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봉(捕城峰)아닌 한성봉(漢城峰)으로 바꿔야" <지행록>에 전하는 백화산 지행록에 보면, 식산 이만부는 반야사에서 하루밤 자고 나서 백화산에 올랐다. 그는 '화령, 중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신덕에 이르러 옥봉과 부딪치면서 뫼뿌리를 안고…….' 라 했으니 현재 백화산 남동쪽 들목인 수봉리 신덕 마을 앞의 백옥정이 선 봉우리가 바로 옥봉이 될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몇 리를 더 가서 북으로 올라 진불암을 들른 뒤 옛 성터와 석문을 지났는데, '이 성을 방군성이라 부르며 여기서 서쪽으로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니 보문암이 있었다' 고 적었다. 그러나 '진불암에서 내려오면 개울이 되고 올라가면 다시 높은 산마루를 이루는 곳' 이라고 애매하게 적어, 그 유적들의 명확한 위치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서쪽 우거진 숲속으로 가보니 보문암…….' 이란 기록으로 미루어 현재 작은 창고 석문도 남아 있는 대궐 터였을 확률이 높다. 그는 '이 암자의 뒷산을 한성봉이라 부르며 이곳이 곧 백화산 제일봉' 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포성봉은 원래 이름이 한성봉이었던 것이 훗날 와전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이 산성의 이름은 원래 금돌성임을 삼국사기가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후대에 방군성으로 이름이 바뀐 것일까. 그는 신라 악사 임천석의 전설과 임천석대의 위치레 대해서도 언급했으나 '우동이하입곡계상유첩석...(又東而下入谷溪上有疊石)' 이라 적어, 한성봉의 동쪽이란 뜻인지 진불암의 동쪽이란 뜻인지 명확치 않다. |
작지만 백화산맥으로 일컬어지는 백화산은 그 흐름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산줄기와는 다르고 비래산처럼 동떨어져 있는 산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머리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뜻으로 두역산(頭逆山) 이라 하기도 했다한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옛 이름이 두역인데 그 이름이 점잖지 못하여 백화산이라고 고쳤다는 것이다.
이 백화산을 두고 독불장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오히려 점잖은 표현이다.
속리산에서 백두대간과 헤어져 구병산을 거쳐 팔음산(762m)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한껏 낮아졌다가 933m 높이의 백화산 포성봉으로 솟구쳐 오른다.
그 산줄기는 남남서로 달리다 다시 주행봉을 빚고 황간 어름에서 슬그머니 잦아 든다.
백화산맥이 상주의 모동면. 모서면. 옥천의 청산면 일대의 분지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더욱 우뚝하고 커 보인다.
백화산맥은 주봉이 지도에 포성봉으로 나타나 있으나 그 연유는 알 수 없으며 동국여지승람 등 모든 기록이 백화산으로 되어 있고 상주쪽에서는 한성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관이 아름답고 주위에 많은 명소를 가지고 있으며 유적도 둘러볼 수 있고, 계곡도 깊고 그윽하면서 산행이 그리 어렵지 않고 교통도 편리하여 고년의 등산객에게도 다주 좋은 산이다.
옛기록인 [상산지]에 백화산이 잘 소개 되어 있다.
백화산은 중모현 서쪽에 있으니 상주에서 77리다. 기괴한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절경을 이루어 형용키 어려우며 산 아래 큰 내가 굽이돌아 남쪽으로 사담에 이르니 넓어지면 담동(潭洞)이 되고 흩어지면 필련(匹練.폭포)과 같으며 계곡 양쪽에 절벽으로 이루었고 절벽 사이에는 층층이 노송과 기이한 꽃들이 피어 일대 장관이다. 이라 했다.
속리산 부근에서 흘러와 백화산 아래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통하여 달이 머물러 간다는 황간의 명소 월류봉을 스쳐가는 물이 석천(상주사람들은 구수천 또는 중모천이라 한다)이다.
[상산지]의 표현처럼 이 석천은 특히 옥동서원이 있는 수봉리와 반야사 사이 협곡을 흘러 내려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그래서 옛 선비 한 분은 백화산에 올라 신선이 오라고 손짓하니 백룡을 타고 청천에 오른다. 라고 노래했다.
옥동서원 뒤 봉우리인 옥봉 아래에는 백옥정이 있으며 용추골 들머리 위의 석천 냇가에는 세심석이 있어 옛 선비들의 풍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밖에 고려의 음악가로 이 곳에 살고 있었던 임천석(任千石)이 조선조 태종이 부르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자살한 임천석대,
상주 황령사의 스님 홍지사가 몽고군 장수 차라대의 병졸들을 무찔렀다는 저승골, 몽고 잔병들이 통곡을 하며 넘었다는 방성재, 부처골, 물탕골, 명경대, 사담, 병풍석대, 난가대, 옥류대, 부처굴, 전투강변(점터강변), 산택정터 등 많은 명소들이 백화산과 바로 앞의 지장산(650m) 사이에 협곡을 관통하는 석천 물가에 있다.
용추는 수봉리 신덕마을에서 백화산으로 가는 용추골에 있으며 맑은 물과 숲 그리고 바위들이 어우러져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그 밖에도 식산 이만부(1664~1732)의 백화산 기행문인 [지행록]에 의하면 팔절탄(팔탄:여덟곳의 명소 또는 여울)이 있었고, 절터도 보문사터, 용문사터, 진불암터, 내원암터가 있으며 주위의 봉우리도 한수봉, 만경봉, 헌수봉, 샛별봉, 옥봉 등 고운 이름들이다.
첫댓글 역시 정의선님 답습니다, 우리고향의 최고명산의 이름을 되찿는건 너무 당연한 일이죠,고향의 명산에 영동군에서 그것도 이름도 잘못된 표지석을 세워 놓은건 바로 철거 하여야하고 우리가 세로 세워야죠, 백화산 사랑모임 화이팅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작업을 준비중인 모서출신 재경모서초등학교 총동문회 김국열사무국장과 힘을 합치면 더욱 좋겠네요. 그리고 상주시청 이정수총무팀장(12회)에 의하면 국립지리원에 민원(다수의 서명이 있으면 더욱 좋다고 함)을 내고 꾸준한 설득이 필요하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되겠지요. 그리고 이 좋은 글 재경모서초등학교 카페에 퍼서 옮기도록 했습니다.
김국열씨와 통화했습니다. 예전에 백화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할려고 연구한 자료가 어디 있다고해서 수배를 해놨습니다. 어쨋든 여러가지로 노력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