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10여 년 동안 어깨를 짓눌러 온 시험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버리기에 좋은 나들이 코스가 있다. 앙증맞고,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곳. 이를테면 제대로 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포인트다. 가벼운 힐링 나들이니 거창할 것 없다. 작은 `책방 여행` 같은 게 딱이다.
삶이란 것도 그렇다. 허한 마음을 채우는 일은 의외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 가볍게 홍대 나들이
홍대? 어라, 하실 분들 많으실 게다. 복작복작한 도심 한복판에서 `힐링`이라니. 트렌드의 핫스폿이 홍대 한복판이라는 놀라운 공간에 숨어 있다. 폐철도 용지에 조성한 경의선숲길. 폐선로가 놓인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숲길이다. 사연인 즉 이렇다. 경의선 일부 구간(6.3㎞)을 지하로 만들면서 지상에 남은 폐철도 용지를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낭만 숲길, 걷는 것만 해도 좋은데 이 공간에 아주 특별한 보너스가 있다. 홍대입구역 6번 출구부터 와우교까지 250m가량 길이에 놓인 `책거리`다. 테마도 다양하다.
문학·여행·인문·예술 등 분야별 책방 6곳이 들어섰고, 마치, 여기가 작은 책방 동네라고 뽐내듯, 포토제닉한 조형물까지 설치돼 있다. 책 전시와 판매는 물론 강연과 낭독, 저자와의 만남, 체험, 교육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판에 박힌 국영수 참고서 말고 제대로 된 책을 읽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책으로 마음을 채운 다음 배를 채울 차례다. 길을 따라 산책하면서 연남동 쪽으로 이동하면 끝. 소문난 맛집과 카페, 공방, 마켓, 책방이 많아 경의선숲길 중 가장 붐빈다. 범위를 조금 넓혀 월드컵 공원까지 내달려도 좋다. 월드컵공원의 하늘공원은 요즘 은빛 억새 물결이 장관이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5길, 경의선 책거리.
◆ 작은 책마을 파주
내친김에 파주까지 찍어보자. 이곳엔 아주 특별한 동네가 있다. 그러니까 책을 테마로 만든 동네. 바로 경기도 파주출판도시다. 파주출판도시에는 국내 내로라하는 출판사들이 둥지를 틀고 책 판매는 물론 갖가지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파주출판도시의 중심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독서 문화 공간 `지혜의 숲`, 북 스테이를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출판도시 활판 인쇄박물관 `활자의 숲` 등이 전부 이곳에 있다. 개성 만점 책방과 북카페 등이 회동길과 광인사길을 따라 들어서 있는데, 갤러리와 전시관, 박물관이 더해져 심심할 겨를이 없다. 연계할 수 있는 관광지는 마장호수흔들다리와 감악산출렁다리. 아름다운 단풍과 빛축제가 펼쳐지는 벽초지문화수목원이 마장호수에서 지척이다. 오두산통일전망대와 지난 9월에 전면 개방한 파주 장릉도 꼭 들러보자. 아, 먹방 인증샷으로 유명한 독특한 마을도 있다. 이름하여 프로방스 마을. 이곳 명물이 그 유명한 키스링마늘빵이다. 동그란 원형인데,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곁들여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 이것 다 드신 뒤 마늘 냄새(?)를 극복하고 연인과 키스를 할 수 있다면 영원한 사랑이 이뤄진다는 `설`도 있다. 경기 파주시 회동길(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출판도시문화재단. (031)955-0050
◆ 만추홍엽 원주 작은 서점
경의선 책거리와 파주출판도시가 너무 번잡하다고 느낀다면 원주까지 나들이를 떠나보자. 요즘은 KTX 경강선이 뻥 뚫리면서 접근성이 탁월해진 곳이다. 서울에서 출발해도 한 시간 반이면 바로 원주. 원주의 책방은 오붓하다. 산골마을의 골목골목에 문을 열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흥업면의 `터득골북샵`. 출판 기획자와 동화 작가 출신 주인 내외가 산골에 터를 잡은 서점이다. 이곳에서는 북스테이와 차 한 잔의 휴식이 곁들여지며, 작은 숲속 캠프도 열린다. 마음, 삶을 주제로 다양한 서적과 동화책을 갖췄다. 판부면의 `스몰굿씽`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에서 이름을 따왔다. 1000종 넘는 책이 있으며, 드로잉과 글쓰기 등 강좌도 진행한다. 원주역 인근 `책방 틔움`은 독립서적 전문 책방이다. 카페를 개조해 문을 열었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는 책과 인문학 등을 주제로 심야책방을 진행한다. 11월엔 `술의 인문학`을 테마로 술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란다. 원주엔 작은 서점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공간이 있다. 박경리문학공원, 작은 갤러리와 근대사를 간직한 반곡역사, 예술과 관광 명소가 된 뮤지엄 산, 원주소금산출렁다리도 가을 정취가 좋다.
◆ 텃밭 가까운 도서관 광양
놀이터가 통째로 도서관으로 둔갑한 곳도 있다. 쉽게 말해 `텃밭 서점`인 곳. 이름처럼 농부네 텃밭에 자리한 이곳은 책방이라기보다 놀이터에 가깝다. 광양시 진상면에 자리한 `농부네텃밭도서관`은 주변 모든 것이 놀잇감이 되는 모험 놀이터다. 작은 연못에서 줄배를 타고, 마당 위를 날아다니는 미니 집라인도 탈 수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서재환 관장이 손수 만들었다.
텃밭도서관이 처음 문을 연 것은 약 20년 전. 지역에서 마을문고를 운영하던 서 관장이 자기 집 텃밭으로 도서관을 옮겨온 것이 시작이다. 농부네텃밭도서관 인근에는 옥곡5일시장이 있다. 몇 해 전부터 여러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도시형 관광 시장`으로 손님을 맞는다. 이순신대교홍보관, 멀리 여수와 순천, 하동, 남해까지 내려다보이는 구봉산전망대, 가을 전어가 유명한 망덕포구도 광양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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