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침에 집을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잠깐씩이기는 하지만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말하는 가이드를 만나다
영어로 말하는 가이드를 만나니 무슨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 것 마냥 반가울 수가 없다.
마츄픽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역사나 문화에 관련된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용어가 나오긴 해도
가이드 자신도 영어권 사람이 아니라서 쉬운 단어, 단순한 문장을 사용하고
특히나 마추픽추는 “세계 7대 불가사의 혹은 미스터리”라고 알려져 있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대충의 내용을 알고는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어만 할 줄 알아도 설명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나는 고고학에 관심이 있지도 않고 페루 역사에 관심이 있지도 않지만
설명을 듣다 보니 미쳐 알지 못했던 사실도 알게 되고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라도 막상 가이드가 현장에서 직접 설명해주니 더 생생하게 와 닿는 것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때 뿐, 태양의 위치가 어떻고 별자리가 어떻고 하면서 열심히 설명했던
“마추픽추와 연관된 불가사의한 내용”은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마추픽추는 자리한 지형자체가 ‘돌산’이다보니 건설하면서 사용한 돌들은 현지에서 직접 조달 할 수 있었지만
경작지에 있는 흙들은 워낙 양이 많다 보니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분을 추적해보니 꽤 먼 곳(구체적인 거리를 말해줬는데 까먹었다)에서 조달해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시대에 어떻게 이 산꼭대기까지 그 많은 양의 흙을 옮겨왔는지 불가사의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불가사의한 일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몇 백 년 전에 길도 없을 것 같은 산꼭대기 위에 제대로 된 암자庵子를 만들지 않았는가?
물론 마추픽추는 거리상으로 훨씬 먼 곳이기는 하지만
큰 돌이나 큰 목재가 아닌 흙을 나르는 일은 그냥 많은 시간과 많은 노동력만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모르기 때문에 쉽게 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개미들도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크기에 비해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집을 짖지않는가?
마추픽추와 관련된 불가사의하고 놀라운 것들이 많은데 굳이 보태지 않아도 될 것까지 왜 보태나 싶었다.
마추픽추에서 시간을 보내고 쿠스코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오르니
내 자리에서 좀 떨어진 뒤쪽으로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몇몇 사람의 목소리가 커서 좀 떨어져 앉아있는 나에게 까지 들릴 정도로 시끄럽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다들 피곤했을 테니 기차가 출발하고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질 거라 생각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못 알아듣는 외국 언어 속에서 내가 알아 들을 수 있는 한국어인데다
유독 한 사람 목소리가 커서 관심을 두지 않는데도 귀에 쏙쏙 박힌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언제나 더 잘 들린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니 꽤 나이가 있는 사람이 주로 말을 하고
가이드 인듯한 젊은 사람이 주로 받아주고 있는 상황으로
대화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자기 자랑’으로 남들이 다 듣는데 저러고 싶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 왕년에 이런 사람이었어, 그러니 무시하지마”라며 남들이 들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만큼 나이들 먹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왕년에 대단했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보다는
‘그래서 지금 나 보고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심해 보이기만 할 뿐이다.
특히나 공공 장소인 기차 안에서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보니
왕년에 잘 나갔고 혹시 지금 그 보다 더 잘나간다 해도 ‘주위에 사람들이 별로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알겠지만 실제로 잘 나가는 사람은 일부러 자신을 드려내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지내다 보면 어떤 사람인지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성공 여부를 떠나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 또한 억지로 남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들의 평가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고
또 현재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저런 식으로 과시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모처럼 만에 자기 얘기를 군소리 않고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서 신이 나서 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저런 내용의 말을 고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심 있는 척 들어 줘야 하는 가이드도 정말 ‘극한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하면서
피곤이 몰려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새벽 네 시 전에 일어나 하루 종일 차 타고 걷고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그런데 잠든 지 삼십 분도 안돼서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곧 잠들겠지 했던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여전히 떠들고 있는 것이다,
체력이 좋은 건지 아니며 오랜만에 자기 얘기를 군말 없이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서 없던 체력도 생겨난 것이지,
마치 이곳이 자신들만 있는 전세버스라고 착각한 듯
한국 같았으면 대중교통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에게로 다가가 “좀 조용히 해 주세요 외국인들 보기 창피하네요!”라고 말했다.
큰 소리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이 아니었으니
함께 있던 일행들도 내 소리를 들었고
나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는,
아니면 진짜로 그 사람의 소음으로 지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니 ‘쌤통이다..’라며 나를 응원하는 표정이다.
내가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내가 어릴 때 혹은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여행이라는 것이 대중화 되어있지 않고
국내 여행조차도 큰 맘먹고 가는 행사중의 행사였다,
그러다 보니 젊은 사람이던 나이든 사람이던 일단 여행이라 하면
‘지칠 때까지 미련 없이 놀다 와야 하는 것’이여서
목적지에서는 물론이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전세버스 안에서도 일어나 음악을 틀어놓고 몸을 흔들 댔다.
당연히 남의 눈치 따위는 신경 쓰지도, 쓰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여행이 많이 대중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심지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는 숙소에서 한국 단체여행객을 만나지 않으려고 일부러 일정과 시간을 조절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일반 관광지도 아닌 ‘순례길’에서 말이다.
(링크를 걸어둘 테니 읽어보시기 바란다 http://v.media.daum.net/v/20181114110045934 )
해외여행이 올림픽도 아니고 대한민국 대표자격으로 가는 것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 가는 것이기에
여행중에 ‘한국인의 긍지를 지켜라, 한국인으로서 부끄럽게 행동하지 마라’등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외국’이여서가 아니라 어디에서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최소한의 공중도덕을 지켰으면 하는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열 시가 넘었다, 정작 마추픽추에 있었던 시간은 길어야 두 세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위해서 오며 가며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라는 것은 목적지가 어디이든 문을 나서는 순간 시작해서
문으로 다시 들어 올 때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 마추픽추가 목적이긴 했지만 길에서 보낸 시간, 차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오늘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내 기억 속에 여행의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