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문화이지 차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 문화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문화일 뿐이다. 동양인의 의식 속에 자리한 문화와 서양인의 의식 속에 자리한 하나의 의미, 그것이 차이와 이해라는 단언 속에 갈등하게 되면 결과가 힘들어 진다는 것을 이곳에 며느리로 와 있는 다른 나라의 여자들은 직감적으로 빨리 감을 잡아 적응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행동만큼이나 생각도 좀 느린 편인가 보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깨우치기에 많은 시간을 허비 했나 싶어 내심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따르릉, 따르릉]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끝에 아파트 현관문을 막 열려는 순간 앙칼지게 전화 벨이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허겁지겁 들어와 받으려는 순간 끊겼다. [엄마] 밖에서 수진이와 함께 수다를 떨며 로라가 들어 왔다. 한국말에 익숙해진 로라는 4개월을 뛰어넘는 수준의 의미를 알아 듣는 것 같아 그녀로서는 기특하기 그지 없었다. [수진아, 고마워] 수진이는 학원 원장의 큰 딸이었다. 다행히 로라는 그들과 잘 어울렸고, 로라는 모든 사람들의 귀여움과 사랑을 받는 아이였다. 그녀와 달리 로라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처럼 느꼈다. 가끔씩 그녀는 그이의 꿈을 꾸었다. 그가 찾아왔다가는 아무 말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꿈. 또 그녀가 그를 찾아갔다 아무도 없는 텅 빈집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꿈. 그리고는 돌아서서 막막하게 홀로 울고 있는 꿈, 오늘 밤도 난 그를 꿈속에서 기다리며 홀로 울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Hello…..] [이- 바보야!....] [왜? 왔어. 이곳은 정말 외로~운 곳~이야!] 술 취한 릴리아나의 횡설수설한 목소리였다. [지금이 몇-시-인-데?] 새벽 4시가 좀 넘는 시각이었다. [릴리아나! 너 많이 취했구나] [여태껏 안자고 술만 마신 거야?] 전화선을 타고 저쪽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릴리아나! 너 울고 있니??] [신랑은?..] 그러자 더욱 흐느꼈다… [I am sorry……] 영어로 떠들다 한국말로 떠들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그립다는 말을 했다. 횡설수설 하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는 소리가 들리다가 전화가 끊겼다. 서둘러 릴리아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당장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로라와 학원 강의가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이번 주말쯤에는 로라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릴리아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항시 명랄하고 괘활한 릴리아나 였다. 그런 그녀가… ‘남편가 다투었는가?’ 설령 다투었다고 해도 릴리아나는 명쾌하게 잘 넘어 갈 수 있을 것인데 심각한 일이 있는 것이다. 나쁜 생각이 자꾸 들어서 잠이 들지 않았다. 간신히 로라를 챙겨 유치원엘 보내고 나서 늦은 잠이 들었다. 학원은 2시부터 수업이라 간밤에 자지 못한 잠을 보충이라도 한 듯 푹 잘 수가 있었다. 얼마쯤 잤을까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가 났다. 꿈인가? 비몽사몽 눈을 뜨고 문을 열자. 릴리아나가 거기 서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꿈인가 싶었지만 분명 우리 집 아파트 현관문에 서있는 사람은 릴리아나 였다. [아휴! 졸려] 입안에서는 아직도 술냄새가 났다. [이렇게 취해서 차를 운전하고 왔어?] [죽으려고 140까지 정신 없이 몰았는데…사고도 나지 않고 날 잡는 경찰도 없다니…] [릴리아나. 미쳤어?] [미치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어떻게 저 모양으로 서울에서 이곳까지 운전을 해왔을까? 어제 저녁 4시가 좀 넘은 시간에 전화를 하고 그녀가 걱정이되 다시 전화를 했을 때 받지 않는 것이 바로 이곳으로 출발을 했던 것이었나 보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4시간이면 오는 거리 이지만 얼마나 빨리 차를 몰았으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죽을 작정을 한 사람 같았다. 불쑥 나타나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아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세상을 다 산 사람의 비애랄까, 어두움, 무서운 냉냉함…그런 것들이 엿보였다. [커피 탈까?] [응]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왜? 그녀는 저토록 방황을 하고 있을까? 커피를 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커피를 끓여 내어 오니 그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소파에 비스듬하게 누운 채 많이 울었는지 얼굴 구석 구석엔 눈물 자욱이 어려 있었다. 잠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소파에 눕히고는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학원 나갈 시간이 다 되었다. 후다닥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쪽지를 썼다. [릴리아나 푹 쉬고 있어 빨리 올게] 그녀를 혼자 두고 강의를 나가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았지만 요즈음 따라 수강생이 줄어 걱정이 많은 원장에게 미안해서 릴리아나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집을 나왔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마지막 수업은 다른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고 정신 없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무언가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없었다. 식탁 위에 쓰여진 쪽지만이 놓여 있었다. [친구에게….. 네가 끓여 놓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구나. 구수한 된장찌개를 이렇게 잘 만드는 파란 눈의 나의 친구가 너무나 외롭게 사는 것 같아서 일까? 아님, 바보처럼 우린 똑같이 동양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안쓰러워서 일까? 왜? 우리는 우리와 다른 문화의 동양 남자를 사랑하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들을 떠나자 못하고 있는 걸까? 너무나 이상하지 않니? 우리 서양 여자들은 이렇게 사랑에 목숨 걸지 않지 않니?..... 네가 언젠가 이야기 했지 아주 오랜 그 옛날 동양과 서양은 아틀란타 산맥을 중심으로 붙어 있어서 서로 오고 갔는데 많은 시간과 빙하기를 거치면서 동양과 서양이 떨어졌다고. 그리고 우리는 그 조상들의 영혼이 쓰여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고 동양의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닌 영혼의 이끌림이라고 그랬던가? 그때 네가 했던 그런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 했는데 이제와 나 역시 너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그래서 한번씩 이상한 꿈을 꾸기도 해… 무슨 의식 같은데 인디언들의 영혼을 달래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 한국에서 신기하게 전해졌던 산골 외딴곳에 있는 신당에서 행하는 진혼 굿 같기도 하고,…. 무당들의 신명들은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던 것 같았어. 아니 너무나 무서워 소름이 끼칠 정도 였으니까. 귀신이 있는 걸까? 우린 기독교적은 교육을 받고 God만이 신이라 여겼지 한국 사람은 전생도 참 많이 믿더라 우리 그이가 우린 전생에 아사달과 아사녀 였을 꺼래. 난 자세히는 모르지만 무영탑 전설 속에서 결국 죽어서만이 해로 할 수 있는 뭐 그런 것쯤의 이야기라 여겨졌어. 내가 동정녀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그이의 아이들 임신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이 왜 한국 문화에서는 받아드려 지지 않을까? 혼혈하면 어때 그게 왜 문제가 돼? 그이가 나보고 알코올 중독자래. 아이만 갖는다면 난 술 끓을 수 있는데…. 어쩜 난 망가지고 있는 것 같아. 아니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면 나 역시 너처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거야. 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아 두려웠어. 그래서 말렸는데… 우리는 돌아올수 밖에 없어 그게 운명이야 오랜 옛날부터 정해져 버린 이끌림. 그것은 사람의 의지로는 어려운 거라는 것을 너와 난 알고 있지. 베스! 용기 있게 로라 아빠에게 찾아가.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 그게 베스가 새롭게 개척해낼 운명이야. 두려워하지 말고 피하지마. 그게 운명이야, 이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일 수 있는 파란 눈의 서양 여자, 이렇게 기다릴 줄 아는 노란 머리의 서양 여자. 그것은 외향 일 뿐이고 [다름] 일 뿐이야. 어쩜, 베스 넌 나보다 희망적이야 그지? 아니 너의 고독의 대가야. 행복해야 해 부디 잘 살아야 해] 군데 군데 한두 방울의 눈물이 어린듯한 그녀의 편지를 보면서 그녀 역시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고독이 세 삼 뼈에 사무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마지막 유언장 같은 그녀의 편지가 마음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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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