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통문]에 연재되는 글입니다. 이번 2010년 봄호에 실린 글.
시골집 고쳐 살기 - 사연을 만들어 가는 집 8.
숨은 공간, 버려진 공간을 찾아라
개미는 기어 다닌다. 전후좌우로 이동하면서 2차원 공간에서 산다. 만약에 이 개미가 직경이 한 자쯤 되는 하수도 관 표면을 돌면서 기어간다고 생각 해 보자. 개미는 여전히 2차원 세계에서 산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3차원 이동을 하게 된다.
멧돼지처럼 시선이 아래로만 향하는 개미에게 3차원 공간을 설명 하기란 난감하다. 높은 데를 기어 올라가면서도 개미는 휘어진 평면 위를 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참 딱한 노릇이다.
그러나 3차원 공간에서 산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개미를 딱하게 여길 겨를이 없다. 당장 ‘비틀린 5차원 시공간과 여분차원’에 대해 떠 올려보면 그렇다. 상상이 되는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집 짓는 글에서 웬 개미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시간의 정체가 근 세기에 와서 속도와 맞물려 심오해진 것 못지않게 공간이라는 것도 숨겨진 비밀이 많다. 그 비밀을 당장 캘 수는 없다. 신비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는 것의 비밀을 함부로 알려고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벼락 맞을 수 있다.
호두와 들깨의 차이는 빈 공간의 차이다
여기서는 다차원에 대한 호기심을 접고 3차원 공간에 한정해서 얘기하기로 한다.
호두 한 가마니와 들깨 한가마니를 비교 해 보면 ‘못 채운 공간’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호두 가마니에는 빈 공간이 많다. 상대적으로 들깨 가마니에는 빈 공간이 적다. 만약에 호두와 들깨를 처음부터 같이 섞어서 가마니에 담는다면 분명 한 가마니 반 밖에 안 될 것이다. 반 가마니의 공간이 고스란히 확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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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못 채운 공간을 버려진 공간이라고 해도 되고 숨은 공간이라 해도 된다. 집짓기에서도 이런 공간이 많다.
겨우 아홉 평 되는 시골집을 구해서 고쳐 살다보니 나는 숨은 공간을 찾아내는 것에 필사적이었다. 마룻장을 만들면서 아예 두 장은 조립식으로 하여 이것을 들어내면 그 밑이 바로 냉암 보관소가 되게 한다든가,(그림 1,2) 천정의 모서리로 옷장을 올려버린다든가,(그림 3) 책꽂이를 벽 속에 집어넣어 단열 역할도 훌륭히 하면서 방 차지를 않게 하는 것 등이 내가 찾아 낸 숨은 공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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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공간을 찾아내서 활용 해 가는 작업을 차근차근 설명 해 가기 전에 털어 놓을 것이 하나 있다. 이것들이 다 내가 생각 해 낸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의 지혜를 빌려왔다는 사실이다. 그대로 빌려 온 것은 없으니 크게 암시를 받았다고 하는 게 옳겠다.
그 주인공은 반쪽이 만화가 최정현님이다.
최정현님은 호두와 들깨의 차이를 단순히 크기의 차이나 맛의 차이로 이해하지 않고 빈 공간의 차이로 이해한 탁월한 안목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10여년도 더 전에 갓 창간된 ‘한겨레21’에 그는 어린 딸 예린이를 소재로 연재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정기 구독자였고.
그렇게 만났던 그이가 어떻게 ‘한겨레21’ 열혈독자인 나를 기억 했는지 10년이 더 지난 뒤에 이곳 덕유산 산골 내가 집 짓는 곳에 나타나서 이런 큰 선물을 줄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뚝딱뚝딱 15평 반쪽이네 집>이 그것이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나온 이 책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영감을 얻었는지 모른다.
마루 밑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다리미와 진공청소기
그 책을 통해 반쪽이네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급 가구나 첨단 전자제품 때문이 아니다. 시골집에 비하면 엄청나게 경직되어 있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어쩜 그렇게도 숨은 공간을 잘 찾아내 쓰고 있는지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가령 이렇다.
책꽂이와 옷장을 딱 겹치게 만들어서 밑에다 바퀴를 달아 옆으로 밀면 책장이 없어지고 옷장이 나타나는데 다시 옷장을 밀면 책장이 나타나는 식이다. 공간이 딱 2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마루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다리미와 진공청소기는 책을 보는 사람의 무릎을 치게 한다. 마루에서 솟아 올라오는 전기 콘센트가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됐다. 스캐너와 두 대의 프린트, 컴퓨터 본체가 책상 속 요소요소에 숨어 있다가 사용 할 때만 하나씩 책상위로 올라오는 장치는 참 기발하다.
치과에 가서 치과 의자에 앉아봤던 나는 상체를 뒤로 눕히면서 두 다리를 들어 올려 무릎은 살짝 굽히게 하는 치과 의자를 만들고자 했었다. 이 의자는 이발관 의자하고도 다르다. 치과 의자에 앉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잠시만 누워보면 바로 잠이 들 정도로 편하다. 그래서 난 다양한 자세를 수동으로 조작하는 설계를 몇 년 동안 해 왔었다. 그런데 반쪽이 책에서 내 설계도 보다 훨씬 진보한 제품을 보니 반가움과 함께 허탈감이 들었다.
단연코 ‘쭉쭉이 책상’을 반쪽이님의 최고 걸작품으로 쳐 줘야했다. 평소에는 두 사람 밥상 정도 크기인데 손님이 10여명 이상 오면 상이 몇 배로 커진다. 이 상의 사진과 설계도, 그리고 각종 부품들을 한참 뜯어보니 내 머릿속에서 멋지게 완성이 되기도 했다.
디지털 온도 감지기를 거실과 아파트 베란다, 그리고 딸 방에 설치해서는 책상머리에서 세 곳의 온도를 바라보면서 실내온도를 가장 적절하게 조절한다든가 천정방향에 모니터를 붙여 두고 침대에 반쯤 누워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장치도 기가 막혔다.
나는 전기도 안 쓰고 값비싼 부품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 늘이기 작업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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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시도 한 것이 방구석을 독차지 하고 있는 옷·이불장을 천정 모퉁이로 갖다 붙이는 것이었다. 10대 아이들 몇 명만 모여도 방이 비좁게 되는 것은 오로지 이 옷·이불장 때문이었다.(그림 5)
헌 옷장을 뜯어 벽장 만들기
먼저 흠이 전혀 나지 않게 옷·이불장을 해체하는 것이었다.(그림 6) 어느 아파트 구석에 버려진 것을 주워 온 이 옷·이불장은 아주 멀쩡했다. 모든 옷장은 얇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목재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을 잘 해체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재활용 하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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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고물 가구들을 보면 잘 해체해서 부위별로 보관 해 두면 집에서 소목작업 할 때 요긴하게 쓰이게 된다.
그 다음 작업은 천정 모퉁이 전면에 벽장 골격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다.(그림 7) 옷이나 이불을 올려 놨을 때 하중을 견딜 수 있게 해야 하므로 가로지르는 목재의 굵기나 강도를 잘 골라야 한다.
사진 7. 처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보기는 쉽다. 그렇지만 시골집 방이 다 그렇듯이 벽은 휘어져 있고 안쪽과 바깥쪽 길이도 다르고 흙벽에 못질 할 곳도 없는 상황에서 수직·수평을 잡아가며 짧지도 길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게 측량을 하는 것부터가 고도의 공간 지각력을 요구한다. 측량이 잘못되면 아까운 목재를 버리기 마련이다.
이럴 때 요령이 있다. 줄자로만 재지 말고 대나무 장대나 졸대 같이 가볍고 긴 나무를 이용하면 좋다. 혼자서 일 할 때는 줄자로 허공을 멀리로 잴 수는 없지만 이런 도구를 이용하면 쉽게 잴 수 있다.
연필은 필수다. 그때그때 기록도 하고 표시도 하며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설계도를 엉성하게라도 완성을 하고 치목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설계도를 꼭 그리라고 권하고 싶다. 설계도를 그리다보면 눈으로는 안 보이던 곳의 힘 작용점들이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중을 많이 받는 부위는 특별히 잘 고정시켜야 한다. 나는 벽에 가로대를 고정 시킬 때는 천정 도리목에서 아래로 벽을 따라 나무를 이어 내려와서 가로대가 얹히게 하는 식으로 해결했고, 가로대가 길어서 중간에 이를 붙들어 매 줘야 할 때는 천정 상량에 나무를 박아 내려와 가로대와 연결 해 주었다.(그림 8 가운데 부위)
물론 마지막 작업 단계에서 도배지로 이것을 싸서 안 보이게 하거나 지지하는 나무들이 벽장 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눈에 안 뜨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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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으로 올라가버린 옷과 이불들이 방을 한결 넓게 만들어주었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던 책장을 새로 만든 벽장 밑에 넣으니 방은 더 넓어졌다. 사람들이 방에 너 댓 사람은 더 들어 올 수 있게 되었다. 경첩을 달아 문까지 해 붙이니 먼지도 안 들어가고 깔끔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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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를 보자 나는 안방의 천정에도 벽장을 하나 만들었다. 똑 같은 방식이었다.(그림 9) 한 번 해 봤던 것이라 훨씬 쉬웠다. 혼자 일을 하다보면 타커기가 효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손으로 충격 없이 못을 박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콤프레샤는 2.5마력 정도면 가정에서 사용하기 적절해 보인다.
신발장과 책꽂이를 벽 속으로
작년 내내 아래채를 하나 지으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 역시 숨은 공간을 찾은 것이었다. 천정 구석으로 이불장과 옷장을 붙이는 것은 기본이고(그림 10,11)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신발장을 아예 벽채에 집어넣는 것과(그림 12) 방 안에서 책꽂이도 벽채에 2/3를 밀어 넣는 것이었다.(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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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을 만들어 넣을 때는 재활용품 새시 창을 그 위에 세울 계획이었기 때문에 고정 틀을 사전에 만들어 튼튼하게 붙이는 작업까지 염두에 두고 일을 시작해야 했다.(그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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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꽂이를 방 쪽에서 벽에 넣는 작업의 순서를 보자.(그림 14,15,16)
어느 경우나 벽채에 뭘 넣을 때는 그것 때문에 벽 단열에 하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된다. 그림 14에 보듯이 책꽂이를 세우면서 어느 만큼 방으로 돌출하게 할 것이냐는 것은 벽채 전체의 두께가 어떻게 되느냐와 관련이 있다. 책꽂이 곁에는 어느 정도 높이에서 새시 창을 달 것인지도 감안해서 창문틀과 책꽂이가 서로 물리게 해서 튼튼하게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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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긴 목재를 이용해서 삼발이를 만들거나 받침대를 사용하여 창틀이나 기둥, 책꽂이를 임시로 수직으로 세우고 나서 순서에 맞춰 하나씩 정식으로 고정시켜 나가면 된다.
벽채에 신발장과 책꽂이를 넣으면서 새삼 떠 오른 게 열대지방의 집짓기였다. 6-7년 전에 인도의 남부 타밀주에서 잠시 집 짓는 것을 유심히 관찰 한 적이 있다. 이미 29평 시골 살림집을 전통한옥 방식으로 지었던 나는 그곳의 모든 공법들이 눈에 잘 보였는데 기술적인 것 보다 부러웠던 것이 있었으니 그게 뭐냐면 단열이나 난방 걱정 없이 벽채나 바닥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작업에서 견고함과 아름다움만이 기준이었다. 늘 더운 날씨니까 그렇다. 우리는 단열과 난방에 집 짓는 수고나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내가 가 있었던 ‘오로빌공동체’는 집을 짓고 집 둘레로 대리석을 이용하여 한 자 남짓 되는 넓이로 예쁜 도랑을 만들어 물을 흘리고 있어서 물어 봤더니 물것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인공 도랑에 물고기를 넣어 기르는 사람도 있었다. 겨울이 긴 우리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시도다.
이 인공 도랑은 마치 옛날 전통 시골집에서 정화시설 대신에 마당 구석에 미나리꽝이나 연꽃을 만들어 자연 정화를 시켰던 지혜와 같아 보였다.
숨겨진 공간을 찾되 그것 때문에 겨울에 방이 춥다든가 벽이 허술해져서는 안 되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 한 채 지으면서도 지혜를 모우고 여러 장치들을 고안 할 수밖에 없어서 손재주와 예술성이 발달 했는지도 모른다.
공간을 숨겨야 할 때도 있다
나는 마루 밑 공간을 여러모로 잘 쓰고 있다. 작업화를 보관하기도 하고 연장들을 넣어 두기도 한다. 마루 밑의 공간을 잘 활용하면 반쪽이네 집처럼 여러 가지를 넣어두고 요술방망이 두드리듯 마룻장만 열고 꺼내 쓰면 된다. 진공청소기나 다리미는 별도의 상자에 넣어 마루 밑에 둬도 좋을 것이다. 전기제품은 그렇다.
자주 안 쓰는 물건들이 주로 마루 밑에 들어가는데 운동기구나 다듬잇돌 같은 것이다. 계절 용품도 마루 밑이 보금자리다.
마루 밑 공간을 최대한 다 사용하려면 여닫는 마룻장을 몇 군데 자리를 잘 잡아 만들어 놓으면 된다. 이렇게 덮개식으로 쓰는 마룻장은 열고 닫기 쉽게 손잡이를 매입 형으로 다는 게 좋다.
처음 이 작업을 할 때가 겨울이었는데 마룻장을 쉽게 들어 낼 수 있도록 가장자리를 둥글게 사포질도 하고 겉에서 보기에는 여닫는 마룻장처럼 보이지 않게 나무 재질이나 크기도 신경 써서 만들었다.(그림 1,2)
그런데 한번은 마룻장이 안 열리는 것이었다. 장마철이었는데 아무래도 나무여서 습기 찬 날이 오래 계속되다 보니 여닫는 마룻장이 양쪽 마루 새에 꼭 끼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주의해야 한다. 집의 기초가 낮아서 마루 밑에 습기가 차도 안 될 것이요, 틈새가 너무 좁아 장마철에 안 열려도 안 될 것이다. 바닥 기초 작업을 할 때 마당에서 최소 두 자 이상 되어야 마루 밑이 눅눅하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는 숨어 있는 공간을 찾는데 골몰하다보니 정작 그 반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집 지을 때 공간을 부러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숨은 공간을 찾아 내 활용해야하는 것과는 반대 작업이다. 이런 공간을 완전 밀폐되면 더 좋다.
바로 벽채 작업 할 때이다.
그림 17,18,19에서 보는 것이 그것이다. 16센티미터 황토벽돌을 쌓거나 40센티 두께의 목천공법의 벽채를 세우 놓고, 안쪽으로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면서 새로 벽을 하나 더 만드는 작업을 하는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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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대를 촘촘히 대어 버팀벽을 만들어 5-6센티미터의 공간을 확보하고서 황토미장을 깨끗이 하면 이중벽이 된다. 쫄대의 간격은 2-3센티미터 정도 되게 한다. 그래야 흙 미장을 할 때 흙이 그 사이로 밀려들어가 꽉 물어준다.
이렇게 이중벽을 해서 공간을 밀폐시키면 단열효과는 배가된다. 흔히 관행 공법에서는 구운 적벽돌과 적벽돌 사이에 스티로폼을 넣어 단열처리를 하는데 황토나 나무 등의 천연소재로 집을 지을 때는 그냥 빈 공간으로 놔둬도 괜찮다. 아무리 벽이 두꺼워도 고체는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바깥의 냉기가 중간에 단절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이렇게 만든 빈 공간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