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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 탐사기획 스크랩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12
裕耕 박노철 추천 0 조회 65 13.05.03 08: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호남 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12


모두가 평등한 무등산 아래 사람들


조선 광해군 때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민간에서 유행하는 이야기들을 수집 편찬해,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알 수 있는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야서(野鼠), 그러니까 멧밭쥐가 있었다. 쥐라고 하면 펄쩍 뛸 인간이 있지만, 여기 쥐는 그 쥐가 아니다. 하지만 이 쥐 역시 새끼를 끔찍이 사랑해서, 자기 새끼를 세상에서 가장 높은 종족과 결혼시키려 했다. 그래서 쥐는 하늘을 찾아가 양가(兩家)의 혼인을 제안했다.

내 아들과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당신 딸을 결혼 시킵시다.”

높은 거라면 하늘이 아니오.”

하늘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하늘을 가릴 수 있으므로 구름이 하늘보다 높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름을 찾아갔더니 구름의 답변도 의외였다. 바람이 구름을 흩어지게 할 수 있으므로 바람이 구름보다 높다는 것이었다.

바람을 찾아갔더니, 바람은 과천 교외의 돌미륵을 추천했다. 아무리 센 바람도 돌미륵을 넘어뜨릴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계속되는 뜻밖의 답변에 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돌미륵에게서 쥐는 가장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쥐가 땅을 파내면 이 돌미륵이 무너질 수밖에 없지요.”

돌미륵이 보기에는 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종족은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돌미륵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 쥐는 결국 같은 쥐 중에서 새끼의 배우자를 찾기로 했다.

유몽인은 쥐의 선택을 높이 평가하면서 분수도 모르고 국혼을 하다가는 재앙을 만날 수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생각해보면 몇 십 년 갈 줄 알았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 철권정치도 끝이 있었다. 권력과 돈하고만 짝짜꿍하면 천년만년을 갈 거라 생각하고, 제 분수를 모른 체 날뛰었지만, 화무십일홍이다. 동영상이 나와도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라지만, 아무리 설레발쳐도 결국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게 역사의 교훈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거짓으로 흥한 자, 제 발을 도끼로 찍고, 제 혓바닥에 낚시 바늘을 꿸 것이다.


<518 민주열사 묘역>

 <풀숲 이불을 덮은 민주열사들><!--[endif]-->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인 1980524일 광주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7살 방광범 어린이가 한국 특수부대인 공수부대원들에게 마치 오리사냥을 당하듯 사살 당합니다. 누가 왜 자신을 죽였는지도 모른 체 M16 총탄에 맞아 죽습니다.”


그러니까 그날, 524일 이동하던 11공수여단과 보병학교 교도대 등 계엄군간에 오인사격전이 벌어졌고 계엄군 9명이 사망하였다. 이에 화가 난 계엄군은 무차별 사격을 가해 광주광역시 남구 송암동 효덕초등학교 뒤 놀이터에서 놀던 전재수,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놀던 방광범과, 반군을 잡는다는 핑계로 주변 민가를 수색해 마을 청년 4명을 살해하였다.


<전두환 민박 기념비>

<민박 기념비 안내판>

 <영호남 사랑과 우정의 기념비><!--[endif]-->

어떤 주검의 사연이 슬프지 않을까만, 위 내용은 5, 18 당시 가장 가슴 아팠던 사연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고 참혹한 현실이었다.


이제 그날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날의 뜨거운 열기와 정신도 지난 세월이란 이름으로 이야기 된다.


오늘 빛고을 광주의 마지막 기행지는 망월동 5.18 광주국립묘지다. 하지만, 새로 잘 조성된 묘역은 그냥 지나친다. 전두환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피울음을 삼키며 슬며시 시신을 묻어야 했던 구 묘역으로 간다.


<구 묘역 민주열사들의 영정 사진>

<제단>

그날의 눈물과 슬픔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늘 따라 찾는 이 아무도 없는 구 묘역은 장맛비에 자란 풀이 우거져 더 쓸쓸하다.

일명 전두환 민박 기념비를 힘껏 꾹 밟고 묘역 경내로 들어선다. 그리고 잠시 제단 앞에서 묵념을 한 뒤, 낯익은 사람들 앞으로 간다.

해직 교사 엄익돈, 명지대생 강경대, 그리고 전남대생 박승희 열사, 보성고생 김철수 열사, 광주 교대생 이경동과 한상용 열사, 민중시인 김남주…….

조용히 그들의 이름을 가까이 불러본다.


<명지대 강경대 열사>

<전남대 박승희 열사>

<보성고 김철수 열사>

<광주교육대 이경동 열사>

<광주 교육대 한상용 열사>

<참교사 엄익돈>

 <김남주 시인>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날, 그리고 여러 해를 금남로에 나가면 가슴부터 울렁거렸다. 알 수 없는 분노와 회환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몇 해 전 상무지구에 있는 5,18 기념관을 나오며 무엇이 그리 좋은 지, 입이 찢어져라 파안대소하던 MB의 웃음이 떠오른다. 1987년 전두환의 56세 생일을 맞아 축시 처음으로를 발표하며 전두환을 단군 이래 5천년 만에 만나는 최고의 미소를 가진 대통령으로 미화, 찬양하였던 서정주가 그 MB의 미소를 봤다면, 뭐라 아첨, 찬양할까? 5,18 국립묘지에서는 구둣발로 상석을 밟고 있던 MB, 원숭이도 아닌 것이 덩달아 MB 흉내 내며 상석을 밟던 보온병 폭탄 안상수의 모습도 잇달아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 5, 18은 끝나지 않았다. 이 땅에는 아직도 더러운 자들의 발자국이 진실과 정의를 짓밟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큰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큰 세상을 이룰 현자가 찾아가는 평등 세상, 화목한 세상(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하고)은 빛이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는다. 그 평등 세상, 화목한 세상을 이룰 빛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요, 그 길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요, 또 그들이 나누고 베푸는 정과 사랑임을 깨닫는다.

광주기행을 마치면서 새삼스럽게 그러한 깨달음에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이제 그 깨달음이 옳은 것인지를 보러 제주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것이다.


<묘역 앞의 구부린 소나무, 반역사의 더러운 무리들아! 구부렸다고 깔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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