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자라는 사회 / 복향옥
요즘,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다. 그 잔혹성은 상상을 넘어선다. 저게 어떻게 아이들의 언행일 수 있어? 아무리 드라마지만 너무 심하다, 했던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취소된 정순신 변호사 일과, 8년간 진행돼 온 학폭 관련 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의 법원 불출석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학교 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정순신 사건은 그의 파렴치한 행태만큼이나 학교의 안일하고 무심한 대처 방법 또한 분노하게 했다. 권력을 이용해 피해 학생을 만신창이로 만든 정순신과 그 아들의 학폭 사실을 감춰준 학교는 피해 학생의 인생을, 아니 그 가족의 행복권까지 송두리째 짓밟고 만 것이다. 정의를 수호하고, 바르게 교육해야 할 사람들이 그걸 버렸기 때문에 사회가 더 공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특별한 애정이 생기게 된 건 단지 친정아버지와 작은아버지와 큰외삼촌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지내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실수로 빚어진 싸움이 있었다. 그걸 본 담임 선생님은 자초지종은 묻지도 않은 채 친구를 꾸짖었다. 친구한테 너무 미안해진 내가 오히려 선생님께 항의했다. “잘못은 제가 했는데 왜 쟤를 혼내세요?”라고. 그때 나는 선생님이 공정한 시선을 잃어버리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알게 됐다. 어쩌면 그때, ‘내가 만약 선생님이 된다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했던 생각이 훗날 희망 사항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은 참 불편한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시선을 피했다. 아버지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기를 바랐다. 내가 교장 딸이기 때문에 편애받는 것도 싫어했지만, 내가 억울하게 꾸중을 들어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하며 무심하게 넘겼다. 그때 당장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곧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사는 되지 못했으나, 어린이집 선생님든, 학원이나 방문교사든 그저 선생님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조건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대했다.
그 존경심과 기대가 깨진 건,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였다. 처음부터 예술가로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예술고를 보낸 터라 나는 대부분 관망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예술고의 역할이나 예술고에 입학하려 유년 시절부터 준비해 온 아이들의 이야기, 그 오랜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사정, 학교의 부당한 처우들을 알게 되면서 학교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학교의 일관성 없는 행정은 신설 학교여서 그럴 수 있는 거라며 기다렸고, 평교사들과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교장은 다만 예술성이 충만한 때문이라며 긍정적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실망감은 전남도교육청으로 이어졌다. 교사 경험도 없는 사람을, 게다가 초대 교장으로 앉힌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는 걸 알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교장이나 수석 교사의 갑질 문제를 조사하기는커녕 학생 탓으로 밀어붙이려는 행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약’이라는 듯 슬그머니 덮으려는 낌새가 역력했다. 몇몇 관계자들에게 받은 실망감은 곧 배반감이 되었고 또다시 분노로 바뀌었지만, 공권력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다 하더라도 권위로 무장해서 휘두르는 그들의 횡포는 그야말로 폭력이었다. 2년 여의 지루한 싸움은 결국 ‘졸업’이라는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 글로리>에서 보여 주는 폭력이나 정순신의 교활하고 집요한 폭력, 권경애 변호사의 비겁한 폭력에 비하면 ‘한국창의예술고등학교’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회의 어둡고 냄새나는 곳을 말이다. 약자를 위하는 일보다 내 안위가 먼저이고 내 이익이 먼저라는 생각은 교육자도 피해 갈 수 없었구나 싶으니 씁쓸하기만 하다.
학교폭력이든 이기주의에 짓밟히는 사람들 이야기든, 남의 일로만 여겼던 게 무던히 미안하고 부끄러운 요즈음이다. 나도 아들딸을 키우고 있는 학부몬데 똑같은 처지가 돼 본 적 없다는 핑계로, 의도적으로 그 생각들을 밀어낸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법이 만들어지면서 폭력이 많이 근절됐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폭력을 멈추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