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500년에 걸친 유럽의 방대한 경제학 지식을 담다!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는 왜 세계의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영구화되는지를 이론적,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책이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경제 발전을 이끌어 온 무수한 인물들이 주연으로 등장해 경제 발전의 비결은 무엇이며, 현재의 주류 경제학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사건과 사례를 중심을 정리했다. 또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써야 하는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난 나라는 세계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밝힌다.
저자소개
저자 : 에릭 라이너트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스위스 장크트갈렌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MBA를, 코넬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아일랜드, 핀란드 등에서 회사를 경영하였으며,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제3세계의 발전 문제를 조언하였다. 세계 47개국에서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일하며 살았던 다양한 경험은 현실로서의 경제학을 쌓아 가는 데 밑바탕이 되었는데, 이 책에는 그런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학계로 돌아온 라이너트는 현재 에스토니아 탈린 공과대학교에서 발전 전략 담당 교수로 있으며, 노르웨이에서 설립된 ‘다른 전통 재단(THE OTHER CANON FOUNDATION)’을 이끌고 있다. 라이너트는 이 책으로 2008년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 이론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은 현재 14개 나라에 출간되었거나 출간할 예정이다. 개발 경제학 논문집 “GLOBALIZATION, ECONOMIC DEVELOPMENT AND INEQUALITY: AN ALTERNATIVE PERSPECTIVE”(2004, 편저자), “THE ORIGINS OF DEVELOP-MENT ECONOMICS, HOW SCHOOLS OF ECONOMIC THOUGHT HAVE ADDRESSED DEVELOPMENT”(2005, 공편자)를 발표하였다.
역자 : 김병화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고고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하였다. 꼭 읽고 싶은 책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에서 번역을 시작하였고, 그렇게 하여 나온 책이 『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회상록』,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세기말 비엔나』, 『트리스탄 코드: 바그너와 철학』, 『신화와 전설』, 『파리, 모더니티』,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나머지는 소음이다』 등이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번역자들과 함께 번역 기획 모임 ‘사이에’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국제연합경제사회국 사무차장보 조모 크와메 순다람
감사의 말
들어가는 말
1 경제 이론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2 두 가지 서로 다른 접근법의 진화
3 모방,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유해졌는가
4 세계화, 지지 논리가 곧 반대 논리
5 세계화와 원시화, 가난한 나라는 왜 더 가난해지는가
6 실패의 핑계, 역사의 종말에 등장한 훈제 청어
7 임시변통의 경제학, 밀레니엄 개발 목표가 잘못된 생각인 까닭
8 '올바른 경제 활동' 혹은 중간 소득 국가를 만드는 잃어버린 기술
부록
1 리카도의 국제무역에서의 비교 우위설
2 경제 세계와 국가의 빈부를 이해하는 두 가지 다른 길
3 프랭크 그레이엄의 불균등 발전론
4 두 가지 전형적 유형의 보호주의 비교
5 부국을 모방하는 방법에 대한 회르니크의 9개 항목
6 경제 활동의 품질 지수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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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장하준 교수가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그 1호”라고 격찬한 라이너트의 2008년도 뮈르달 상 수상작. 고등학교 시절 페루에 갔다가 페루 사람들의 빈곤에 충격을 받고 가난한 나라는 왜 계속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한 결과물로, 지금은 주류 경제학에 의해 역사에서 거의 묻혀 버렸으나 지난 500년에 걸쳐 실질적으로 유럽의 경제 발전을 이끈 경제학 지식이 모두 담겨 있다. 특히 유럽은 경제 발전의 비결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럼에도 경제 발전에서 영국은 성공하고, 스페인은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역사적 사실 자체를 주류 경제학은 어떻게 은폐했는지, 그 결과 가난한 나라에서 어떤 비극이 빚어지고 있는지가 지금은 그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지난 500년 사이의 문헌학적 증언과 에콰도르, 몽골, 우간다 비극의 현장에 근거해 생생하게 보여 준다.
500년에 걸친 유럽의 방대한 경제학 지식을 담다!
장하준 교수는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에릭 라이너트 교수는 그 1호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경제학에서 시작하여 20세기 개발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이 의도적으로 역사에서 지워 버린 ‘다른 전통(Other Canon)’에 대해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라이너트가 『부자 나라…』로 2008년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안 이론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수상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부자 나라…』에는 르네상스 이후부터 현재의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으로 유럽 및 미국의 경제 발전을 견인해 낸, 지금 우리에게는 생소한 경제학자들과 경제서에 관한 이야기가 본문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그런 경제학자의 이론을 보면 500년 전에 이미 유럽인들은 어떻게 하면 경제 발전을 이루어 부유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두 밝혀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오늘날 주류로 자리 잡은 신고전파 경제학이 의도적으로 역사에서 그 흔적을 없애 버렸을 뿐이다. 대안의 경제 이론을 보면 현재 우리가 경제를 논하면서 실제로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의문의 시작, 페루가 그렇게 가난한 이유는 무엇인가?
라이너트가 이렇듯 백과사전적 지식을 축적하게 된 계기는 1967년 가난한 페루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현실 때문이었다. 공항의 포터, 버스 운전사, 호텔 직원, 이발사, 상점 점원 등 라이너트가 본 대다수 페루 노동자들은 그의 조국 노르웨이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조금도 일솜씨가 못한 것 같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급여는 턱없이 낮았고, 그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이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생산성이 같은 수준인데, 나라가 다르다고 실질 임금이 그렇게 차이 나게 만드는 이 ‘시장’이란 건 도대체 뭔가.” 결과적으로 라이너트는 이후 40여 년을 그 답을 찾는 데 보낸다. 그리고 이 책 『부자 나라…』는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져 버린 흔적을 찾아가는 저자의 지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유럽은 어떻게 부자 나라가 되는 비결을 알아내었는가?
그 과정에서 라이너트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모았다. 역사에서 사라진 흔적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뒤졌고,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휩쓴 세상에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 때론 정책적으로 버려진 자료들도 모았다. 한 예로 1970년대 뉴욕의 공립도서관은 무수한 자료를 마이크로필름화한다는 명목으로 재활용 폐지로 내다버리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경제학 자료들이 사라졌으며, 르네상스 시기 이후 경제 발전을 논한 책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라이너트에 따르면 유럽은 르네상스 시절부터 이미 경제 발전의 비결을 알고 있었다. 13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와 네덜란드 등은 경제 발전의 핵심을 알아차렸는데, 그것은 바로 도시에서 다양한 직종 간에 이루어지는 시너지, 기술 변화, 천연자원이 의존하지 않는 수확 체증 등이었다.
영국은 어떻게 경제 발전에 성공했고 스페인은 왜 실패했는가?
유럽의 몇몇 도시 국가의 경제 발전을 모방한 것이 영국이다. 영국은 모직 공업의 육성을 위해 보조금과 관세는 물론이고, 네덜란드에서 향신료에 대해 그랬듯이 스페인산 양모를 모두 사들인 다음 불태우자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영국의 주된 경쟁자인 스페인 양모를 시장에서 없애 버림으로써 양모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이 경제 발전의 주요 성공 모델이었다면, 스페인은 전형적인 실패 모델이었다. “최고급 실크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라나다산 물건이라고 하면 그만”이고, 최고급 옷감을 묘사할 때도 세고비아산이라는 말로 충분했던 스페인의 제조업은 18세기에 이미 몰락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흘러 들어온 엄청난 양의 금과 은으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여 직공과 제조업자들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면세 혜택을 누리는 귀족들은 물가 상승분을 보전하기 위해 세금을 올림으로써 결국 도시에서의 시너지와 노동 분업이 와해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일어난 이유를 스페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유럽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한 뉴질랜드 식민지 주민’은 1897년 익명으로 출판한 책에서 먼 미래를 위해, 후대를 위해 지금 비싸게 사더라도 보호주의 정책을 통해 산업 개발에 힘써야 함을 역설할 정도였다.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후진국을 망치는 주류 경제학
구미 각국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자신들의 과거 경험은 모조리 잊은 듯 가난한 나라들에게 산업 보호 대신에 개방과 자유 무역, 탈(脫)규제를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는 제3세계와 과거 공산권이었던 제2세계의 현실에서 보이듯 파괴적이었다. 몽골의 경우 1991년 경제 개방 이후 4년 만에 거의 모든 산업의 생산 물량이 90%나 감소할 정도로 초토화되었다. 빵 생산은 71%가 줄고, 책과 신문 생산은 79%나 감소했으며, 실질 임금은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별로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유럽의 주변부 라트비아는 경제적 곤란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로 2000년 들어 인구가 20% 가까이 감소했다. 이는 탈산업화, 탈농업화, 인구 감소라는 경제적 쇠락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은행 사람들은 몽골에 대해 ‘기업 문화가 없어서 그렇다’는 불평만 늘어놓았다. 경제 발전 시나리오라는 것도 각 나라의 상황과 무관하게 국명만 바꿔 천편일률적으로 제시될 뿐이었다.
이런 일은 지금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세계 곳곳은 워싱턴 기관들이 끈질기게 요구한 구조 조정의 결과 탈산업화와 실업, 빈곤을 길을 걷고 있다.
세계 빈부 격차와 국내 소득 양극화는 닮은 꼴이다
왜 세계의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영구화되는지를 이론적,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이 책의 미덕은 풍부한 역사적 사실(事實)에 있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경제 발전을 이끌어 온 무수한 인물들이 주연으로 등장해 경제 발전의 비결은 무엇이며, 현재의 주류 경제학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사건과 사례를 중심으로 조목조목 해설해 주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소득 양극화 문제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이기도 하다. 세계화를 무한 경쟁으로, 자유 무역을 시장 경쟁으로 대치시키면 오늘날 가난한 나라에 적용되는 설명이 그대로 국내 빈곤층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시되는 원인도 같다. 주류 경제학의 진단에 따르면 가난은 기업가 정신의 부족, 법적·제도적 미비, 개인적·환경적 약점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이 모두가 선진국들이, 그리고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개발도상국 시절을 완전히 잊은 탓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노르웨이에서 그랬고, 우리 역시 경제 발전이 이뤄지기 전의 기억을 서서히 망각해 가고 있다. 라이너트의 『부자 나라…』는 그런 점에서 우리를 다시 일깨운다.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써야 하는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난 나라는 세계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추천사>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은 역사에서 무엇을 지워 버렸는가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에릭 라이너트 교수는 그 1호로 지정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보여 주듯이 라이너트 교수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경제학에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개발 경제학까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이 의도적으로 역사 책에서 지워 버린 ‘다른 전통(Other Canon)’에 대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너트 교수는 이 책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제 사상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자본주의 발전사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경제 발전과 경제학의 발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무너뜨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에서 그가 보여 주는 역사적 통찰력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에만 쓰이지 않고, 지난 30여 년간 후진국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아 온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책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효율적인 자원 배분만 강조하는 것은 빈곤을 영구화할 뿐이다
경제 발전을 한갓 자본 축적과 보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가난한 나라들의 뒤처진 경제를 그 상태로 영구화시키는 공식이 되었다. 라이너트의 이 책은 경제 정책에 관한 그의 풍부한 지식으로 불균등 발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켜 줌으로써 중요한 교훈과 함께 풍부한 읽을거리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조모 크와메 순다람, 국제연합 경제사회국 사무차장보
<책속으로 추가>
(…) 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문명의 붕괴(Collapse)』에서 르완다 사건을 조사한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을 탁월하게 해낸다. 맬서스와 밀, 마셜의 전통에 서서 그는 인종 학살 문제를 수확 체감에 연결한 것이다. 인종 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르완다에서는 한동안 1인당 식량 생산량이 감소했다. 생산량 감소는 수확 체감과 가뭄, 토양의 남작(濫作) 때문이며, 그것은 또 대규모의 삼림 벌채로 이어졌다. 결국 토지가 없고 굶주린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절도와 폭력의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다. (본문 244-246쪽 4장 세계화, 지지 논리가 곧 반대 논리)
울란바토르 의사당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은행의 몽골 담당 직원들은 앞으로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를 세 가지 제시했다. 몽골은 매년 각각 3퍼센트, 5퍼센트, 7퍼센트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매년 7퍼센트의 누적 성장률을 나타내는 곡선은 당연히 천정부지로 치솟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년 그 정도로 성장할 경우를 가정한 것일 뿐 경제의 급격한 쇠퇴를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는 노력이 없고, 또 이자율이 35퍼센트인 상황에서 신산업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지역 담당은 몽골에 기업 문화가 없다는 불평만 늘어놓았다. 나는 그가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기업가가 실질 이자율이 35퍼센트나 되는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이 이자율은 몽골 버전의 아시아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계속 유지되었는데, 결과는 은행 및 금융 부문을 구하기 위해 실물 경제를 희생시킨 꼴이 되었다.
울란바토르에서의 회의는 차츰 현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갔다. 높은 보수를 받는 세계은행의 컨설턴트들은 몽골의 현실과 거의 무관한 자료와 모델을 가지고 왔다. 그런 자료는 표준화된 연구들로서 모든 개발도상국에게 개별적인 상황과는 무관하게 제시되었다. 세계은행과 밀접한 서구의 동료들은 나중에 그런 제안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모든 나라는 표준 제안서를 받는데 그런 제안서의 각 사례 분석에서 다른 점은 사실상 해당 나라의 이름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론 자체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이런 식의 접근이 퍽 논리적이기는 하다. 문제는 제안자가 가끔 워드프로세스에서 ‘검색과 교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뿐이다. 이를테면 ‘에콰도르’ 등의 국명을 ‘몽골’로 제대로 바꿔 놓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당황한 정부 관료는 장기 개발 계획 보고서에서 군데군데 나오는 잘못된 국명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몽골의 국회의원들이 알았더라면 그들 역시 머쓱해졌을 테지만 다행히 그들은 알지 못했다. (본문 270-271쪽 5장 세계화와 원시화, 가난한 나라는 왜 더 가난해지는가)
몇 년 전에 아르헨티나가 대규모 경제 재앙으로부터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이 난장판을 만든 작자들은 제발 좀 조용히 할래?”라는 말이 나돌았다. 이제 우리는 세계를 향해 같은 말을 해야 한다. 경제학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세계 주변부를 이런 난장판으로 만든 경제학자와 기관들도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부를 이제는 부를 만들 능력도 없어진 빈국에게 재분배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부를 창출하는 데 너무나 분명하게 실패한 기관과 인물들이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밀레니엄 목표가 역사의 막다른 길이다. 나는 거듭 말해야 할 것 같다. 이런 문제를 만들어 낸 기관과 인물은 그 자리에서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고. (본문 427-428쪽 8장 ‘올바른 경제 활동’ 혹은 중간 소득 국가를 만드는 잃어버린 기술)
유럽인들은 백인이 많은 식민지는 산업화되고 독립을 얻은 반면에 백인이 별로 없는 식민지는 제조업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발전을 인종 문제인 것처럼 여긴다. 1967년에 페루에 갔을 때, 1장에서 말한 대통령궁에 방문한 둘째 날, 벨라운데 대통령은 페루 삼림의 오지에 갔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곳에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정착한 독일인들이 살고 있었고, 헬리콥터로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대개 피부색이 희고 푸른 눈을 가졌지만 다른 페루 인들과 똑같이 정글에서 살고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나는 브라질 남부의 리오그란데 도 술(do Sul)에 갔는데 그곳에서 수많은 독일 정착민들이 제조업과 복지를 이루어 놓은 모습을 보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유럽의 가장 문명화된 지역에서의 인간의 삶과 신세계의 가장 야만적인 지역에서의 삶 사이에는 놀랄 만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흙도 아니고 기후도 아니고 인종도 아니고 기술에서, 즉 실제로 영위하는 직업에서 온다.”라는 것이다. (본문 419-420쪽 8장 ‘올바른 경제 활동’ 혹은 중간 소득 국가를 만드는 잃어버린 기술)
책속으로
『대중의 미망과 광기(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는 찰스 매케이(Charles Mackay)가 1841년에 출간한 주식 시장 붕괴에 관해 쓴 책이다. 같은 해에 리스트는 빈국을 더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서서히 체계적으로 자유 무역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을 출간했다. 생산성이 폭발하는 시기에 대중의 의식은 어떤 산업의 주식이든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치기를 기대한다. 동시에 시장이 자유롭기만 하다면 누구나 더 부유해질 것 같은 착각도 함께 고개를 든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이를 '시장 토테미즘(market totemism)'이라 불렀다. 1840년대와 1990년대는 오로지 시장만이 조화와 발전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믿음이 가장 강렬했던 시기였다. 차이가 있다면 1840년대에는 이 현상을 '자유 무역'이라 했고, 오늘날에는 같은 현상을 '세계화'라 부르는 것뿐이다. 오랜 기간 동안 주식 시장은 유에스스틸이나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기술 경제 패러다임을 따르면서 생산성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시장 지배적인 지위로 올라선 기업과, 가죽을 만들어 내거나 그 밖에 다른 고급 기술이 필요치 않은 제품을 생산하는 성숙 기업들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지금도 전 세계 정치가들은 실리콘 밸리를 부유하게 만든 것이 기술적 돌파구가 마련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방 경제와 자유 무역 덕분이었다고 믿는 것 같다. 이런 착각은 평생 저축한 것을 IT 버블에다 투자한 소규모 투자자들에게 참혹한 결과를 안겨 주었다. 자유 무역이라는 이와 유사한 착각은 페루나 몽골 같은 나라의 국민에게 똑같이 치명상을 입혔다. 이들은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자국 산업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1846년에 영국이 자국의 농산물에 붙이던 관세를 철폐하고, 유럽 각국에게 산업 제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할 것처럼 일이 진행되자, 몇 달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2장 두 가지 서로 다른 접근법의 진화」 중에서
일단 실질 임금에서 상당한 격차가 생기고 나면 세계 시장은 자동적으로 기술적으로 막다른 경제 활동을 저임금 국가에게 배당한다. 그러므로 야구공 생산과 같은 비숙련 노동만 필요로 하는 활동은 자연스럽게 저임금 국가가 맡게 되는 것이다. 설사 언젠가 야구공 생산에서 기술적 돌파구가 생긴다 할지라도 그것이 가난한 노동자를 도와주지는 않는다. 다음의 예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판매되는 파자마 한 벌에는 다음과 같은 제품 정보가 붙어 있었다. "미국산 직물, 과테말라에서 재단과 봉재." 섬유 산업은 고도로 기계화되었으므로 옷감은 미국에서 생산되었다. 옷감의 재단은 기계가 하는 일이지만 균일한 크기와 품질을 보장하려면 작업 단위가 세분되어야 한다. 그래서 재봉틀로 파자마를 박아내는 값싼 노동력이 재단도 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언제부터인가 파자마에는 새로운 라벨이 붙었다. "미국에서 생산되고 재단된 직물, 과테말라에서 봉재." 새로운 레이저 기술이 개발되어 많은 분량의 재단도 기계로 매우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값싼 노동력이 불필요해졌다. 따라서 직물을 재단하는 일이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 「4장 세계화, 지지 논리가 곧 반대 논리」 중에서
1994년 르완다의 인종 학살에 대해 우리는 대체로 민족적 증오심을 부추기는 사악한 사람들의 행동을 세계가 그냥 팔짱만 끼고 지켜본 사건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1차 산업인 농업 이외에 다른 일자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인구 증가가 농경지에 가한 압박으로 발생한 수확 체감 현상 아래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사건이다. 수확 체증의 기회가 거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맬서스적 염세주의는 온전히 정당화된다. 인구 증가가 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르완다의 인구 밀도는 1평방킬로미터당 281명이다. 이는 몇몇 산업 국가에 비하면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의 인구 밀도는 단위당 335명, 네덜란드는 477명이다. 하지만 가난한 농업 국가라면 이 수치는 엄청난 것이다. 비교해 보면 부유한 덴마크의 인구 밀도는 1평방킬로미터당 125명, 탄자니아는 20명, 남아프리카공화국은 36명, 나미비아는 2명, 노르웨이는 14명이다.
르완다의 인종 학살에 대해서는 대규모로 진행된 두 종류의 연구가 있었다. 하나는 1997년 세계은행이 주도한 연구이고, 또 하나는 1999년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이 진행한 것이다. 이런 연구에서 정말 놀라운 점은 르완다 사건에서 수확 체감이 미친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인구는 증가하는데 농업에서의 한계 생산성이 하락할 때 어뮶게 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 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문명의 붕괴(Collapse)』에서 르완다 사건을 조사한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을 탁월하게 해낸다. 맬서스와 밀, 마셜의 전통에 서서 그는 인종 학살 문제를 수확 체감에 연결한 것이다. 인종 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르완다에서는 한동안 1인당 식량 생산량이 감소했다. 생산량 감소는 수확 체감과 가뭄, 토양의 남작(濫作) 때문이며, 그것은 또 대규모의 삼림 벌채로 이어졌다. 결국 토지가 없고 굶주린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절도와 폭력의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다. --- 「4장 세계화, 지지 논리가 곧 반대 논리」 중에서
울란바토르 의사당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은행의 몽골 담당 직원들은 앞으로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를 세 가지 제시했다. 몽골은 매년 각각 3퍼센트, 5퍼센트, 7퍼센트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매년 7퍼센트의 누적 성장률을 나타내는 곡선은 당연히 천정부지로 치솟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년 그 정도로 성장할 경우를 가정한 것일 뿐 경제의 급격한 쇠퇴를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는 노력이 없고, 또 이자율이 35퍼센트인 상황에서 신산업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지역 담당은 몽골에 기업 문화가 없다는 불평만 늘어놓았다. 나는 그가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기업가가 실질 이자율이 35퍼센트나 되는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이 이자율은 몽골 버전의 아시아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계속 유지되었는데, 결과는 은행 및 금융 부문을 구하기 위해 실물 경제를 희생시킨 꼴이 되었다.
울란바토르에서의 회의는 차츰 현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갔다. 높은 보수를 받는 세계은행의 컨설턴트들은 몽골의 현실과 거의 무관한 자료와 모델을 가지고 왔다. 그런 자료는 표준화된 연구들로서 모든 개발도상국에게 개별적인 상황과는 무관하게 제시되었다. 세계은행과 밀접한 서구의 동료들은 나중에 그런 제안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모든 나라는 표준 제안서를 받는데 그런 제안서의 각 사례 분석에서 다른 점은 사실상 해당 나라의 이름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론 자체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이런 식의 접근이 퍽 논리적이기는 하다. 문제는 제안자가 가끔 워드프로세스에서 '검색과 교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뿐이다. 이를테면 '에콰도르' 등의 국명을 '몽골'로 제대로 바꿔 놓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당황한 정부 관료는 장기 개발 계획 보고서에서 군데군데 나오는 잘못된 국명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몽골의 국회의원들이 알았더라면 그들 역시 머쓱해졌을 테지만 다행히 그들은 알지 못했다. --- 「5장 세계화와 원시화, 가난한 나라는 왜 더 가난해지는가」 중에서
몇 년 전에 아르헨티나가 대규모 경제 재앙으로부터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이 난장판을 만든 작자들은 제발 좀 조용히 할래?"라는 말이 나돌았다. 이제 우리는 세계를 향해 같은 말을 해야 한다. 경제학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세계 주변부를 이런 난장판으로 만든 경제학자와 기관들도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부를 이제는 부를 만들 능력도 없어진 빈국에게 재분배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부를 창출하는 데 너무나 분명하게 실패한 기관과 인물들이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밀레니엄 목표가 역사의 막다른 길이다. 나는 거듭 말해야 할 것 같다. 이런 문제를 만들어 낸 기관과 인물은 그 자리에서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고. --- 「8장 '올바른 경제 활동' 혹은 중간 소득 국가를 만드는 잃어버린 기술」 중에서
유럽인들은 백인이 많은 식민지는 산업화되고 독립을 얻은 반면에 백인이 별로 없는 식민지는 제조업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발전을 인종 문제인 것처럼 여긴다. 1967년에 페루에 갔을 때, 1장에서 말한 대통령궁에 방문한 둘째 날, 벨라운데 대통령은 페루 삼림의 오지에 갔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곳에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정착한 독일인들이 살고 있었고, 헬리콥터로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대개 피부색이 희고 푸른 눈을 가졌지만 다른 페루 인들과 똑같이 정글에서 살고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나는 브라질 남부의 리오그란데 도 술(do Sul)에 갔는데 그곳에서 수많은 독일 정착민들이 제조업과 복지를 이루어 놓은 모습을 보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유럽의 가장 문명화된 지역에서의 인간의 삶과 신세계의 가장 야만적인 지역에서의 삶 사이에는 놀랄 만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흙도 아니고 기후도 아니고 인종도 아니고 기술에서, 즉 실제로 영위하는 직업에서 온다."라는 것이다. --- 「8장 '올바른 경제 활동' 혹은 중간 소득 국가를 만드는 잃어버린
추천평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은 역사에서 무엇을 지워 버렸는가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에릭 라이너트 교수는 그 1호로 지정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보여 주듯이 라이너트 교수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경제학에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개발 경제학까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이 의도적으로 역사 책에서 지워 버린 '다른 전통(Other Canon)'에 대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너트 교수는 이 책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제 사상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자본주의 발전사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경제 발전과 경제학의 발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무너뜨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에서 그가 보여 주는 역사적 통찰력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에만 쓰이지 않고, 지난 30여 년간 후진국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아 온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책이다.
'장하준(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효율적인 자원 배분만 강조하는 것은 빈곤을 영구화할 뿐이다
경제 발전을 한갓 자본 축적과 보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가난한 나라들의 뒤처진 경제를 그 상태로 영구화시키는 공식이 되었다. 라이너트의 이 책은 경제 정책에 관한 그의 풍부한 지식으로 불균등 발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켜 줌으로써 중요한 교훈과 함께 풍부한 읽을거리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조모 크와메 순다람(국제연합 경제사회국 사무차장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