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

책을 읽고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 ‘역사는 역사학자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역사는 해석되는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는 철저히 당대의 관점이다. 그런 과정에서 왜곡되고 윤색되는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물에 대한 평가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 전혀 다른 인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매월당 김시습이 그렇다. 지금은 생육신으로 추앙받지만 세조 당시에는 ‘설잠’이라는 승려였다. 그리고 절에서 죽어서 부도까지 세워진 사람이다. 시대가 변해 김시습의 시가 인정받으며 다시 알려졌고, 단종복위에 맞물려 생육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지금은 유교, 불교, 도교에서 다 인정받고 있다. 이런 변화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를 다시 해석한 결과다.  다른 예로는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이승만이 있다. 이승만은 이전까지는 혁명에 의해 쫓겨난 독재자였다. 그런데 수구세력은 그를 건국의 아버지로 만들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친일세력의 신분세탁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때부터 호의호식하던 친일세력들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만듦으로써 자기들도 건국에 일조한 애국자가 되고, 거기에 식민지근대화론을 깔아놓음으로써 일제에 부역하여 얻은 부가 조국근대화의 기틀이 됐다고 견강부회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당대의 필요나 역사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의 입맛에 맞게 변화되는 것이다.  신사임당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된 인물이라는 말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특히 신사임당이 오만 원 권 지폐에 들어갈 인물로 선정되면서 더 주목을 받았다. 그간 신사임당은 화가로서보다는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이 책에서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는 후대에 율곡의 존숭과 임진, 병자의 양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예학의 발전과 맞물려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성리학이 정치이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으며 유교적 덕목에 따른 해석에 의해 신사임당의 이미지가 재창조됐다는 것이다.  신사임당 이미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율곡의 존숭과정을 알아야 한다. 율곡 존숭은 제자인 김장생에 의해 이뤄진다. 김장생은 2만 2000여자에 이르는 긴 행장을 썼다. 그 때 ‘10만양병설’을 율곡이 주장했다고 썼다.  ‘10만양병설’에 대해서는 그간 말이 많았다. 실록에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문제가 된 <선조실록>은 두 번 쓰였다. 북인 정권이었던 광해군 때 만들어진 <선조실록>은 광해군이 쫓겨나고 다시 서인이 집권하면서 다시 써서 <선조수정실록>으로 편찬됐다. 그런데 이 두 실록 어느 곳에도 ‘10만양병설’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진위여부가 문제되고 있다. 일단 일반적인 의미에서 양병을 하자는 이야기는 이율곡 행장에도 나온다. ‘10만양병설’은 행장 말미에 나온다.  그 내용은 ‘10만양병설’을 이율곡이 제기했을 때 유성룡이 반대했다가 임진란을 당하고 나서야 “지금 와서 보면 이문성(李文成)이야말로 참 성인이다. 만약 그 말대로 하였으면 나랏일이 어찌 이 지경에까지 왔겠는가.”라고 유성룡이 후회했다는 내용이 있다.(고전번역원/율곡전서 35권 참조)  이런 것이 사실로 인정되면서 후대에 들어 동인의 지도자였던 유성룡의 명성은 퇴색됐다고 한다.(88쪽) ‘10만양병설은’ 김장생의 스승인 이율곡을 올리고 동인이었던 유성룡을 깎아내리기 위해 각색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장생이 쓴 행장에는 사임당 내용은 “신씨申氏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신명화申命和의 딸로서 자질資質과 천품天品이 아주 뛰어나, 예禮에 익숙하고 시詩에 밝았으며, 옛날 여자의 법도[女範]를 모르는 것이 없었다.”로 아주 간략하다.  이에 비해 율곡의 부인 노씨에 대한 내용은 길고 매우 상세하다. 글의 양으로 봐도 10배가 넘는다. 김장생이 노씨부인에 대해 상세하게 쓴 것은 생전에 부인 노씨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쨌든 김장생은 이율곡이 태어날 때 태몽으로 용꿈을 꿨다는 것으로 스승인 이율곡이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다는 뜻 외에는 신사임당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신사임당에 관련된 글은 많지 않다. 신사임당에 관련한 글은 <율곡전서>에 나오는 신사임당 행장인 <선비행장先妣行狀>이 가장 길다. 이 행장은 율곡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인 16세 때 쓴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사실에 근접한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율곡전서> 중 이 <선비행장>만 번역이 없다. 개략 내용을 보면 신사임당이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재기가 많았다는 내용과 서울과 강릉을 오가면 생활했다는 일대기가 간략하게 적혀있고 돌아가실 때 상황이 적혀있고, 마지막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慈堂平日墨迹異常。自七歲時。倣安堅所畫。遂作山水圖。極妙。又畫葡萄。皆世無能擬者。所模屏簇。盛傳于世。 자당은 평일에는 먹의 오묘함을 쫓았는데 어머니가 7살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좇아 그리다가 산수화를 그렸는데, 미묘하였다. 또한 포도를 그렸는데 두루 세상에 미치어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 병풍이나 족자로 만들어져 세상에 잘 알려졌다.(본인의 해석임) 이 글은 신사임당이 돌아간 직후 쓰인 것이므로 가장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내용을 보면 안견의 그림을 보고 공부했고, 산수화와 포도를 그렸으며 실력이 대단해서 병풍과 족자형식으로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글을 보면 신사임당은 당대에 이미 대단한 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패관잡기>에도 나온다고 한다. 어숙권은 당시 화가로서 세 명을 꼽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신사임당이라고 한다. 그는 “산수와 포도가 절묘하고, 안견에 버금간다.”라고 했으며 여기에 덧붙여 “아, 어찌 부인의 필치라고 소홀히 할 것이며, 또 어찌 부인의 할 일이 아니라고 책망할 것인가?”라고 했다.(28쪽) 여기서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이 당시에는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재산도 남녀가 균분하는 때였다. 신사임당도 서울과 친정인 강릉을 오가면 생활했다. 이 책에 의하면 오죽헌도 딸 쪽으로 상속되다가 17세기 이후부터 아들에게 상속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여자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무시되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패관잡기> 내용은 율곡이 쓴 행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신사임당 생존 당시에는 신사임당은 산수화와 포도 그림으로 유명했다는 것이다. 이후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개념이 달라지면서 초충도가 유명해졌다. 아쉽게도 신사임당이 그린 산수도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발문이 적혀있는 산수화가 한 점 있으나 그림이 모두 지워져 내용을 알 수 없다고 한다,(29쪽) 이 책에 의하면 16세기 초 신사임당을 소개하는 내용은 신사임당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신사임당이 위대한 어머니로 변신하는 것은 송시열에 의해서다. 송시열은 화가로서의 신사임당에 대한 것을 폄하했고 신사임당을 정호·정이의 어머니인 후부인의 반열에 놓아 어머니로서의 신사임당을 부각시켰다.(160쪽 등) 이런 이유로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하는 산수화를 폄하하고 오히려 초충도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지금 전해지는 신사임당 그림이라는 것이 대부분 초충도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성만큼이나 위작이 많이 만들어져 지금 신사임당 그림이라고 하는 것 대부분이 위작이라고 한다.  이처럼 신사임당의 그림에 대한 평가는 현모양처의 이미지와 엇물려 변화한다. 초기에 산수화는 사라지고 초충도만 남았다. 현재 남아있는 초충도가 신사임당이 그린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숙종이 신사임당이 그렸다는 8폭 병풍을 보고 화원에게 모사하라고 했다고 하니 17세기에는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가 남아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사임당의 주 분야는 산수화와 포도다. 만일 송시열이 신사임당의 산수에 좋은 평가를 내렸다면 신사임당의 산수는 많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가로서의 신사임당을 우리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초충도로 인식되는 신사임당은 결코 신사임당이 아니다.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였는지 또는 세간에서 알려진 대로 남편을 휘어잡은 대가 센 여자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에게 남겨진 신사임당의 모습이 허상이라는 것만이 확실하다.  추신 1 : ‘師任堂’이라는 호가 ‘과연 언제부터 쓰였는가.’다. <송자대전>에 사임당이라는 호가 나오지만 이전에는 예전부터 부르던 신부인 또는 부인 신씨로 불렸다. 그러므로 ‘사임당’이라는 호는 나중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추신 2 : 송시열은 산수화를 신씨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 이유를 그림 수준이 너무 전문적이고, 그림에 스님이 나오고, 이 그림에 대한 ‘발跋’를 남성(소세양)이 썼다는 것 때문이다.(36쪽) 한마디로 유교적 사고와 남성중심적 사고다.  추신 3 : 이 책에 송시열에 대한 재미있는 평가가 있다. “송시열은 사대질서를 힘으로 재편한 청을 비판하고 유학의 보루인 조선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것을 위해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로 철저히 변신해야 했다. 현대인이 시각에서 평가하자면 이것은 학문으로서의 주자학이 아니라 이념으로서의 ‘주자주의’에 가까웠다. 외부의 적대적인 타자로서의 오랑캐를 설정하고, ‘유학을 옹호한다’는 명분으로 내부를 일체화시키는 동원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추신 4 : 김장생을 보면서 역시 스승이 유명해지려면 제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김장생, 김집, 송시열로 이어지는 학맥과 서인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이율곡이 동국 18현에 들었을까?’하는 생각이다. 역시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추신 5 : 간단하게 소감만 쓰려던 것이 길어졌다. 확실히 하려다 보니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 확인하는 과정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누구 탓을 하리오. 다 내 성격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