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刺客의 破戒
담사는 옛날처럼 손부인을 도와 일을 했다.
그녀의 가게는 작았지만 손님은 제법 많았다.
다점에 들리는 손님은 각양각색이다. 선비, 상인, 관인 등 대체로 중산층 사람들이 많았다.
담사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일에 필요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다.
비록 오는 손님 중 무림인들은 드물었지만, 무림맹의 소맹주인범천대공 연대강의 이름은 일반인들에게도 흠모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연대강에 대한 이야기라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기억해 두었다가 시간이 나는대로 기록해 두었다. 그것은 나중에 암살을 준비할 때 막대한 도움이 될 것이다.
표적에 관해서 잘 알기 전까지는 언제, 어떻게 어떤 형태로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없다.
담사는 곤히 잠든 손부인을 절망감에 젖어 바라보았다.
그 자신이 알기로는 손부인은 정말 좋은 여자였다. 생활력도 강했고 남자에게 순종할 줄 아는, 현모양처의 표본같은 여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화사한 미모와 뽀얀 살결, 풍만한 몸매는 많은 여인을 경험한 담사조차도 수시로 흥분시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용모와 몸매뿐 아니라 그녀는 늘 침상에서 대단한 정열을 발휘하곤 했다.
십여 살이나 연하인 담사를 새로운 남편으로 여기고 있는 그녀는 담사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쾌락을 맛보여주기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주저하지 않았다.
아름답고, 자상하고, 고혹하고, 손부인은 그야말로 사내들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여인이었다.
담사는 문득 문득 이 착한 여인과 그냥 이대로 살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오히려 독약과 같은 것일 뿐이다.
자객이란 정에 이끌리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라는 것은 살수업을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없을지도 모르는 먼 훗날의 일이었다.
문득 담사의 하체가 뜨거워졌다.
창으로 비쳐드는 달빛에 뽀얀 손부인의 하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뒤척이는 통에 위로 말려 올라간 속치마 아래로 배꽃처럼 흐드러진 중년여인의 아랫도리가 고스란히 들어나 보였다.
만지면 묻어날 듯 뽀얗고 흐드러진 허벅지, 그 유달리 풍만한 허벅지 안쪽으로 가뭇가뭇한 음영이 짙게 드리워져있었다.
잠자리에서는 늘 그렇듯이 손부인은 오늘도 치마 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잠들어있는 것이다.
한 순간 열이 오른 담사의 몸이 손부인의 뽀얀 여체를 찍어 눌렀다.
흐드러진 여인의 허벅지는 거칠게 벌어지고 그 중심부의 짙은 음영의 계곡을 향해 뜨거운 불기둥이 돌진해갔다.
잠이 들었던 여인은 움찔했지만 곧 사내의 목에 팔을 휘감으며
그의 뜨거운 입김을 가득 들이마셨다.
[아...!]
꽃뱀처럼 감겨들던 여체는 일순 하반신을 파고드는 둔탁한 통증에 한껏 눈을 치떴다.
여러 차례 경험한 것이긴 하지만 이 사랑하는 연하의 정인과 몸을 합칠 때는 매번 약간의 고통을 느끼는 그녀였다.
그만큼 그의 욕망의 상징은 남다른 중량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내의 움직임도 힘이 넘쳤으나 여체도 그에 못지않게 격렬했다.
가장 예민한 부분으로 불덩이의 세찬 출입을 느끼며 여인은 급격히 정점을 향해 치달렸다.
탄탄한 사내의 몸 아래 깔린 채 여체는 무섭게 뒤틀렸다.
격렬하게 자극을 받아 그녀는 숨가쁜 비명을 토하며 자지러져 갔다.
여인의 짐승 같은 신음은 사내를 한층 자극했다.
한 순간, 사내는 비등점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며
맹렬히 허리를움직였다.
자신의 예민하고 은밀한 동굴로
사내의 불덩이가 급격히 달아오르고 팽팽해지는 것을 느끼며
여인도 발작적으로 둔부를 움직여사내의 행위에 동조했다.
그러다가 여인은 문득 몸 속에 가득 퍼지는 강렬한 분출감을 느꼈다.
거푸 십여 차례 자신의 동굴 깊은 곳에 뿜어지는 그 강렬한 분출감에
여인은 온몸이 녹아드는 듯한 환희를 맛보았다.
손부인은 삭신이 그대로 녹아내리는 듯한 희열 속에서도
간헐적으로 움직이던 사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는 것을 느끼며
그를 휘감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랑, 너무나 행복해요.}
자신 위에 널부러져 어린 애처럼 헐떡이는 사내를 꼬옥 끌어안아주며 여인의 입가에 고혹하고 따스한 미소가 번졌다.
사내가 자신을 사랑해준 증거가 몸 안에 그득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은 그를완벽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는 건성으로 손부인의 큼직한 젖꼭지를 만지며 빙그레 웃었다. 묘한 뜻을 간직한 미소였지만, 이미 사내에게 혼을 빼앗긴 여인은 그 웃음마저도 따뜻해 보였다.
이윽고 한쌍의 남녀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깊은 수면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담사는 가게의 문을 닫고 손씨 모녀와 함께 장안성 북쪽에 있는백운사(白雲寺)를 향했다.
어젯밤 담사는 손부인에게 백운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자고 미리 약속해 두었던 것이다.
손아유는 어린 소녀답게 기쁨에 들떠 있었다.
오랜만의 외출은 손씨 모녀에게는 더할 수 없이 즐거운 것이다.
백운사는 당태종(唐太宗) 시대에 건립된 절로써 구층으로 된 사리탑 등 고적지가 많았다.
연화동(蓮花洞)도 그 중 하나로 석굴 속의 벽에 새겨진 연화십팔불(蓮花十八佛)의 좌상은 성당(盛唐) 시대의 조각기법과 불문의 장엄함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었다.
연화동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유객(遊客)들과 신도들이 붐볐다.
담사는 손씨모녀와 연화동을 구경하면서 다른 이들처럼 불공을 드렸다.
문득 담사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연화동 한쪽에는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가득한 한 노승(老僧)이앉아 있는데 그런 노승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이다.
나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이 노승은 빡빡 민 민대머리에 아홉개의 계인(契印)이 뚜렷이 찍혀 있는데 턱밑에 가득난 백염이 가슴에까지 내려와 있다.
더럽혀진 회색 승포와 초췌한 몰골의 노승은 중인들의 소란에도 아랑곳없이 담담한 시선으로 십팔연화 좌불상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노승의 옆에 사발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시주를 받는 것 같긴 했으나 노승은 그저 웅얼웅얼 알 수 없는 경문을 읊기만 할 뿐 사람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실로 괴이한 노승이었다.
허나 담사의 시선이 그쪽을 향한 것은
노승의 그런 특이한 외양때문이 아니었다.
노승으로부터 느껴지는 무언가 섬뜩한 느낌 때문에 보인
무의식 중의 행동이었다.
[관세음보살!]
본래 불심이 깊은 손부인은 딸의 손을 잡고 노승에게로 다가가
사발에 은자 한 냥을 넣었다.
{아미타불! 잠깐만 여시주.}
시주를 한 뒤 담사에게로 돌아오던 손씨를 보며
노승의 갑작스런부름에 멈추어 섰다.
[소첩에게 하교하실 일이 있으시온지요?]
손부인이 공손히 합장을 하며 묻자 노승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와 담사를 일별하더니 나직이 말했다.
{여시주의 불심이 깊으니 이것은 부처님의 도리를 행함이요.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는 법,
아미타불...여시주께서 언제인가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닥치면 노승을 생각해 주시오.}
말을 마친 노승은 힐끗 담사를 일별한 후 눈을 감았다.
{스님의 말씀 잊지 않겠읍니다.}
손부인은 말 뜻을 헤아리지도 않은 채
연신 감사의 뜻을 표하며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담사의 일행이 완전히 사라지자
노승의 입가에 가벼운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미타불! 업보로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노승의 말은
누구도 그 뜻을 알기는 어 려웠다.
백운사의 산문 앞에는 길가에 불문에서 쓰이는 향이나 염주 등
잡동사니를 파는 몇몇 장사꾼이 물건을 가득 널려놓고 팔고 있었다.
담사는 하나의 그림을 흥정했다.
{이것은 얼마요?}
삼십대 가량의 작달만한 장사꾼은 헤푼 웃음을 지으며 급히 말했다.
{헤헤... 그것은 두 냥 입니다요.}
담사는 비싸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무 비싼 것 같은데 한 냥 두 푼 반 짜리는 없소?}
그의 말에 한 순간 장사꾼은 웬일인니 움찔했다.
하지만그는 이내 안색을 회복하며 대답했다.
{에이 손님도... 좋습니다. 이것은 원래 한 냥 닷 푼은 받아야 하는데 두 푼 반을 깎아 한 냥에 드리죠.}
담사는 만족한 얼굴로 한 냥을 치루고 그림을 구입했다.
관음보살의 반신상이 그려진 그림인데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였다.
그 날 밤 초경 무렵부터 손부인은 담사와 격렬한 정사를 치루어야만 했다.
오늘 따라 유달리 집요한 담사의 행위에 손부인은 이경이 될 때까지 거푸 몇 번이나 혼절을 했다.
결국 진이 다 빠져버린 손부인은 죽은 듯이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손부인이 잠이 들자 담사는 그제야 가만히 침상을 빠져나왔다.
느릿하게 옷을 입은 담사는 이미 수혈이 짚여 깊은 잠에 빠져든손부인을 일별한 다음 방 안을 빠져나왔다.
가게에 들어선 담사는 등잔에 불을 붙였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가게 안이 서서히 밝아졌다.
불을 밝힌 담사는 백운사에 갔을 때 구입한 그림을 꺼내어 등잔에 대고 가만히 흔들었다.
그러자 문득 관음상의 반신이 희미하게 사라지면서 대신 그 자리에 깨알 같은 글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림 속에 숨겨져 있던 글들을 노려보던 담사의 눈에서 날카로운빛이 쏟아져 나왔다.
<비마영(飛魔影)-!
사십 세 가량으로 눈 밑에 검은 점이 있으며 항상 황갈색 장포를 즐겨 있음.
무기는 검(劍)을 주로 사용하지만 가끔 암기도 사용하는데 수법은 불명.
거취는 일정한 곳이 없고 절강성 일대에서 근래 행동해 왔으나 한 달 전부터 악양성 내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위치는 불명.
추명사(追命蛇)-!
내력불명.
오순의 나이로 자주 변장을 하지만 그의 왼손에 호두알만 한 붉은 반점이 있으며 걸을 때 왼쪽발을 약간 절뚝거림.
무기는 은사(銀絲)와 비도(飛刀)를 사용하며 여색을 좋아함.
한 달 전까지 항주성에 머물러 있었으나 현재는 위치를 알 수없음.
다만 비마영과 연락이 닿지 않나 생각됨.
술을 좋아하며 여색을 지독히 밝힘.
독수귀(毒手鬼)-!
독에 능통하고 출신은 오독문(五毒門).
흰옷을 즐겨 입으며 무기로는 주로 암기를 사용하고 오독지(五毒指)에 능통됨.
나이는 이십대 중반이고 살결은 창백하나 보기드문 미남자임.
술을 좋아하지 않으나 대신 여자는 매우 좋아함.
석년 섭혼미랑(攝魂美琅)과 염분이 있었지만 확인된 바 없음.
거취는 불명.
항상 고궁과 주루를 즐겨찾음.>
{그 사이에 팽노대가 이들에 대하여 이 정도라도 밝혀 내었으니 다행이군.}
담사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스쳤다.
{나를 제외한 삼인의 자객... 너희들은 결코 연대강을 보지 못할것이다.}
나직이 독백하는 담사의 표정은 음산하게 보였다.
이어 그 동안 자신이 정리한 연대장에 대한 기록을 훑어보았다.
<범천대공(凡天大公) 연대강(燕大强)-!
나이 : 이십 일 세.
성격: 다감하면서도 굳강함.
무예: 검을 사용하며 가전의 절기인 대천구검(大天九劍)의 검법에 달통함.
소림의 각종 신공(神功)에도 조예가 깊고 강호의 견문 에 정통함.
근황: 풍류적이긴 하나 잘 절제를 하며 현재 북방무림의 패주인
북천뇌보(北天雷堡)의 여식과 혼담이 진행 중.
이 혼담이 이루어진다면 무림맹은 단숨에 서북무림에도 거점을 확보하여 중원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 타문파에 막대한 위협을 주게 될 것임.
무림맹에서는 이 혼담을 적극 추진 중이며 이미 칠할이 성사, 오는 단오절에 정혼이 이루어질 전망임.>
[청부자는 이 혼담을 저지하기 위하여 연대강을 택했군.]
담사의 눈가로 한광이 흘렀다.
[연대강의 암살로 득을 보는 것은 무림맹을 제외한 강호의 모든문파이니 청부자의 정체를 추측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담사는 차근차근히 속을 정리해 나갔다.
우선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삼인의 자객에 대하여 생각해 봐야 한다. 표적을 어찌 제거해야할 것인가는 그 후의 일이다.
담사는 자료를 정리하여 등잔불에 불을 붙였다. 한 순간 불이 환히 타오르고 몇 장의 종이는 재로 변해 갔다.
그는 또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동정호(洞庭湖)-!
중원 오대호(五大湖) 중 가장 큰 호수인 동정호는 그 길이만도천 리를 넘는다.
호변의 경치 또한 수려하고 수많은 군소 섬들이 어울려 동정호는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과 같았다.
동정호 변을 끼고 세워진 수많은 주루와 홍루가 군집된 홍등가를 쾌활림(快活林)이라 부른다.
이 쾌활림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물 위에 배를 띄우고 영업을 하는 기방을 들 수 있다.
화선(華船), 또는 화방(華房)이라 불리는 이 산상의 기루들은 동정호의 명물들이다.
선상에서 술을 마시며 여체를 품는다는 것은 풍류객의 아취를 맛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것이다.
어둠이 쾌활림에 밀려오면 동정호변에는 불야성이 이루어진다.
수많은 청사홍등이 호수를 밝히고 화려하게 치장을 한 야화들이사내의 마음을 휘어잡는 것이다.
환락의 쾌활림,
그 속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인간의 추악함과 야화의 애환이 화려함에 가려져 이 밤도 환락의 열기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옥향(玉香)은 이 배에서 생활을 한 지 벌써 오 년째 접어들었다.
그녀도 쾌활림에서 몸을 팔고 살아가는 수많은 야화 중에 한 명이었다.
옥향은 어둠이 깔리는 호수를 바라보면서 술상을 차렸다.
그녀는 문득 열흘 전부터 자신의 배를 독점하고 있는 사내의 생각이 스쳤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녀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표정 없는 얼굴에 독사 같은 눈초리, 전신에 퇴폐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사십대의 이 사나이는 흡사 들개와도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녀의 경험으로 이런 유의 사나이는 위험한 손님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거절을 하려고 했으나 그를 데리고 온 사내는 그녀의 목줄을 쥐고 있는 쾌활림의 건달패라 순순히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난 뒤 그녀의 마음은 급격히 달라졌다.
그의 인상은 나쁘지만 돈이 많았고 침상에서의 재주는 또 남다른 것이었다.
매일 밤 사내는 그녀를 몇 번이나 혼절시키곤 했다.
오래전에 화류계에 투신하여 닳고 닳은 기녀를 환락의 나락으로 몰아넣을 수있는 것은 실로 대단한 정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부터 옥향은 완전히 간판을 내렸다.
은자 백 냥을 내놓고 사나이는 한 달 동안 머물겠다고 말한 것이다.
백 냥이라면 그녀가 반 년 간 쉬지 않고 벌어도 다 벌지 못할 큰 돈이다.
그때부터 옥향은 그 사나이를 신주 모시듯이 모셨다.
금전의 위력은 그녀의 마음마저 휘어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로써 십 일째, 옥향은 수 년 이래 이러한 행복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매일밤 뜨내기 같은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래서 여자는 일부종사(一夫從事)를 해야하는 것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는옥향이었다.
주방에서 술상을 차려들고 나오던 옥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무슨 일이예요 아저씨?}
그녀는 자신의 옆에 붙은 배로부터 자신의 배로 막 넘어오는 한사람을 발견하고 앙칼지게 말했다.
{무슨 일이라니, 오늘 장사 안 해?}
능청스럽게 말하면서 옥향의 배 위에 올라선 사나이는 바로 장차수의 충실한 정보원이 된 호태였다.
옥향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장사 안 해요. 다른 곳으로 가 봐요.}
{호오. 이것봐라?}
호태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언제부터 네년이 규방아낙이 되었냐? 내가 누구인 줄 몰라?}
옥향의 눈빛에도 독기가 스쳤다.
{당신이 누군지 알게 뭐예요. 어쨌든 장사는 하지 않으니 어서 썩 꺼져요.}
호태의 코에서 더운 김이 쏟아져 나왔다.
{오라, 그러고 보니 어떤 놈팽이를 물은 모양인데 어디 낯짝이나 한 번 보자.}
호태는 시비조로 말하고는 다짜고짜 선실의 휘장을 들쳤다.
{무슨 짓이에요?}
옥향은 교갈을 지르며 호태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
호태는 노성으로 외치며 옥향을 떠밀었다.
[아악!]
뱃전에 처박힌 옥향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호태의 무지막지한 행동에 머리가 뱃전에 부딪친 그녀는 한동안 눈앞이 어지러웠다.
{흐흐! 어디 어떤 봉줄인가 보자.}
옥향을 밀어버리고 호기롭게 외치던 호태의 입이 다음 순간 갑자기 다물어지고 눈은 크게 치떠졌다.
한명의 사내가 밖의 소란을 듣고 선실 휘장을 들치며 나섰던 것이다.
나이는 사십대 전후로 보였는데 무표정한 얼굴에 독사같이 음사한 눈동자와 매부리코, 그리고 실같이 옅은 입술을 지닌, 흡사 들개 같은 인상의 사내였다.
그자의 찢어진 듯한 두 눈에서 쏘아오는 안광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호태는 흡사 수많은 바늘이 자신의 눈 속에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호태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의 생전에 이다지도 위압감을 주는 인물은 처음 보았다.
{너는 누구냐?}
고저(高低)가 전혀 없는 사나이의 삭막한 음성은 호태의 가슴을철렁하게 만들었다.
{나....나는 호태라는 사람이요. 저.... 손...손님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제 딴에는 태연히 말한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럼... 재미 많이 보시오.}
호태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급히 몸을 돌렸다.
헌데 바로 다음 순간,
호태는 눈앞이 어두워지고 목줄기에 무서운 힘이 가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새 사나이는 호태를 가로막고그 의 목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신법의 빠름과 수법의 기묘함은 호태로서 설사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괴이한 수법이었다.
{네놈이 누구냐고 물었다?}
호태는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지고 숨이 막히는 고통에 캑캑거렸다.
{캑... 캑! 나는... 호태...}
바로 그때, 호태의 목을 움켜쥔 사나이의 귓전에 누군가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마영, 그 사람은 죄가 없으니 놓아 주시지.}
일순 움찔 경직되었던 사나이의 시선이 느릿하게 음성이 들린 곳으로 향했다.
옥향의 배와 맞닿은 옆의 배 위에는 장검을 손에 든 장차수와
사공표가 우둑 선 채 무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휘이익!
갑자기 호태의 몸이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순간 사공표가 재빨리 호태의 몸을 받았고 장차수의 신형은 화살처럼 옥향의 배로 쏘아갔다.
사나이는 사공표와 장차수를 발견한 순간, 자신에게 위험이 닥쳤다는 것을 직감했다.
십 수 년 동안 위험과 함께 살아온 그의 반사신경은 놀라울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헌데 그의 검은 선실에 있다.
생각은 느리고 동작은 빨랐다. 다급히 호태를 그들에게 던져 그들이 움찔하는 사이 검을 가지러 선실로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장차수와 사공표는 그에 못지않은 백전노장의 경험자들이다.
장차수의 검은 번갯불처럼 선실로 들어가는 사나이의 등을 베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