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 감독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던 건 영화를 꿈꾸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교 시절, 분방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방을 들락거리고 담배를 피우다가, 막상 대학에 가려다보니 아무리 찾아봐도 가고 싶은 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예체능계였고, 연극영화과는 이과 과목에 한 과목만 추가로 시험을 보면 된다는 이유로 선택했다. 좋아서는 아니었지만, 싫지도 않았던 과였던 셈이다.
각성은 늦게 왔다. 주말마다 허름한 재개봉관에서 <차타레부인의 사랑> 등의 에로영화, 이소룡 영화, 007영화를 섭렵하던 어느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허름한 극장에서 봤던 <욕망의 낮과 밤>의 분방한 표현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충격이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좋아하게 되었고, 대학 졸업작품에서 그 색감을 흉내냈는데 주변의 평은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프랑스영화 같다”와 “<우뢰매> 같다”. 결론은, “컬트다”.
대학 졸업반 때부터 광고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영화의 부름을 받았다. 불현듯 영화를 ‘무지’ 찍고 싶어진 것. 1년이 못 돼 회사를 때려치웠고, 배창호 감독을 찾아갔다. 배창호 감독 밑에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그 말을 잊지 않고 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청운동 배창호 프로덕션에서 배 감독을 처음 만난 날, 너무 좋아서 다리가 막 떨렸던 기억이 난다.
<러브스토리> <정> 연출부를 하며 현장체험을 했다. <연애소설>은 <정> 끝나고 조금 쉬다가 생각해서 쓰기 시작했다. 원래 초고는 금방 쓰고,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수시로 고쳐쓰는 스타일이라 수없이 고쳐쓰고 있다. 스스로의 경험을 많이 집어넣는 편이기도 하다. 여주인공 수인은 대학 때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만나 한눈에 반했던 여자 이름에서 따왔다. 다섯번쯤 만난 뒤 연락이 끊겨 지독한 가슴앓이를 했던 그 느낌이 어느 정도는 <연애소설>에 녹아들 것이라고.
신파는 싫지만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랑 영화를 좋아하고 모든 영화에 사랑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한 감독은 첫 '사랑' 영화 <연애소설>이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정조의, 그러나 그보다 조금 밝은 톤의 멜로 드라마"로 모습을 드러내길 바란다. 영화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슬프지만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아련한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어떤 영화?
제작사 팝콘 필름 출연 차태현, 이은주, 손에진 2월중 크랭크인 (가을 개봉 예정)
넉넉지 않은 살림으로 학업과 택시운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25살 남자 지환은 지쳐 있다. 그런 지환에게 어느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한장의 사진이 배달된다. 그 사진 속에는 나무, 꽃, 바람, 아이들의 싱그러운 미소가 담겨 있다. 오랜만에 웃음을 지으며 지난날을 떠올리던 지환은 사진을 보낸 이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그를 찾아나선다.
5년 전 스무살 시절, 지환은 두명의 여인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 여인 수인과 그녀의 오랜 친구 경희. 지환의 수인에 대한 구애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세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우정을 느낀다. 만남이 지속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생겨난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세 친구. 지환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쪽지에 전해보지만 그 쪽지를 보낸 뒤 수인과 경희는 자취를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