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향기》 수필집 해설
김홍은 충북대학교 명예교수
오명옥 수필가는 교직 생활로 평생을 살아온 작가이다. 성품이 꼼꼼하며 치밀하고 빈틈이 없다. 더군다나 교단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주어진 현실대로 바른길만 향하여 걸어온 교육자다.
문학작품 역시 흐트러짐이 없이 체험하고 보고, 느낀 삶을 곧이곧대로 통찰한 마음을 진솔하게 그려내었다. 마치 씨앗에서 한그루의 생명이 자라나는 신비로움처럼 문장의 표현들이 깔끔하며 참신하다. 작가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자식으로서 못다 한 효에 애달파함이 독자의 마음을 이끌고 있다.
<아버지의 향기>, <아버지의 의자>, <어머니의 공책>, <어머니의 봄 그날>, <어머니와 열무> 작품에서 인간애적 부모님에 대한 정을 느끼게 하며, 다시금 삶의 추억과 반포지효(反哺之孝)의 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끝이 있을 수가 없다. 부모님의 은혜도 평생을 두고두고 갚는다고 하여도 그 값을 다 갚을 수가 없다. 자식으로서 부모 사후회(死後悔)가 되지 않는 삶이 되도록 풍수지탄(風樹之歎)의 효훈을 살며시 일깨워 주고 있다.
<아버지의 향기>는 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난 후 집에 돌아오니 어디선가 향긋한 향기가 진동하여 사방을 둘러보며 근원지를 찾아보니 바로 야래 향나무로부터 전해오는 향기임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꽃의 향기를 통하여 아버지의 그리움을 가슴 절절히 애절하게 그려놓은 글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홀로서 외롭게 지내시다 세상을 뜨신 슬픈 심정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부모님의 부부간 사랑을 애틋함으로 담아냈다. 글을 읽으며, 독자로 하여금 애이불상(哀而不傷)이란 말을 떠올려지게 한다. 아무리 슬퍼도 그 슬픔이 병이 되지 않아야 하지 않던가. 인간사에 생로병사는 슬픈 길임을 어이하랴.
지금 꽃을 피우고 있는 야래향은 몇 년 전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돌아올 때 큰오빠가 분을 나누어 동생들에게 주었던 것이었다. 오빠는 꽃향기가 참 감미롭다고 했다. 그렇게 받아온 야래향은 매년 아버지 제사를 전후하여 꽃을 피운다. 제사를 모시고 집으로 와 거실에 들어서면 캄캄한 어둠과 찬바람이 가득한 공간은 더 큰 그리움과 슬픔을 느끼게 했다. 언제부턴가 그 어둠을 밀치고 달달한 야래향 꽃의 향기가 순간을 위로해 주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조건 없이 나누어주셨던 사랑처럼 그리움에 대한 슬픔을 위로해 주는 향기가 되었다.
- <아버지의 향기> 중에서
아버지 제삿날 큰오빠가 나누어준 야래향 나무다. 매년 아버지의 기제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둠 속의 공간으로부터 엄습해오는 찬바람은 더욱 인생의 슬픔과 허무감을 느끼게 하였다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하던 마음에 어느 때부턴가 야래향 꽃으로 하여 위로를 받는다.
쓸쓸한 마음을 꽃향기로부터 위로가 된, 화자는 야래향을 아버지로 의인화하여 추억을 그리었다. 조건 없는 아버지의 정을 받았던 보모의 사랑을 향기로부터 회상으로 표현해내었다.
예로부터 향기는 신을 모시는 과정에서 엄숙한 제를 지낼 때, 꼭 향을 피워 주변을 정화하여 왔다. 향기는 생존한 사람에게는 정신을 맑게 해주고, 안정되고 편안함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야래향 꽃의 은은한 향기는 아버지의 사랑임을 느끼게 하고 있다.
늘 오시던 집을 찾지 못해 이른 아침 이 집 저 집 벨을 누르며 다니다가 아파트 경비원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찾아오셨다. 어머니와 함께하시지 않으면 대문 밖을 나서지 않으셨었는데 우리 집을 찾지 못하신 아버지를 보면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7개월간 곡기를 끊으신 아버지는 평소 좋아하셨던 술과 함께 어머니 영정사진만 보며 지내셨다. 날로 쇠잔해지는 아버지가 안타까웠지만 너무나 완강하여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 <아버지의 향기> 중에서
사별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으리다. 전설에 의하면 원앙새는 부부로 살다가 한 마리가 죽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서 죽는다고 한다. 하물며 인간인들 부부의 정을 어찌 쉽사리 잊을 수 있겠는가. 아내가 세상을 뜬 이후, 7개월간 곡기를 끊고 영정사진만 바라보다가 쇠잔한 몸이 되어 버린 아버지. 늘 오시던 딸네 집을 못 찾아 이른 아침에 이집 저집 벨을 누르다 경비원 도움을 받아 찾아오신 불쌍한 아버지. 어머니를 화자는 순간 이렇게 회상하였을 것 같다.
부부의 사랑이란 수십 년을 오순도순 살면서 칠 남매를 낳고 키우며, 쌓은 정을 어찌 하루아침에 잊을 수 있으랴. 금실 좋은 그 사랑, 몸과 마음에 병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 곁을 떠나시던 어머니도 어찌 눈을 감았을 거며, 아내를 떠나보내는 남편 심정인들 오죽하며 슬픔에 심장도 다 녹아나셨겠지. 외로운 고독의 심정을 그 누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나. 이리도 고통스러운 인생사의 비통함 앞에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쇠잔한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려 하지만 완강하심에 자식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였다.
한복만 입으시는 아버지를 위해 곱게 다듬어 꿰맨 한복을 계절별로 차곡차곡 정리해 놓으셨었다.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꿰매놓은 한복을 계절이 두 번 바뀌도록 한 벌도 입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정을 녹여 한땀 한땀 꿰맨 옷이 아까워 입지 못했던 것이었다. (생략)
어디 그뿐이랴. 담금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모과, 포도, 탱자 등 과일을 넣어 담아 놓은 유리 단지는 몇 개이던지. 아버지는 그것을 문갑 위에 올려놓고 보면서 생 소주를 잡수셨다. 아무리 좋아하시는 술이지만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술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우셨는지 보기만 하시더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둘러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 <아버지의 향기> 중에서
어머니는 늘 고운 솜씨로 곱게 한복을 기워 아버지를 선비다운 모습으로 깎아놓은 밤톨처럼 구김 없이 만들어 놓으셨다. 조선의 여인 같은 부부의 겸덕(謙德)으로 사시사철 계절에 맞게 남편의 한복을 꿰매어 농 속에 차곡차곡 넣어 놓으시고 저세상으로 떠나신 어머니.
담금주를 좋아하시는 남편을 위해 큰 유리병에 가득가득 담아 놓은 어머니의 정성을 눈물겹게 그려놓았다. 아버지는 곱게 꿰매놓은 한복도 입지 않고, 담금주가 줄어들까 봐 잡수지 않으시고 소주만 마신 눈물겨운 순애보 적인 먹먹한 현실을, 하늘나라로 떠난 부모님의 부부 사랑을 가슴 아프게 표현하여 놓았다. 백년가약의 의미를 약속처럼 지킨, 한 인간의 사랑이 독자의 마음에 아리도록 사무쳐오고 있다.
<아버지의 의자> 수필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꽃샘 바람결에 삐거덕삐거덕 대문도 꽃 이야기에 대답하지만 퇴색한 작은 나무 의자만 혼자서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아버지는 새벽이면 기침 소리와 함께 의자에 앉으셨다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대문 안으로 들어오셨다. 쓸쓸한 빈 의자를 바라보니 아버지가 간절히 그리운 봄날이다.’
봄의 서곡을 들려주는 대문 옆에 놓인 나무 의자와 아버지의 모습을 형상화한 문장으로 정감이 있다. 부지런한 아버지의 하루 계획을 화폭에 그려놓듯이 상황들을 감칠맛 나도록 섬세히 농촌의 손길을 표현하였다.
아버지는 밭에 나가시기 전 어스름한 여명 속 의자에서 하루의 일을 계획하신다. 그날은 거름을 펴고 이랑을 만들기로 하셨나 보다. 텃밭에 거름을 뿌리며 아침을 맞으셨다.
넓은 밭에는 거름을 펴고 갈고 다듬어 감자도 심고, 상추며 아욱, 쑥갓 등 봄 채소 씨앗들을 뿌리고 볏짚으로 정성껏 덮으셨다. 가뭄도 들지 않고 닭들과 새들이 씨앗을 찾아 먹지 못하게 다독이셨다. 작은 씨앗에서는 며칠이 지난 후면 여린 새싹들이 올라왔다. 새싹들은 하트 모양의 떡잎을 흔들며 무뚝뚝한 아버지의 고운 사랑을 가족에게 전했다.
아버지는 해가 서산으로 얼굴을 감추면 대문 옆 의자에 앉아 장화 속 흙먼지를 털어내곤 했다. 종일 밭일로 지쳐서 쉴 만도 한데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하셨다. 밭에서 거둔 푸성귀며 먹을 것들을 챙긴 보따리를 들고 서둘러 읍내로 발길을 재촉했다. 객지에 있는 두 아들이 보고 싶어 청주행 막차를 타러 가는 것이다.
- <아버지의 의자> 중에서
봄을 맞는 농촌의 텃밭을 통하여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가는 작은 생명의 의미를 실감 나게 아버지의 하루 일상을 소상히 한 폭의 풍경으로 그려놓았다. ‘새싹들은 하트모양의 떡잎을 흔들며 무뚝뚝한 아버지의 고운 사랑을 가족에게 전했다’라는 표현에서 싱그러움이 묻어나며 농촌의 행복스러운 봄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해가 저물어서야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장화 속의 흙을 털어내는 한 농부의 순수함이 그려지고 있다. 보드라운 흙을 밟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을 지친 몸짓에서도 장화를 통하여 그 모습이 소박하게 밀려온다. 하루 내내 밭일로 지치셨으련만, 옷을 갈아입고 외출준비를 하시는 아버지.
밭에서 수확한 작물들을 챙긴 보따리를 들고, 객지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위하여 청주행 막차를 타는 아버지다운 모습이 아련히 연상된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부성애(父性愛)가 깊게 인식되어 부러움으로 부자유친(父子有親)의 교훈이 스며 나고 있다.
아버지는 청주에서 자취하고 있는 아들을 보러 갔다가 새벽이면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그 시간에 빈 의자는 하염없이 대문을 기웃거리며 이제나저제나 주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바람에 삐거덕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세웠다. 의자의 기특함을 알기 때문일까 봐 새벽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처럼 의자는 아버지의 분신 같은 물건이었다. 어떤 고민이나 많은 생각을 정리할 때, 북받치는 분노를 삭이실 때도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며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 <아버지의 의자> 중에서
아들을 만나고 새벽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지런한 아버지. 대문 앞에 놓여있던 의자를 바라보며, 화자는 이렇게 실토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딸을 끔찍이도 사랑해주셨는데 ‘정작 딸은 아버지한테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어 아버지 의자만도 못한 여식이었음이 부끄럽다’ 하였다. 화자는 속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음이, 겸손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출가외인이라 소홀하였음의 인식을 상기(想起)하게도 한다.
아버지의 의자는 자유로움의 쉼터요, 일을 마치고 났을 때는 휴식의 장소이고, 아침에는 생각하는 공간이었다. 노년에는 외로움에 자식들을 기다리시던 기다림의 장소였고, 기력이 쇠하셨을 때는 몸을 의지하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인생의 고독을 음미하던 서글픈 의자이었음을 주인 없는 의자로 하여금 아버지의 그리움을 들려주고 있다.
<어머니의 공책> 작품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화장대 서랍에서 나온 공책이다. 밤낮없이 일만 하시는 어머니가 책을 본다거나 무엇을 쓰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 어머니는 글을 모르시는 분으로 알았다. 그렇게 철없는 생각을 했었단다. 제주도에 다녀오신 짧은 감상문이며, ‘장녹수’라는 노래 가사가 2절까지 적혀 있었다는 어머니의 공책을 읽고, 쓴 글이다.
공책을 펼치니 큰집 작은집 대소사는 물론 형제들의 생일과 당신 손주들의 생일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큰집의 조카들과 조카며느리들의 생일까지도 모두 적어 놓으셨다. 그야말로 가족의 역사를 기록해 두신 우리 집안의 보물 같은 공책이었다.
<생략>
그 내용을 읽고 또 읽으며 고단했던 어머니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했던 딸이기에 울고 울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 피곤하실 텐데도 늦은 밤 글을 쓰시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혹시, 어머니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 딸이 서운하다는 생각을 하시지는 않았을지. 칠 남매나 되는 자식을 두셨지만, 어느 자식 하나 어머니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 <어머니의 공책> 중에서
모성애는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본능적인 마음이라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다. 낮이면 종일 밭에 가 일하시고, 밤이면 글을 쓰신 어머니. 주경야독이란 말이 바로 내 어머니 같은 분을 두고 한 말임을 화자는 이제서 느낀다. 당내 간의 대소사를 잊지 않으신 어머니. 어머니를 여윈 칠 남매는 어느 자식인들 애달프지 않았을까만, 어머니의 공책을 보고서 비로소 어머니의 무거웠던 짐을 깨달은 화자의 부끄러움을 눈물로 들려주고 있다.
애달파라. 어머님이시어, 이 은혜 잊을 길 없고, 호천망극(昊天罔極)만이 수없이 되뇌일 뿐,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담담하게 그 심정을 표현하고 있음이 독자의 마음까지도 슬프게 한다.
어머니의 인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린다. 어머니는 평생 무슨 낙으로 사셨을까. 귀한 딸이라고 살뜰하게 챙겨주시면 나는 얌체처럼 받아먹으며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밥 먹어라, 감기 조심해라”라는 소리를 잔소리처럼 여기며 늘 내 곁에 계실 줄만 알았다. 어머니도 언젠가는 홀연히 내 곁을 떠나신다는 것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있는 그 공책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어머니를 만난 듯 가끔 꺼내 보려고 가져왔는데 그날 저녁 전화를 거신 아버지는 공책을 가져오라고 불호령을 내리셨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신 듯했다. 적적한 밤이면 아버지는 텅 빈 집에서 어머니 생각에 눈물지으시며 밤마다 읽어보던 공책이라고 하셨다.
- <어머니의 공책> 중에서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편한 날 없이 한평생 힘든 인생을 살다 가신 어머니. 고명딸이라고 늘 대접만 받으며 자란 여식은 어머님을 한번 따듯하게 섬겨드리지 못한 후회로 가슴이 저리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공책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건만, 아버지 역시 소중하셨던지 가져오라는 불호령이셨단다. 텅 빈 집에서 밤마다 공책을 읽으며 어머니의 그리움을 달래셨음을 딸은 몰랐다.
항상 자상스럽게 아껴주시던 어머니의 말씀들이 잔소리로만 들렸던 철없음도 뉘우쳤다. 한편‘어머니도 언젠가는 홀연히 떠나신다는 것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라고 한탄함이 안타깝게만 들리기도 한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님을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성현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시키듯 마음을 일깨우고 있다.
<어머니와 열무>의 수필은, 육거리시장에 갔다가 지난날 어머니를 회상하는 글이다. 어머니는 자식들 공부 가르치려 학비를 마련하느라 채소를 길러 팔기도 하였다. 때로는 밤새워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어 사러 오는 손님을 이때나 저 때나 늦도록 시장에서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려내었다.
낮이 점점 길어지는 어느 봄날 흙 묻은 고무다라를 머리에 이고 걸음을 재촉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왜소한 체구에 흰 수건을 머리에 쓴 어머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하얀 교복에 갈래머리를 땋은 나는 쫓아가서 어머니 머리 위에 얹힌 고무다라를 번쩍 들어 머리에 이고 책가방을 한 손에 들고 앞서갔다. 어머니는 어서 내려놓으라고 뒤따라오며 만류하셨다. 나는 추레한 옷과 울퉁불퉁한 손마디에 흙이 묻은 어머니가 전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식들을 위하여 애쓰시다 얻은 훈장처럼 느껴졌다.
교복이 더러워진다고 내려놓으라며 쫓아오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가슴이 찡하다. 그때,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힘드신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착한 학생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 <어머니와 열무> 중에서
밤낮없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머리에 고무다라를 이고 시장을 향하여 잰걸음으로 걸어가시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왜소한 체구에 흰 수건을 머리에 쓴 어머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하얀 교복에 갈래머리를 땋은 나는 쫓아가서 어머니 머리 위에 얹힌 고무다라를 번쩍 들어 머리에 이고 책가방을 한 손에 들고 앞서갔다.’라는 그 모습이 상상되어 자랑스럽게 느껴져 온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을 내닫는 딸이 얼마나 고맙고 흐뭇하셨을까. 뒤쫓아오시며 교복이 더러워진다고 내려놓으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고 하였다. 화자의 가슴에 지난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어머니의 ‘추레한 옷과 울퉁불퉁한 손마디에 흙이 묻은 어머니가 전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라며 어머니의 손마디는 자식을 위해 얻은 훈장처럼 느껴졌다는 그 마음은, 안타깝고도 쓰라린 눈물의 언어로 독자의 가슴으로 찡하게 울려온다.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어머니는 양반집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며 귀하게 컸을 텐데 결혼 생활은 팍팍하기만 했다. 시어머니에 시동생까지 칠 남매나 되는 자식들 먹이고 입히느라 당신 몸엔 늘 찬바람이 일었다. 한겨울 세찬 바람을 받으며 장사하느라 골병이 든 무릎에서는 때때로 바람 소리가 나는 듯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늘 주눅 들어 계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늦게 얻은 딸이라고 귀하게 키워주셨지만, 어머니께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해드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 <어머니와 열무> 중에서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라는 작가는 어머니의 고생을 돌이키고 있다. 어머니가 시집와서 살아오신 애절한 삶을 눈물로 들려주고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칠 남매 공부 가르치느라 ‘한겨울 세찬 바람을 받으며 장사하느라 골병이 든 무릎에서는 때때로 바람 소리가 나는 듯했다.’ 한다.
옛말에 ‘너도 커서 자식새끼 낳아 길러봐야 부모 마음 알게 될 것이다.’라 하지 않았던가. 인간 철칙의 이 한마디가 자식이라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자신이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어머니의 심정을 알았다며 어머니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초라한 모습에 당당하지 못하고, 늘 주눅이 들어 계셨던 그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라며, 후회한다. 자식 중에서도 딸이라고 더 보살펴주고 사랑하여 주셨으나 어머니께 고운 옷 한 벌 제대로 사드리지 못함이 가슴 아프다는 표현이 너무도 안타깝고 원망스럽게 독자의 마음에도 젖어 든다.
첫댓글 교수님! 고맙습니다.
서툰 글의 표현에 교수님의 옥고가 한층 빛나게 해주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더 열심히 공부하며 멋진 글 좋은 글 쓰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작품을 읽으며, 스스로의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자식으로서의 못 다한 효도가 누군들 후회가 없을까 만,
고요한 밤, 글을 읽고 또 읽으면 오래도록 가슴이 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