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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마다 하얀 물결이 튀어 오르는 변산해변 |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도착한 변산해변. 하얀 거품을 머금은 파도가 마음을 줄 듯 안 줄 듯 간을 본다. 모래 위에 뒹구는 작은 돌멩이들을 건드렸다가 껍데기만 남은 조개를 건드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은근슬쩍 내뺀다. 귀여운 파도의 유혹에 손을 내밀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겨울은 겨울인 거다. 맑고 투명한 만큼 바닷물은 얼음장같이 차갑고 시리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는 더 커지고 거친 소리를 내며 날 붙잡았다. 쓸쓸한 계절에 바다도 친구가 필요한 모양이다.
2km에 이르는 백사장도 멋지지만 길게 뻗은 송림과 해변 끄트머리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등장하는 조각공원도 볼만하다. 특히 조각공원의 팔각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겨울 바다가 저리 예뻤나. 은빛으로 튀어오르는 반짝임에 눈이 부시다. 따뜻함이 넘친다.
부안에는 해안코스와 내륙코스로 나뉘는 총 13개의 변산 마실길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걷는 총 66km의 해안코스는 조개미 패총길, 노루목 상사화길, 적벽강 노을길, 해넘이 솔섬길 등으로 연결된다. 그중 성천마을에서 적벽강, 채석강, 격포항으로 이어지는 3코스 적벽강 노을길이 인기 높다. 해가 빨리 지는 겨울이라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적벽강이냐 채석강이냐, 노을을 어디에서 볼 것인지 한 곳을 골라야 한다.
어떤 이가 써놓은 글을 읽어보니 적벽강은 붉은색 암반과 절벽으로 원석 그대로의 야생미를 풍기고, 채석강은 수천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조각가가 망치와 정으로 잘 빚은 조각작품 같단다. 두 곳 모두 보고 싶은데, 벌써 해가 질 시간이다. 서둘러야 한다.
(좌) 채석강 격포방파제에 위치한 하얀 등대 (우) 채석강 격포방파제에서 바라본 붉은 노을 |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영화 <변산>의 주인공 학수의 짧은 시에 모든 것이 담겼다. 영화 속 노을 장면은 변산 대항리의 어느 펜션 근처에서 촬영되었지만 내 선택은 채석강이다. 붉게 물드는 노을과 해식동굴에서의 기념샷을 동시에 즐기려는 계산.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밀물이 들어온 거다. 찰랑찰랑 물에 잠긴 채석강은 절벽만 우뚝 서 있다. 갯바위를 걷거나 해식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밀물과 썰물 시간표를 체크하곤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이 여럿 보인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려니. 채석강 대신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격포방파제를 걷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하늘을 새하얀 뭉게구름이 뒤덮고 있다. 파란 빛깔 하늘은 어느새 은은한 주홍 빛깔로, 그리고 붉은 빛깔로 바뀐다. 방파제 끄트머리에 자리한 하얀 등대에 올라 뻥 뚫린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에이, 노을밖에 없다니요!
부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 숙소에서 바라본 바다는 말없이 고요한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자꾸만 채석강이 맴도는 게 그냥 떠나선 안되겠다 싶다. 결국 밀물과 썰물 시간표를 체크해 다시 채석강으로 향한다.
![]() 썰물 때가 되면 채석강 너른 갯바위 위를 산책할 수 있다 |
어제 찰랑거리던 물은 온데간데없고 파도와 바람에 의해 깎이고 다듬어진 절벽 아래로 너른 갯바위가 드디어 속살을 드러냈다. 수천 년간 퇴적과 침식을 반복해 나무처럼 나이테가 고스란히 남은 바위는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 암반에 작은 돌이 들어가 파도에 휩쓸리며 깎아낸 돌개구멍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좌)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채석강 (우) 누구나 작품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는 채석강 해식동굴 |
절벽을 파먹은 듯한 해식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인스타그래머 사이에서 핫한 풍경이 펼쳐졌다. 음영 깊은 동굴 너머로 보이는 바다, 사람들이 앞다퉈 기념샷을 찍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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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겨울바다 그립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