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체코->오스트리아->헝가리->루마니아->그리스->터키->인천 2013.6.21~7.6 | |
여행 설명회 여행 설명회 인천공항 2013년 6월 21일 08시 25분 울산공항을 이륙한 아시아나로 김포까지, 김포공항에서 리무진으로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인천국제공항 3층 C-19번 카운트 이번 여행에 참여하는 75명이 모여 간단한 출정식을 가졌다. 프라하를 향하여 부푼 꿈을안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동유럽과 지중해로 출발한다. 분주하게 살아온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행자의 마음이 되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가슴이 살랑거린다. 출발을 알리는 전광판마저 설렘을 준다. 13시경 인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KE935)기내에서 12시간동안 그동안 보고 싶어도 못 보았던 영화도 보면서 앞으로 여행하게될 체코와 프라하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체코(Czech Republic) 유럽 중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로부터 독립한 체코의 정식명칭은 체코공화국(The Czech Republic)이다. 북쪽으로 폴란드, 서쪽으로 독일, 남쪽으로 오스트리아, 동쪽으로는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체코는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중 최고의 생활수준과 높은 문화를 유지한 공업국가이다.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의 민족적 언어적·문화적 이질감과 경제적 차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1990년 슬로바키아공화국과 연방제를 구성하였다가 1993년에 평화적으로 분리 독립하여 체코공화국이 되었다. 행정구역은 13개주(kraj), 1개의 특별시(hlavni mesto)로 체코는 역사적 유산이 풍부하며, 그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기에 체코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럽 전체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다고 한다. 1948년 2월 사회주의 혁명을 거치면서 구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였지만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사회주의체제 국가에서 자본주의체제 국가로 바뀌었다. 41년간의 아픈 역사를 딛고 비단처럼 부드럽게 혁명을 이루었다고해 무혈혁명, 비단혁명을 이룬 민주주의 선진 국가다. 체코는 보헤미아 역사에서 내려오는 뿌리 깊은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아름다운 민주주의 전통과 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서유럽의 색채가 짙은 체코의 문화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곳곳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체코는 13개 유네스코 문화재를 가진 문화 유적이 풍성한 나라로. 전 유럽과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늘 활기가 넘치는 곳이 바로 체코다. 프라하(praha) 점심 먹고 12시간을 날아왔는데 프라하공항에 도착하니 아직도 해가넘어가지 않았다 시차로 인하여 한 나절을 얻은 기분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저 나와 2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숙소로 향하는 30여분 정도 체코여행가이드 서정희님이 자기 소개후 지난주까지는 물난리로, 며칠전까지는 폭염으로 고생했는데, 오늘은 좋은 날씨가 우리를 반긴다는 인사와 함께 프라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술적인 도시로 아름다운 고성과 숲. 물고기가 노니는 연못과 강이 흐르고 중세풍의 마을, 르네상스풍의 저택이 수놓은. 세계 8대 관광 도시, 유럽의 4대 관광도시 답게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로 수백년 역사 속에 백탑의 도시, 북쪽의 로마, 도시의 진주, 유럽의 음악 학원 등 많은 수식어를 탄생시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 하나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체코와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유럽 문화의 중심지이자 유럽인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온 아름다운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답게 중세의 기풍이 곳곳에 서려 있어 영화나 광고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198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세계 6대 관광도시로 선정되어 해마다 1억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이곳 프라하 차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붉은색 지붕과 그에 어울리는 푸른숲이 마치 그림동화책을 옮겨 놓은듯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디를 찍어도 그대로 마음이 가는 엽서사진 같은 느낌이 전해진다. 히틀러가 무기를 잘 만드는 곳이라 무기를 빼앗기 위해 왔다가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폭격을 하지 않았다는 자랑에 이어 많은 관광객과 함께 원정을 오는 도둑이 많으니 소지품을 잘 간수하라는 주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아닌 도적이다. 부딪치면 바로 의심하고 확인을 하라는 당부와 주의사항을 듣는동안 호텔에 도착하였다 CORINTHIA HOTOL 어제 새벽에 일어나 지구를 반 바퀴돌아 25시간만에 잠자리에 들었던 프라하에서 가장높은 CORINTHIA HOTOL. 도시에 고도제한을 하기에 높은 빌딩건축이 불가하지만 저지대에 높게 지엇으며 지하철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배정된 호실에 짐으 풀고 2층 식당에서 준비된 뷔페식 프라하에서 처음 식사는 그저 먹을만 했다. 지하철 호텔 별관을 찾아가는 길은 치하철 역을 통과해야 한다. 프라하의 지하철은 승차권을 파는곳도 검열하는 곳도 없이 차가오면 그냥 타고 내리면된다. 요금은 어떻게 계산하는지? 프라하의 청소년 지하철 역을 나오니 젊은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낯설게 보인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고, 동유럽 여행에서 우리와 비교되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는 금연 운동이 한창인데, 여기서는 청소년과 여자들의 흡연이 자유롭게 보인다. 자기소개 여행의 첫날밤은 호텔의 별관에모여 간단한 자기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좁은 공간이지만 돌아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통해 누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동기로 여행에 참가했는지 알수 있었다. 10대 청소년부터 60대 중반까지 서울 .인천. 대구. 전주. 광주. 진주. 부산 전국 방방곳곳에서 모였는데 우리 울산에서도 우리부부를 포함하여 6명이 참가하였다. 직업은 대학생과 공직에서 은퇴하신분이 많고 나같은 회사원과 회계사. 시인. 주부. 자영업. 유치원, 어린이집 원장 등등 다양하고 여행의 동기와 사연도 각양 각색. 그냥 부모님이 보내주셔서. 2수 3수만에등등 우리 6조가 마지막 소개를 하는동안은 모두가 졸리는 분위기다 아침 마라톤 유럽에서 첫날은 마라톤으로 시작하였다. 시차 적응에 가장 좋다는 이사장님의 말씀에 한명의 열외도 없이 모두 참석하여 호텔앞 공터에서 체조로 준비하고 여명과 함께 상쾌하게 출발하여 프라하를 흐르는 볼타브강을 내려다보면서 씩씩하게 달리는 아침마라톤 유럽의 새벽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기왕이면 앞서서 뛰어보자. 집에서도 않하던 아침 마라톤을 여행중에 하게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관광뿐만이 아니라 건강도 얻어가자 프라하 성 아침을 먹고 버스로 찾아간 곳은 이번여행의 첫번째 관광지인 프라하성. 체코의 대통령이 매일 출퇴근 하는 꼬불꼬불 언덕길에 삼성의 광고 깃발이 희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프라하성의 북쪽 문앞에 도착해보니 벌써 많은 다국적 관광객이 모여있다. 프라하 성은 길이 570m, 폭 128m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성중 하나다. 9세기 중엽에 짓기 시작해 14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18세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가미되면서 세련된 모습이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단일 건물로 보이지만 성안에는 여러 개의 건물이 시대별로 다양한 용도와 양식으로 증 개축 되어 복합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성안의 주요 볼거리로는 체코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 비투스 대성당,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이르지 성당, 연금술사가 살았다는 황금소로, 12세기에 지은 구 왕궁 등이 있고. 그밖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탑과 아름다움을 뽐내는 정원 등이 있다. 성안은 무료로 개방해 30~40분 정도면 모두 돌아볼 수 있고, 성당과 건물 내부 관람은 유료다. 체코의 국목인 보리수 나무로 우거진 숲 뒤로 왕궁의 성당이 보인다. 성안 도처에서도 프라하 시내 에서도 라일락 향기가 나는 보리수 나무를 흔하게 볼 수가 있다. 근위병이 지키고 있는 북문쪽으로 해서 정원을 지나니 정문이 있는 흐리차드니 광장이 나온다. 흐리차드니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프라하 성은 체코의 상징이자 프라하 광장의 하일라이트 이다. 흐리차드니 광장 흐리차드니 광장은 몇몇 웅장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프라하 성 광장으로 멀리 프라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며 주변에는 현재 체코 외무부로 쓰이고 있는 토스칸궁과 대주교청, 슈바젠베르크궁 등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들이 많이 있다. 관광객을 위한 빨간 포인트가 들어간 클래식카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대주교궁 대주교궁 앞에는 예복을 갖춘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고 정문앞에는 많은 관광객이 모여있는데 오늘 성안에서 네명의 성인을 추대하는 천주교 의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동안 우리도 광장 주위를 살펴보기로 했다. 개스 가로등 광장의 위쪽에 중세 유럽인들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페스트, 일명 흑사병 퇴치 기념탑이 있고, 개스를 이용하여 불을 밝혔다는 개스가로등이 기념탑처럼 남아있다. 프라하성에서 바라본 시내 이 광장 언덕에서는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고풍스러운 프라하 시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처럼 붉은 지붕으로 상징 될 수 있는 프라하는 파란 하늘과 더해져 더큰 매력을 발산한다. 종교행사 천주교의 종교행렬이 궁으로 들어간 후 우리들도 입장할 수 있었다. 성문의 양쪽 기둥위에는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두드려 패는 커다란 조각상이 있는 것은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을 잊지 말라는 의미란다. 제 1문 체코의 왕들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통치를 했으며 1918년 체코가 공화국이 되면서 체코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가 된 곳으로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과 영빈관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옛성에 들어가 보자. 십자가 교회 먼저 광장에서 성문으로 들어가니 제1정원이 있고 마티아스 문으로 들어가면 대통령공저와 성 십자가 예배당이 있는데. 예배당 건물 벽에 보이는 12제자의 조각상이 유럽의 기독교 문화를 느끼게 한다. 우물 그 안쪽 제 2정원에는 유럽에서 흔히 볼수 있는 분수와 우물이 있는데, 이 시대에는 부의 측도를 분수와 샘으로 논했다고 한다. 분수대와 우물은 조금 떨어진 거리로 우물은 철망으로 덮어놓았다 대통령관저 정원 분수대 분수대 위로 보이는 지붕의 색깔이 다른것 처럼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최고 통치자의 거처로 쓰였던 프라하성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개축되고 증축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는데, 건축 양식으로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와 바로크, 그리고 로코코와 고전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로 마치 건축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성 비투스 대성당 마티아즈 문을 통과하면 바로 눈 앞에 성 비투스 대성당이 나타난다.,, 문과 성당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성당의 전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성당은 성의 외곽인 블타바 강 맞은편에서도 잘 보이는 프라하를 상징하는 고딕 양식의 교회로 유럽에서 가장 볼 거리가 많은 성당이다. 10세기 경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14세기 카를4세의 명으로 증개축 하면서 고딕 양식으로 탈바꿈 했고, 1929년이 되서야 완성되기까지. 600년의 세월을 거쳐 부분적으로 색상이 변하여 보인다. 전체 길이가 124m, 너비60m, 첨탑의 높이는 100m 에 이르고 내부의 천정 높이는 33m로 체코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 한다고한다. 장미의 창 프라하의 보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각이 섬세한 장미의 창, 아래쪽에 좌우로 양복을 입은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 19~20세기 성당을 건축했던 설계사와 건축가를 새겨 넣었고, 옆에 시커멓게 보이는 괴물은 입을 통해 빗물이 떨어지는 배수장치 라고 한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측면 체코의 문화. 역사 그리고 천년의 긴 시간이 담긴 거대한 상징인 성 비투스 대성당, 옆으로 돌아가니 성당의 전체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무려 천여 년에 걸쳐 완성된 건축물인지라 오랜 시기를 두고 지어진 각 시기를 대표하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코등의 건축양식을 담고 있으며 시대가 흐른만큼 건물의 외벽 색깔이 변색되어 차이가 보인다. 과거에는 왕의 대관식을 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성얀네포무크의 묘를 비롯해 곳곳에 성인들의 무덤도 있으며 알폰스 무하의 작품인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와 장미의창, 성바츨라프 왕관과 예배당, 지하무덤등 볼거리가 많은곳이다. 대통령 집무실 성 비투스 성당 맞은편 남쪽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1700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을 때, 오스트리아인들은 프라하에서 가장 높은 산에 있는 대성당의 좋은 기운이 프라하로 내려가는 것을 원치 않아 성당의 주변을 막을 수 있도록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경복궁앞에 중앙청을 짓고, 곳곳 명산에 쇠말뚝을 박았던 것과 유사한 이유로 만들어진 건물이 대통령 궁이다. 현 체코 대통령은 아직도 그 대통령궁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여전히 그곳에서 업무를 보는 이유는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들을 것지 말자"라는 뜻으로 건물을 훼손하지 않고 현 대통령의 직무실로 그대로 사용한다. 이것이 아픈 역사를 받아들이는 체코인들의 마음이다. 체코와 프라하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유적지에 현 체코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고 국가의 심장부와 같은 이곳. 대통령이 집무하는 바로 앞 마당에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 사진을 찍어대며 떠들고 있으니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통령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면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집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실내 경마장 르네상스시대에 만들어진 실내경마장. 3층 천장의 장식이 무게 분산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창문 투척사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은 신성로마황제 루돌프 2세가 보헤미아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황제 칙령을 발표하지만 얼마 후 그가 죽으면서 칙령은 무효화 되었고. 이에 반발한 신교도들이 프라하성으로 몰려가 황제가 임명한 2명의 공직자와 비서관을 이 창문 밖으로(15m) 던졌는데 이 2차 투척사건이 유럽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 넣은 30년 전쟁의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성 이르지 교회 성 비투스 대성당의 뒤쪽 바로 맞은편엔 붉은원색의 성 이르지 교회가 있다 황금 소로 성 비투스 성당을 빠져나오면 프라하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알려진 아름답고 좁은 황금소로가 있다. 황금소로는 원래 프라하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로 건설되었는데, 16세기 후반 연금술사와 금속세공 장인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 소로'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알록달록한 색을 띈 작은 집들이 나란히 붙어 있는 길이고, 옛 모습 그대로 거리를 보존되어 지금은 기념품가게로 이용되고 있다. 황금소로가 유명해진 것은 왼쪽에 보이는 하늘색 건물 22번지에 이유가 있는데, 실존주의의 대표작가인 프란츠카프카(Franz Kafka)가 프라하 성을 모티브로 하여 쓴 소설 '성'을 완성한 곳이자 그의 고뇌와 갈등이 깃든 작품을 집필 했던 두평남짓한 공간이 잘 보전되어 작은 기념품 가계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하 감옥 포도원 옛날에 성에서 필요한 포도농사를 지엇다는 곳에 다시 조성한 포도농장 주위에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다 프라하 시내관광 프라하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점심을 먹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유럽의 어느 도시처럼 도로에 돌이 깔려있고, 가로수로 심은 보리수나무가 생동감을 더해주는 프라하 시내 바츨라프 광장 바츨라프왕을 기리기 위해 바츨라프광장이라 명명한 이곳은 넓이가 가로 750m, 세로 60m 정도에 지나지 않아 광장이라기 보다는 큼지막한 도로같은데 박물관 앞에서부터 눈(雪)의 성모 성당이 있는 곳 까지 쭉 이어지는 길 양쪽엔 상당히 오래되고 큰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원래 말 시장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리수 가로수 옆으로 호텔과 레스토랑, 클럽, 명품상점 들이 즐비하다. 바츨라프는 1968년 소련연방에 대항해 일어났다가 소련군의 탱크에 의해 짓밟힌 '프라하의 봄'의 현장이다. 또 1989년 하벨 대통령이 주도한 벨벳혁명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프라하의 봄' 실패 후 "내 한 몸 희생으로 나라의 정신을 깨울 수만 있다면 난 그것으로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다.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이와 같은 말을 남긴 후 까를 대학교 학생이었던 얀 팔라츠가 분신자살을 하고 그 후 약 한달이 지난 후 학교 후배였던 얀 자이츠는 선배 팔라츠가 죽었던 같은 장소에서, 팔라츠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되기를 원하며 분신 자살을 한다. 두 학생의 희생은 체코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소비에트 연방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하게 했고, 결국 독립을 얻어낸다. 그것이 유혈사태 없이 부드럽게 민주화로 넘어간 "벨벳혁명"이다. 벨벳혁명과 체코독립이 이루어진 곳이 바츨라프 광장 즉 신시가 광장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프라하 국립 박물관이다. 거리의 모습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유럽의 경주라 일컬어진다. 관광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광수입은 전체수입의 5%이내로 체코는 중.경공업 국가이며 차동차. 무기 생산등이 뛰어나다고 한다. 최초의 인조인간 로봇트도 체코에서 처음 쓰였고, 연필을 처음 개발한 사람도 체코인이라고 하는데. 연필의 개발은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맘 놓고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체코인은 우리나라의 충청도 사람들의 성향과 많이 닮았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정말로 그들의 걸음걸이는 느긋해 보이고, 길거리에서 여유롭게 앉아 노니는 사람들 상점이나 일하는 사람들로 여유가 넘친다. 여기에서는 손님이 왕이 아니라 주인이 왕이니 식당에서 절대로 음식을 제촉하지 말라고 주의를 들었다. 빗방울이 떨어져도 뛰지 않는 여유와 느긋함이 프라하를 더 아름답게 만들지 않았을까? 체코인은 언어 핍박의 역사 속에서도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냈기 때문에 자국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체코어는 세계에서 가장 구사하기 어려운 언어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고 한다. 구시가 광장 우리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프라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구시가 광장이다. 프라하 중심 중의 중심인 구시가는 다른 이름으로도 많이 불려진다. 구시가 광장, 얀 후스 광장, 작은 건축의 박물관, 관광객들의 쉼터 등등 구시가는 악사들의 연주, 매시 정각이 되면 쇼를 하는 천문시계, 시대별 건축물까지 한 곳에 집중 되어 있는 공간이다. 넓은 광장 뜨거운 태양아래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된다. 프라하 관광의 중심지이며 천년 고도 프라하의 역사가 응축된 장소로 광장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에 대한 설명이며 광장중앙에는 유럽의 중앙지점 표시와 그 옆에 안휴스 동상, 동쪽엔 틴 성모성당 서쪽엔 구 시청사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1945년 5월 민족 해방 투쟁들을 했던 곳이기도 한 구시가광장에 대하여 이어폰을 통해 들었던 가이드의 설명을 정리해보면. 유럽의 중앙지점 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 성 다음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으로 11세기때부터 상거래가 시작되었고, 시장도 이곳에서 열렸다고한다. 광장에는 유럽의 정 중앙지점(사진의 둥그런 원)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에 기둥을 세우고 해시계로 이용을 하다가. 해시계가 맑은 날에는 가능하지만 흐리거나 해가 뜨지 않는날등 시간으로 인한 상인들 분쟁이 있어 해결책으로 세워진 것이 천문시계라고 한다. 저 중앙지점 뒤편에 보이는 시청사건물 오른편은 폭격으로 날아가버린 건물터에 공원이 조성되어있고 왼쪽 전면에 천문시계가 있다. 얀휴스 동상 중앙 지점에서 북쪽엔 드라마 '프라하 연인'에서 소원의 벽으로 나왔던 얀후스 동상이 있다. 종교개혁을 생각하면 대부분 마틴 루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루터보다 100년 먼저 종교개혁을 외친 사람이 바로 얀 후스이다. 하지만 개혁은 성공하지 못하고 공개 화형으로 죽게 된다. 화형 당하기 전 그때 그가 마지막으로 한 유언이 "진실을 생각하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행하라" 였다. 체코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중 한명인 얀 후스는 1370년경에 보헤미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402년 에는 카를 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체코의 종교 개혁자이자 민족운동의 지도자로 카톨릭의 세속화와 면죄부 발행을 비판하다. 파문당하고 결국 1415년에 이 광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그의 처형 이후에 체코에 혁명으로 연결되었고 후스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후스주의 운동으로 결국 바츨라프 4세의 사망 후 후스주의자들이 보헤미아를 장악하게 되는데. 그의 서거 500주년을 맞이해 1915년 이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동상이다. 틴성모성당 프라하에서 성비투스 성당 다음으로 크고 아름다운 틴 성모성당. 높이는 80m. 성비투스대성당과 더불어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일명 쌍둥이 탑으로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기도할때 두 손을 모은 모습 같다고도 한다. 첨탑 사이에 성모상은 황금 성배를 녹여 만들었다고. 자세히 보면 번쩍번쩍 빛나는데 동화같은 전설이 재미있다. 성당에 미남 신부가 있었는데 첼레트나 거리(틴성당에서 화약탑가는 거리)의 여인이 이 신부에게 반했는데, 스토커처럼 일방적인 사랑이 지나쳐 신부님은 혼자서 성당 밖을 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어느 비오는 날 교회내의 십자가를 밖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기다리던 여인이 신부에게 달려들어. 놀란 신부는 무거운 십자가를 놓쳤고 그 여인은 십자가에 깔려 죽고 말았단다. 그 후로 비 오는날이면 첼레트나 거리를 배회하면 남자들의 영혼을 빼앗는 귀신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비오는날이면 주머니에 소금을 넣고 다녔다고 하는데 부정탈 때 소금뿌린다는 것은 우리네 전설과 비슷한 것 같다. 구 시청사 틴 성모성당 맞은편에 구 시청사가 보이는데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물로, 북쪽으로 파괴된 부분은 공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남은 부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건물벽에 붙어 있는 천문시계로 유명하다 순교지 얀 후스는 그 당시 프라하의 예루살렘 성당에서 설교를 통해 교회가 면죄부를 팔아 부를 축적하는 등 세속적인 악폐를 일삼는 것에 항의 하고, "진실은 성경책 안에 있지 혀바닥 속에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카톨릭교회가 그를 체포하여 화형에 처할때 당시 귀족, 군인, 농민 대표 등 27명을 구 시청광장에서 참수시켜 화약탑에 10년간 걸어 놓았다고 한다. 오늘도 시청사 입구 문에는 당시에 처형당한 27명의 명판이 걸려 있고 그들을 기리기위한 꽃이 항상 놓여 있으며. 그 앞 바닥에는 27개의 하얀 십자기와 1621년 6월 21일을 새겨 놓았다. 6월 21일은 낮이 가장 긴 하지로 시민들이 가장 오랫동안 잘려나간 머리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천문 시계탑 순교지에서 우측으로 돌아서면 남쪽 건물벽에 붙어 있는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1437년에 제작된 이 천문시계는 천동설에 기초한 두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간다. 매시 정각에 해골 모형이 줄을 당기면 시계바늘 윗 부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으로 창문 2개가 열리면서 작은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제자를 뜻하는 인형이 차례로 얼굴을 내밀고는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시계의 위쪽에 있는 닭이 운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서 매 정시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니 시계하나가 이렇게 큰 관광상품이 된다. 모여든 사람들 정각이 되기전에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광장을 꽉 메우고 있다. 우리는 오후 2시 정각에 이를 볼 수 있었다 예수의 12제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12제자상 밑에 허영, 구두쇠(탐욕), 터어키인(정복욕)상들이 있는데 매 시간 정각이 되면 죽기 싫타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있지만 , 해골은 이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한갓 소용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고 있다. 년,월,일,시를 모두 나타내 주고 있는, 오를로이 천문시계는 1437년에 제작되었으며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가리키고 있고 황도 12궁 사이에서 달과 태양의 움직임과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이 천문 시계는 카를 대학의 하수즈라는 수학교수가 고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시계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다른 나라에서도 주문이 쇄도했다. 그러자 시청에서는 이같은 시계는 프라하에서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하수즈 교수를 장님으로 만들었고 장님이 된 교수는 이 시계를 한 번 만져 보려고 시계탑에 올라가서 시계에 손을 대자 시계는 그대로 멈추어 그의 죽음과 함께 400년 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이후 몇번의 수리와 1948년에 설치된 전동장치에 의해 지금까지 그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건물들 구 시가의 또 하나의 이름은 작은 건축의 박물관이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들을 모두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건축의 박물관이다. 이 아름다운 구시가 광장의 모습을 보고 너무 살고 싶어했던 사람이 바로 북한의 김일성이다. 김일성은 프라하를 좋아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누구나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한번 꼭 살아보고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곳이라고 이야기한 곳이 바로 프라하의 심장 구시가 광장이다. 구시가지에서 신 시가지로 프라하는 도시 자체가 문화이다. 볼거리가 매우 많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이 없이 그냥 앞으로 가면 모두가 볼거리다. 뿐만 아니라 계획도시가 아니어서 잠깐만 한눈을 팔면 길을 잃기 쉽다. 그러므로 항상 일행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여행해야 한다 신 시가지 건물 프라하는 온 국민이 음악가 이며 지식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프라하와 인연이 있으며, 체코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견하고 연구를 한 곳이기도 하고, 심리학의 아버지 프로이드가 '꿈의 해석'을 발표한 곳이기도 하다. 시민회관(오베츠 돔) 1918년 10월 28일 체코스로바키아의 독립이 선포된 역사적인 장소인 시민회관은 중세 보헤미아왕의 성이었는데 14세기 이후 신학교와 군사학교로 쓰이다가 1911년 성터인 이 복잡한 마름모꼴 땅에 연주회장과 전시장, 레스토랑을 포함하여 약 500여 실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다시 지어 매년 열리는 국제 음악제 '프라하의 봄'은 이 홀에서 스메타나가 작곡한 <나의조국>전곡을 연주하면서 막을 연다고 한다. 19세기와 20세기의 혼합 아르누보양식 건축물로 원래는 왕궁이었지만 왕들은 프라하 성으로 돌아가고 17세기 후반 대화재로 인해 소실됐다가 이후 1903년 시민들과 체코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참여해 1912년 건물을 재건했다고한다 화약탑 1475년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원래 대포를 보관하던 대포의 요새로 지어졌다가 루돌프 2세때는 연금술사의 연구실과 화약창고로 쓰였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종 주조와 연금술에 관련한 기구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화약탑이라는 이름도 17세기에 화약창고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옆의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시민회관과는 대조적으로 화약탑이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큼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이 든다. 18세기 중반에 전쟁으로 파손되었다가 19세기 말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된 것이다. 탑 아래 반원모양으로 뚫려 있어서 사람들의 통로로 이용되며, 구시가로 들어서는 출입구로 중세시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13개탑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탑이다. 총 높이 65m로 현재 내부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탑꼭대기를 전망대로 개방 하고 있다. 카를 동상 신시가지를 지나 카를교에 도착하여 다리를 건너기 전에 다리입구 카를 동상이 보이는 공터에서 모여 가이드로부터 다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리 위는 수공예품을 파는 노점상과 거리 음악가들의 연주회가 열리기도 하고 불타바강 위에 그림처럼 펼쳐진 프라하 성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이기에 먼저 여기서 설명을 들은 것이다. 카를교 카를교는 프라하에 오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유명 관광지로 12세기에 이미 목제교가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강이 번람할 때 붕괴되어 12세기 중엽에 석재교로 대체되었고. 이 석재교 또한 강물로인해 붕괴되어 1357년 카를4세 때 교회 건축가인 피터 파를러(Petr Parler)가 다시 건축하여 1402년 완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카를교는 프라하를 상징하는 3대 건축물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시대의 다리로 손꼽히며 불타바 강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 광장이 있는 구 시가지와 프라하 성이 있는 말라스트라나 지구를 연결하는 다리로 오백여 년간 두 지역을 있는 유일한 다리였다고한다. 카를교탑 총 길이 520m에 폭 10m의 고딕양식으로 16개의 기둥과 3개의 브릿지 타워가 세워져 오늘날까지 튼튼하게 남아 있다. 구시가지 브릿지 타워는 많은 조각상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브릿지 타워로 꼽히고 있다. 다리 양 옆에 있는 고딕 양식의 두 개의 탑은 14세기의 것으로 통행세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카를교탑 성인 조각상 카를교 양 옆 난간에 30개의 성인 조각상이 세워져 인는데 카를 다리를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명성을 떨치게 한 조각상들은 바로크 양식으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지 300여 년동안 각기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들 모두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성인으로 칭송받은 사람들이다. 30개의 성상 중 네포무츠키 동상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십자가상 30인의 성인상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시커멓게 변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유심히 보면 대리석 조각도 볼 수 있고 네포무츠키상은 유일하게 청동으로 만들어져있다. 블타바(몰다우)강 위에 서정과 낭만으로 가득한 배경을 펼치면서 놓여있는 카를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30인의 조각상중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인기있는 성인상으로 머리에 별 5개의 관을 쓰고 있는 성 네포무츠키상이 있다. 1683년에 제작하였다고 하는데,성 네포무츠키는 프라하에서 가장 존경받는 가톨릭 성인(聖人)으로, 1380년 성하벨교회의 교구 성직자와 성비투스성당의 제단 성직자를 지낸 뒤 1383년부터 1387년까지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교회법을 공부하였고. 같은 해 프라하로 돌아와 1389년 프라하 대주교 대리를 거쳐 1390년 성하벨교회 본당신부가 되었다. 바츨라프(Wenceslaus) 4세 때인 1393년 3월 20일에 죽었는데, 포악한 왕으로 소문이난 카를4세의 아들 바츨라프 4세는 왕비 소피아가 네포무츠키 신부를 찾아가 자신이 외도했다는 사실을 털어 놓는데 신하가 몰래 이를 엿듣고 왕에게 고자질하자 의처증에 시달리던 포악한 왕이 신부를 불러 고해성사 내용을 털어놓으라고 했지만 고해성사 내용을 밝힐 수 없는 신념 때문에 입을 열지 않았다. 화가 난 왕은 그의 혀를 뽑고 고문을 한 다음에 강물에 던졌죽여는데.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고. 그로부터 3일후 그의 시신이 물위에 떠올랐을때 5개의 별이 빛나는 것이다. 시신은 오전에 찾아갔던 프라하성(城)에 있는 성비투스 성당에 묻었고. 1729년 성인 반열에 오른, 네포무츠키는 다리의 수호성인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성인이 되어 카를교(橋) 중간에 자리잡은 그의 청동상은 이 다리에 있는 30여 개의 성상 가운데 유일한 청동상이자 가장 오래된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네포무츠키 신부의 순교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 청동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행운이 깃든다는 전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닿아 청동상 아랫부분이 노랗게 변해있다. 블타바 강 중세 시대의 다리는 성과 마을을 이어주고, 삶과 세월을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였다.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이어주며 보헤미안의 삶과 애환 뿐만 아니라 역사를 이어주며 사색의 통로인 까를교에서 바라본 몰다우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블타바강은 프라하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역사적인 강으로. 카를교에서 바라보니 우측으로는 프라하 시가지가, 좌측으로는 프라하성이 보인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는 블타바강의 아름다운 흐름을 묘사한 작품이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한국인은 해발 200고지에서 주로 생활하는데, 프라하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 400고지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고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짜게 먹는데, 체코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금은 산에서 캐는 광염이고 소금이 귀하기 때문에 짤수록 고급 음식으로 간주한다과 한다. 또한 습도가 낮으므로 수분과 소금을 수시로 섭취해야 하며 유럽의 음식은 전체적으로 짜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염분 농도는 한국보다 낮다. 홍수흔적 카를교를 건너 강가에 카페와 음식점이 줄지어 있는데, 2002년에 최대의 물난리가 났던 이곳 건물의 벽에 홍수가 났을 때의 수위를 표기해둔 흔적들이 보이는데 홍수로 범람했던 그 후로도 홍수로 인한 수위를 연도별로 기록하여 보존하는 모습이다. 폭격맞은 시청사나 화약탑같은 상처마저도 이렇게 보존하고 기록으로 남겨 지난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 들의 지혜와 보존성이 후손들에게 큰 자산이 되리라. 존 레논벽 카를교 부근 캄파 정원에 있는 대형 낙서판 존 레논벽. 한 벽면의 길이가 30m도 넘어 보인다. 사회주의 시대에 자유를 갈망하는 체코인들이 평화의 상징인 존 레논을 떠올리며 만든 벽이라고 하는데. 낙서한 것이 관광상품이 되어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 들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이곳을 찾는 다고 한다. 이번 동유럽 여행에서 눈에 띄는 거리의 낙서를 보고 낙서는 동서양이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런 대형 낙서판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존 레논(Jhon Lennon)의 벽은 영국의 인기 그룹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 암살당한 1980년 이후 체코의 반 공산주의자들이 자유를 열망하며 비틀스의 노랫말과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낙서와 그림으로 표현한 벽이라고 한다. 커다란 벽에 그림과 글씨들이 숨 쉴 틈 없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이곳은 마치 전 세계인의 낙서장이 되어버린 듯하다. 여행객마다 자신들만의 언어로 다녀간 흔적을 남기고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만의 느낌이나 호소와 사랑고백도 하는 공식적인 낙서판. 남이 쓴 글씨 위에 덮어쓰고, 지우고, 쓰고 하는 모양이다. 베토벤 생가 베토벤이 프라하 여행때 사용한 집 이라고 베토벤 형상의 동판이 걸려있다 음악의 신동 모짜르트도 체코와 인연이 많다고 하는데, 프라하 시에 '바람둥이 나무꾼 이야기'라는 곡을 헌사하였다고한다. 결혼풍습 같은 복장으로 거리를 누비는 아가씨들을 보고 물었더니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한턱 내게 하고 거리를 다니면서 미션을 주고 행하게 하는 일종의 결혼빵 이라고 한다. 햇빛을 차단해 더위를 막기위해 심었가꾼다는 벽을 타는 나무들이 눈에 보인다. 공작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는길 가이드는 우리에게 식당과 시내에서 우리와 다른 문화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체코에서는 공중화장실에서 노크하면 실레이다, 문고리를 보고 사용 여부를 파악하여 행동하여야 하고, 식탁에서 '트림'을 해서는 안되며, 음식이 보이게 씹어서도 안 되지만, 코는 풀 수 있다고 한다. 또 길거리에서 지나가다가 부딪히면 실수'가 아니라 '공격'으로 받아들이니 무조건 사과해애 한단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우리의 문화이지 여기서는 절대 통하지 않으니 몸에 손이 닿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한다고... 한국에서는 손님이 왕이지만 체코는 직원이 왕이니 식당에서도 직원이 시키고 안내하는대로 따르고 음식도 독촉하지 말라고 또 프라하에서는 껌을 소리내어 질겅질겅 씹으면 '나 몸 파는데 지금 영업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수도원 프라하의 시내구경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위하여 수도원 옆 언덕의 가든 같은 식당을 찾아가는 길 프라하성 과 붉은 지붕의 프라하의 시내가 한눈에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같다. 저걸 타고 관광을 하는지 시내에서 보았던 모습을 여기서도 보게된다. 하루의 여행으로 피곤한지 은퇴하신 어른들이 앞서가고 젊은이들이 뒤따라가는 모습이다 전차 식사후 전통 무언극 불랙라이트 공연을 보기위하여 국립극장으로 가는길 와이어를 이용해 산 중턱까지 올라온 전차를 타게된다. 전차티켓 탑승 시간을 찍어야 정해진 시간안에 환승이 가능하다고 해서 티켓에 자동으로 시간을 체크하고 있다. 전 차 북한에서나 달릴것 같은 오래된 전차가 지나고 있다. 체코를 비롯한 유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인 트렘이다. 산중턱에서 경사지를 내려온 전차에서 내려 이 전차로 갈아타고 국립극장으로 간다. 도 로 버스와 기차의 중간형쯤 되어 보이는 트램은 도로상의 일부에 부설된 레일위를 주행하는 전차로 길 위의 전선들이 거미줄같이 도시를 연결하고 있으며, 길바닥의 철길로 트렘이 지나간다. 트렘이 지나가면 그 길 위를 다른 차들이 따라가는 형태로 여러 교통수단이 같은 길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공간활용의 탁월성이 돋보인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의 도시들에서 프라하에서 본것같이 한 길을 전차와 버스가 함께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바닥에 돌을 깔아 자동차가 과속을 막는 지혜도 볼 수 있었다. 국립극장에서 전통 무언극 불랙라이트 공연을 관람했는데 모두가 졸면서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체스키크룸로프 여행 3일째 오늘도 마라톤으로 아침을 열고 체코의 또하나의 명소를 찾아서 아침 일찍 프라하를 출발하였다. 버스로 3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온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된 체스키크롬로프.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km 떨어진,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체스키크롬로프는 한국의 하회마을 처럼 완만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아기자기한 집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중세 마을을 보여주고 있다. 프라하성에 이어 체코에서 두번째로 큰 체스키크롬로프성은 체코 공화국의 남동쪽에 자리한 인구 15,000의 작은 중세 도시로서, 블타바강이 마을 전체를 S자 모양으로 휘감아 돌고 있다. 13세기에 한 영주가 이곳에 성을 건설하면서 이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16세기에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하면서 둥근 지붕의 탑과 회랑등이 추가되었으며 영주가 살던 궁전과 예배당, 조폐소, 바로크식 극장과 정원을 재현해 놓은 성 안에는 중세 귀족의 생활상을 듬뿍 느껴볼 수 있고. 성 아래 에는 낮고도 붉은 지붕의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미로같이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박물관, 호텔, 상점, 음식점, 술집 등이 있다. 지은지 700년이 지났음에도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예쁜 성이다. 동굴식당 프라하에서 타고온 큰 버스는 마을로 들어갈 수 가 없어 짐은 호텔측에서 운반하기로 하고 우리는 걸어서 마을로 진입하여 점심을 먹기위해 찾아간 곳은 동굴식당 이었다. 산적들의 소굴처럼 어둡고 중세의 무기들로 장식한 식당에서 나온 음식은 둥그런 빵을 그릇처럼 사용하여 빵안에 양파스프가 담겨져 있고 아주 큰 고기와 감자무침, 감자 등 이 나왔다. 스보르노스티 광장 점심을 먹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중세시대의 건물로 둘러싸고 있는 체스키의 스보르노스티광장(Svornosti Square)이 나온다. 광장 안에는 조각상도 있고 주위에 카페와 음식점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16세기 이래로 쭉 시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의 중앙광장이다. 영화 아마데우스 촬영을 했다는 광장 주변의 골목들은 예쁜 집들이 형형색색으로 이어져 있다. 중세축제 이미 70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 중세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는 이 도시의 중심지인 스보르노스티 광장에서 중세의 복장을 하고 중세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무대에서 마술도 하고 악기의 연주가 이어지는데 햇볕이 뜨거워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고 광장에서 연결된 골목들을 구경하였다. 유럽여행은 6월이 성수기라고 하는데 아마 이런 축제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있어서가 아닐까? 이렇게 중세의 사람들과 함께 사진도 찍어보고... 구 시가지 거리 체스키크롬로프는 Rosenbergs家가 소유하던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마을과 성이 가장 크게 번영했다가 20세기초 슈바르젠베르크(Schwarzenberg)왕가의 소유를 마지막으로, 2차 대전 후 체코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Cesky Krumlov를 포함한 Schwarzenberg 왕가의 재산들은 모두 국가재산이 되어. 공산국가였던 시절에는 그저 낙후된 도시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주목 받게 되어 지금은 삼백여개의 이상의 건축물이 문화 유적으로 등록되었으니 도시 전체가 유적지나 다름없다. 중세복장의 행진 오늘이 축제의 마지막 날 폐회를 앞두고 중세복장을 한 시민들이 마을별로 입장하고 있다. 중세의 축제와 복장을 볼 수 있는것이 보너스 같은 행운이다. 중세의 축제를 뒤로하고 우리는 체스키크롬로프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좁은 골목을 지나 이발사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발사 다리의 십자가상 체스키크롬로프성으로 가기 위해서 건너야 하는 이발사의 다리 라제브니키교라 불리는 이발사의 다리는 영주들을 모셨던 하인들이 거주지였던 라트란거리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이 다리에는 루돌프 2세의 아들과 이발사 딸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다리 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있고, 반대편에는 이곳의 수호신인 성 요한네포무크 조각상이 있다. 이발사 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가 정겹게펼쳐지고 진다. 이발사 다리에서 바라본 강 블타바(독일명은 몰다우)강은 체스키의 도시를 태극으로 휘감아 돌며 맘껏 여유를 부리며 도시를 유람하고 있었다. 그 작은 물줄기는 보헤미안 평원을 유랑하며 북쪽으로 흘러 프라하에서는 제법 강폭이 넓은 블타바강을 만나게 되고. 강은 프라하 북쪽 30km 지점에서 엘베강과 합치면서 독일로 넘어가 독일평원의 땅을 적시며 북해로 빠져나간다. 체코인의 아기자기한 예술감각이 돋보이는 기념품샾에는 사고 싶은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다. 성 전망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유럽 건축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시가는 작은집, 그리고 간판부터 창문까지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들이 많아서 눈을 뗄 수 없는 곳이다. 화려한 색채가 빛바랜 모습조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성(Statni hrad a zamek Česky Krumlov)은 규모도 크고 화려한 색감을 지닌 멋진 성이다. 화려한 벽면을 자세히 보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는 스그라피토 기법으로 그린 것 이라고 한다. 화려한 성 내부도 아름답지만. 성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체스키의 풍경은 동화책의 한 페이지 같은데 사진기로 다 잡을수가 없어 안타까다. 망토다리(Clock Bridge) 성안의 망토다리는 3층으로 된 아치 모양이다 이 다리의 명칭은 서쪽 성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화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다리는 서쪽 성을 연결하는 부분으로 다리 아래쪽 길은 원래 해자였다고 한다. 낮은 통로는 극장 무도회 홀과 연결되어 있고 가장 위쪽 통로는 성 정원이 있는 갤러리로 통한다. 우리도 이 통로를 통하여 정원으로 올라갔는데 성주는 걷는 것을 싫어하여 이 길을 말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공 원 중세의 골목길을 오르고 망토다리를 건너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영주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비밀의 정원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보다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 마을의 영주가 소유했던 정원의 규모로는 큰 정원이다. 정원의 분수대를 중앙으로 큰길 우측은 프랑스풍으로 좌측은 영국 풍으로 조성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구분이 가지 않는다. 보리수 나무 우리는 프랑스풍으로 꾸며진 정원의 큰 보리수나무 아래 자리를 잡아 고도원님을 기준으로 빙 둘러 앉았다. 명상 그리고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명상은 잠시 멈추는 것이라고, 명상의 기본자세부터 배우고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여행 때마다 몇번 해보지만 바쁜 생활속에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달리기만 하다가 몸도 마음도 정신도 고장이 나서 멈추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여행중에 이렇게 좋은 곳에서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우리여행의 묘미다. 망토다리에서 바라본 체스키 명상을 마치고 정원에서 내려오는길 아름다운 자연과 중세의 풍경이 시골마을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체스키크롬로프의 인상적인 마을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 마을은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와 비운의 살리에르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모짜르트의 웃음 소리가 인상 깊었던 영화, 아마데우스의 메인 촬영지이기도 하다. 망토다리에서 구시가지 풍경을 감상하고 이렇게 사진을 찍어 남기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된다. 마을과 성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마을 중심에 위치한 비따 성당이다. 프라하의 비따 성당과 이름이 같다. 체코 황제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까를 4세의 명에 의해 작고 보잘 것 없던 성당을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 완성하였으며, 이름도 없던 작은 성당을 프라하에 있는 대성당과 같은 이름으로 사용하라는 까를 4세의 명에 의해 프라하에 있는 비따 성당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블타바강과 마을을 한눈에 바라보기에는 절벽위에 세워진 망토다리에서 보는게 제일좋아 보인다. S자 모양으로 흐르는 강물에는 rafting을 즐기는 사람과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휴식을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이 보인다 체스키 크롬로프란 `체코에 있는 말발굽 처럼 휘어진 강에 둘러싸인 풀밭`이라는 뜻 이라고 한다. 체스키 크롬로프의 역사는 1253년, 남부 보헤미안의 귀족이었던 비테크 가문이 이곳의 풍광에 반해 고딕양식의 성을 지으면서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정말 어디서 보아도 어느곳을 찍어도 멋진 모습들 이다. 호텔RUZE 오늘 우리가 이곳에 묵게될 루째 호텔은 1887년에 지은 건물로 객실이 80개 있는 큰 호텔이다. 원래 수도원이었다고 하는데 그림 같은 방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방에는 수도원으로 운영되었던 당시의 그림이 걸려 있어 고풍스럽고 로비에 전시된 중세풍의 인형이 당시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살려준다. 루째 호텔의 멋진 아이디어로 당시 의상을 입어 볼 수도 있고 또 얼굴이 없는 스탠드형으로 된 의상 모형에 얼굴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비테크 가문의 후손이 끊겨 친척인 로젠베르크가문이 이 성을 물려받아 영주 로젠베르크가 300년 다스렸는데. 아직도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진 장미꽃 문장이 성 주위를 거닐다 보면 건물에 새겨진 문양을 볼수 있고, 이 가문의 문장인 동시에 마을의 상징인 문장이 이 호텔 입구에도 새겨져있다. 수도원으로도 운영되었고 1500년대 영주가 살았던 건물을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1800년부터 호텔로 운영되고 있느데, 화장실 양변기 카바도 목재로 되어 있고, 에어컨 카버도 목재로 덮어있으며, 창문이며 침대도 오래되어 흔들리며 삐그덕 거리는 소리등이 중세로 돌아간 기분이다. 호텔 창으로 바라본 마을 주황색 삼각지붕의 아기자기한 집들, 중세의 향기가 나는 카페들, 전통이 이어지는 가계들을 보면 동화책의 배경같은 모습들이다. 크고 작은집, 그리고 간판부터 창문까지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들이 많아서 눈을 뗄 수 없는 체스키크롬로프에서 하루가 진다. 아침편지 매일 아침 출근하여 성경한장을 쓰고, 다음으로 메일로 전해주신 아침편지를 읽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는데. 여행중에는 육성으로 들려주신다. 6월 24일 1박 2일간의 체스키크롬로프 여행을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날 잊지못할 마을을 배경삼아 고도원님의 육성으로 아침 편지를 듣고, 출발 버스가 있는 큰 길까지 가방을 끌고가야하는데 자갈 길이 많이 불편하다. 체코를 떠나면서 매년 1억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입국하여 체스키크롬로프를 거쳐 체코를 떠나면서 참 도시와 마을들이 아름다운 곳이다는 느낌을 가진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는데 잘 가꾸고, 오래되고, 무너지고, 색바랜 도시를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잘 보전하여 전세계 많은 관광객이 또 나의 발길까지 유도했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헐어버리고 새로 짓고 세우는 우리의 모습과는 전현 다른 이 나라를 언제 다시 또 올수 있을까? 프라하를 찾았던 사람들은 떠날 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고 꼭 다시 오고 싶은 도시라 말한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마음을 품고 가자 이제 유럽에서 두번째 나라 오스트리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