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2023년 8월 19일
날씨: 맑음
산행루트: 홍천 수타사계곡 4코스 (노천1교~신봉마을)
참석자: 감자바우
새벽 5시 눈을 뜨니 지난밤 자정쯤 대장이 보낸 문자가 있었다. 오늘 산행은 성원부족과 마침 개인 사정이 겹쳐 취소하는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어온 것이다. 그러자고 답을 하고 오늘 다른 스케쥴을 구상하며 슬슬 거동을 하는 동안, 아내가 전날 평산회 북한산 계곡 물놀이 (실은 이것 때문에 대장께서 정기산행 코앞인 하루 전에 놀이 같은 모임을 가지고 정작 정산에 불참하는 선배들의 만행에 대해 많이 삐친 상태였다) 다녀와 세탁한 등산복이랑 오늘 먹을 간식거리를 내놓으며 이틀 연속 놀러 다니는걸 살짝 타박을 준다. 그때까지 오늘 일정이 취소된 얘기를 미처 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담, 잠시 갈등하다 일단 짐을 챙겨 나오면서 백운대를 다녀올까, 아니 전통의 신방산악회의 명예가 있지 무단 결행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당초 계획된 일정대로 나홀로 산행을 결심한다. (실은 엊그제 새로 마련한 아쿠아 등산화를 내년 여름까지 묵히는 불행한 사태를 막아보려는 이유로…ㅎ)
집에서 7시에 출발하여 국도로 2시간 반쯤 걸려 출발점 노천1교에 도착하니, 멀찌감치 듬성듬성 가옥 몇채로 이루어진 시골마을 앞으로 작은 개울물(덕치천)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한가로이 흐르고 있다. 마땅히 세워둘 주차공간도 없어 제방 뚝 옆 작은 공원에 무단주차를 해두고, 채비를 챙겨 비장한 각오로 물가에 나서는데, 아무도 없다. 어디로 가야하지? 지도검색을 거쳐 방향을 잡고 100여미터 제방길을 걸으니 안내팻말이 나타난다. 산소길 4코스 시작점(끝점)이다. 물길로 4.7km 신봉마을로 이어진다.
드디어 입수, 물길은 순방향이다. 당초 거슬러 걷는 걸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강물의 표면 물결은 늘 실제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 기어오르며 사람들의 착시를 일으킨다. 대학시절 매일 버스를 타고 대교를 건너며 내려다 본 한강 물길은 어느 날 문득 깨닫기까지 역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도도한 물길을 거스르는 겉에 드러난 무리들의 반동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덕지천은 공작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홍천강으로 합류하는 작은 가지천인 것이다. 무릎에서 허벅지 정도 깊이에 제법 쎈 물살이 더해져 스틱으로 내딛을 지점을 확인하며 조심스레 내딛는다. 매끈한 개울 돌에 붙은 이끼류가 한걸음 한걸음 집중 하며 걸으라 한다. 몇발자욱 걷지도 않았는데 뒤꿈치 부위가 아리다. 바위에 긁혔는가 보다. 문뜩 응급상황시 행동요령에 대해 생각한다. 주말인데도 트레킹 하기에 너무 이른 시간인지 주위에 아무도 없다. 방수주머니 없는 휴대폰이 유일한 연락수단이다. 자칫 물에 빠지면 난감할 수 있겠다. 별수 없이 조심하는 수 밖에. 군데군데 작은 소를 만나게 되는데 이끼낀 바위를 거쳐야 해 자칫 소 안으로 미끄러져 빠질 수도 있겠다. 최소한의 안전 시설이 필요해 보인다.
물속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내딛는 곳이 곧 길이다. 강가의 숲으로 별도의 길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도 없는 강물 가운데 혼자 물을 헤치며 나의 길을 만드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잡생각 없이 걸음 걸음에 집중하며 새로운 길을 걷는다. 오늘 나는 우연히 새로운 물을 만나 새로운 걸음으로 나의 길을 만드는데 열심인 셈이다. 많은 이들이 발자국 없는 이 길을 그렇게 지나 갔으리라.
얼마나 걸었을까. 숲 그늘이 드리운 너럭바위에 올라 젖은 등산화를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늦여름 따가운 햇살에 강물의 여울이 윤슬로 반짝이고 흐르는 강물 언저리 무성한 나무 숲에는 매미들의 합창이 가득하다. 막바지 여름 한낮의 아득한 정취가 강물따라 흐른다.
또 다시 얼마나 걸었을까. 물길 걸음이 아무래도 느리다. 강가의 팻말에는 신봉마을까지 지금까지 절반 정도 왔음을 알린다. 그래도 제법 익숙해진 물길에 슬슬 여유가 생긴다. 물속에 튕기듯 쏘다니는 송사리 떼들도 눈에 띈다. 그들은 한가한 일상을 무너뜨리며 불시에 침입하여 첨벙대며 다가오는 발길을 피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며 교란작전을 펼치는 듯 보인다. 그리고 걷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달라붙는 날파리(?) 떼의 성가신 공격도 새로운 침입자에 대한 그들의 용감무쌍한 탐색전이리라. 모든 생명은 각자 생존해내려는 천부의 권리 아니 본능이 있는 것이다. 나의 평온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저항한다.
그리고 또 다시 얼마나 걸었을까. 앞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저만치 네명의 무리가 보인다. 그렇지. 나보다 앞선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스틱없이 허부적 대며 걷는 젊은이들 폼새들이 전문 트래커들은 아닌듯 하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그들을 지나쳤다. 예전에 낡은 MTB를 타고 끙끙대며 한강가를 달리는 동안 전혀 힘들지 않는 자세로 고급 사이클을 타고 부드럽게 스치듯 앞질러 가던 전문 사이클리스트들이 떠올랐다. 하하하… 오늘 나의 첫 계곡트래킹에 자신감을 만땅 채우는 순간이다.
물길을 나와 강가 오솔길을 걸으며 이제 거의 다 왔으리라 짐작되는 지점에 작은 외다리가 보였다. 얼기설기 엮어놓은 다리를 건너서 진행길을 찾는 사이 언덕위 농막에서 지켜보던 영감이 더 이상 길이 없으니 다시 다리 건너 강가에 오솔길로 가라고 일러준다. 작은 농수로로 이루어져 자칫 길이 아닌 듯 보이는 곳을 한참 지난 뒤 다시 물길을 거치니 드디어 일반 도로길이 열린다. 일단 계곡 물길 트래킹은 여기가 종점이다. 그리고 한참 걸으니 신봉마을 신봉교가 나타난다.
여기서 차 있는 원점으로 다시 물길로 걸을려면 3시간, 한적한 시골마을 교통편도 마땅치 않다. 조금 더 걷고 싶은 마음에 일반 도로길을 택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여기서 계속 계곡길로 수타사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인터넷이 안잡혀 제대로 된 안내를 못받았다) 뜨거운 여름 해를 머리에 이고 일반 아스팔트 도로길을 땀을 빨빨 흘리며 1시간 반을 걸어 다시 노천1교로 복귀했다. 나의 즐거운 첫 계곡 물길 트래킹이었다. 산악회 정산은 계속된다. 끝.
첫댓글 감동이오. 미안함과 고마움과 놀라움이 뒤범벅.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성경 말씀처럼 입회가 늦은 회원이 주축 멤버이자 간판 스타로 우뚝 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