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주사(將進酒辭)
정철(1536∼1593)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주리혀 메여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울어 예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白楊)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야 뉘우친들 어쩌리
-송강가사(松江歌辭) 성주본(星州本)
술을 마실 핑계는 많다
최초의 사설시조다. 술잔 수를 헤아릴 꽃을 꺾어 놓고 원없이 먹어보자는 것이다. 죽은 뒤에 지게 위에 거적에 덮여 가거나, 비단 장식한 상여에 많은 이들이 울며 따르거나 한 번 가고 나면 그 누가 찾아와 한 잔 먹자 하겠는가?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야 뉘우친들 그 무슨 소용이리.
이 노래가 이백(李白)과 이하(李賀)의 ‘장진주’와 두보(杜甫)의 시에서 뜻을 취하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독창성과 개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인생이란 허무한 것임을 전제한 권주가로서 반복과 대조, 병치로 표현의 묘를 살렸다. 고사성어나 한문 조어를 피하고 생활언어를 시어로 선택해 시대를 넘어서는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