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 기호 지세 (2)
사람이 눈앞에서 재로 흩어지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면서도 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맹주부의 인물들에겐 놀랄 시간도 없었다.
아운은 단 한 번 쓸 수 있는 태양무극섬까지 사용하고도 마뇌 야율초를 죽이지 못했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삼살수라마정으로 다시 한 번 마뇌의 생명을 노렸다.
귀가 재로 변해서 날아간 마뇌는 바닥을 구르고 있는 중이라 삼살 수라마정을 피하고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조진양은 자신의 사자철권이 권왕 아운의 권기와 충돌하는 순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과연 그의 권기는 아운의 권기를 물리치고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날아온 또 하나의 권기가 그의 권기와 충돌하면서 서로 공멸하고 말았다.
"이건 도가의 중첩장과 같은 원리인가?"
조진양은 속으로 은근히 놀랐지만, 빠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자신을 한 번의 공격으로 묶어 놓고 마뇌를 죽이려 하는 아운을 저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운을 향해 사진의 선풍사자신권을 펼치기도 전에 다시 한 개의 권기가 바로 코앞까지 날아오는 것을 느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날아온 권기는 조금 전 두 번째 권기보다 훨씬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또 하나의 권기가 숨어 있을 줄 생각하지 못했던 조진양은 우선 자신을 향한 공격부터 막아야 했다.
결국 그는 위기에 처한 마뇌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고 있던 무림의 노고수들은 아운의 절묘한 공격에 감탄하면서 마뇌가 필히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마뇌와 함께 나타났던 노무사들 중 한 명이 어느새 자신의 검으로 아운의 수라마정을 막아가고 있었다.
그의 검이 단순에 다섯 번이나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땅. 따다당"
맑은 쇳소리가 들리면서 삼살수라마정이 모두 튕겨 나갔다.
"젠장"
아운은 투덜거리면서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자칫하면 조진양과 자신의 삼살수라마정을 쳐낸 노고수의 협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아운의 세 번째 권기를 처리하고 앞으로 나서려던 조진양이 미리 물러서 버린 아운을 보고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린 광전사의 흔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귀가 날아간 마뇌 역시 아직도 혼이 나간 표정으로 아운을 보고 있었는데, 그의 앞에는 광전사 중 한 명인 추혼마검 사문이 묵묵히 서서 아운과 대치하고 있었다.
조진양은 갑자기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한 번에 세 개의 권기를 형성해서 나를 공격한 것도 놀라운데. 그 권기의 속도를 교묘하게 조절해서 무려 세 번이나 연속 나를 공격한 것처럼 만들다니. 그리고 그 틈에 광전사 한 명을 죽이고 생쥐처럼 빠르게 물러섰군. 무공이나 재빠른 움직임이나 뭐 하나 모자란 것이 없어. 과연 권왕이다."
아운을 칭찬하면서 그를 생쥐로 비틀어 버린 조진양이었다.
그 말을 듣고 아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대초원의 생쥐는 제법 큰가 보군. 그 쥐가 나만한가? 그런데 아쉽게도 목적했던 야율초가 안 죽어서 좀 서운하군. 하지만 뭐 어차피 내 손에 죽을 테니 지금 살았다고 너무 좋아하진 말아야지. 지금이야 한 방에 죽을 수 있었지만. 다음에 내 손에 걸리면 좀 고달프게 죽을 거야?"
아운의 말에 마뇌 야율초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떨어져 나간 귀가 갑자기 아파온다.
아운이 두려워 감히 그의 눈조차 마주 보기 힘들었다.
만약 추혼마검 사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벌써 죽은 목숨이었다.
아운의 공격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자신이 아무리 광전사들 중 가장 무공이 약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광전사였다.
대초원에서 광전사란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영광된 칭호였다.
즉 야율초의 무공이 기준에 미달되었다면 광전사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는 말이다.
특히 자신은 다른 무공은 같은 광전사들 사이에서 조금 떨어지지만 신법과 보법에 있어서는 광전사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이었다.
이는 자신이 직책상 다른 무공보다는 신법과 보법이 만약의 경우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기에 가능했던 경지였다.
그 상태에서도 아운이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였고, 자신의 눈치가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빠르기에 피하는 것이 가능했지. 자칫했으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을 뻔하였다.
그리고 겨우 살아나서 동료 광전사가 재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사실 그 모습은 야율초 뿐 아니라 조진양을 비롯한 광전사들은 물론이고 신주오기들을 비롯해서 선은들 모두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조진양조차 조금 전 아운의 권공은 정면으로 받아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조진양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만약 정면으로 받았다면 설혹 내가 이기더라도 중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정말 알수록 무서운 무공이었다.
새삼 아운을 다시 볼 수밖에 없는 조진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아운의 표정은 별로 밝지 못했다.
딱 한 번의 기습.
그것으로 마뇌를 죽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와룡은 물론이고 새로운 책사인 마뇌마저 죽음으로써 맹주부에 큰 혼란이 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실패했다.
비록 광전사 한 명을 일격에 죽이기는 했지만. 자신은 이제 당분간은 태양무극섬을 사용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삼절파천왕은 단계별로 사용해야 하는 무공이었다.
비록 수라마정을 연구하는 과정과 근래에 노력한 대가로 일절은 세 번, 이절은 두 번. 사용할 수 있게 늘어났지만. 그것을 순차적으로 펼쳐야 하는 한계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단지 일절인 월광분검영을 사용하고 난 후 분광파천뢰를 두 번 연속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가 조금 나아진 정도였다.
분광파천뢰 이후 거꾸로 돌아가서 월광분검영을 펼칠 수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다시 순차적으로 무공을 펼쳐야 하는 점도 어쩔 수 없는 삼절파천왕의 단점이었다.
장점이 크지만 단점도 많은 무공.
그것이 바로 육삼쾌의연격포인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아운이 처음부터 태양무극섬을 사용하기 위해 연회장에 오기 전 일절인 월광분검영과 분광파천뢰를 어딘가에 한 번씩 사용하고 왔다는 말이 된다.
조진양과 광전사들이 아직도 줄줄이 남아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것은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나마 이전이었다면 나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아운은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용호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삼절파천왕을 단 한 번씩 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일정을 세 번, 이절을 두 번 사용할 수 있게 늘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아운은 용호대전에서 십팔나한을 이길 수 있었다.
이는 아운의 무공이 수라마정을 녹이면서 팔 단계의 극한까지 도달해 있었기에 사능했고, 심살수라마정을 연격포에 섞어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얻은 이득이었다.
아운에게 아쉽다면 사간이라 할 수 있었다.
용호대전을 겪으면서 이제 구단계로 들어가는 확실한 길을 깨우쳤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습득하고 수련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깨우친 것을 약간의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하게 확인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상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운은 조진양을 바라보았다.
무림맹의 칠위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마뇌는 뒤로 물러섰는데 그의 주변에는 여덟명이나 되는 고수들이 둘러싸고 있엇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타났던 무사들이 앞으로 나서고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자신의 삼살수라마정을 막아 낸 노고수도 함께 하고 있었다. 조진양은 아운을 본 다음 북궁손우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시작할 떄가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