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헌데 이날, 백상인 들이 묵고 있는 객점에 홀연 네 사람이 찾아들었다.
그날 저녁 늦게야 일어나 식사를 마친 그들은 돌연 점소이의 그 같은 전갈을 듣고 일순 의아해 했다.
"손님이 찾아왔다고? 우리에겐 찾아올 손님이 없을 것 같은데?"
제갈청하가 의아해 하자, 백상인이 물었다.
"그들의 차림새는 어떻소?"
점소이는 일순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대답했다.
"글쎄 말입니다. 그게.. 하도 괴상한 것이라서, 그들은 한마디로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그랬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들은 지금 요 앞에 있는 주루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는걸요."
그 말에, 제갈청하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악마교의 오대호법존자들 중 나머지 네 명, 그들이 분명했다.
이는 기어코 염려하던 일이 닥친 것이다.
백상인이 목령존자를 이기기는 했지만 그들 네 사람을 동시에 이길 수가 있을까? 아니,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혹시 기적이라도 일어난다면 몰라도...
허나, 그 기적이란 것은 그리 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백상인은 탄식하며 말했다.
"염려 마시오, 잘 될 것이오."
제갈청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잘 될 거에요, 나는 당신을 믿어요!"
그녀는 힘을 내어 말했다.
그러나, 그러는 그녀의 표정이 밝을 수는 없었다.
그것을 보고 주벽군이 물었다.
"왜 그러지요, 언니?"
제갈청하는 쓸쓸히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실은, 백랑의 최대의 적이 왔어요."
"최대의 적이라고요?"
주벽군과 유운봉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다면 위험한가요?"
제갈청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주 많이....."
일순 주벽군과 유운봉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비록 성숙한 여인이라고 해도 그녀들은 아직 겨우 하룻밤의 신혼을 보낸 풋내기인 것이다. 그런 그녀들이 강호의 위험을 몸소 체험할 기회가 많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되나요?"
주벽군이 다소 주저하며 물었다.
백상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그들이 목표로 한 이상 그들의 눈을 피해 달아날 수는 없소. 그들이 직접 이리로 오지 않고 주루에서 기다린다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오. 그들은 내가 도저히 달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오."
"흑....."
주벽군과 유운봉은 나직이 흐느꼈다.
그녀들이라고 이런 때의 미소가 남자에게 힘이 되어 준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알기보다도 더욱 어려운 것이다.
다만, 제갈청하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어서 다녀오세요. 우린 당신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겠어요."
백상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되오!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를 대신하여 그녀들을 황궁까지 무사히 호송해 주어야 하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지 않겠소?"
"아니에요."
제갈청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린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을 거예요. 그러니 차라리 여기에서 기다리다가 당신의 뒤를 따르는 것만 같지 못해요. 안 그래, 금매. 봉매?"
"그, 그래요, 언니!"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어요."
주벽군과 유운봉은 눈물젖은 음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청하는 백상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당신은 떠나세요. 우린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실 것을 믿어요."
백상인은 장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제갈청하의 두 손을 잡았다.
"고맙소. 그럼 나는 이만....."
그 말을 남기고, 백상인은 그 자리에서 씻은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슷.....
그 뒤에 주벽군과 유운봉의 오열이 남았다.
제갈청하의 두 눈에도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 * * * * * * *
예상했던 대로, 사대호법존자들은 그 주루에 있었다.
그들은 바로 오대호법존자에서 목령존자를 제외한 화령존자, 수령존자, 금령존자, 토령존자 등이었다.
주루 안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백상인이 그 구석진 탁자 앞에 이르자, 수령잔자가 나서서 차갑게 내뱉었다.
"네가 바로 목령을 죽였느냐?"
의외에도 그 말은 중원어였다.
발음이 다소 서툴긴 해도 수령존자만큼은 중원어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백상인은 그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천축어로 답변했다.
"그와 나는 정당한 비무를 하였소. 헌데 불행히도 그가 나에게 패했소."
이에, 그들 사인은 일순 흠칫하는 표정이었다.
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이 젊은 청년이 아주 능숙하게 천축어를 구사한다는 점이겠고,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설마하고 있었던 점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성격이 다소 급한 화령존자가 괴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크흐흐흐.. 나는 네 말을 절대로 못 믿겠다! 너는 혹시 무슨 술수를 썼던 것이 아니냐?"
백상인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정 믿기 어려우면 당신이 직접 시험해 보면 되지 않소?"
그 말에, 화령존자는 크게 화를 내며 발작하려고 했다.
"뭐라구-----?"
이것은 또한 백상인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로서는 가능한 한 일대 일의 비무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허나, 세상만사는 그리 쉽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때, 수령존자가 화령존자를 제지하며 냉랭하게 말했다.
"자네는 아주 수단이 훌륭하군!"
백상인은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별 말씀을. 단지 그의 수양이 부족했을 뿐이오."
그 말에, 화령존자는 다시 발작을 하려고 했다.
허나, 그는 다시 수령존자에 의해 제지되었다.
"자네는 아주 고명한 입심을 가지고 있군! 허나, 입으로 하는 싸움은 여인들이나 하는 것일세. 그런 짓일랑은 그만두고, 우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지!"
보아하니 그 중에서 수령존자가 가장 현명한 듯 했다.
백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수령존자는 눈빛을 예리하게 빛내며 말했다.
"우리는 오대호법존자이지만 달리 오행존자라고도 부르기도 하지. 우리 오행존자는 사실 각기 무예가 다르지만 적과 대적할 때는 함께 협공하는 것을 좋아하지. 물론 예외는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말일세. 자네는 이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상인은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들은 지금 네 명 뿐이니 그 위력이 많이 감소되겠군! 안 그렇소?"
이것은 백상인이 그 파렴치한 협공을 비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령존자는 그 비웃음에도 오히려 웃음을 떠올렸다.
"물론, 그 위력이 전만 못하게 된 것이 유감이기도 하지. 그 정도 밖에 보여주지 못하게 된 사실에 자네에겐 미안하구먼!"
"미안할 것은 없소."
백상인은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
"장소는 어디로 하겠소?"
수령존자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십여 리를 가면 아주 넓고 경치가 좋은 갈대밭이 있더군. 그곳이 어떻겠나?"
백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헌데, 한 가지....."
"....."
백상인은 수령존자 등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러한 행위는 당신들의 그 악마교주가 시킨 것이오?"
그 말에, 수령존자는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분은 이 일에 대해 모르고 계시지. 우리는 자네를 제거하고 나서 그분께 사죄를 올릴 생각일세. 원래 그분은 며칠 후 결성대회 때나 자네를 제거할 생각이셨거든."
백상인은 내심 냉소를 터뜨렸다.
그 말은 곧 악마성자가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좋습니다. 그만 가죠!"
"흐흐, 그러지."
백상인은 앞장을 섰고, 그들은 곧이어 뒤따라 나섰다.
헌데, 이때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백상인에게 주문을 받으려고 다가오던 점소이 하나가 돌연 실수로 화령존자의 발을 밟아 버린 것이다. 당연히, 그 점소이는 화령존자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소인이 실수로 그만....."
그것은 화령존자 등의 모습이 마치 흉신악살을 닮아 있어서 절로 공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점소이는 다소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게 사죄를 했다. 그리고,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화령존자는 필시 그 의도를 알았음이 틀림없었다.
세상에 사죄를 하는 자의 모습은 금방 봐도 알 수가 있으므로.
허나, 화령존자는 마침 크게 화가 나 있었다. 그 노화는 기실 백상인에게 비롯된 것으로, 마악 발작하려다가 수령존자에게 제지되어 억눌려 있었던 것인데 점소이가 그 노화를 건드린 것이다. 이것은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아무튼 그 점소이는 오늘 재수가 대단히 나쁜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크흐흐, 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화령존자는 흉광을 빛내며 수령존자를 향해 물었다.
수령존자는 싸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지금 자네에게 용서를 부탁하는 것일세."
"용서? 부탁이라구?"
화령존자는 눈알을 통방울같이 떴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점소이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아니, 이 녀석이 용서를 해달라구? 내가 네 녀석의 할아비라도 된단 말이냐?"
화령존자는 대뜸 무섭게 고함을 쳤다.
이에, 점소이는 안색이 대번에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사, 살려주세요!"
그는 온통 시뻘건 악마가 눈알을 부릅뜨고 뭐라고 알 수 없는 고함을 지르자, 본능적으로 무서운 공포심이 엄습한 것이다. 그의 바짓가랑이가 즉시 축축해진 것으로 보아 점소이가 지금 얼마나 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런데, 점소이의 그 본능적인 행위가 더욱 화령존자의 비위를 건드렸다.
들고 있던 점소이의 몸에서 지릿한 악취가 풍겨 나오자, 화령존자는 더욱 노화를 터뜨리며 마치 찢어죽일 듯이 점소이의 두 다리를 거꾸로 잡아들었다. 이에, 보다 못한 주루의 주인이 달려와 그를 말렸다.
"아이구, 이거 왜 이러십니까요. 호걸 나으리님들! 그 아이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허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화령존자는 들은 척 만 척 했다.
그러자, 주인은 이번엔 수령존자에게 말했다.
그가 비교적 차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으리! 저 아이 좀 어떻게 해주십시오. 사실, 저 아이가 무슨 큰 죄가 있겠습니까?"
헌데, 수령존자는 싸늘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럼 당신은 저 점소이에게 잘못이 없고, 단지 저 사람에게만 잘못이 있다는 말이오?"
"그, 그런 게 아니라....."
수령존자는 냉혹하게 대꾸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죄가 있다는 말이군! 나는 저 사람이 하는 사적인 행동에 대해 이러구 저러구 간섭을 하지 않는 사람이오. 그는 마침 죄의 값을 치르려고 하는 모양인데, 내가 어찌 이러구 저러구 하겠소?"
그 말에, 주인은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저, 사실 저 아이는 저의 조카입니다. 오늘의 음식 값은 받지 않을 테니, 아니 은자는 있는대로 드릴 테니 부디 저 아이를 풀어주십시오!"
수령존자는 안면을 가볍게 찌푸렸다.
"나를 백주의 강도 취급을 한단 말이군!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어서 가보시오!"
"제발....."
수령존자는 냉혹하게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그저 물러나 있는 게 좋을 것이오. 공연히 다치지 말고."
그러자, 주인은 낙담하고 이번엔 화령존자에게 직접 달려갔다.
"그 아이를 내려놓아라!"
그러나, 그는 곧 알 수 없는 압력에 의해 도로 퉁겨나와 바닥에 뒹굴고 말았다.
쿵, 쿠당당.....
바로 그때,
"크하하하하.....!"
앙천광소를 터뜨린 화령존자가 돌연 악마처럼 눈을 부릅뜨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점소이의 가랑이를 사정없이 찢어 버리는 게 아닌가?
"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점소이의 단말마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후두두두.....!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피.
그 시뻘건 혈운이 일순 사위를 뒤덮었다.
"크하하하....."
화령존자는 그 잘라진 점소이의 시뻘건 육식을 들고서 여전히 앙천광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피를 즐기는 악마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어찌 인간으로서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한 폭의 지옥도였다.
이때, 백상인은 설마하며 밖으로 나가다가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급히 되돌아왔다. 허나, 이미 벌어진 일을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내심 낙망해 있을 때, 돌연 장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군중들.
이곳 주루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이삼십 명의 군중들이 그 광경을 보고 분격하여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마침 사대호법존자들의 기이한 차림새와 용모, 그리고 괴행을 눈여겨 주시하고 있었던 참이라, 누구라도 일의 전말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런 악마적인 만행에 대해 그들은 분격할 대로 분격하여 한꺼번에 우르르 화령존자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들의 분노는 사실 거대하여 아무도 그것을 저지할 수 없을 듯 했다.
"저 악마를 죽여랏-----!"
"저 인간 같지 못한 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자-----!"
"죽여 버려랏-----!"
그들의 분노에 찬 고함은 인순 주루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들 중 재체로 절반 이상은 무예를 가지고 있던 무림인들이었으므로 그들은 각각 신법을 날려 사대호법존자들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휙휙휙휙.....
만일 일반인이 이런 꼴을 당했다면 누구라도 공포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요사이 늘어나는 악마교의 만행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기도 했다. 허나, 그러한 것이 대체 저 네 명의 악마들에게 어떠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인가? 화령존자 등은 그 모양을 보고 오히려 잘됐다는 듯 만면 가득 흥분한 기색을 띄었다.
"멈추시오!"
백상인은 급히 달려드는 군중들을 말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번----- 쩍-----!
전율할 붉은빛 광채가 일었다. 그것은 당연히 화령존자가 발한 것이었다.
그 붉은 광채는 마치 지옥의 겁화처럼 군중들을 향해 몰아쳐 갔다. 몰론, 그들은 군중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령도검을 발했다.
번----- 쩍!
허나, 그 순간을 미리 기다리기라도 한 듯 금령존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의 도검을 전개했다.
번----- 쩍-----!
일순 한 무리의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류가 격렬하게 뒤엉켰다.
동시에, 쩌러러러러렁-----......!
자광과 녹광이 서로 뒤엉키는 곳에 벼락치는 듯한 굉음이 작렬했다.
꽈꽈꽈꽈꽝-----! 꽝! 꽝! 꽈르르릉-----.....!
후두두두둑-----.....!
화르르르륵.....!
갑자기 천지가 온통 뒤집어지는 듯 싶었다.
그 속에서 찢어질 듯이 울려퍼진 단말마.
"크아아아--- 악!"
스스스스스.....
주루.
그것이 통째로 가루로 화해 사라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가루로 화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서 일어난 압력으로 이 주위의 백여 장 일대는 거센 회오리에 쉽싸였다.
휘르르르르르-----.....!
그 속에서 백상인과 금령존자는 서로 두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보아하니 그들의 능력은 서로 백중지세처럼 보였다.
금령존자는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만면에 경악한 표정으로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고, 백상인은 이 급변한 사태에 일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길을 가던 사람들도 대피해 버리고, 이 부근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통채로 날아간, 그래서 이제는 텅 비어버린 주루의 자리에서 그들 오인만이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일대 겁란이었다.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악마의 행위였다.
백상인은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이내 장탄식을 터뜨렸다.
이것은 불가항력이었던가?
일순간, 덧없이 사라져간 수십 명의 목숨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일까? 이때, 수령존자가 그에게 다가들었다.
"자네는 어떻게 목령도검을 연성했는가?"
백상인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내가 굳이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해줘야 한단 말이오?"
"아아,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아암....."
수령존자는 고래를 설래설래 내젖더니 말을 이었다.
"내 말은 자네가 가능하면 말해주었으면 하는 것일세. 헌데 자네의 그 목경 도검은 다소 이상한 것 같던데? 왜냐햐면....."
"....."
수령존자는 눈빛을 교활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자낸 이미 알고 있겠지? 오행상극의 이치를. 즉, 금극목인데 자네는 금령의 공격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리한 위치를 점령했네.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자네는 이 일에 대해 해명을 해보겠나?"
백상인은 그제야 그들이 안색을 굳힌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허나, 그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바로, 정공과 사공의 차이인 것이다.
사공이란 것은 무예를 보다 쉽고 빠르게 연성하기 위한 편법에 의해 생긴 것으로, 정공에 비해 다소의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함으로 인해 진짜 정공을 만났을 때에는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백상인은 굳이 지금 상황에서 그들에게 친절히 그런 설명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싸늘하게 둘러보면서 대꾸했다.
"나는 지금 그것보다도 우리들의 비무가 더욱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오. 당신들은 혹시 겁을 집어먹은 것은 아니오?"
그 말에, 사대호법존자들은 일순 안색이 대변했다.
수령존자가 냉기를 뿌리며 대꾸했다.
"그렇다고 방자해 지다니 어리석군, 백상인! 스스로의 목숨을 재촉하다니.. 그렇다면 어서 앞장서라! 끝장을 내주겠다!"
"좋소."
슷.....
백상인은 먼저 신형을 날렸다.
그러자, 그 뒤를 따라 네 사람도 급히 신형을 날렸다.
스슷.....
황폐해진 주루의 흔적.
그곳엔 허공에 떠올랐던 흙먼지가 싸이기 시작하고, 점차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