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트렁크 가방 어딨어? / 정희연
‘호남예술제’는 광주일보가 주최하고, 광주광역시·전라남도·광주광역시 교육청·전라남도 교육청·전남 대학교 등이 후원하는 광주광역시에서 상징성이 높은 문화예술 대회다. 초창기에는 광주 지역 초등학생 위주로 참여했던 것이 이제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고등학생까지 범위가 넓혀진 대규모 예술 축제가 되었다.
아들은 컴퓨터 앞에서 최종 심사 결과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쪼그마한 초등학생이 세상을 모두 잃은 듯하다. 무엇 때문인지 눈치로 알 수 있었지만, 그냥 다독여 주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바꿨다. 이름이 없다. 입상자의 명단 뒤에는 소속 학교가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는 광주 시내 학교가 골고루 섞여 있었는데, 3학년 이후부터는 특정 학교가 도드라지더니 5~6학년은 전체를 휩쓸다시피 했다. 다음날 학교에 전화 했다. 전학 담당 선생님을 찾았다. 교감 선생님을 바꾸어 주었다. 말이 길어지면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 싶어, 호남예술제를 참여하며 느꼈던 것과 아들을 전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말했다. 학기 중이라 판단하기 어려워, 방학 중에 다시 한 번 연락해 주라고 부탁했다. 그 후 두세 차례 더 이어진 후 교감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학교로 갔다. 선생은 시험지를 주었다. 옆에서 문제를 풀고 우리는 면담을 이어 갔다. 다행히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아들은 2학년, 딸은 1학년으로 연년생이었다. 교감 선생의 배려로 딸도 같이 다음 학년에 학교를 옮길 수 있었다. 5, 6학년이 되어 수학여행과 졸업여행 계절이 왔다. 설문지가 도착했다. 기간, 장소, 비용을 묻는다. 해외로 두 차례씩 긴 여행을 떠났다. 아들과 딸은 국제선 비행기를 타는 일이 많았다. 아내도 그랬다. 연말이 되면 매년 해외여행을 떠났다. 명목상 단합대회, 해외 연수였지만 우수 사원을 뽑아, 격려와 축하로 임원진과 사원이 한마음이 되어 즐겁게 보내고 돌아왔다.
혼자서 집을 지켰다. 공무원으로 있는 친구는 새로운 공공사업을 추진하려고 선진국 견학을 가고, 승진을 앞둔 친구는 역량을 높이려고 해외 연수를 떠났다. 일반 기업체에 다니는 친구는 나와 비슷했다. 몇 번 계획을 세웠지만 직장에 매이다 보니 시간을 맞추지 못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다음에 꼭 가세요.”라고 아내와 아들딸이 이야기했지만, 매년 밀렸고 애써 모은 비상금은 그때마다 털렸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한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아침을 준비하려고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되고 일에서의 해방은 그동안 없었던 마음의 여유까지 만들어 낸다. 커피를 마셔도 맛이 다르다.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와는 비교할 수 없다.
컴퓨터 앞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고, 왜 그렇게 크게 실망 했는지 묻지 않았다. 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먼저 챙겼다. 그 짧은 순간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졸업을 며칠 앞두고 올해 2월 초 호주로 떠났다. 워킹홀리데이로 1년을 머물 계획이다. 업계에서 최고의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것이 그의 목표다. 대학 4년, 학기마다 방학이 되면 해외 연수를 갔고, 마지막 학기엔 교환 학생으로 한 학기를 인도네시아에서 보냈다. 여름휴가와 추석이 몇 달 남지 않았다. 그때 컴퓨터 앞에서 찾으려 했던 것을 지금은 일상에서 그냥 지나쳐온 일이 많다. 아들과 함께 스쳐 지나간 일상을 이야기하고, 따뜻한 커피와 근사한 음식을 같이 먹으며, 푸른 바다와 하늘이 보며 쉬지 않고 달려온 삶에서 잠시 멈춤고 싶다.
준이 엄마, 트렁크 가방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