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29년에서 1939년 사이에 벌어진 세계의 공황은 결국 2차세계 대전 이라는 살인 전쟁이 해결해
줬다.그 숨은 공로자는 '일본,독일,이탈리아,소련' 이었다.우리는 경제공황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일본이 해외팽창을 열심히 할때인 1900년대 초의 일본은 경제선진국이 아니였다.그들은
돈을 빌려 러일전쟁을 치뤘다.그것도 러시아가 동아시아를 통한 태평양 지역으로의 진출을 일본을
통해 막을려는 영국을 대신해 막대한 피해를 보는 대리 전쟁을 치뤘다.즉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일본
이 했다.
영국의 자본가들은 일본에 많은 돈을 빌려줬다.물론 안심하라고 英日 동맹도 체결해 줬다.극도의
소비를 조장하는 전쟁은 돈이 없거나 누가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할수가 없다.당시 극동의 초라한
일본의 사정 역시 돈은 없었다.그러다 빌린 돈으로 청과의 전쟁인 청일전쟁에서 이기니까 전쟁을
만만히 봤다.그리고 크게 배팅을 해 갚을수 없을 만큼의 돈을빌려 러일 전쟁을 치뤘다.결과는 빚
더미에 올라 앉은 일본이 됐다.우여곡절 끝에 러일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일본의 출혈은 컷고
영국과 미국의 자본가(은행가)들에게 덜미가 잡힌 나라가 됐다.즉 지금의 한국처럼 일본은 자본(빚)
의 노예가 됐고 돈에 묶여 자주성을 잃었다.
2, 특히 1941년 10월만 해도 일본의 조야 원로들이자 정치인들은 미국과의 전쟁을 할 마음이 없었고,
해도 승산이 0%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전쟁을 선동하는 군부의 강경파인 도죠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이 강제로 만들어 지면서 태평양 전쟁은 진실이 되어갔다.미국은 고집적이고
자존심 강한 도죠 히데끼 라는 전쟁광이 일본의 수상이자 전쟁의 권력자가 되길 간절히 바랬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자본가(무기상)들은 돈을 벌수가 없었다.즉 유럽 전선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고,
불황을 탈피할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당시 일본 정부이자 전권의 일본 군부가 영미 자본가들에게 빌린
돈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전쟁이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전쟁을 일으켜서 상대(미국)의 군대를 출동
시키게 해야 그나마 무기상과 운행가(자본가)에게 빌린 돈을 역으로 갚을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빌린 돈을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했기 때문에 깜냥도 않되는 일본이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을
하게 된다.
3, 1900년의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35 달러로 열강들 중 최하위 였다.이때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96 달러,영국은 4,593 달러,프랑스는 2,849 달러,독일은 3,134달러,이탈리아는 1,746달러,한국은 9 달러
였다.따라서 한국이 자립적으로 독립을 한다는 것도 어려웠지만,일본 역시 자국의 경제력으로 볼때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주제가 되질 못했다.경제의 내외형의 차이가 아주컸던 자본주의 열강 내의
후진국가가 일본 이었다.따라서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때의 일본 권력의 모두는 왕이나 정부의 중신(정치가)들
에게 있지 않고 세계의 자본주의를 모르는 저돌적인 군부 강경파들에게 있었다.1940년대 초이자 태평양
전쟁의 시작점의 시기에 있어서도 英美와 일본과의 경제력은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당시 일본은 전쟁에 긴히
필요한 '석유,철강,고무'를 수입해 올수 없을 정도로 봉쇄를 당하고 있었다.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그런데도 일본의 군부정권은 전쟁을 감행해야 했다.수시로 벌린 전쟁의 악성채무 때문에 이판
사판의 심정으로 전쟁을 감행해야 했고, 마침내 세계의 부자(은행가)들과 무기장사들에게 무진장의 돈을 안겨
줬다.그리고 신탁통치 7년을 통해 일본의 모든것을 장악해 동아시아 심부름 꾼으로 써먹게 만들었다.
4,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10년 11달러->1920년 20달러->1930년 99달러->1940년초 110달러가 되는등
아주 저조한 성장을 이뤘다.이런 사실들을 놓고 일부의 친일파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것은 말장난 이거나
허구인 것이 분명해 진다.해방후 미국의 무상원조와 1950년 한국전쟁에 의한 전쟁물자 원조,1960년대초 장면
정권시절 미국의 아이젠아워와 케네디 프로젝트에 의한 유무상 원조의 효과는 상당히 컸다.냉전의 대척점인
사회주의 국가(북한)에 대항해 홍보용 자본주의 개발국가로 한국이 선정되면서 한국의 조국 근대화는 이루워
질수 있었다.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을 상대로 자본주의 우월성 선전 홍보용 국가로 한국이 선정 되었을때,
마침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선진기술과 자본의 유입이 가능해 졌다.미국에 의한 이런 정책이 뿌려질때
한국에는 군부의 박정희가 민주정부를 쿠테타로 전복시키고 일본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았고,그 혜택과 공을
가로챌수 있었다.미국의 AID 차관에 의한 그결과는 한국이 1970년대에 마침내 농업국가에서 탈피해 1인당
국민소득 1,100 달러의 나라로 만들어 진다.
5,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열심히 일(연구)해도 현 북한의 사례를 봐서 알수 있듯이 선진 기술과 자본의 도움이
없으면 세계적으로 경제의 위상이나 지평은 넓어지지 않는다.자국민에 의한 자력갱생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신나간 어용학자들이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것을 외치는 것은 현한국 사회에선 사실
어울리지도 않는다.일단은 식민지란 속뜻이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식민지
근대화론을 말할수 있는지 알수가 없다.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이 7~9달러 였던 19 세기말,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에 의해 개최된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 1차 회의(1899년 5월에서 7월까지)가 열릴때 그런데로 체계를 갖춘 나라로 '미국,영국,프랑스,독일,
일본,맥시코,청나라'등 비유럽 국가들 모두를 포함해 겨우 26 개국 정도를 독립국 자격으로 참석시킬 정도로
민족국가와 국민국가의 형성 역사는 그렇게 길지가 않다.
첫댓글 내용 잘 보았습니다. 일본의 그때의 빚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 세계최대의 빚 국가가 되었네요
돈꿔서 전쟁을 하면 그 빚은 못갚습니다...열도 일본땅이란 척박한 땅에 뭐가 나는것이 있어야 빚을 갚지요.
그 한예로 일본이 패전후 전쟁재벌들이 해체될때 한국의 물산과 토지지배자 였던 동양척식회사도 미국의
JP모건 상사로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상선거사 또 전쟁에 져서 남는게 없네요. . 속빈 강정요
@러브선 그래서 회장님에게 전쟁의 역사에 대한 공부를 권 한바 있었습니다.
현 일본은 냉전시대의 미국 산물 입니다.올림픽,월드컵등 대규모 행사는
모두 빚을 낸 돈이지요...
@깨달음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