"아버님...아버님의 손자이옵니다."
"그래..."
"허헛...송학을 꼭 빼어 닮았구나. 어찌 보면 나를 닮은 듯도 하고.."
석도강은 방실방실 웃고 있는 아이를 덥석 안아 들었다.
혈육의 정(情)...
천하에 그보다 더 진한 것이 어디 있으랴.
"송무(松武)라 이름짓고 싶구나.
송학과 무강이란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말이다"
"송무.."
오송학은 그 이름을 읊어 보며 냉무강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냉무강의 입가에 보기 드물게 부드러운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오송학도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느 샌가 눈발은 맺고...
바람은 그 흐름을 멈추었는지 하북대평원은 이를데 없이 고요했다.
평온..
이제 평온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냉무강과 석도강의 모습이 저 멀리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반대편으로부터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맨 앞엔 단목청,
그리고 그 뒤엔 백빈영, 이어 유벽군의 모습과 요난아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엔 요난아가 선두로 나서기 시작했다.
"오빠!"
요난아는 쓰러질 듯 마구 눈 위를 달리며
울부짖듯 오송학을 부르고 또 불렀다.
"오빠!"
오송학은 달려오는 요난아를 향해 마주 소리쳐 불러 주었다.
"난아."
바람과 눈발만 그쳤는가 했더니,
어느새 하늘마저 시리도록 푸르게 개어 있었다.
따스한 양광(陽光)이 하북대평원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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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ㄴ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