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
팔당댐 방류
집중 호우 후의 한강 (뚝섬 한강공원)
수해 복구 나선 육군 25사단 장병들 (파주시 적성면)
속초해수욕장
전북 진안 고원 마실길
선유도 명사십리 낙조
악어의 탄생 (필리핀 악어농장)
안녕하세요. 꿈 전도사 이기원입니다.
오늘 아침 PC가 말썽을 부려 동네 PC방에서 메일을 보내는 관계로
평소보다 1시간 늦은 시간(현재 5시)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비 피해는 없으셨는지요?
'하늘이 원망스럽다' 는 말이 있지요.
요즘의 물폭탄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어젯밤의 비가 지금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오늘 새벽부터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며 내일까지 이어진다고 하니 오늘도 우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8월중에는 국지성 집중호우도 잦고, 슈퍼 태풍도 2.3개 가능성이 있으며 9호 태풍
무이파가 일본 남쪽 태평양에서 발생하여 모래쯤이면 한반도 상륙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도 지난주 기록적 폭우로 40만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고 하네요.
일부 지역은 시간당 100mm의 비가 내리고 며칠간 내린 비의 총량이 650mm인
곳도 있구요!
우면산 산사태는 인재(人災)라고 하며 관할 서초구청에 소송을 내겠다고도 하는
분들도 있는데...
무엇보다 전세계 70억의 인구가 자연과의 공존보다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무리함이 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시점에서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주 토요일은 음력 7월 7일 칠석이랍니다.
이날은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들이 놓은 오작교에서 1년에 1번씩 만났다는
중국 주나라의 견우직녀설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칠석날에는 보통 비가 내리는데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합니다.
이날의 풍습은 걸교(乞巧)라고 하여 처녀들이 견우성과 직녀성을 보고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고, 선비와 학동들은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으면 문장을 잘 짓게 된다고
하며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농사 절기상으로는 한여름철의 휴한기로 마을축제를 벌이기도 하였다네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가 채무상환 조정 문제를 협의하는 모습
세계최대강국 미국이 국가부도(디폴트) 위기에 서 있다고 하네요.
미국은 국가채무가 계속 늘어 법이 정한 한도인 14조 2천 9백억 달러를 내일 8월 2일까지
16조 7천억 달러로 올려야 내년 말까지 버틸 수 있는데, 오바마정부의
'세금을 인상하고 재정지출을 축소함으로써 적자를 줄여가겠다' 는 정책을 공화당이
세금 인상에 반대하고 있어 최종 협의를 하고는 있지만 의회 통과가 쉽지는 않을 듯 합니다.
국가 부도는 나지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경제가 한계에 부닥쳐서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전세계가 함께 몸살을 앓게 되고 수출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듯 하네요.
'애프터 쇼크(After Shock)' 라는 책에서는 달러와 정부부채 버블 붕괴(더블 딥)로 금년부터
2014년까지 사이에 최악의 대공황이 올 거라고 하며 '부동산, 주식, 원자재를 팔고
금을 사라' 고 충고를 하고 있는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참고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술 드시는 분들, 맥주병과 소주병의 색깔 기억하시나요?
맥주병은 갈색이고 소주병은 녹색인데 그 비밀은 알고 계신지요?
맥주병이 갈색인 이유는 '맛' 때문으로, 맥주는 보리, 홉 등을 원료로 만들어지는데
이 원료들은 햇빛을 받을 경우 응고 및 산화되어 맥주의 맛을 역하게 하기 때문이며,
소주병이 녹색인 이유는 맥주와는 달리 1994년 두산에서 내놓은 '그린소주'가 시장을
흔들며 그때까지의 투명한 색이나 하늘색 병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이 이어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우리 선박 5만9천톤급 석탄벌크선의 인양작업 중단을 요구하며
이 지역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내에 있음을 주장하고 나섰네요.
중국의 의도는 이 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 때문으로, EEZ는 영해와 공해의 중간 개념이며
천연자원의 탐사, 개발, 보존 등에 대한 한 국가의 주권적 권리가 인정되고 있는데,
이어도는 마라도 서남쪽 149km 떨어진 암초로 바닷속 4.6m에 잠겨 있어 이 해역을 둘러싼
한중간의 신경전이 치열하며(중국의 퉁다오와는 250km 떨어짐),
우리나라는 2003년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완공하여 기상예보와 해양과학연구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방대학교의 김병렬 교수는 지난 30일 이어도를 인공섬으로 개발하여 일본, 중국과의
EEZ협상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어도는 제주도민의 전설에 나오는 환상의 섬, 피안의 섬으로 잘 알려졌으며,
전설에 의하면 이 섬을 보면 돌아올 수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이곳에 와서 조업을 하다가
파고가 10m 이상이 되면 이 섬이 보였고, 당시 어선으로는 무사히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옛날 제주도의 한 마을에 부부가 살았는데 하루는 남편이 배를 타고 떠난후 풍랑을
만나 한 섬에 표류하였으며 그 섬이 이어도이고, 아내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이어도로
떠났다는 전설도 있다고 합니다.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가 처음 발견하였으며 국제적으로는 '소코트라 암초'로
불린다고 하네요.
영국 런던대학 게리 그린버그 교수가 모래를 근접 촬영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래의 작은 알갱이들을 현미경으로 250배 확대하자 얼음, 크리스털, 조개껍데기,
화산암 부스러기 같은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린버그교수는 일본에서 아일랜드까지 전 세계를 돌며 5년여에 걸쳐 촬영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짝짝짝~
잉글랜드 볼튼의 이청용이 주말에 열린 잉글랜드 5부리그 소속 뉴포트와의
프리시즌 경기(친선 경기) 도중 상대 미더필더 톰 밀러의 거친 태클에
오른쪽 다리 정강이 골절의 부상을 입어 응급수술을 하였으며, 9개월의
결장이 예상되어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습니다.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의 대들보인 이청용 선수의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재미교포 앤서니 김(26)이 미 PGA투어 그린브리어 클래식
3라운드에서 2위와 1타 차 1위로 오늘 새벽 마지막날 경기에
나섰습니다.
3일째 경기에서 버디만 8개를 뽑아내며 8언더파, 합계 10언더파로
단숨에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와 2006년 프로 입문후 통산 4승에 도전하고 있는
앤서니 김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5시가 지난 지금 시간 10번홀까지의 경기에서 8언더파로 선두와 2타차 3위랍니다)
한편 LPGA 한국선수 100승을 기대하였던 브리티시 여자오픈 골프대회 최종일
간밤의 경기에서 세계 랭킹 1위 대만의 쳉야니가 16언더파로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우리 선수들은 양희영 10언더 4위, 유선영, 최나연, 박인비 9언더 7위, 안선주, 김송희
박세리 5언더 14위, 신지애 4언더 21위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지난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2011 20세 이하(U-20) FIFA월드컵에서
이광종 감독(47)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김경중(20 고려대), 장현(20 연세대)의 골로
아프리카의 복병 말리에 2-0의 승리를 거두어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였습니다.
아래 본문에 가수 조영남의 '쎄시봉 시대' 책을 소개합니다.
책을 펴내면서 기자간담회를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조영남은,
"쎄시봉이 인기있는 이유는 디지털 시대가 잊어버렸던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를 다시 회생시킨
결과가 아니겠는가" 라고 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음악성이 탁월하기 때문'에 이 시대에
다시 부활하는 것이라고 하구요.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쎄시봉을 다루다보니 조영남은 책의 원고도 직접
손으로 썼다고 하네요.
"쎄시봉 시대에서 중요한 점은 이장희가 작사를 하면 송창식이 가사에 곡을 만들고
김세환이 노래를 부르는 공동제작 방식으로 개인적이고 타산적인 요즘 세태의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윤형주)
책이 무척 재미있답니다~
40년 기부천사 이상차 옹(71)의 모습이랍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000만원 이상 중.고액 기부자 모임인 나눔리더스클럽의
수도권 지역 창립회원 25명 중 1명인 이상차 옹은 "동네 부녀회와 함께 독거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열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쌀을 기부하고 생일 때마다 케이크를
보내면서 후원을 한 게 벌써 40여 년이 되었네요." 라고 하며 현재는 독거노인
52명을 후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 고아와 다름없는 불우한 삶을 살며 구두도매상으로 돈을 모아 '기부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으며, 고아원에 라면과 양말을 후원하면서 기부와 인연을
맺었는데 국회의원 출마의 오해를 받기도 하였답니다.
딸 역시 상암동 고아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며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네요.
"장학회를 만드는 것이 남은 생에 꼭 이루고 싶은 꿈" 이라는 이상차 옹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미에서 뜨거운 박수를 짝짝짝~
이번주가 여름 휴가철의 절정을 이룰 것 같습니다.
오고 가는데 조심하시며 즐겁게 보내시고, 휴가 계획이 없으신 분들은 더위에
짜증을 내기 보다는 '여름은 원래 더운거야!' 라며 웃음 띤 한주간 되시면
좋을 듯 합니다~
8월 한달도 멋진 나날들 되시길! 화이팅~
이기원 드림
가치있는 사람
길가에 세워진 축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가지 모양의 돌들이 모여 단단한 축대를
이루고 있는 모습 말입니다.
큰 돌만 모여서는 단단한 축대를 이룰 수 없습니다.
큰 돌과 큰 돌 사이에 작고 보잘것 없는 돌이 들어가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죠.
세상의 이치가 이와 같습니다.
잘난 것과 못난 것, 멋진 것과 볼품없는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그 모두가 똑같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바로 당신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 좋은 글에서 -
◇서 울 타 임 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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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5호 |
2011. 8. 1 (월) |
1. 시론 < 난봉꾼을 정승으로 만든 기생 일타홍(一朶紅)의 사랑 >
조선 선조 때 금산에서 태어난 일타홍이 어떠 연유로 '한 떨기 꽃' 이라는 기명(妓名)으로
기적에 오르고, 10대 후반에 한양으로 올라오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당대에 뛰어난 용모와 노래 솜씨, 춤으로 이름을 날렸던 일타홍은 비록 기녀 신세였지만
그녀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벼슬길로 나아갈 수는 없었지만 기상이 크고 호방한 낭군을 만나서
자신이 이루지 못할 꿈을 대신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총명하고 영리했던 일타홍은 미모까지 겸비한 당대의 명기로서 중요한 연회에는 빠지지 않고
불려 다녔다. 게다가 시문에도 밝고, 관상을 보는데도 뛰어나 여러 남자를 상대하면서
꿈에 맞는 낭군을 찾고 있었다.
일타홍이 권문세가의 노류장화(路柳墻花)가 되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가인 이 판서의 잔칫집에 불려가 술 시중을 들고 있었다.
당대의 정승과 전직 대신들이 참가한 술자리가 자못 위엄스럽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자
사이사이에 앉은 기생들이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대감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차츰 취흥이 돌고 화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갑자기 난봉꾼 같은 젊은 남자가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허락도 없이 음식을 마구 집어 먹으며 술자리를 휘젓고 돌아다니자 점잖은 대감들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했다.
그 난봉꾼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글공부라고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던 심희수(沈喜壽)였다.
술과 여자, 먹을 것을 무척이나 밝히던 심희수는 상갓집이나 잔칫집 등 술을 마실 수 있는
자리가 생기면 으례 모습을 드러내고 멋대로 행동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아예 반 미치광이처럼 취급해 상대조차 하지 않고 슬슬 피하였다.
그러나 일타홍의 눈에는 심희수가 웬지 남다르게 보였다.
지금 하는 행동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일 뿐, 그의 얼굴에는 호탕한 기운이
서리고 눈에는 예기가 번뜩여 대뜸 재상의 재목감이었다.
일타홍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대감들이 둘러앉은 대청마루로 성큼 올라선 심희수는
기생들을 ?어보더니 일타홍 옆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분위기가 어색해져도 그는 히죽이 웃을 뿐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았다. 일타홍 또한 심희수를 거절하지 않고 공손히 술을 한 잔 따르며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술자리기 다시 화기애애해져 사람들이 심희수를 신경 쓰지 않게 되자, 일타홍은 조용히 심희수를
밖으로 끌어내 말하였다.
"술자리가 끝나면 집으로 찾아갈 터이니 기다리세요."
잔치를 마친 저녁 무렵 일타홍은 약속대로 심희수의 집 대문을 들어섰다.
심희수와 그의 어머니 박 씨에게 인사를 올린 그녀는 모친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마님! 저는 금산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생 일타홍 이옵니다.
오늘 어느 재상집 잔치에서 귀댁 공자를 뵈었습니다. 모두가 미쳤다고 하나 저의 소견으로는
장차 귀하게 될 상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준비를 하지 않고 헛되게 낭비하면 훌륭한 기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마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오늘부터 화류계를 청산하고 이 댁에 들어와 온갖
힘을 다해 귀댁 도련님을 올바른 길로 인도 하겠습니다."
"내 아들을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면 내 집에 들어오는 것을 어찌 막겠느냐.
다만 집이 가난하니 너같이 호강하던 애가 어찌 참고 견디겠느냐."
"마님! 저는 부귀와 영화를 탐내 이 댁에 오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만약 그럴 욕심이면 어찌 가난한 집 도련님을 유혹하겠습니까?"
아들을 포기한 상태였던 어미니 박 씨는 일타홍을 기쁘게 맞이하였다.
그날로 일타홍은 심희수의 색시가 되어 한집안 식구가 되었다.
그날 밤 잠자리부터 요구하는 심희수를 일타홍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내놓았다.
"소첩은 살다가 도망가는 일은 없을 것이니, 이 책을 1권씩 떼면 잠자리를 허락하겠습니다."
그러자 심희수는 일타홍을 차지하기 위해 그날부터 노수신의 문하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심희수는 워낙 머리가 비상했기에 공부를 시작한 지 2년도 안 되어
고금의 시서(詩書)를 모조리 통달하여 급제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일타홍은 그런 그가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엄하게 꾸짖었고 심희수의 글공부는
나날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해 시작한 공부였기에 심희수는 다시 공부에서 손을 놓기 시작하였고,
일타홍은 심희수가 과거에 급제를 하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나고 만다.
심희수는 뒤늦게 일타홍을 찾아 다녔으나 찾을 길이 없었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잡은
심희수는 공부에 정진하기 시작하였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심희수는 22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3년 뒤인
선조 5년(1572년)에는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심씨 집안에는 드디어 경사가 났다.
일타홍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대과에 급제한 심희수는 당시의 관례대로 삼일유가(三日遊街,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 동안 시험관과 선배 급제자, 친척을 방문하던 일)를 하던 중 달마 노인이라
불리는 어른의 집에서 드디어 일타홍과 재회를 하게 된다.
일타홍은 심희수가 등과 후 재상에게 인사를 드리러 올 것을 예견하고 미리 와 지내고
었었기 때문이다. 오랜 이별 끝에 함께 하게 된 둘은 집으로 돌아왔고, 주위 사람들은
일타홍의 뒷바라지 덕분이라며 모든 공을 그녀에게 돌리며 기뻐했다.
그러나 일타홍의 마음은 한없이 아팠다. 그녀는 천한 기생의 신분이라 숙명적으로
정실부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낭군을 장가보내기로 결심을 한 일타홍은 입술을 깨물며 나직하게 말하였다.
"어머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제 아드님에게 마땅한 배필을
얻어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진작 말씀드리지 못한 것은 아드님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저의 소원이니 꼭 들어주세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심희수는 일타홍 외 다른 여인과는 부부의 연을 맺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사대부가 기생을 정실부인으로 삼는 것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며
설득하는 일타홍의 뜻을 따라 양반집 규수 노극신의 딸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일타홍은 갓 들어온 새색시를 깍듯이 예우하여 일을 처리할 때도 부부간이나 외동서 간에
말다툼 한 번 없었다.
이 일은 마침내 선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너무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한 임금은 친히 두 사람을 불러 그동안 있었던 일을 물었다.
당시 법도로 정경부인 아닌 일개 천기 출신을 임금이 부른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선조가 소원을 묻자 일타홍은 남편 심희수를 자신의 고향인 금산 군수로 제수해 줄 것을
청하였고, 임금은 기쁜 마음으로 윤허하였다.
심희수가 금산 군수로 부임하자 일타홍은 군수의 부실이 되어 금의환향하였다.
그녀는 옛집을 찾아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사흘 동안이나 일가친척을 위로하며 잔치를
베풀어 금산 일대에 소문이 자자했다.
한편 일타홍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여 친척들에게 관청은 여염집과 다르니
함부로 드나들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일타홍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소실인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도 하고
또 남편을 오랫동안 차지한 것이 정실부인에게 죄스러워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일타홍은 일단 마음을 굳히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날 삶의 회한이 사무쳐 와
달을 보며 시 한 편을 지었다.
賞月
亭亭新月最分明 一片金光萬告情
無限世間今夜望 百年憂樂幾人情
달을 보며
뚝 솟은 초승달 오늘 따라 밝고/ 한 조각 달빛 만고에 정다워라.
넓고 넓은 세상 오늘 밤 달을 보며/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일까.
일타홍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둔 채 유서를 남기고는 저 강을 건넜다.
(유서)
"서방님! 오늘로써 이별코자 합니다. 원컨대 귀한 몸이니 오래도록 부귀를 누리시고
소첩 때문에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그리고 소첩의 몸은 심 씨 선산에 묻어주시오."
뜻밖의 일을 당한 심희수는 텅 빈 가슴을 달래면서 며칠을 슬피 울다가 일타홍을
자신의 선산인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원흥리에 묻기로 결정하였다.
일타홍을 실은 꽃상여가 금강에 이르자 홀연 가을비가 소소하게 내려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구슬프게 했다고 한다.
심희수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통곡하면서 시 한 편을 남겼다.
一朶紅?載이車 芳魂何事去주躇
錦江秋雨丹旌濕 疑是佳人別淚餘
한 떨기 고운 꽃이 상여에 실려/ 향기로운 혼이 가는 곳 더디기만 하네.
금강에 가을비 내려 붉은 명정 적시니/ 그리운 내 임의 눈물인가 보다.
(이런 아름다운 사랑을 그 누가 할 수 있으리오?!)
2. 이 한마디
< 쎄시봉 가수들의 노랫말 >
* 친구/ 김민기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르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고교 시절 물가에서 함께 놀던 친구가 익사를 하여 만든 노래)
* 한잔의 추억/ 이장희
늦은 밤 쓸쓸히 창가에 앉아/ 꺼져 가는 불빛을 바라보면은/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은/
반쯤 찬 술잔 위에 어리는 얼굴/ 마시자 한잔의 추억.
마시자 한잔의 술/ 마시자 마셔 버리자.
* 나 그대에서 모두 드리리/ 이장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당시 연애하던 애인(나중에 결혼)을 위한 노래)
* 우리들의 이야기/ 윤형주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
라일락 꽃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밤하늘에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 화가 났을까/ 김세환
손을 뿌리치면서 집에 가야겠다고/ 화를 발칵 내며 뛰어가던 모습/
이건 이런 것이고 저건 저런 것이다/ 암만 얘기해도 전혀 듣질 않네/
정말 화가 났을까 정말 토라졌을까/ 밤새 잠 못 자고 끙끙 앓았는데/
아마 풀어질 거야 아마 돌아설 거야/ 밤새 잠 못 자고 나를 달래보네.
* 한 번쯤/ 송창식
한번쯤 돌아서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겁먹은 얼굴로 뒤돌아보겠지/
시간은 자꾸 가는데 집에는 다와 가는데/ 왜 이렇게 앞만 보며 남의 얘를 태우나/
말 한 번 붙여 봤으면 손 한번 잡아봤으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천히 걸었으면.
(한자말없이 순수한 우리말의 아름다운 노랫말이 더 없이 좋습니다~) |
3. 책 소개
제목 : 쎄시봉 시대
저자 : 조영남, 이나리
조영남, 1945년 황해도 출생, 1.4후퇴때 충남 예산으로 이주, 한양대 음대와 서울대
음대 중퇴, 1965년부터 쎄시봉 무대에 섬, 1967년 '딜라일라'로 스타덤에 오름,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 졸업 목사 안수 (1975-1980), 1982년 귀국 가수, 화가, 저술가,
방송인으로 활약중, 앨범 <제비>, <딜라일라>, <보리밭>, <화개장터>, <불꺼진 창>등,
저술 <예수의 삿바를 잡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외
이나리, 1969년생, 이대 철학과, 1992년부터 기자, (현) 중앙일보 경제 부문 차장
2010년 9월 MBC <놀러와-쎄시봉의 추억>이 방송된 후 우리 사회는 쎄시봉 신드롬에
빠졌는데, 그 이유가 6-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에게는 누구나 그 시절을 회상
하게 만드는 한편, 젊은이들에게는 요즘의 만들어진 가수 아이돌과는 차원이 다른
쎄시봉 가수들의 음악성에 빠져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974년 대학 신입생 시절 남산 드라마센터에서의 트윈폴리오 공연에서 윤형주, 송창식
뿐 아니라 김세환, 이장희, 장현, 양희은 등의 노래에 미친듯이 환호하였는데 어쩌면
젊음을 발산할 유일한 무대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 것도...
이 책은 조영남과 이나리 기자가 번갈아 가면서 한 부분씩 써내려가는데 조영남의
비상한 기억력에 또 한번 놀라기도...
( 2번씩 읽어볼 정도로 재미도 있고 그 시절의 향수에 젖었답니다~)
쎄시봉(C'est Si Bon)은 영어로 기분 좋다(It's so good)의 의미로 차를 파는 경음악
감상실이며, 1953년 충무로에서 처음 문을 열어 1960년대를 풍미한 음악 감상실(음악
다방)의 효시가 되었으며, 종로 2가로 옮겼다가 64년 서린동의 스타다스트호텔 옆으로
(지금의 SK빌딩 자리) 옮겼다.
20원 하는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음료수 한 잔을 받아 몇시간이고 음악을 들을 수
있었으며, 돈도, 놀 곳도, 갈 곳도 많지 않은 당시의 젊은이들에겐 더 이상 편할 수
없는 쉼터였고,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등으로 대변되는 1970년대 '청춘 대중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트위스트 경연대회, 아마추어 가수 선발대회, 8군 쇼단 스타들의 라이브 공연, 대학생
의 밤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참새 씨리즈'도 쎄시봉에서 처음) 쎄시봉을 들락거리
던 대학생, DJ, 일반 성인들이 가수, 방송인 등 각 분야에서 유명인이 되었는데,
DJ 최동욱, 이종환, 박원웅, 박광희, 구자홍(현 명동예술극장장), 조용호, 가수 최희준,
유주용, 박형준, 위키리, 최양숙(8군 쇼단 스타들), 신중현, 사회자 후라이보이 곽규석,
이상벽, 작곡가 길옥윤, 소설가 최인호, 화가 이두식(전 홍대 미대 학장), 코미디언
고영수, 전유성, 성공회 대주교 김성수, 정신심리학자 이시형, 미술평론가 이일,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 김종철, 쎄시봉의 대부 연주인 출신의 음악 평론가 이백천,
연극계의 대부 오태석 등과,
우리가 열광하는 가수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김민기, 양희은,
조동진, 박상규, 서유석, 한대수 등이...
조영남이 1965년 쎄시봉을 들락거리게 된 후, 조영남의 고교 동창생의 조카인 이장희,
조영남의 교회 성가대 후배인 윤형주, 윤형주가 연대 의대에서 경희대 의대로 옮긴 후
학교에서 만난 김세환, 홍대 미대생인 이상벽과 어울리다가 합류한 송창식, 조영남의
서울대 후배 김민기, 고영수, 전유성 등이 쎄시봉 식구들이 되면서 무료 입장, 무료
식사, 의자 위에서의 잠 등을 통해 젊음의 진한 우정을 함께 한 것이 쎄시봉의 전설이
되었답니다.
* 조영남과 얽힌 각종 이야기들: 조약돌의 가수 박상규, 8군 무대를 함께 한 펄시스터
즈, 조영남의 여친들 (이혼한 윤여정 포함), 번안곡 딜라일라로 <쇼쇼쇼> 무대에서
뜨고 그해 최고의 가수가 된 일...
* 미 8군 무대, 한국 전쟁 후 음악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 50년대 중반
미군 클럽수 264개이고 미군이 한국 쇼 공연단에 지불한 금액이 120만 달러로서
당시 한국의 연간 수출액과 맞먹는 액수, 3-6개월마다 쇼단의 실력 테스트로 국내
밴드 수준을 세계적으로 올림, 최희준, 박형준, 위키리, 유주용, 이춘희, 김상국,
한명숙, 현미, 패티김, 신중현, 펄시스터즈 등이 출연.
* 조영남의 매력: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주로 듣는 편이며 그중 마음에 와 닿는 부분
이 있으면 즉시 동감을 표시 "맞아, 바로 그거야!", "대단한데!" 졌다 졌어!"
** 목차의 가수들:
*이장희: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남자 세계의 보스,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잔의 추억>, <그 애와 나랑은>, <자정이 훨씬 넘었네>,
작곡 <정미조의 휘파람을 부세요, 김세환의 좋은 걸 어떻해,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 했었지, 장미>.
*윤형주: 6070엄친아, 하이틴 스타로 부상하다, <우리들의 이야기>, <어제 내린 비>,
사랑스런 그대>, 7-80년대 CM송 히트곡 대부분 작곡.
*송창식: 70년대를 제패한 영원한 순수음악인, 하루 2시간씩 '빙빙 도는 운동'을
1만 일(약 27년) 계획으로 1994년부터 하고 있어 외국에도 못 나감. <창밖에는 비오고
요>, <왜 불러>, <고래 사냥>, <피리부는 사나이>, <한번쯤>, <맨처음 고백>, <상아의
고백>, <사랑이야>, <우리는>, <딩동댕 지난여름>, <가나다라>, <토함산>...
*김세환: 가수라서 행복한 포크계 꽃미남, <사랑하는 마음>, <길가에 앉아서>, <옛
친구>, <목장 길 따라>, <토요일 밤에>, <화가 났을까>, MTB의 지존
*김민기: 아침이슬 같은 남자 '맹갈', <아침이슬>, <친구>,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연출
- 트윈 폴리오(윤형주와 송창식 듀엣, Twin Folio) : '두 장의 악보' 가 원래의 뜻,
70년대를 산 이들에게 하나의 '집단 기억',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익>, <축제의
노래>, <조개껍질 묶어>.
- 윤형주와 시인 윤동주는 6촌 간으로 윤동주 시인의 유골을 수거한 사람이 윤형주
아버지 윤영춘 박사임.
- 김세환의 아버지는 연극배우로 유명한 고 김동원.
- 김민기는 본인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침이슬'이 운동권 노래로 불리면서
인생이 바뀜. 이별타령으로 일관된 대중가요의 표현한계를 넘어 삶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뇌를 은유적으로 담은 시적인 노랫말은 가히 혁명적.
- 쎄시봉 출신은 거의 모두 대학생 출신이었으나 송창식만은 집이 가난하여 서울예고
성악과 중퇴
- 이장희, 문희, 윤여정이 창신국민학교 동기동창
-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경기고 시절 트럼펫 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