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노파(老婆) 불르스 영감
![](https://t1.daumcdn.net/cfile/cafe/9925CB385B2631D623)
김광한
나는 술은 좀 마시지만 춤은 전혀 출줄 몰라서 카바레나 무도장 같은 곳을 가본 일이 거의 없다.춤 대기석에 앉아 있다가 어떤 여자가 춤을 추자고 하면 어쩔까하는 두려움에서 누가 가자고 해도 선뜻 응할 수가 없다.그런데 며칠전 춤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 친구라지만 나이는 서너설위인 박형이 혼자가기 심심한데 대기석에 앉아 구경이나 하라고 해서 노인들이 모이는 시장 한복판의 콜라텍이란 곳을 가보았다.
입장료 2천원을 내고 들어가 객석에서 남들 춤추는 거 구경하고 사이다 한잔 마시고 있는데 얼굴에 분칠갑을 한 늙은 노파가 손을 내밀었다.호~올로 가서 춤을 추자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춤을 못춘다고 하니까 가르쳐줄테니 발(스텝)을 맞춰보자고 하는 것이다.옛날에는 50대부터 노파(老婆)라고 불렀는데 요즘에는 70으로 격상이 되었다.
그래도 극구 사양을 하니까 낯짝값도 못한다면서 다른 백구두에 맥고모자 쓰고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늙은이에게 갔다.이 노파는 아마 프로 춤꾼 같았다.남녀 둘이 부둥켜 안고 응큼하게 구석쟁이에 가 손가락 따로 발가락 따로 추는 불르스란 춤이 끝나고 이번에는 경쾌하면서도 요란한 탱고 음악이 들려왔다.오래 전 현인 선생이 부른 <서울 야곡(夜曲)>이었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이 대목에서 뺑그르르 한바퀴 돈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 같이 그대 맘같이 꺼지지 않더라
얼굴을 마주보며 비벼댄다.
네온도 꺼져 가는 명동의 밤거리엔
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 레인코트 깃을 올리며
오늘밤도 울어야 하나 베가본드 맘이 아픈
서울 엘레지
이 대목 부둥켜 안는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듯 그리 낭만적이 아닌 그로데스크한 그림이 펼쳐진다.술심부름이나 하는 주방 늙은이들이 젊은 배우 흉내내니 그게 잘될리가 없다 스페인이나 남미쪽의 영화를 보면 다리가 곧고 길쭉하고 쟁반같은 똥그란 엉덩이가 하늘로 뻗친 미녀와 역시 앞모습 보다 옆모습이 더 멋진 젊은 남자가 손을 서로 잡고 뺑그로 회초리로 팽이 돌리듯, 여자를 갖고 공기 놀리듯 놀다가 번쩍 하늘로 들었다가 다시 받아서 서로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한폭의 생동하는 그림처럼 멋있는데 이곳 콜라텍의 탱고 추는 늙은이들의 모습은 가히 측은해서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늙고 쭈글쭈글한 얼굴을 위장하기 위해 주사물로 볼따구니를 맹꽁이 뱃대기처럼 볼록하게 만들어 주름살을 추방시킨 허여멀건 소름끼치는 인공 얼굴에 일회성으로 반짝 반짝 들어올리는 파스 붙인 짧달막한 다리가 반쯤 겨우 올라가 맥없이 낙하하는 모습이 애잔해서 보는이의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었다.집에 가서 손주나 보면 자식들에게 칭찬이나 듣지 아직 살아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선지 최후의 안깐힘을 쓰는 모습이 높은 점수가 나올 것같지 않았다.저러다가 뒤로 발라당 나자빠지면 엉치뼈가 박살날텐데 여간 위험하지가 않다.노후된 뼈는 본드발라도 붙지도 않는데.
스러져간 젊음,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더 이상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황혼의 엘레지,지난 세월의 잘못과 시행착오들을 반성하면서 생명의 경외감을 갖는 자세, 그리고 못다한 이웃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배려같은 것들, 그런 생각을 갖고 나머지 삶을 채워보는 모습이 더 아름다울 것같았다.
탱고 노파 영감 정신들 차리세요.낫살 들어서 탱고가 뭡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런데 모르고 태극기 들고 나와 문가일당을 비롯한 호위무사 야당 자한당 놈들 규탄하는 애국 운동하는 분들은 정멀로 존경스럽다.
첫댓글 거기 정신올바른 늙은이별로없읍니다
ㅎㅎㅎ
웃어도 되죠?
제목만 보고 독서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ㅎㅎ
이름하여 콜라텍에 가보셨군요?
그러게요! 일송정님 말씀처럼 건강한 남은 삶에 대한
마지막 고민을 해보고 최선을 다하면 좋으련만...ㅠㅜ
선생님의 묘사대로 상상하니
왜 이렇게 웃깁니까?
ㅎㅎㅎ💃🕺
저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서
웃어봅니다. ㅎㅎ
이런 사실적인 묘사와 상상을 하게 해주셔서 일요일 밤이 즐겁습니다.
왠지 씁쓸하군요!
삶의 쇠락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나를 착잡하게 합니다.
콜라텍에 오신 그분들 모두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소서!
다만 토요일엔 태극기라도 들고 나서 하시길 바랍니다.
애국하시는 분들을 정말로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