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복령 하면 정선아리랑에 떠오르는 애절한 가락을 생각나게 한다.
정산아리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리랑으로 여러가지 아리랑이 전수되고 있지만 강원도를 대표하고 산간지방의 민초들이 살기 아려움에 따른 신세를 한탄하게 되는 가락으로 끊어질듯이 애절하게 이어지는 모습으로 정선이리랑을 한두곡 쯤은 부를 줄 알게 되며 애정을 표시하는 내용에서 부터 궁핍한 산간지대에서 꼼짝없이 살아야 하는 한맺힌 삶의 고달픔을 토로하고 자위를 하게 되는 내용으로서 고려가
망하고 새로운 조선이 개국이 되면서 고려를 섬기던 많은 유신들이 충신은 불사이군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하여 두문동에 은거를 한 유신들이 새로 창건을 하는 조정에서 부름을 받았으니 이를 거절하고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산긴벽지로 숨어든 것이 정선군 남면 무릉리로 지금도 이를 증명하는 유적이 많이 남아 있으니 거칠현비라고 하는 것으로서 전오룬을 비롯한 7명의 선비들이 고사리를 캐서
연명을 하게 되는 곤궁한 생활을 하게 되고,이들의 후예들이 지금 정선을 중심으로 산간지대에 흩어져서 그들의 조상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정선이라랑의 시초라고 하는 것이 정설로서 정선을 두고 아리랑의 고장이라고 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아리랑 문화제를 개최하여 군민들의 단결심과 애향심을 고취를 하고 가난한 민초들의 싦의 애환을 위로하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이제는 정선을 대표하는 민속행사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가을도 점점 고비로 접어 들고 오늘이 찬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고 하는 한로로서 아침저녁으로는 제번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되는 실정으로 가을이 절정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어제밤에는 보도되는 메스콤에 의하면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의 저지대가 침수피해를 입어야 하는 가을비가 집중적으로 하루밤 사이에 200mm가 넘는 강우량으로 때 아니 비 피해를 입어야 했다는 보도를 보고는 올해는 강원도에 큰 피해를 입히지 않고 고운 모습으로 물러갈가를 생각을 하였으니 때아닌 수해를 입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는 이제는 달라지고 있는 기상여건으로 아열대성에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거짖이 아님을 알게하고 있다.
유비무환이라고 하는 말을 누구나 일고 있는 말로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하나 재난에 관한 기상에보를 하게 되는 기상청도 미처 예상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실정으러 이번에도 예보가 아니라 뒤늦게 실황을 중계를 해야 하는 실정으로 또 한번 국민들로 부터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없고,뜻밖에 재난을 당해야 하는 국민들은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 하는 속담을 생각하며 자다가 맨몸으로 피신을 해야만 했다는 사실에는 기상예보를 관장하고 있는 기상청의 특별한 분발로 앞으로는 이러한 경우는 다시는 없어야 할 줄로 생각된다.
때아닌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정오무렵에는 개이게 되는 실정으로 모처럼 북평장을 돌아보고 산천이 때늦은 가을비로 깨끗하게 청소기 된 모습을 바라보며 드리이브를 하지고 하는 마나님의 보채는 데는 못이기는체 따라나서는게 상책이다.
군것질로 간단히 요기를 해결하고 북평장터에 도착을 하니 오전에 내라는 가을비로 장군은 보이지 읺고 정사꾼들만 진을 친 모습에서 장이 제대로 서지 않는 모습에 어물전에도 채소를 파는 곳에도 한가한 모습에 언제나 대목장을 연상하게 하던 뒷들이 장이 오늘은 영 말이 아니올시다.
내친 걸음에 장터를 돌아 보는 것은 포기를 하고 새로 개설이 된 자동차전용도로인 42번 국도를 따라 달방댐까지 순식간에 도착을 하게 된다.
백복령 아래마을인 신흥리는 새로운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듯으로 백복령을 넘어야 하는 과객들이 묵어야 하는 원이 있었다는 곳으로서 이제는 편리해진 도로의 여건으로 이곳에서 묵어야 할 일은 없어졌으니 백복령을 넘나드는 많은 치량들이 그런데가 있었나 하는 반문으로 단숨에 고개를 넘고 지나치게 되었다.
지금은 승화원[乘華院]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동해와 삼척지방의 장례문화[葬禮文化]를 선도하는 동해시 화장장이 자리잡은 곳으로서 화장장을 기공하는 기공식에서 주빈으로 참석을 하게 된 당시의 김모 부군수는 화장장 건설을 반대를 하는 주민들이 죽이라고 하는 시위에 모면을 하기 위하여 백복령 정상으로 단신 피신을 해야만 하였다는 전설적인 과거를 품고 있는 화장장이 우역곡절속에 완공이 되고는 지금에 동해시로 편입이 되고서는 그런데로 운용이 되고 있는 모습에서 인생의 종착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한다는 사형수들의 마지막 심정을 백복령 쳐다보고 달방댐을 내려다 본다는 말로 대신하고 백복령을 오르기 시작한다.
구비구비 산굽이를 돌아드는 도로의 양편에는 싸리나무가 노랗게 단풍이 든 모습에서 사이사이에 들어 있는 항상 뿔이 났다고 하는 뿔나무의 잎이 새빨간 모습에 가을이 짙어짐을 알게 하고 있다.
능선에 올라서니 옥계에 자리잡은 시멘트공장의 채석장인 자병산의 훼손된 모습에 봉우리는 간곳이 없는 모습에 산을 껍질을 벗겨 놓은 짐승들의 모습에 이제는 석회석을 산봉우리 전체를 허물게 되는 노천채굴[露天採掘]은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망가지는 모습에서 인과응보라[因果應報]고 하였으니 산천을 망가트린 재앙이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점점 아영대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기후의 변화가 파괴된 생태계도 이상기후로 가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을가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멀리 옥계해변이 내려다 보이고 숲으로 무성한 산등성이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모습에서 한로를 지나고 있는 절기에 얼마가지 않으면 온 산천이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리랑의 고장인 정선에 오심을 환영한다'고 하는 백두대간의 중간기착지인 백복련 정상에는 아무도 없는 삭막한 모습에 오늘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군의 모습도 볼 수 없으니 어제부터 추적추적 내리게 되는 가을비는 산군들의 발목을 붙들고 산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으로 언젠가 더덕을 캐기 위하여 헤메던 능선이 그날을 생각하게 한다.
백복령을 사이에 두고 영서와 영동으로 구분이 되는 자형적인 영향으로 정선땅에는 해가 비치게 되는 실정으로 오곡백과가 결실을 하게 되는 실정으로 고냉지 채소는 반출이 끝난 모습에서 배추가 뿌리에서 다시 돋아난 움배추가 지천으로 널린 배추밭에서 마나님은 배추를 뜯어 가자고 하는 말에 애써 가꾼 남의 농작물에 손을 대면 천벌을 받는다고 하는 말로 대구를 하고는 임계를 향하여 계속되는 드라이브길을 달리게 된다.
올해는 적당하게 내린 강우로 풍년농사가 기약이 되는 모습에서 좌우로 펼처지는 논밭에서는 격양가가 들려오는 풍년가를 불러야 하나 농촌인구의 감소로 들에는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게 안타깝다.
들판을 가로질러 개울가에는 오색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모습에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알게 한다.
뚜거운 뙤약볕 아래 녹음으로 무성하던 나무잎이 하나둘 적황홍으로 물드는 모습에서 가울이 짙어지고 결실의 계절임을 알리게 되는 실정으로 오늘 모처럼 나서게 되는 산보길을 즐겁게 하고 있다.
개울가에 임하고 있다는 듯의 임계는 한 때 정부에서 임계댐을 막고 물을 동해로 역류를 시켜 동해공단의 공업용수를 충당을 해야한다고 하는 국토개발계획으로 지금 판판한 농지는 대부분 수몰이 되어야 하는 처지로 수많은 가구가 고향을 잃어야 하는 위기를 맞았으나 정부의 개발게획의 수정으로 댐을 건설하겠다고 하는 계획은 백지화 되고 42번 국도의 확장으로 동해를 찾는데 어려움이 없는 관문으로 옛 정선사람들이 소금을 지고 넘나들던 백복령 구비길이 이제는 달라지고 있는 모습에서 많은 격세지감을 알게 하고 있다.
백복령 휴게소에 들리니 향토음식을 맛보지 않을 수 없으니 소화에 부담이 없는 메밀국수를 먹어야 했으니 구수한 메밀의 맛으로 잊었던 옛맛으로 구미를 끌게 하는 실정에 배가 부르다.
북평장에서 메밀묵을 먹으려던 계획이 메밀묵을 대신에 국수로 달라졌으나 재료는 같은 메밀로 오늘은 메밀국수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단풍으로 물드는 산천을 돌아보았으니 그런데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하루였다.
삽당령을 넘어서 강릉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하장으로 돌아서 댓재를 넘을건인가를 두고 망서리게 하였으나 물을 넣고 다니는 차가 아니라고 하는 마나님의 말에는 오던 긿을 되돌아 와야만 했다.
휴게소에는 동해가 생활을 하는 근거지임을 알게 하는 아낙네 네사람이 무순껍데가 술이라고 하는 술을 한잔식 하게 되었는지 잡시도 수다를 멈추지 않는 모습에 여자들이라고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과 그래서 수염이 나지 읺는다고 하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백복령 옛길은 언젠가 나홀로 내려온 일이 있으니 오늘도 걷는다고 하는 나의 말에는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달벙댐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하였으니 어제밤에 내린 가을비로 달방댐이 만수기 된 모습에 이름을 얻지 못한 팔각정에 올라 짙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바라보며 잠시 향수에 젖어 보는데 마나님는 졸린다고 하는 말로 한 숨을 자야한다고 한다.
언젠가 돌아 본 적이 있는 곳에서'달방댐'이라고 하는 대형의 자연석으로 된 표지석을 돌아보고 정면에 어느 대학 강단에 선다고 하는 사람이 지었다고 하는,
'백복령 휘감는 물살을 재워,
여기 든든한 댐을 이루니
이 젖물 닿는 곳마다
부디 새 역사 펼칠지어다'.라는
달벙댐을 찬양하는 시 한 수와 이면에는 건설부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주관이 되고,동부건설이 시공을 하였다고 하는 사실과 공사기간이 86년 11월부터 90년 4월까지 3년 5개월간 청장이 4명에 과장이 3명을 거처갔으며 계장은 한사람으로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기록이 남아있는 모습으로 지금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관리를 하는 국가의 주요시설임을 알게 한다.
서산일락이라고 하는 해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어오는 길을 재촉을 해야만 했으니 오늘 하루도 아무런 일이 없이 무사한 하루를 보내게 되고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생각으로 깊어가는 가을을 이쉬워 해야 하는 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