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 사 41 : 10
인간의 두려움은 ?
서론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어느 날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 제자들이 찾아와 통곡하면서 "스승님, 이게 웬일입니까? 스승님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으셨는데 이렇게 감옥에 갇히셔야 하다니요.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웃으면서 제자들을 달랬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꼭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와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그는 자기의 양심이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면 사람의 눈총이 두렵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 확신이 강력한 사람은 작은 일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병에 시달리고 또는 알수 없는 병명을 가진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의 대부분의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밝혀집니다, 항상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걱정과 염려가 떠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것이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길을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들이 진정으로 두려워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눅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은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그럼 안간의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1, 현재의 두려움
우리들은 현실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긴장하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도 걱정을 하고 고민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가운데서 두려움에 빠져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라고 하셨습니다.
현대인의 두려움의 본질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나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몰아치는 그런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길 힘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인간의 두려움이나 걱정이나 염려의 근본을 말씀 하십니다,
◈ 믿음이 없거나 적은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입니다. 내가 함께하는데 왜 나를 믿지 못하고 무서워하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의 신앙고백을 보면 (시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4:5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미끄러져서 낭 떨어지기로 굴러 떨어지다가 간신이 나뭇가지 하나를 웅켜 잡습니다.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닿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러자 응답이 옵니다, 손을 놓아라, 이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죽이시려고 하십니까? 손을 놓는 순간 절벽아래로 떨어져 죽습니다, 그러나 버티고 버티다가 손에 힘이 빠져 나뭇가지를 놓습니다. 그런데 바로 발이 땅에 닿는 겁니다. 불과 20센티 아래 땅이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두려워 할때가 많고 . 불순종하므로 쓸데없는 고생을 할때가 있습니다.
2, 미래의 두려움
우리들은 현재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내가 하는 일은 어찌 될것인가? 대인관계는 어떻게 될것인가? 가정의 앞날은 어찌 될것인가? 경제적으로 노후에 어찌될 것인가? 육체적으로 어떤 병으로 인해 눕게 될 것인가? 등등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 미래의 일들을 우리는 미리 알수도 없기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11: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이 염려하고 두려워 한다고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들에게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잠자리에서 내일 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❶ 맡기라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맡기면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맡기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맡기지 못하고 걱정 근심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밭솥에 쌀을 씻어 물을 맞추어 놓으면 밥이 된다는 것 아니까 맘 놓고 맡깁니다> <장거리 여행을 하며 우리는 운전사에게 혹은 기장에게 기관사에게 우리의 생명를 맡기도 평안히 잠를 자면서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❷ 준비하신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란 별명이 언제 생긴 것입니까? (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기서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아침에 이삭을 데리고 삼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어린양을 준비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여호와 께서 준비하시리라” <여호와 이레> 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목자이신 주님이 다 해결하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사후의 두려움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죽음이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연하게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양인들의 묘지는 저 멀리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가운데 혹은 교회당 뜰에 있습니다. 거기 가지런히 줄을 지어 서 있는 묘비에는 앞서 간 이에 대한 추모의 글이나 아쉬움의 인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묘지를 돌며 묘비들을 읽고 다니다 어떤 묘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묘비의 글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글은 단 세 줄이었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두번째 줄이 이어졌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 이 글을 읽자 그는 '이게 그냥 재미로 쓴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가다듬고 긴장된 마음으로 세 번째 줄을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하시오."
죽음에 대한 준비만큼 엄숙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준비는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합니다. 그 준비는 바로 '오늘'을 결코 장난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오는 날이 있고 세상을 떠나는 날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피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음이란 문제 앞에 두려워합니다. (히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라고 합니다. 불신자라도 사후에 세계가 있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 [소크라데스] ”이별의 시간이 왔다. 우린 자기 길을 간다. 나는 죽고 너는 산다. 어느 것이 더 좋은 가는 하나님 만이 아신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후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산 인생을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1:21-23)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생과 사를 초월한 믿음의 사람의 마음입니다.
결론 : 우리들은 늘 두려움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리고 내일 그리고 사후에 까지도 하나님은 온벽하게 우리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믿음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