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쓸까, 망설여지기도 하는 11월의 산행기입니다. 무엇을 기록한다기보다는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것이 더 소중한 울림이 아닐까 하면서 시작해 봅니다.
영하 4도를 기록하는 한파 속에서도 열두 사제는 열두 처사와 열두 유생과 어울려 아침 아홉 시 삼십 분 6호선 지하철 태릉입구역을 출발하여 버스로 태릉에 도착한다.
문정왕후, 전인화의 능이다. 먼저 조선왕릉 전시관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회장님의 전지전능 박식한 설명이 이어지고 드디어 문정왕후를 가까이서 알현하려는데 예약하지 않았다 하여 먼발치에서 그 위엄 있는 무후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들 어떠하랴, 추운 날, 소신들, 뵈오러 왔사옵니다, 부디 거두어 주소서,
왕릉은 화려했다. 왕후 당신이 사셨던 당시의 위세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했다. 하지만 그게 무에 중요하랴, 제행무상을 느끼면서 오늘의 두 번째 목적지 강릉으로 도로길 따라 무한히 걸어간다.
이승만의 참 어처구니없는 결정으로 반토막이 난 강릉에 들어와 있다. 삼육대에 그 강역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이게 지금이야 가능하겠냐마는 그때는, 그 시절에는 그리되었다고 한다. 문정왕후의 아들(명종)과 그 며느님이 잠든 곳이다. 소박한 편이지만 장희빈의 묘에 비하면 화려하다 할 수도 있겠다.
강릉에서 길이 솟구친다. 기독교의 영역이다. 참으로 길이 편안하고 안온하다. 숲길이다. 늦가을 낙엽이 아직도 우리를 반겨주다니 고맙다. 회장님께서 유기불을 강조하신다. 오늘의 트래킹 꼭지이다. 유교면, 기독교면, 불교면 어쩌랴, 이 땅에서는 종교전쟁 없이도 참 잘 녹아들었더라,
지덕체를 녹인 삼육대학 공간은 커피가 없고 고기를 먹지 않고 담배가 없다.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다. 토요일이 안식일이고. 고걸 다 어찌 아냐고 환이형 눈이 동그라진다. 제칠일안식일교가 이 땅에 뿌리내린 지 오래되어서인지 이단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단이 뭔지, 삼단이 뭔지,
제명호수를 지나면서 백세길을 걸어간다. 이 길 걸으면 우리 모두 백 살까지 사는 건가, 그건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백 살까지 살아야 하는 의무를 강하게 느낀다.
길이 가파르지만 다들 청춘인지라 잘도 걷는다. 불암산 가는 길에서 우리는 최불암선생님의 너털웃음을 다시 한번 반추하면서 불암산 유래에 대한 회장님의 색다른 이설이 주목을 받는다.
삼육대와 제명호를 지나 드디어 학도암에 이른다. 자그마한 암자지만 기품이 한껏 비추는 절이다. 회장님의 마애관음보살좌상에 대한 강연이 끝나고서 향긋한 새참 타임에 들어간다. 장렬공의 외산술과 막걸리와 은경공의 제사음식, 여러 어르신들의 풍성한 음식이 화려한 산행을 축하한다.
불암산 전망대를 지나고 오후 하고도 두시 사십 분이 되었을까, 거대한 남근석을 뒤로하고 상계동 닭갈비집에서 두 다리를 쭉 뻗는다. 소주와 맥주와 한가한 얘기들이 마구마구 날아다닌다. 송년회 장소에 대하여 총알 없는 총성이 쾅쾅 울려 퍼지기도 한다. 인재영입의 결정판 장렬공이 먼저 일어서고도 한참이나 유쾌한 한담들을 쏟아낸다.
닭갈비집에서 진하게 윙크를 날리고서 호프집으로 이동하니 여덟 분이 남았더라. 안주로 먹태 당도하니 이 또한 축복이라, 생맥과 하이볼 칵테일이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가운데 벼란간 남 회장님 일어서더니 계산을 하고 계셨다
다들 그곳으로 돌아가고, 진영이 형 붙들고 여의도 어느 선술집에서 격정토론을 펼치다 산행의 거대한 마무리를 짓다.
송년산행은 이십 명을 목표로 한다는 회장님의 다짐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열두 사도 마지막 탑승자인 장렬공의 운수 좋은 날과 우리 산악회의 찬란함이 백 년은 이어지길 간구해 본다.
그날, 함께 하니 더없이 기뻤음을 고백하면서,
*이번 산행은 유교(왕릉) 기독교(삼육대) 불교(학도암) 유적 순례 중 태릉 능침에서 장쾌한 전망을 바라보는 특별 순서는 예약 미비로, 태릉과 강릉을 잇는 숲길은 멧돼지 출현으로 폐쇄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우라까이와 짜깁기로 완성한 신개념 주물럭 하이브리드 퓨전 컨버전스 믹스드 트레일의 결정판이었음을 널리 널리 알립니다!
참가자:회장님 남회장님 알대장님 뜬총무님 만석이형 진영형 환이형 종원형 은경공 위형 장렬공 등 12명(written by horangi)
태릉
태릉
강릉
남근석
첫댓글 잘 읽었어요. 빠르고 재밌는 산행기, good j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