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50만원의 용돈을 받고,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40만원을 벌어 한 달에 90만원 정도의 용돈을 써 온, 비교적 넉넉한 생활의 소유자였다. 그는 그동안 가계부를 써왔는데 씀씀이를 정돈하는 수준이었지, 생활 경제 관점에서 작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친구로부터 돈을 헤프게 쓴다는 지적을 받고 비로소 가계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생각 없이 쓰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금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필요한 지출의 항목을 보면, 거의 생각 없이 이뤄지는 행동이나, 또는 폼을 잡기 위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항목이 유흥비, 쇼핑, 취미 생활비 등이었다. 그는 한 달에 술값으로 20만원, 쇼핑 5만원, 당구장 등에서 10만원 총 35만원 정도를 지출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 대부분을 먹고 노는데 사용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차라리 알바를 끊고, 그 시간에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는 사회 경험을 미리 쌓는 일이니 끊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알바로 번 돈은 절반은 저축을 하고 절반은 일본어 프리토킹 수업을 받기로 했다. 일본에서 온 어학당 친구나 카페에 가입해서 일주일에 한번 만나 일본어로 대화하며 실력을 늘려가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술자리에 갈 때도 철저한 더치페이를 기본으로 하고, 11시 이후까지 술을 마심으로써 집에 들어갈 때 택시를 타야하는 일을 사전에 스스로 차단하기로 했다. 그 결과 지금은 친구들도 김창호 씨의 생각에 동의, 그들의 술자리가 끝나는 시간은 새벽 1시 경에서 밤 10시쯤으로 당겨졌다. 돈도 덜 쓰고, 술도 덜 마시게 되니 일거양득이었다.
하우스 커피도 완전히 끊어버렸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을 출입하는 자체를 끊어버린 것이다. 그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커피가 습관이 되어버린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커피 생각이 나면 자판기 커피 마시는 걸로 만족했고, 그런 생활을 서너 달 하다 보니 커피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커피전문점에 가는 일도 하지 않았다. 어울릴 일이 있으면 학교에서 만나거나, 대형 쇼핑몰의 휴게실 등을 이용했다.
김창호 씨는 지출 변동 작전을 통해 경제 규모는 그대로 유지하되, 보다 실속 있는 가계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한 한 달에 30만원 정도의 저금도 가능하게 되어 부모님과 상의, 세대주로 독립,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했다.
이은미 28세 금융회사 근무
연봉 2400만원/이전 용돈 월 140만원/현재 용돈 월 34만원
이은미 씨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미혼 직장여성이다. 그녀는 최근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2년 전부터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은미 씨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부모님과 살면 돈도 아낄 수 있고, 밥이며 빨래며 엄마가 다 해주니까 생활도 편리한데, 뭐 하러 집을 나가는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친구는 스물 네 살 때 부모님과 상의, 독립 준비를 합의했고, 부모님도 고민 끝에 친구의 생각에 동의했다고 한다. 친구가 부모님을 설득한 명분의 핵심은 경제적 독립이었다고 한다.
딸의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은 잠시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딸을 안아주면서 격려해주셨다고 한다. 그 뒤로 친구는 2년 동안 한 달에 100만원(월급의 거의 절반) 씩을 모아 2500만원을 만들었고, 그 돈에 아버지가 격려금으로 내놓으신 돈 1000만원을 합해서 3000만원짜리 전세방을 하나 얻었다. 나머지 500만원 가운데 200만원은 세탁기와 기본 가구를 사는 데 사용했고, 나머지 300만원은 펀드에 가입, 일 년 뒤에 400만원 되자, 놔두면 대박이라는 증권사 직원의 말을 듣지 않고 팔아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 한 일이었다.
이은미씨의 친구는 독립 2년 동안 또 다시 2000만원 정도의 돈을 모았고, 지금 살고 있는 3000만원 보증금을 합쳐서 곧 5000만원짜리 전세로 이사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펀드에 넣어 이익을 본 400만원의 돈은, 거기에 백만원을 보태서 부모님께 드릴 생각도 갖고 있었다. 이은미 씨는 친구와 헤어져 집에 돌아와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친구는 야무지게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서른이 다 되도록 부모 그늘에서 용돈 펑펑 쓰며 저축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사는 자신이 한심했고, 지금도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작해도 빠른 편이라며, 웃는 얼굴로 자신을 격려한 친구를 생각하며, 당장 소비 습관을 바꾸기로 한 이은미 씨. 그녀는 그동안 한 달에 30만원 정도를 저금하고 있었는데, 당장 130만으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14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40만원 이하로 줄여야 했다. 그녀의 악바리 가계부는 과연 성공적으로 작성될 수 있을까?
이성진 35세 싱글 디자인회사 근무
연봉 3500만원 / 이전 용돈 월 180만원 / 현재 용돈 월 70만원
이성진 씨가 장가를 가지 못하는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성진 씨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연봉이 3500만원이면, 독하게만 살면 일 년에 원금만 2500만원 모으는 건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독신 남들이 그렇듯 이성진 씨도 적지 않은 싱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목적이 없으니 매일 술이나 마시고 폼이나 잡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아버지로부터 독립 계획서 제출을 요구받았고, 자신의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여자들이 떠날 만도 했다.
이성진 씨는 결혼이 목적이 아닌, 독립된 남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1순위는 건강, 2순위는 실력, 3순위는 돈이었다. 건강해야 멋진 남자가 될 수 있고, 전문 실력이 튼튼해야 평생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며, 돈을 잘 챙기지 못하면 인생이 암울해진다는 것쯤은 단숨에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직업이 디자인 계통에 있다 보니 노는 물에 변화를 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강남에서 점심 한 끼 폼 잡고 먹으려면 2만원 정도는 후딱 날아간다. 하지만 이성진 씨는 점심을 겸한 미팅을 억제하고, 밥은 그냥 밥집에서 5000~6000 원짜리로 해결하기로 했으며, 저녁 미팅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술자리를 줄인 것은 가장 큰 고통이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워낙 야근도 많고 대인관계도 복잡한 편이어서, 술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 자리에 끼지 않으면 어쩐지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감도 생기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성진 씨는 한 달에 네 번 오는 주말 가운데 두 번은 직업과 관련된 저녁 자리를, 한번은 친구 만나는 일에, 또 한 번은 쉬거나,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그녀를 만나는 날로 잡기로 했다. 술자리를 대폭 줄인 뒤 약 한 달 동안은 스트레스가 밀려와서 집에서 혼자 맥주를 사다 마시는 일도 있었지만,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라이프 사이클이 몸에 완전히 익어서 저녁 시간을 이용, 한동안 손을 놓았던 데생 작업을 다시 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영감도 더욱 잘 떠올라 회사에서도 놀라는 눈치다.
김기철 38세 인터넷 기업 팀장
연봉 8000만원/이전 용돈 월 460만원/현재 용돈 109만원
김기철 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완전 된장남이었다. 그의 헤어스타일은 청담동 미용실에서 관리하는데, 평균 보름에 한 번 하는 커트비로 3만5000원, 팁으로 1만원을 썼다. 두 달에 한번 꼴로 염색과 트리트먼트를 받았고, 그 비용으로 회당 15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알랭미끌리, 마크 제이콥스, 아르마니 등 명품 안경 7개의 구입비가 1000만원이었고, 그의 모든 수트 정장은 아르마니, 버버리, 랄프로렌 등이었는데, 그것들의 평균 단가가 300만원 선이었다. 화이트셔츠도 30만원 정도 수준이었다. 시계는 IWC, 테그호이어, 브리틀링 등 세 개를 갖고 있었는데, 모두 4000만원 대의 명품들이었다. 거기에 발리, 페라가모 구두와 프라다 운동화, 구찌 백 등을 합치면, 그가 외출할 때 노출되는 브랜드의 총액은 평균 900만원에서 1000만원 선이었다.
그러나 그가 폼생폼사에 열연하며 살 때 그의 절친은 착실히 가치주에 꾸준히 투자, 3억 이상의 돈을 모았다는 사실과, 그 친구가 자신의 된장적 삶에 대해 극도로 경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 받고는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코 폼을 잡기 위해 명품을 즐기는 것은 아니었으나, 앞으로 직업 뿐 아니라 재산도 두둑해 진 뒤에 다시 명품과 살기로 하고 일단은 된장족으로부터 탈출했다. 탈출 방법은 간단했고, 그 대가로 적지 않은 현금도 확보할 수 있었다. 시계며 가방이며 모든 팔 수 있는 명품을 중고 시장에 내다 판결과 1500만원 정도의 현금을 손에 쥐었고, 그 돈은 작년 이맘 때 해외 펀드에 투자했으나 최근의 금융 사태로 거의 400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 손해가 컸지만, 그동안 명품과 먼 생활을 영위해 오면서 한 달에 300만원 이상을 저축하는 등 적지 않은 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박탈감 보다는 뿌듯함이 더 크다는 게 김기철 씨의 말이다. 물론 묻지마식으로 펀드에 손을 댄 자신의 무식함에 대한 뼈저린 반성도 이미 한 상태며, 그는 최근 2년의 세월이, 앞으로 남은 삶 전체를 위해 소중한 시간이 되고도 남을 것이라는 마음을 김기철 씨는 갖고 있다. 김기철 씨의 1차 저축 목표는 1억. 그것을 종자돈으로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