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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지어야 잘 되지
부산이 따뜻한 도시라는 것을 늘 한겨울에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서울은 몸을 제대로 펴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추운데 부산은 봄처럼 따뜻했다.
동백이 피었을 것 같아서 꽃을 보는데 큰스님 차가 내려왔다.
마침 멀리서 인사하는 스님에게 큰스님은
"스님은 나 보았지? 나는 스님 못봤는데 와서 인사를 하지.” 하셨다.
“워낙 큰스님들과 같이 계셔서요.”
비구니 스님이 웃으셨다.
“해인사에서 오시는 스님이야. 저 스님이 미국가서 살 때 영어를 알아들으려고 일 있으면 도와주면서 수퍼 계산대에서 한 달을 봤대. 한달간 들으니까 겨우 숫자가 귀에 들어오더래. 그런 정도로 끈기가 있는 스님이라. 대단한 스님이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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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끝자락에 대종사이신 법전스님이 열반하셨다.
해인사에서 영결식이 있었는데 큰스님도 해인사에서 2박 3일을 묵고 오셨다고 했다.
큰스님은 신문 인터뷰에서
“법전대종사의 열반은 우리가 기뻐할 것도 아니지만 슬퍼할 일도 아닙니다. 대종사 열반을 장엄한 불사로 생각합니다.” 하셨다. 그 기사가 염화실에 올라오자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위로가 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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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은 법공양실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보살님을 보고 불교티비에서 방청석에 있는 모습을 잘 보았다고 하셨다. “이쁘다고 찍었나보다.” 하시는데 다른 자원봉사자 보살님이
“저는 안봤습니까 스님?”하고 묻자 “안봤어.” 하셨다.
“보살님들이 이렇게 도와주니까 법공양이 원활하게 잘 된다. 복 짓는 것도 같이 지어야 잘 되지. 혼자 지으면 잘 안돼.” 하셨다.
보살님들이 귤을 까드리겠다고 하자 걸음을 멈추고 기다리셨다. 막상 귤을 드려놓고 귤맛이 실까봐 걱정하는 보살님들에게
“아니야 맛있어.밀감 잘 먹는 편이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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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건강하십시오.”
계단에서 만난 스님들이 큰스님께 말씀하셨다.
“산삼 한 뿌리라도 가져와서 말해야지”
“드릴 게 있으면 다 드려야지요.”
“스님들이 공부하러 다니는 게 내한테는 큰 보약이요.” 하고 큰스님이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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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선원을 취재하러 오신 불교 신문사 기자분들이 일본에서 돋보기 달린 손톱깎이를 사오셨다. 손톱을 가는 줄도 달려 있다고 큰스님께서 좋아하셨다.
기자분들은 지난 번에 보살님들을 위한 화엄경 강의 시간에 큰스님께서 불교신문을 홍보해 주셔서 당일 103부가 신청되었다고 고마워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九 中
十行品 二十一之一
三, 功德林菩薩의 菩薩行
서문
화장장엄세계란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주변의 천지만물과 산천초목, 이 모든 것입니다. 작게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 하나하나에서부터 크게는 수백 억 광년 저 멀리에 있는 무수한 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화장장엄세계입니다. 이들 모든 화장장엄세계에 무거운 은혜를 입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일체 화장장엄세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화엄경 강설이 이제 열 권째에 이르렀습니다. 열 권의 강설 책이 나오기까지 가깝고 먼 수많은 화엄성중님들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장엄한 성스러운 대중들입니다.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 일일이 다 열거하지 못하는 수많은 스승님과 도반님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올립니다.
병고를 앓기 이전부터 법당 마련 등 큰 은혜를 입으며 함께해 온 금요법회 법우님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도 화엄경 공부를 함께하고 있음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문수경전연구회에서 화엄경 공부를 함께하는 여러 스님들께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랜 투병 생활을 묵묵히 지켜보며 알게 모르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여러 부분으로 마음 쓰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 다해 감사드립니다.
화엄경 공부 시간에 말없이 봉사하시는 봉사자 화엄성중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다음 까페 ‘염화실’회원 모든 분과 얼굴 한번 보지 못하였으나 끊임없이 녹취하여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아서 많은 법우님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화엄경 강설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가지로 애쓰시는 담앤북스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들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 81권 화엄경 강설이 다 출판되기까지 꼼꼼한 교정을 스스로 맡아 애쓰시는 원력보살님들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화엄경 강설을 구입하여 공부하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혹은 이미 잘 아는 분들과 또는 전혀 모르는 분들의 소리없는 무주상(無主相) 동참으로 염화실지와 화엄경 강설과 사경책 등 각종 불서를 법공양할 수 있게 해 주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원력이 법공양 운동이기에 더욱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유연(有緣) 무연(無緣)의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진실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장엄한 성스러운 대중, 화엄성중이십니다. 여러분들이 계셔서 이 세상을 화엄경으로 꽃 장엄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화장장엄세계입니다. 이 모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참으로 그 빚이 태산 같습니다.
모든 불보살님들과 일체 화엄성중님들의 가호 아래 이 불사를 원만 성취하여 저의 임무를 다하는 것으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7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책 한권을 내면서도 많은 인사를 하게 된다. 그 책 한권이 나오게 되기까지는 그만한 많은 은혜를 입기 때문이다.
나 역시 화엄경 강설을 쓰면서 처음부터 인사말씀을 쓸까 하다가 참았다.
화엄경 강설을 80권 혹은 81권, 2권 3권 부록까지 다 설계를 해 놓았는데 한 10권쯤 나오고 나서야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이번 화엄경 강설 제10권의 서문에는 구구절절이 한 분도 빠짐없이 인사를 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문수경전 연구회 스님들과 함께 공부를 해오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계속 화엄산림 법회에 빠짐없이 동참하셔서 공부하는 것이 제일 큰 힘이 되었다.
또 신도들도 화엄경 공부를 하고 있다.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을 녹취해서 매달 염화실지가 천 권씩 나오지만 이것만으로는 미흡하기 때문에 우정 나의 공부도 삼고, 또 뒷사람들이 화엄경을 공부하기 좋게 화엄경강설을 다시 정리해서 좋은 교재로써 책으로 발간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은혜를 입었다.
문수경전연구회 스님들이 앞으로도 도와주실 일은 그저 한 달에 한 번씩 잊지 않고 나오셔서 이 서문을 한 번씩 같이 읽으면서 점안식을 하고 또 강의를 하고 강의를 듣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고 우리의 공부다. 빠짐없이 늘 나오셔서 변함없이 화엄경 공부를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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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법회 전에 몇가지 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는데 우선 응화스님 작품집을 한 권씩 다 받아 보셨을 것이다. 입승스님이 응화스님 소개를 하면서 자꾸 ‘노스님’이라고 표현했는데 스님의 연세는 상당하지만 얼굴을 보면 전혀 노스님이 아니다. 열정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한 결과가 부처님과 인연 맺어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면 훌륭한 포교의 방법이다.
응화스님은 서예 서각을 저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한의학 박사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놀라운 일이다. 열정이 있고 꿈이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주신 분이 아닌가 싶다. 그 전에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놀랍고 대단하다. 정말 더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대중 중에 그러한 분이 계셔서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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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늘 불교신문사에서 문수경전연구회를 취재 오신 김에 불교신문을 좀 더 홍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불교신문 신청서를 나눠드렸다.
다른 종교에 비해서 불교는 포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미약하다.
불교인들이 신중하고 겸손해서 그런지 밖으로 포현하는 것이 아주 소극적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포교를 해야 할 때다.
‘신문 한 장이 포교사 한 사람이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내가 병원생활을 오래 할 때 창가학회 신문이 전국의 병원에 다 있는 줄을 처음 알았다. 창가학회는 법화경을 중심사상으로 포교하는 종파니까 불교 계통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많은 병원 곳곳에 무상으로 창가학회의 신문들이 돌려지고 있었다.
다른 종교 신문은 말할 것도 없다.
세상이 그렇게 공격적인데 그에 비하면 우리 불교는 너무 미약하다.
새해에는 좀더 포교에 관심을 갖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스님들은 포교를 하는 것으로써 그동안 부처님의 밥을 먹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된다. 그런 은혜를 말하기 이전에 천하에 둘도 없는 진리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인연을 맺어준다는 것은 값진 일이다.
내가 병원에서 창가학회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란 것처럼 교도소라든지 병원이라든지 군부대라든지 신문을 보낼 데는 많고, 그곳에서 만나는 신문 한 장이 불교와 인연을 맺는 좋은 계기가 된다.
병원 같은 데에 있으면 몸이 아프니 다른 공부는 할 수가 없고, 시간은 많기 때문에 신문 같이 가벼운 읽을거리를 저절로 읽게 된다. 창가학회는 물론이고 다른 종교의 신문도 다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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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내가 대만 여행 이야기를 했었다. 대만 불교는 한마디로 봉사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구제 활동을 한 것을 전부 다 기록하고 영화로 찍고 사진으로 찍어서 모형도를 만들고 전시를 해 놓는다.
그것은 결코 한 일을 상내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사실을 널리 알려서 다 같이 함께 감동하고 함께 동참하자는 의미다.
내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BTN 과 BBS 의 ARS를 한 번씩 누르는 일이다. 그래봤자 하루 만원이고, 잘해봤자 한 달에 열 번 정도를 한다. 그 좋은 복짓는 일을, 일어나자 마자 그것부터 하겠다고 내자신과 약속을 해놓고도 한달에 삼십 번을 못채우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작은 후원이 불교 방송을 돌아가게 한다. 그것이 아주 작은 일 같아도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결국은 BTN,BBS불교방송이 돌아간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할 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틀림이 없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방송은 티비 방송만 다섯 개다. 라디오는 말할 것도 없다.
대만에는 자제공덕회에서 하는 대애(大愛)TV라고 하는 티비 채널이 두 개인데 24시간 방송을 하면서도 광고가 1초도 없다.
대만이라고 해서 손하나 까딱해서 돌아가는 티비가 아니다. 미국에서 하건 대만, 한국에서 하건 방송을 하려면 필요한 최소의 소요인원이나 기술이 있다. 그만큼 비용이 든다. 그런데 광고가 1초도 없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신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동참을 해서 그 포교매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도 새해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불교포교에 좀더 박차를 가했으면 좋겠다.
아까 불교신문 접수 용지를 많이 돌렸는데, 스님들은 물론 절에서 불교신문을 이미 다 받아보고 있는 줄을 안다. 나 역시도 사중에서 들어오고 개인적으로 신청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신문이 들어온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절에 벌써 받아보고 있는데’ 하는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신문 한 부를 더 신청하면 이것이 포교사 한 사람을 군부대에 보내는 것이다, 포교사 한 사람을 병원에 보낸다, 포교사 한 사람을 교도소에 보낸다 라고 생각해야 된다. 그러면 용기가 날 것이다. 신문 한 부를 보는데 한달에 오천원인가 하는데,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 정도라도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을 내시라고 부연해서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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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오늘은 27쪽(민족사 刊, 화엄경2권) 십행품을 보고 있다.
5. 第三無違逆行 忍辱波羅密
(1) 忍辱行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無違逆行고 此菩薩이 常修忍法하야 謙下恭敬하야 不自害하고 不他害하고 不兩害하며 不自取하고 不他取하고 不兩取하며 不自着하고 不他着하고 不兩着하며 亦不貪求名聞利養하고 但作是念호대 我當常爲衆生說法하야 令離一切惡하며 斷貪瞋癡와憍慢覆藏과 慳嫉諂誑하야 令恒安住忍辱柔和라하나니라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어기지 않는 행인가. 이 보살이 항상 인욕(忍辱)하는 법을 닦아 겸손하고 공경하여 스스로 해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고 둘 다 해하지 않으며, 스스로 탐하지 않고 남을 탐하게 하지 않고 둘 다 탐하지 아니하며, 스스로 집착하지 않고 남을 집착하게 하지 않고 둘 다 집착하지 하니하며, 또한 명예의 이양(利養)도 구하지 아니하고, 이런 생각을 하나니 '내가 마땅히 중생에게 법을 말하여 그로 하여금 모든 나쁜 짓을 여의고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음, 교만, 감추는 일, 간탐, 질투, 아첨, 속임을 끊게 하고 부드럽게 화평하여 참고 견디는 데 항상 머물게 하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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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무위역행(第三無違逆行) 인욕바라밀(忍辱波羅密): 제 3 무위역행
- 인욕(忍辱)바라밀을 닦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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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행(忍辱行):인욕행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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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부터 십행품을 공부하고 있다.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 이렇게 수행점차가 되어 있는데 매 행마다 십바라밀이 배대가 되어서 나온다.
늘 이야기 하듯이 주(主)바라밀과 조(助)바라밀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주지 노릇을 한다고 하더라도 화엄경 공부가 주(主)바라밀이고 사찰 운영은 조(助)바라밀로 하자는 이야기도 했는데 물론 그건 각자 마음 가는 대로 하시겠지만, 여기 십행품(十行品)을 공부하다보면 그런 것이 확연히 나타난다.
제3 무위역행은 십행품 중에 세 번째 행인데 보시 지계 인욕 이런 순서로 나오는 십바라밀 중에 세 번째 바라밀인 인욕바라밀이 주바라밀이다. 인욕을 빼고 나머지 보시(布施) 지계(持戒)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방편(方便), 원(願), 역(力) 지(智) 이런 아홉 바라밀은 조바라밀, 보조적인 바라밀로 한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하긴 하되 보조적인 바라밀로 하는 것이다.
우리 수행도 거기에 패턴을 맞춰서 일상생활에서 ‘나는 화엄경 공부를 주바라밀로 한다’ ‘포교를 주바라밀로 한다’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주바라밀로 하고 상구보리(上求菩提)를 조바라밀로 한다’ 라고도 설정할 수가 있다. 그런 것과 연관이 다 되어 있다.
이제 인욕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6바라밀, 또는 10바라밀에 대해서 십행품에서 아주 자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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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보살마하살(爲菩薩摩訶薩)의 : 보살마하살의
무위역행(無違逆行)고 : 무위역행인가? 받아들이는 행인가? 위역은 어길 위(違) 어길 역(逆) 어긴다는 뜻이다. 이것을 무위라고 했으니 어김이 없는 행을 말한다.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이든지 받아들인다.
본래 인욕은 욕됨을 참는다는 뜻이다. 인욕은 욕됨을 잘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다. 저항을 하면 인욕이 아니다. 잘 수용하는 것이 인욕이다. 여기에 그런 뜻이 많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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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보살(此菩薩)이: 이 보살이
상수인법(常修忍法)하야: 항상 참는 법을 닦아서
겸하공경(謙下恭敬)하야 : 겸손하고 자기를 낮춘다.
스님들은 출가를 위해 절에 처음 왔을 때 제일 먼저 행자실에 걸려 있는 ‘하심(下心)’이라는 문구를 보게 된다. 하심이라고 하는 액자가 걸려 있지 않은 행자실이라면 엉터리 행자실이다.
하심이 곧 겸하다. 그리고 상대를 공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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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해(不自害)하고: 자기 자신도 해치지 않고
불타해 (不他害)하고 : 남도 해치지 않고
불양해(不兩害)하며 : 자신과 다른 이, 둘 다를 해치지 않고
부자취(不自取)하고: 스스로도 취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인데 욕심의 한 표현이다.
불타취 (不他取)하고 : 다른 이도 취하지 않는다.
불양취(不兩取)하며 : 자기 것이나 다른 이의 것이나 다 취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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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착 (不自着)하고: 스스로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불타착(不他着)하고 : 다른 사람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불양착(不兩着)하며 : 둘다 집착하지 아니하며
역불탐구명문이양(亦不貪求名聞利養)하고 :명문이양을 탐구하지도 아니한다. 이것이 어려운 일이다. 서푼어치를 해도 칭찬해주면 누구든지 좋아한다. 소문이 나고 잘났다, 잘한다고 하는 것이 명문이다.
‘중벼슬 닭벼슬보다 못한다’는 말을 스님들은 행자시절부터 들어오고 남에게도 이야기하고 자나깨나 접한다. 그런데 그 닭벼슬보다 못한 것을 하려고 얼마나 추태를 부리는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번뇌에 대한 업력이 얼마나 쎈지 그동안 익혀온 법력 도력은 업력 앞에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된다.
몇 십 년 참선하고, 선지식이다, 견성을 했다, 큰스님이다 해서 오도송을 읊고, 결제 해제 법문에 사정없이 오도송을 읊어도 정작 그 경계를 대하면 법력은 업력을 조금도 이기지 못하고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된다. 오히려 업력이 치성하다.
그런 것을 보면 실망이 크고 갈등도 크다. ‘아 이런 것을 수행한다고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어야 하나?’그렇다고 수행한다고 하는 간판을 내릴 수도 없고 양심에 비추어 보면 보통 갈등이 아니다. 그런 예를 일일이 구체적으로 다 열거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떠오르는 사실들이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무수업겁 동안 탐진치 온갖 번뇌, 다섯 가지 번뇌, 열 가지 번뇌, 백팔 번뇌, 팔만 사천 번뇌하고만 계속 친해왔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그것하고만 친하게 지내오고 자나깨나 삼독과 뒹굴고 살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부처님의 좋은 말씀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감동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지만 정작 어떤 이해관계라든지 자기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든지 하는 것과 부딪치면 곧바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되어버린다. 그 때는 법력이니 도력이니 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고 명함도 못내미는 것이다.
그렇게 견고한 삼독 번뇌의 바위도 세월이 흐르고 어느 순간이 되면 눈 녹듯이 싹 녹는 경우가 또 얼마든지 있다. 역사적으로 그런 훌륭한 성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것을 또 꿈꾸며 살아간다.
여기도 역불탐구명문이양(亦不貪求名聞利養) 이라고 했다. 일체 부귀공명을 다 벗어버리고 이익이라든지 이름이라든지 하는 것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출가 수행하는 사람은 무조건 의무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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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작시념(但作是念)호대: 다만 이러한 생각을 하되
아당상위중생설법(我當常爲衆生說法)하야: 내가 마땅히 항상 중생을 위해서 설법한다. 무엇을 설법하는가?
영이일체악(令離一切惡)하며: 일체 악을 떠나게 하고
단탐진치(斷貪瞋癡)와: 탐진치 탐욕과 진심과 어리석음
교만부장(憍慢覆藏)과 :교만, 부장, 이 부장이 문제다. 남 잘 된 것은 덮어 버리려고 하고 또 자기 잘못은 남 잘 된 것을 덮어버리듯이 덮어버리는 것이다. 부장은 그런 뜻이다.
자기 잘못은 덮어버리고 자기가 조금 어떻게 잘한 것은 하늘 끝까지 자랑하려고 한다.
번뇌 중에 큰 번뇌안 교만, 부장 그리고
간질첨광(慳嫉諂誑)하야 : 아끼고 시기 질투하고 속이고 하는 것이다.
탐진치, 교만, 부장, 간질, 첨광 이런 일체 악을 떠나서 그러한 번뇌들을 끊어서
영항안주인욕유화(令恒安住忍辱柔和)라하나니라: 항상 욕됨을 참고 부드럽고 조화롭고 융화하는 자세에 편안히 머물도록 한다.
이것이 제3무위역행이고 인욕바라밀을 닦는 것이다.
인욕 바라밀에 대해서 자세하게 참 잘 나와 있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2) 怨恨과 侵害의 忍辱
佛子야 菩薩이 成就如是忍法에 假使有百千億那由他阿僧祗衆生이 來至其所하야 一一衆生이 化作百千億那由他阿僧祗口하고 一一口에 出百千億那由他阿僧祗語호대 所謂不可喜語와 非善法語와 不悅意語와 不可愛語와 非仁賢語와 非聖智語와 非聖相應語와 非聖親近語와 深可厭惡語와 不堪聽聞語니 以是言詞로 毁辱菩薩하며 又此衆生이 一一各有百千億那由他阿僧祗手호대 一一手에 各執百千億那由他阿僧祗器仗하고 逼害菩薩하야 如是經於阿僧祗劫토록 曾無休息하면 菩薩이 遭此極大楚毒하야 身毛皆竪하야 命將欲斷이라도 作是念言호대 我因是苦하야 心若動亂이면 則自不調伏하며 自不守護하며 自不明了하며 自不修習하며 自不正定하며 自不寂靜하며 自不愛惜하며 自生執着하리니 何能令他로 心得淸淨이리오하나니라
"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렇게 인욕함을 성취하면 가령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중생이 그 곳에 오는데, 중생마다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업을 변화하여 가지고 낱낱 입으로 백천억 아승지 말을 내나니, 이른바 기쁘지 못한 말, 선하지 못한 말, 반갑지 않은 말, 사랑할 수 없는 말, 어질지 못한 말, 성인의 지혜가 아닌 말, 성현과 맞지 않는 말, 성현에게 친근할 수 없는 말, 매우 싫은 말,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이런 말로 보살을 헐뜯어 욕하거나, 또 이 중생들이 저마다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손을 가졌고, 손마다 각각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병장기를 들고 보살을 박해하기를, 아승지겁이 지나도록 쉬지 아니하리라.
보살이 이렇게 극심한 고초를 당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생명이 끊이려 하더라도 생각하기를, '내가 이만한 고통으로 마음이 흔들리면, 자기를 조복하지 못하고 자기를 수호하지 못하고 스스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스스로 닦지 못하고 스스로 바르게 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끼지 못하여 스스로 집착을 내리니, 어떻게 다른 이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랴'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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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怨恨)과 침해(侵害)의 인욕(忍辱): 원한과 침해를 참는 인욕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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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보살(菩薩)이
성취여시인법(成就如是忍法)에: 이와 같은 참는 법을 성취함에
가사유백천억나유타아승지중생(假使有百千億那由他阿僧祗衆生)이: 가사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중생이
내지기소(來至其所)하야 : 그가 있는 곳에 와서
일일중생(一一衆生)이 : 낱낱중생이
화작백천억나유타아승지구(化作百千億那由他阿僧祗口)하고: 화작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입을 만들어서.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중생이 있는데 그 중생의 낱낱이 한 입씩만 가지고 있어도 그 숫자가 백천억 아승지 입이다. 그런데 그 낱낱 중생들은 모두 한사람당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입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 입의 숫자가 도대체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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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구(一一口)에 : 낱낱 입에서
출백천억나유타아승지어(出百千億那由他阿僧祗語)호대: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말을 내되
소위불가희어(所謂不可喜語)와 : 소위 기쁘지 않은 말과
비선법어(非善法語)와 : 선하지 않은, 선법이 아닌 말과
불열의어(不悅意語)와 : 뜻을 즐겁게 하지 않는 말과
불가애어(不可愛語)와 : 사랑스럽지 않는 말과
비인현어(非仁賢語)와 : 어질거나 착하지 않는 말과
비성지어(非聖智語)와 : 성스럽고 지혜롭지 않는 말과
비성상응어(非聖相應語)와 : 성스러움과 상응하지 않는 말과. 우리는 이 가운데 불(不)이나 비(非)라고 하는 부정하는 말을 빼고 반대로 해야된다. 기쁜말, 선한말 선법의 말 기분 좋은 말 사랑스러운 말 보시 애어를 해야 한다. 사섭법에도 애어가 있다.
어질고 현명한 말, 성스럽고 지혜로운 말, 성스러움과 상응하는 말 이런 것들을 해야 되는데 전부 반대로 그 많은 입들이 계속 지껄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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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친근어(非聖親近語)와: 성인과 친근하지 않은 말과
심가염오어(深可厭惡語)와: 매우 싫고 악하고 더러운 말과
불감청문어(不堪聽聞語)니 :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느니
이시언사(以是言詞)로 :이런 말로써
훼욕보살(毁辱菩薩)하며 : 보살을 훼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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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차중생(又此衆生)이: 또 이 중생이
일일각유백천억나유타아승지수(一一各有百千億那由他阿僧祗手)호대 : 낱낱이 각각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손으로써
일일수(一一手)에 : 낱낱 손에
각집백천억나유타아승지기장(各執百千億那由他阿僧祗器仗)하고: 각각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 막대기나 칼이나 창이나 이런 무기를 들고
핍해보살(逼害菩薩)하야 : 보살을 핍해해서
여시경어아승지겁(如是經於阿僧祗劫)토록 : 이와 같이 아승지 겁을 지날 때까지
증무휴식(曾無休息)하면 :일찍이 휴식하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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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조차극대초독(遭此極大楚毒)하야: 지극히 큰 고초와 독을 만나서
신모개수(身毛皆竪)하야: 몸에 있는 털이 곤두선다.몹시 두려우면 몸에 있는 낱낱 털이 다 곤두선다.
명장욕단(命將欲斷)이라도: 목숨이 장차 끊어지려 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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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시념언(作是念言)호대 : 이러한 생각을 하되
아인시고(我因是苦)하야: 나는 이러한 고통을 인해서
심약동란(心若動亂)이면: 마음이 만약 동란할 것 같으면
즉자부조복(則自不調伏)하며 : 이건 내가 내 스스로를 조복하지 못한 것이다.
자불수호(自不守護)하며 : 스스로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자불명료(自不明了)하며 : 내가 이 신념, 불법에 대한 신념이라든지, 참나에 대한 신념, 차별없는 참사람에 대한 신념이 명료치 못한 것이다.
온갖 번뇌망상을 초월한 본래의 마음자리에 대한 명료한 인식이 있다면 거기에 흔들릴 까닭이 없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명료하지 못하는 것이며
자불수습(自不修習)하며 : 스스로 수행하는 것이 못되며
자부정정(自不正定)하며 : 바른 선정을 이루지 못한 것이며
자부적정(自不寂靜)하며: 스스로 적정함을 지키지 못한 것이며
자불애석(自不愛惜)하며 :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못되는 것이다. 애석은 수호라는 말과 뜻이 비슷하다. 수호하지 못하는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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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집착(自生執着)하리니 : 스스로 집착을 내는 것이니
하능영타(何能令他)로: 거기 내가 흔들린다면 어찌 다른 사람의
심득청정(心得淸淨)이리오하나니라: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보살은 인욕수행을 잘해서 자신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청정하게 한다. 인욕수행을 잘해서 마음이 요지부동이 되고, 그 많은 사람이 자기를 비난하고 막대기나 창이나 칼을 들고 와서 자신을 해친다 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늘 바른 선정을 지키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의 참마음 불성에 대해서 아주 명료한 인식을 갖으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면 그야말로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도 청정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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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僧肇)법사 같은 이는 정치적인 문제에 계류 되어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는데도 마음이 하나도 동요하지 않았다.
‘장두임백인(將頭臨白刃)하니 유여참춘풍(猶如斬春風)이라’ 칼로 머리를 쳐서 사형을 하는데, 머리를 흰 칼날에 대는 것이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 같다고 노래했다.
보통사람이라면 혼비백산을 할 자리다. 그런 자리에서 거짓말 같은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절대 거짓말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경지가 그렇게 되었으니 나오는 말이다.
‘가요독약(假饒毒藥)이라도 야한한(也閑閑)이라’고 하는 구절도 증도가에 있다. ‘설사 독약이라 하더라도 마음은 한가하다.’ 달마 스님이 독약을 먹을 때 두려워하거나 공포스러워 하거나 떨거나 회피하려고 하는 자세가 없었다.
그런 사례들이 불교 역사에 아주 많다. 칼로 목을 벤 그 자리에서도 마치 봄바람을 베는 거와 같다고 하는 시를 읊을 정도의 마음 상태니까 얼마나 제대로 그 견해가 투철했겠는가.
(3) 苦痛甘受의 忍辱
菩薩이 爾時에 復作是念호대 我從無始劫으로 住於生死하야 受諸苦惱라하야 如是思惟하고 重自勸勵하야 令心淸淨하야 而得歡喜하며 善自調攝하야 自能安住於佛法中하고 亦令衆生으로 同得此法이니라
"보살이 이때에 또 생각하기를 '내가 끝없는 옛적부터 생사 속에 있으면서 모든 고통을 받았도다' 하고 이와 같이 생각하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청정하여 환희하여지고, 스스로 조화하고 거두어 들여서 불법 가운데 편안히 머물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이런 법을 얻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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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감수(苦痛甘受)의 인욕(忍辱): 고통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인욕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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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은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다. 물론 역(逆)경계를 감수하는 것도 있지만 또한 순(順)경계를 잘 감수해야 된다. 사실 역경계는 오히려 쉽고 순경계를 참고 소화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자기가 설사 도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도인을 시험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을 8풍(風) 부동(不動)이라고 한다. 이(利) 쇠(衰) 훼(毁) 예(譽) 칭(稱) 기(譏) 고(苦) 락(樂)이라고 하는 8가지 바람을 넣어서 그 사람을 감정해 보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것, 즐거운 것, 손해 보는 것, 이익되는 것, 칭찬하는 것, 비난하는 것 이런 것이 전부 바람이다. 그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야 도인이다.
세상에 그런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견성했다고 하는 도인이 몇이나 있겠는가? 몇은 고사하고 있기나 하겠는가? 수십년 참선한 법력이라도 도저히 업력을 대적할 수가 없다. 업력과 도력이 서로 엇비슷은 해야 갈등을 하든지 말든지 할텐데 아예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정도이니 문제가 많다. 사실 불교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차원이 너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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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이시(爾時)에 : 이 때에
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 다시 이런 생각을 하되
아종무시겁(我從無始劫)으로 :내가 무시겁으로부터
주어생사(住於生死)하야 : 생사에 머물러서
수제고뇌(受諸苦惱)라하야 : 여러 가지 고뇌를 받는다 라고 해서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이 사유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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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자권려(重自勸勵)하야 :아주 무겁게 존중하면서 스스로 권하고 격려해서
영심청정(令心淸淨)하야 : 마음으로 하여금 청정하게 해서
이득환희(而得歡喜)하며 : 환희를 얻게 하며
선자조섭(善自調攝)하야: 잘 스스로 조섭 길들이고 섭수해서
자능안주어불법중(自能安住於佛法中)하고 : 스스로 능히 불법 가운데 안주하고, 자신도 불법중에 안주하고
역영중생(亦令衆生)으로 : 또 다른 중생으로 하여금
동득차법(同得此法)이니라: 이러한 법을 같이 얻도록 해준다.
그 정도로 감화를 줘야 된다는 말이다.
인욕이 중요한 것이다. 좋은 명예, 칭찬 이런 것들이 곧 눈 앞에 보이는데 그것을 참고 견디고 묵묵히 소화해 내는 것이다. 그런 자세가 참 필요하다.
(4) 觀察法理의 忍辱
復更思惟호대 此身이 空寂하야 無我我所하며 無有眞實하며 性空無二하며 若苦若樂이 皆無所有하니 諸法空故로 我當解了하야 廣爲人說하야 令諸衆生으로 滅除此見이라 是故我今에 雖遭苦毒이나 應當忍受니라
"다시 생각하기를' 이 몸은 공한 것이어서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진실하지 아니하고 성품이 공하여 둘이 없으며, 괴롭고 즐거움이 모두 없는 것이며, 모든 법이 공한 것을 내가 이해하고 다른 이에게 널리 말하여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이런 소견을 없애게 할 것이니, 그러므로 비록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여도 참고 견디어야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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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법리(觀察法理)의 인욕(忍辱): 법의 이치를 관찰하는 인욕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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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갱사유(復更思惟)호대: 다시 또 사유해서, 어떻게 사유하는가?
차신(此身)이 : 이 몸이
공적(空寂)하야: 공적해서
무아아소(無我我所)하며: 나도 없고, 나에 딸린 것, 나의 것도 없다. 아(我: 나)와 아소(我所: 나의 것)는 자주 나오는 말이다.
이 세상은 전부 나 아니면 나의 것으로 되어있다. 나와 원수조차 ‘나의 원수’이기 때문에 아소다.세상이 전부 아와 아소인데 그것이 없다고 했다. 불교는 이런 표현들을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게 해 버린다.
무유진실(無有眞實)하며 : 진실이 없다. 진실하다면 변하지 않아야 되는데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변한다. 그렇게 보는 것이다.
성공무이(性空無二)하며: 성이 공하야 성품이 변하야 둘이 없으며
약고약락(若苦若樂)이 : 고통스럽거나 즐거운 것이
개무소유(皆無所有)하니: 다 있는 바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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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공고(諸法空故)로 : 모든 법이 공한 까닭으로. 이것은 반야심경의 수준이다. 이것이 관찰법리(觀察法理)다. 이치가 그렇기 때문에 인욕이 자연스럽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치가 그런데 뭐’ 하면서 그 이치를 깨닫고 나면 저절로 인욕이 된다. 그 이치를 잘 받아들여서 자연스럽게 인욕을 하는 것이다.
아당해료(我當解了)하야: 내가 마땅히 잘 깨달아 알아서
광위인설(廣爲人說)하야: 널리 사람들을 위해서 설명해 주어서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멸제차견(滅除此見)이라: 이 견해를 제멸한다. 이와 같은 실상에 어둡고 진리에 어두운 견해, 법리에 어두운 견해를 제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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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아금(是故我今)에 : 시고로 내가 지금에
수조고독(雖遭苦毒)이나 : 비록 아주 심한 고초를 만나나
응당인수(應當忍受)니라 : 응당히 마땅히 참아서 받아들인다.
고통을 참아서 받아들이는 것은 ‘본래 무상한 것이다’ 라고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이 들거나 어떤 사고가 생기거나 하면 ‘이 유루의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이러한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법이고 이치다.
유형한 일체의 존재는 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통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치를 그렇게 파악해서 이치가 명료하게 마음에 납득이 된다면 잘 참아서 소화해 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인수(忍受)다.
참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이야기 했다.
(5) 忍辱修行의 意味
爲慈念衆生故며 饒益衆生故며 安樂衆生故며 憐愍衆生故며 攝受衆生故며 不捨衆生故며 自得覺悟故며 令他覺悟故며 心不退轉故며 趣向佛道故라하나니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三無違逆行이니라
"중생을 염려하는 연고며, 중생에게 이익을 주려는 연고며, 중생을 안락케 하는 연고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게 연고며, 중생을 거두어 붙드는 연고며, 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고며,
스스로 깨달으려는 연고며, 다른 이를 깨닫게 하려는 연고며, 마음이 퇴전하지 않는 연고며, 부처님 도(道)에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연고라'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셋째 어기지 않는 행이라 하느니라."
*
인욕수행(忍辱修行)의 의미(意味) : 인욕을 수행하는 의미
*
우리가 왜 그렇게 인욕을 하느냐?
*
위자념중생고(爲慈念衆生故)며 : 중생을 사랑으로 생각하는 까닭이며
요익중생고(饒益衆生故)며: 중생을 요익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요익중생, 요익유정이라는 말은 화엄경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안락중생고(安樂衆生故)며: 중생을 안락하게 하는 까닭이며
연민중생고(憐愍衆生故)며 : 중생을 연민히 여기는 까닭이며
섭수중생고(攝受衆生故)며: 중생을 섭수하기 위한 까닭이며
불사중생고(不捨衆生故)며: 중생을 버리지 아니한 까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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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득각오고(自得覺悟故)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연고며
영타각오고(令他覺悟故)며: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연고다.
자각각타(自覺覺他) 그래서 각만(覺滿)이라고 한다.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서 그 깨달음이 원만해 지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인욕을 할 수 밖에 없다.
심불퇴전고(心不退轉故)며: 마음이 이 경지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취향불도고(趣向佛道故)라하나니 : 불도에 취향하게 하는 것이라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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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명보살마하살(是名菩薩摩訶薩)의: 이것의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제삼무위역행(第三無違逆行)이니라: 제삼무위역행이다. 그러한 경지, 보살로써의 의무, 법리 이것들과 어김이 없는 행이다. 그것이 제삼무위역행이다.
6, 第四無屈撓行 精進波羅密
(1) 精進行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無屈撓行고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굽히지 않는 행인가."
*
제사무굴요행(第四無屈撓行) 정진바라밀(精進波羅密): 제 4 무굴요행
- 정진(精進)바라밀을 닦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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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을 굴(屈)자 흔들릴 요(撓)자, 무굴요행은 굽거나 흔들림이 없는 행이다.
저자세나 비굴함도 굴요다. 굴요가 없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발심을 통해 각오가 견고하게 되어 있는 것, 결심이나 서원, 누구와의 약속까지도 이 속에 포함 시킬 수가 있다.
새해 첫날에 금연을 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작심삼일로 며칠 못가서 흔들리는 것들도 전부 굴요다. 각오가 꾸준히 이어져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당연히 정진이 따라야한다.
그래서 무굴요행으로 정진 바라밀을 설명한다.
*
정진행(精進行): 정진행을 밝히다
*
불자(佛子)야
하등(何等)이
위보살마하살(爲菩薩摩訶薩)의 : 보살마하살의
무굴요행(無屈撓行)고: 꺾이고 흔들림이 없는 행인가. 찬불가에도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섬이 없는 정진’이라는 노래가 있다. 정진행이기 때문에 무굴요행과 딱 맞는 설명이다.
가, 十種精進
此菩薩이 修諸精進호대 所謂第一精進과 大精進과 勝精進과 殊勝精進과 最勝精進과 最妙精進과 上精進과 無上精進과 無等精進과 普遍精進이니라
" 이 보살이 모든 정진을 수행하나니, 이른바 제일 정진과 큰 정진과 수승한 정진과 특별히 수승한 정진과 가장 수승한 정진과 가장 묘한 정진과 상품(上品) 정진과 위가 없는 정진과 같을 이 없는 정진과 두루한 정진이니라."
*
십종정진(十種精進): 열 가지의 정진
*
차보살(此菩薩)이
수제정진(修諸精進)호대 : 여러 가지 정진을 수행하되
소위제일정진(所謂第一精進)과 :소위제일정진과
대정진(大精進)과 : 대정진과
*
승정진(勝精進)과 : 승정진
수승정진(殊勝精進)과 : 수승한 정진과. 정진의 뜻은 비슷비슷한데 열 구절을 만드느라고 승정진과 수승정진까지 세밀하게 나누어 놓았다.
최승정진(最勝精進)과 : 가장 수승한 정진과
최묘정진(最妙精進)과 : 가장 미묘한 정진과
*
상정진(上精進)과 : 위가 되는 정진과
무상정진(無上精進)과 : 그보다 더 높은 곳이 없는 정진과
무등정진(無等精進)과 : 같은 이가 없는 정진과
보변정진(普遍精進)이니라 :두루두루 어디에 가든지 변함이 없는 정진이다.
뜻은 비슷비슷하지만 무굴요행에서 완벽한 정진을 이렇게 여러가지로 표현했다.
정진 같이 중요한 것이 없다.
한 가지 자기의 목표한 일을 완성하는데 있어서도 그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너나할 것 없이 계획은 모두 잘 세우지만 정진이 없기 때문에 꾸준히 못한다. 계속하는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
나, 離過
性無三毒하며 性無憍慢하며 性不覆藏하며 性不慳嫉하며 性無諂誑하며 性自慚愧하야 終不爲惱一衆生故로 而行精進이요
"성품에 세 가지 독함이 없고 성품에 교만이 없고 성품에 덮어 숨김이 없고 성품에 간탐과 질투가 없고 성품에 아첨과 속임이 없고 성품이 스스로 부끄러워함이요, 마침내 한 중생이라도 시끄럽게 하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
이과(離過): 과오를 떠나다
*
허물을 여의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
성무삼독(性無三毒)하며: 진성, 진여자성, 불성, 무엇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우리의 참된 성품에는 삼독이 없다.
그런데 아무리 오랫동안 참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을 봤어도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법력이 업력을 못이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대한민국 국민 한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야 십분 이해를 하지만, 국가에서도 그렇고 불교에서도 그렇고 교육계나 정치계나 문화계나 종교계의 대표 자리에 있으면서 업력이 법력을 못 이기는 사람은 지탄을 받게 되고 그 사람의 행위가 그가 속한 단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서 문제가 크게 된다.
예를 들어 전세계적으로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겠지만, 그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문제가 커지고 복잡해진다.
깨놓고 이야기 하자면, 음주운전이나 도박까지도 너무 하찮은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그런 일들을 다한다. 개인적인 허물은 누구나 다 있지만 어느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자기 자신을 화반탁출(和盤托出)하여 남이 모를 때,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 행동하느냐를 적나라하게 스스로 한 번 메모를 해본다든지 검토를 해보면 절대로 남의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다.
여기 정진이라는 말을 하면서 성품에는 삼독이 없다고 하는 말이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우리의 자성, 참나, 진여자성에는 탐진치 삼독이 없다. 교만과 자기 허물 덮어씌우고 감춰버리고 남에게 안보이는 부장(覆藏)도 없다. 삼독이나 교만 부장은 사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런데 우리 차별없는 참사람 자리에는 그런 삼독이 본래 없다.육조스님도 그런 이야기를 했고, 선문에는 그런 이야기가 부지기수로 나온다.그래서 우리가 거기에 희망을 두고 안팎이 똑같이 환한 내외명철(內外明徹)을 꿈꾼다.안은 본래로 성품의 삼독이 없고, 밖의 행동으로도 삼독이 없어야 되는데 그것이 잘 안된다.
*
성무교만(性無憍慢)하며 : 성품에는 교만이 없다. 본성에 교만 같은 허물이 없다.
성불부장(性不覆藏)하며 : 본성, 자성자리에는 자기 허물을 덮어씌우고 감추려는 것이 없다.
성불간질(性不慳嫉)하며: 성품에는 본래 아끼고 질투하는 것이 없다. 성품에는 그저 6바라밀 10바라밀 뿐이다. 사섭법 사무량심 인의예지만이 우리 성품에는 꽉 있다.
인의예지가 가득차서 흘러넘치고 사무량심이 흘러넘치고 사섭법이 흘러넘치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이 꽉 차서 흘러넘치는 것이 우리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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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첨광(性無諂誑)하며 : 우리 성품에는 본래 속이고 거짓됨, 아첨하거나 거짓됨이 없다. 그래서
성자참괴(性自慚愧)하야 : 성품은 언제나 겸손하고 부끄러워할 줄 안다.
항상 부끄러워할 줄 아는 승려라고 해서 상참괴승(常漸愧僧)이라는 말이 있는데 참 좋은 이름이다.성품이 스스로 부끄러워 해서
종불위뇌일중생고(終不爲惱一衆生故)로: 한 중생도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침내
이행정진(而行精進)이요: 정진을 행한다.
화엄경 왕복서에도 ‘부유만덕(富有萬德)이나 탕무섬진(湯無纖塵)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자성은 부유하기로 하면 육바라밀과 십선과 사무량심과 사섭법과 인의예지를 가득히 갖추어서 만행만덕을 다 갖추었으니 부유만덕이다. 그러나 텅 빈 입장으로는 삼독도 없고 교만도 없고 부장도 없고 간질도 없고 첨광도 없어서 탕무섬진이다. 그런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성품은 본래 좋은 것만 그렇게 가득히 갖추어져 있고 일체의 허물은 없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도력이 업력을 이기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이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우리 본성은 본래 그러한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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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곷이 참 예뻐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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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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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辱修行....
혜명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혜명화 님, 고맙습니다_()()()_
화엄경 공부하시는라... 潛水하셨군요.^^ 애쓰셨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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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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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화님고맙습니다_()__()_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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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이 본래 만행만덕을 갖추었으니
희망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다 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