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 / 김석윤
맑은 이슬을 먹고 산다고 한다.
밤낮으로, 푸른 병에 담긴
생의 비의를 노래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 귀엔
주사로만 들린다고 한다.
김석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등단. 2014년 시집 『타르쵸 깁는 남자』, 2023년 디카시집『죽어도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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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소주(燒酒)라는 선사(禪師)가 계셨답니다. 삼십 년 넘는 수행에도 성불(成佛)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여, 말년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새를 한 마리를 키웠답니다. 푸른 병 속에 작은 새 한 마리를 넣고, 매일 맑은 이슬을 먹여 가며 키우다 보니, 새는 날이 갈수록 점점 자라 어느덧 병 밖으로 나올 수 없을 만큼 몸집이 커졌답니다. 인제 그만 병 속의 새를 꺼내야겠는데 병의 목이 너무 좁아 꺼낼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여러분이라면 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내시겠습니까? 물론 병을 깨거나 새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병 속의 새> 화두(話頭)는 꽤 명성을 얻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였다고 합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소주 선사의 화두라 하여 ‘소주(燒酒)’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다 각자 나름대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선사의 생김새가 두꺼비를 닮았다고 하여 “두꺼비(眞露)”, 대조선을 대표하는 선사라고 하여 ‘대선(大鮮)’, 학이 춤추듯 걷는다고 하여 ‘무학(舞鶴)’, 세 마리 학과 더불어 다닌다고 하여 ‘삼학(三鶴)’, 도량(度量)이 바다와 같다고 하여 ‘보해(寶海)’, 발원(發願)을 하면 복을 주신다고 하여 ‘금복(金福)’ 등이 그들이랍니다. 또한 그 푸른 병 속의 새가 마시던 투명한 액체도 ‘참이슬’, ‘맑은 린’, ‘화이트’, ‘잎새주’, ‘시원(C1)’, ‘처음처럼’, ‘조은데이’ 등 수많은 별칭을 낳게 되었답니다. 형국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선사의 이름조차 ‘쏘주’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답니다.
언뜻 ‘소주→쏘주’로 음운변화가 이뤄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명색이 시 한 줄이라도 읽고 쓰는 우리끼리 이야기입니다만), ‘쏘주’는 어두(語頭) 경음화라 하여 단어의 첫 자음인 예사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하는 현상으로, 별다른 조건 없이 일어나는 것이랍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즘에는 이런 연원(淵源)에 관해 이야기할라치면, “아따, 시방 먼 쓰잘데기 없는 소릴 하고 있다냐? “헛소리 말고 술이라 마셔!”라고 핀잔을 듣기 일쑤랍니다.
이 <병 속의 새> 화두에 한 번 빠지면, 밥은 바빠서 못 묵고 죽은 죽어도 못 묵어도 술은 술술 잘 넘어간다고 합니다. 그중 선사의 주도(酒道)를 계승한 주당(酒黨)들은, 지금도 푸른 병에서 새가 나오나 조심스레 병을 기울여 따르며, 따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잔을 찬찬히 살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도 아직 병 속에 새가 있나 없나 병의 밑바닥을 주시하곤 한답니다. 일반인들이 술을 “따라!”라고 하고 술을 “마셔!”라고 하는 데 비해, 그들은 병이나 잔을 “기울인다”라고 하고 술이나 잔을 “들어”라고 한답니다. 바로 그 “기울여”와 “들어”가 병 속의 새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 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네끼리 병 속의 새가 노래한다느니 운다느니 나름의 주사(酒肆)를 늘어놓기도 하는데, 아직 수행이 미천한 저는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 봐도. 새가 노래하는지 우는지 통 알 수가 없으니 어찌 속이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하여, 오늘도 “이모, 여기 한 병 더요!”를 외칠 수밖에요. <김석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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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말>
위의 사진 영상 속 저 병들은 저를 시마(詩魔)에 들게 한, 제 스승(師傅)께서 <병 속의 새>를 꺼내기 위해 용맹정진한 증거랍니다. 죽로지실(竹爐止室)이란 현판이 걸린 누옥(陋屋)에서 비록 고침(孤枕)을 베고 고금(孤衾)을 덮고 주무실망정, 주위의 적막과 침묵을 벗 삼아 ‘고요를 시청’*하기도 하며 생의 비의(秘義)를 담아내셨더랍니다. 하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건강상의 이유로 <병 속의 새> 공안(公案)을 내려놓은 이후, 하루아침에 맹물처럼 밍밍해져 버렸으니, 오호통재라! 제자로서 이를 슬퍼할 뿐이랍니다.
*. 고재종 『고요를 시청하다』.
첫댓글 슬퍼도 한 잔, 기뻐도 한 잔, 아파도 먹고 싶은 술 한 잔.
이즘 저도 술 한 잔 하고 싶은 날이 많습니다.
재미나는 술 이야기 실감나가 잘 읽었습니다.
공병을 팔아 먹고 살더라도
이슬같이 초롱이는 시 쓰고 살고파요
마시는 사람과
마시는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수밖에 없는것이
술이지요
그러고 보니 술 종류가 참 만네요^^ 시가 술을 마시고, 술이 시를 마시는 줄 모르겠나이다^^
햐! 양조장 이름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군요 ㅎ
그 깊고 깊은 술의 맛을 모르니 제가 인생의 심오한 맛을 잘 모르나 봅니다^^
문학인들만 들락거리는 건물에서 청춘을 보냈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술의 세계의 사람들이 오선생이 술을 한다면
참 좋은 술 친구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술 못하는 탓을 했지요
술보다 멋지게 취하고 싶었고 못 보던 세계를 보고도 싶었지요
하지만 술이 빚어내는 행동은 가족이라면 넌덜머리가 날 것 같아 보였어요
시인 소설가들의 출근 후 한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적으면 그냥 시가 되고 소설이 될 지경이었지요
술을 빌려 쓰는 시보다 알고 흔들리는 문인의 글를 읽고싶었다지요
시 껍데기 작가들은 좋아할 수가 없더군요 ^^
범인의 소화불량입니다.
저도 노래와 주사를
구분못해서 밤새 노래하는
이를 싫어했었지요
웃픈사연 바람처럼 귓가를
스칩니다 ^^
술이 하는 말인지...
내가 하는 말인지...
헷갈리는 그럴만큼이 아니라면 가벼이 시를 노래하기 위한 에피타이저 정도라면 좋겠다 싶습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