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닉네임:겟러브
메일주소:rlwjr9008@hanmail.net
총 분량(몇 편):76편
하고 싶은 말:어느덧 3번쨰 완결이네요.
부족한게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Τ.Ι.Λ.Μ.Ο.〃백묘[白猫]
* 소설을 스크랩하거나 퍼가시려면 작가님께 직접 문의해주시기 바라며
작가님의 동의 하에 퍼가실 경우 위의 문구와 작가님의 동의여부를 꼭 표기해주세요.
================================================
10.
"자아- 마셔마셔!"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덧 술판이 벌어져있었다.
그 가운데서 나와 누님은 술잔을 몇 번이나 부딪힌 건지 모르겠다.
이미 누님은 불편한 원피스를 던져버리고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이다.
"이봐, 너 꽤 괜찮은 새낀데?"
"에이~ 누님도. 새끼가 뭐에요, 저 엄마 새끼에요."
"푸하하~ 유승하라고 했나? 마음에 들어!"
해태 씨의 누님은 미국에서 굉장히 잘나가는 의류 브랜드의 책임자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러 한국에 온 거라고 했다. 깔깔깔- 웃으며 얘기하느라, 술이 계속 들어가느라 정신이 없다.
언제 정신이 나간건지 잘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누나가 찾아와서 놀랐다. 하지만, 더 놀란 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벌써 해가 저물어 가는데, 낮부터 벌어진 술판은 접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근데, 우리 해태, 마음에 들어?"
"예에? 무슨 소리에요 누님도 차암~"
그러니까! 누나도 무슨 말이야! 내가 옆에 떡하니 있는 거 알면서! 사실 누나는 눈치가 아주 백단이라,
내가 승하씨를 좋아하고 있는다는 걸 단번에 알았을 거다.
"왜에, 둘이 잘 어울리는구만. 사겨라 사겨!"
"에이, 누님도오~"
은근 승하 씨의 대답이 듣고 싶었지만.
"아아, 술이 떨어졌네."
누나의 의해 화제가 휙 바뀌었다. 술을 하지 못하는 난 둘의 술판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누나는 말술인데 승하 씨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누나도 작정했는지 옷도 갈아입고, 나보고는 술을 더 사오라고 시킨다. 가득이나 민증 들고 다니는 것도 귀찮은데.
"해태야! 가득가득 사와!"
"그래, 해태 씨! 얼른 사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아. 승하 씨와 둘이 있을 줄 알고 기쁘기도 하면서 뭔가 떨렸는데.
누나가 와서 다행인건가. 괜히 뒤숭생숭한 기분에 마음이 이상하다. 집밖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평소엔 소주는 입에도 안 댄다면서 누나는 지금 몇 병째인지, 게다가 더 사오라고 하고.
자기는 최고급 와인만 마시네 뭐네 한지가 언제라고. 마트에 들어갔다. 지금 시각은 6시를 지난다.
그러고 보니 내일 본격적으로 트레이닝 시작 한다던데 승하 씨는 저래도 되는 건가.
아무래도 말려야겠다. 하며 술을 조금만 손에 들었다. 계산대 앞에 갔다. 여기가 제일 싫다.
날 이상하게 유심히 쳐다보는 가게 주인. 분명 아까도 왔었는데. 또 뭘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건지.
고개를 빼꼼 들었다. 아까 봤던 얼굴이잖아요 낮에.
"주민등록증 좀 보여주실래요?"
아까 했던 대사도 똑같다. 하는 수 없이 지갑을 뒤적거려 주민등록증을 꺼내들었다.
유심히 살펴보던 주인은 그제 서야 술을 봉지에 담는다. 아- 싫다. 아무리 키가 작아도 그렇지.
그래도 벌써 26살이나 먹었는데 아직도 술을 사려면 민증을 내보여야한다니. 귀찮다.
이래가지고 어디 매니저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어깨가 자꾸 처진다. 승하 씨가 맨날 등을 두르려 주며 펴라고는 하는데.
잘 안 된다. 승하 씨의 손이 느껴질 때 마다 바짝 긴장 되서 어깨를 오히려 더 움추리게 된다.
신문사 취재부에 들어 온지도 꽤 됐다. 승하 씨를 만난 지도 꽤. 같이 일하게 되서 좋다. 이 생각을 하니 입이 절로 움직인다.
승하 씨를 몰래 좋아한지도 꽤 됐다. 정작 자기는 모를테지만. 취재부로 들어온 뒤로 쭈욱.
술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누나..."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다. 뭐지? 하며 거실을 쳐다보는데, 둘 다 뻗어있었다.
술판은 이렇게 잔뜩 벌여놓고, 아무것도 안치우고 쓰러져버리면 어떡해? 내가 다 치워야 하잖아.
"하아.."
길게 한숨을 늘어트리고, 사온 술을 냉장고로 넣었다.
거실 한복판에 널려진 빈 술병들을 치우고, 안주들도 훔쳐서 비닐봉지에 넣었다.
언제 또 쏟은 건지 바닥이 흥건히 젖은 술도 걸레로 닦고, 하니 벌써 7시가 넘었다.
둘을 방으로 옮기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거실에 두기로 했다.
이불을 꺼내 와서 누나를 덮어주고, 그리고 승하 씨를 덮어줬다. 이렇게 팔다리를 쭈욱 펴고 자는 승하 씨는, 너무 귀여웠다.
아무리 남자행세를 한다지만, 내 눈에는 역시 여자로 밖에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들을 속이고 lcukless의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
나는 심사위원이 " 충분한 재능은 있는데, 할 의욕은 거의 없군요. 자신감도." 라고 말해서 떨어졌지만.
몸을 뒤척이며 술기운에 볼이 빨간 승하 씨가 이불을 발로 걷어찼다.
다시 덮어주려 다가갔지만 왠지 위험한 느낌에 방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찌끈거렸다. 단순한 지끔거림이 아닌, 무슨 코끼리가 발로 안마해주는 것 같은 느런 톤급의 느낌.
아침인가, 화사한 햇살이 베란다로 가득 들어왔다. 간신히 눈을 떠 옆을 바라보니, 누님이 자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자 윗 속도 무진장 쓰리다. 얼마나 마신 걸까. 그러고 보니, 거실이 굉장히 깨끗하다. 누가 치웠지? 아아. 해태 씨구나.
지금 몇 시야. 분명 오늘부터… 현재 시각 7시. 아아. 분명 사장님이.. 몇 시까지 오라고 했더라.
─7시!
"해태 씨!!"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머리의 지끈거림과 속 쓰림은 더해졌다.
욱- 하고 위로 올라올 뻔 한 걸 참고 해태 씨를 깨우러 들어갔다. 아직 꿈나라였다 해태 씨 또한.
"해태 씨! 일어나!"
"움... 어..승하 씨.."
"해태 씨!"
"꿈인가..."
어떻게 자면서도 안경을 쓰고 있냐, 라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단히 지각이다 이거.
아무리 우리가 이미 luckless의 합격자라고 해도, 이렇게 지각해도 될 만큼 대우 받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아주 초짜에 초짜 신인인데 첫날부터 지각을 하다니! 해태 씨 깨우는 걸 포기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수를 무자비하게 빨리 한 후 칫솔이 없어 이빨은 대충 치약을 입에 물어 혀로 닦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다 씻고 나니 입을 옷도 없어 해태 씨의 옷장을 마구 뒤졌다.
"미안! 내가 다음에 사줄게!"
자고 있는 해태 씨한테 말한 뒤 아무거나 꺼내 입고서 집밖을 나섰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맥시의 부재중전화가 몇 통이나 와있다. 현재 시각 7시 15분을 조금 지났다.
12.
근처 상가 화장실에서 속옷을 해결 한 뒤 까만 봉다리를 던져 버리고 해태씨 네 도착. 누님은 안계셨다.
술이 깨고 난 뒤 "유 승하 이 새끼는 인사도 없이 가냐." 라는 말과 함께 부모님에게로 가셨다고, 해태 씨한테 들었다.
거실에 한껏 널부러져 있는 내 옷들을 챙기고 주섬주섬 민망하게 놓여져 있는 붕대도 챙겨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해태 씨를 깨우고 가지 않아서 마음에 걸렸는데
맥시와 내가 둘이서 트레이닝 하는 동안은 매니저가 굳이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고, 사장님이 말씀하셨단다.
밥을 먹고 가라는 해태 씨의 말에 순간 솔깃 했지만, 더 이상 피해를 줄 수도 없고 그냥 나가기로 했다.
"옷은 빨아다 줄게. 그럼!"
차라리 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올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해태 씨의 집을 나온 후다. 그래도 예의상 빨아서 줘야지.
하면서 걷는데 옷 한 무더기를 그냥 들고 가자니 거지같기도 하고. 무슨 세탁소 직원 같기도 하고.
옷은 그렇다 쳐도 이, 거대한 붕대가 더 수상쩍었다. 아까 그 봉다리 버리지 말걸.
집으로 갈까 했지만, 오빠가 집에 있었고. 가게는 왜 안 나간거야.
이 상태로 거리를 배회 할 수도 없고, 아까 아침에 택시비로 돈도 다 써버린 상태고, 지갑을 들고 나왔을 리 만무하고!
갈 데는 꽃집뿐이었다. 아무리 문 도혁이랑 같이 있기 싫다하더라도 거지마냥 돌아다니는 것 보다 야는 나으니까.
꽃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게에 다다르자 왠지 선선해 보이는 가게 분위기에 사람 인기척이 없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문 도혁이 있나 없나를 살폈는데 가게 안엔 아무도 없다. 배달 갔나?
아니, 배달가면 문을 닫고 나가야 될 거 아냐. 아무도 없는데 꽃 다 가져가쇼-라는 마냥 활짝 열려있는 가게 문.
"왜왔냐?"
라는 문 도혁의 짜증나는 목소리를 안 들어서 좋긴 하다만. 내가 가게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가게로 들어가서 카운터에 들고 있던 옷을 올려놨다. 그런데 뭔가 사- 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 사람? 손님이 있었나? 무언가를 빤히 쳐다보는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
남잔지 여잔지 손님인지 강도인지, 그건 전혀 모르는 상황.
"저.. 누구세요?"
".."
용기 내어서 말을 붙였다. 안 그래도 지금 꽃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스산한 분위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한손으론 무기 거리를 찾으면서 다른 한손으론 식은땀을 훔치면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손님..이세요?"
벌건 대낮에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진 않겠지? 강도라던가, 치한이라던가. 사, 살인자라던가.
순간 벌떡-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 사람 때문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느라 뒤로 엎어졌다.
그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와중에 엉덩이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껴졌다.
"으씨.."
근데 내가 엎어진지 한참이 지나도 그 사람은 아무런 미동이 없다. 슬쩍 고개를 들어 녀석을 올려다보는데.
뭐가 이렇게도 길어. 얼굴까지 올려다보니 내 목이 아주 꺾였다. 그리고 모자를 덮어쓴 작은 얼굴이 보였다.
"처, 천 시형..?"
도혁이 나간 뒤 나도 나갈 준비를 했다. 갑자기 승하 방으로 들어가 길래 뭔 일인가 했더니.
하지만 도혁이 들고 있던 그 비닐봉지가 거슬린다. 봉지에 동전을 닮아 갈 리가 없잖아?
수상쩍은 냄새가 풀풀 풍겼지만, 지금은 그 냄새가 중요한 게 아니였다. 다른 수상한 냄새가 내 코를 아주 찌르고 있으니까.
벌써 한국에 온지도 몇 주가 지났다. 가게, 집, 가게, 집 하면서 당분간은 느긋하게 쉬려고 했더니.
그래서 내가 일부러 율이 녀석한테도 연락 안 했던건 데 말이야.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서 여기 연예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근데 저번에 텔레비젼에서 우연히 본 HY 엔터테이먼트의 오디션.
율이가 언제 저런 프로젝트를 했지, 하면서 보는데 합격자 이름이. 유 승하. 분명 똑똑히 봤다.
내가 직업병으로 맨 날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맞췄긴 하지만, 분명 유 승하였다.
슬쩍 하고 물어보니까 왠지 당황해하는 것 같이 보였고. 하지만 이런 거엔 전혀 관심 없는 녀석이잖아.
luckless의 전 앨범을 다 사들였긴 하지만, 연예인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적은 없었는데.
더군다나 끼도 없고 재능도 없고 오디션을 볼 위인이 절대 못되는 승하가. 그럴 리가 없겠지.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나는 지금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거다. 유 승하란 이름은 결코 흔한 이름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국에 전혀 없다는 보장도 없지만은.
준비를 다 하고 거울 앞에 섰다. 오랜만의 신경 써서 옷을 차려입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썼다.
이렇게 가리고 나가도 HY 엔터테이먼트 근처로 가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꽃집을 드나들 때는 거리가 구석져서 상관없었지만, 큰 시내로 나가면 하나둘씩 다 알아 볼 텐데.
차라리 율이를 우리 집으로 부를까도 했지만, 몇 년만의 보는 친구인데 예의도 아닌 것 같고,
한국 왔다고 여태 연락도 안 해서 미안한 마음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집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몇 년만의 오는 한국의 거리. 그리고 H Y엔터테이먼트. 건물 앞에 다다르자 차를 세우고 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새 번호를 바꾼 건 아니겠지? 신호음은 가는데.
-어, 뭐야 유하? 네가 웬일이냐.
"몇 년새에 뭔 놈의 건물이 더 커졌데."
-어? 뭔 소리야.
"너네 회사 앞이다. 비서 좀 내려 보내줘. 사장실 안내 좀 하게."
사장실로 들어서자 율이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와락 껴안았다.
한국에 왔으면서 왜 자기한테 연락 안했냐는 듯 등을 탁탁- 토닥이는 강도가 조금 아팠다.
"대체 언제 온 건데?"
"온지 꽤 됐어."
"이 자식이. 한국 오면 온다고 했어야지. 공항에 배웅이라도 가지."
"내가 미쳤다고 널 부르냐. 기자를 몰래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근데 네가 여기 왔다는 건."
"아 몰라. 이미 쫙 퍼졌겠지."
"아무튼 저녁이나 같이 하자. "
"응, 그전에.."
"다른 용건 있구나?"
그제 서야 날 자리에 앉히는 호율. 무슨 일인데, 하는 얼굴이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밀크여서 관뒀다.
"나 블랙이잖아."
"아, 비서한테 말 안했네. 내거 마실래?"
"아니 괜찮아, 아무튼 이번에 그 오디션 있잖아.luckless멤버 뽑는 건지 뭔지 하는 거."
"아아, 너도 알고 있네. 근데 너 그런 거엔 관심 없잖아."
"그렇긴 한데. 합격자 말이야."
"합격자라면, 맥시하고 유 승하였던가."
"유 승하? 확실해?"
"어.. 근데 왜?"
"아니, 그 유 승하란 아이.."
내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율이가 갑자기 풋- 하고 웃었다. 내가 왜, 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 아냐. 그 아이가 왜?"
"얼굴 좀 볼 수 있을까 해서."
"아..."
다소 곤란한 듯 한 표정을 읽었다. 내가 안 돼? 라고 덧붙여서 묻자 율이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응. 안돼겠네. 이 프로젝트는 좀 비밀스럽게 진행할 계획이라. 오디션도 공개하지 않았고. 아직 언론에서도 이름만 오를 뿐이지, 얼굴 공개는 luckless의 컴백과 동시에 할 생각이거든."
"그래? 그래도 어떻게 안 되겠냐? 사진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여주기만 해."
"근데 네가 갑자기 왜 그러냐? 그 애가 왜 궁금한데?"
"아니.. 그냥. 그냥. 근데 이거 여자도 뽑아?"
"아니, 남자만 뽑지."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천 시형 맞지? 어째서 얘가 여기있는거지? 아니 그것보다도 지금 나 속옷 착용하고 있잖아!
까딱했다간 봉긋한 가슴선이 보일까 싶어 나는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서 옷을 가다듬었다. (보일리야 없겠지만)
"여, 여긴.. 어쩐 일이야 형?"
문 도혁이 가게에 없는 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녀석한테 형이라고 부르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유승하 뭔 소리야? 형이라니? 너 이제 성정체성도 잃어버린거냐?"
하면서 온갖 지랄 난리 부르스를 다 떨겠지.
"꽃집에 뭣하러오겠어."
"아아.. "
"너네 가겐지 몰랐네."
나도 너가 들이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사람아.
"꽃 사러 왔뎄지? 어느 꽃?"
그리고 천 시형은 자기가 아까 앉아서 보고 있던 꽃을 손으로 가르 켰다. 알록달록하면서 아기자기한게 아주 예쁜 꽃.
아 그 꽃은! 비비아나..? 푯말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사실 여기 있는 꽃들 이름 하나도 모른다.
보편적 인거 몇몇 개 빼면 다 모르는 것 들 뿐이라 손님들이 물어 볼 때면 항상 푯말에 시선이 박히곤 한다.
가끔 아빠 일을 도와주는 거라 일일이 외울 필요도 없고, 기억력도 딸리는 나로 써는 푯말에 적혀있는 데로 꽃을 설명할 수밖에.
근데 손으로만 가리키면 어쩌자는 거야. 어떻게. 몇 송이를 달라는 건지.
"몇 송이?"
그러더니 천 시형은 아무말 없이 그 꽃을 한 웅큼 쥐어 내게 내민다.
그래도 앞으로 자주 볼 얼굴이라고 나는 최대한 예쁘게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리본도 최대한 예쁘게 매어 묶고 ...
아 잠깐. 근데 갑자기 얘가 왜 꽃을 사는 거지?
호, 혹시 애인?
꽃다발을 싸다 말고 녀석을 흘끔 쳐다봤다. 뭘 쳐다보는 듯 한 무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녀석.
"아.. 혹시, 애인 주려고?"
상관없잖아. 라는 눈빛. 말도 못 붙이겠다 진짜. 근데 이거. 이거야 말로 특종 아냐?
천 시형 열애설?! 숨겨둔 애인이 있었던 천 시형은 몰래 만나기 위해 꽃을 사들고! 아아.. 알고 보니 애인도 톱스타급?!
이거 이거. 저절로 특종이 굴러들어오잖아.
"여기, 만 오천원! 이지만 특별히 형이니까…"
말을 채 다 마치기도 전에 닫히는 가게 문소리에 남의 말도 무시하고 먼저 나가버린 천 시형이 보였다.
밑을 내려다보니 카운터에 떡하니 만 오천원이 놓여져있다. 신경질적으로 돈을 금고에 처넣고 가게를 나왔다.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천시형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내가 기자가 아니지!
아, 하지만.. 가게엔 아무도 없는데? 에이 뭐 어때, 문 도혁이 곧 오겠지.
가게 문을 닫고 점점 멀어지는 천 시형을 뒤 쫒아 달렸다.
저벅저벅. 살금살금. 저벅저벅. 살금살금. 이렇게 걸은지 벌써 몇 십분 째.
미행이 그릇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직업병 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꿋꿋이 뒤를 밟고 있는 나였다.
아니 근데! 애인 만나러 가는 건데 왜 이렇게 먼거야? 그럼 차를 타고 가던가! 아, 그러면 내가 못 따라 가지.
아무튼! 꽃을 들고 가는 게 설마 친구나, 그런 시시한거겠어? 저렇게 예쁜 꽃을! 예쁜 자기 애인한테 줘야 할 거 아냐!
"어..어라?"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순간 천시형의 실루엣이 사라졌다. 이럴 수! 내가 왜 여태껏 여길 쫓아 온 건데!
이렇게 사라지면 안 되는데? 운동부족으로 인한 체력을 잠시 쉬려 벽에 기댄 채 숨만 고르고 있었을 뿐인데!
다리가 나보다 훨씬 길어서 쫓아오는 것도 무진장 벅찼는데!
"아씨!"
여기서 그럼 다시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야한단 말이야? 그때 내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 씨, 뭐."
13.
퉁퉁-퉁-퉁퉁퉁- 엇박 심장 소리. 정말 몰래 뒤를 밟다가 들켜서 뻘쭘한 그런 상황. 이 녀석은 어디서 나타 난거지?
언제부터 내가 뒤를 따라붙는 걸 눈치 채고 있었을까? 귀신 같은 놈.
"아..하..형이 왜 여기?"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여전히 꽃을 들고 있는 거 보니 아직 목적지까지 가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최대한 시치미를 떼면서 녀석의 반응을 살폈다.
"아.. 나는. 그냥 산책?"
"왜 남의 뒤를 밟아. 스토커같이."
누가 네 스토커라는거야! 마치 천 시형은 이런 일이 아주 자주 있다는 듯 말했다.
하기야 요즘 luckless가 대세라고 할 정도로 대단하긴 하지. 아직 4집 앨범이 나오기도 전인데도 열광 하는 거 보면,
컴백하고서는.. 아, 남 일이 아니라 내가 데뷔하는 거기도 했지.
"근데 형은 어디가?"
"어딜 가든."
그러고는 등을 훽 돌려버리고는 다시 갈 길을 가는 천 시형. 마치 다시 따라오지 말라는 포스를 내 뿜고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꽃집으로 돌아와서 옷가지를 챙기는데 언제 돌아왔는지 문 도혁이 떡하니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순간 내 붕대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거 뭐냐고 묻는 녀석에 나도 모르게 횡설수설하며 부랴부랴 꽃집을 나왔다.
집으로 오니 오빠는 없었다. 어딜 나간건지 외출 준비를 한 듯 집이 어질러져있다. 꽃집 밖에 드나들지 않던 오빠가 어딜 간거지?
너무 적막한 집안에 활기라도 불어 넣을 겸 텔레비젼을 켰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어라? 뭐야.
익숙해도 너무 익숙한 얼굴이 지금 티비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집 지키다 말고 대체 어딜 나갔길래 텔레비젼에 나오는 거야 오빠는?
생방송인지 텔레비젼 한 구석에 떡하니 생방송이란 글자가 떠있고. 오빠는 굉장히 멋스럽게 차려입고 있었다.
메이크업도 받은 건가? 집에서 널부러져 있을때와는 아주 딴판인 모습에 다시한번 넋을 잃었다.
사실 오빠가 소설가를 시작한 후 방송에 여러 번 나오곤 했었다.
천재미남소설가라면서 우리 신문사에서도 많이 오르내리곤 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간 뒤에 그간 텔레비젼에서 오빠를 보는 일을 없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보니 왠지 오빠가 다른 세상 사람같이 느껴졌다. 내가 보기에도 오빠는 소설가로 썩히기엔 얼굴이 너무 잘났다.
다 엄마의 피를 물씬 물려 받은 거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은 편이다.
어릴 때에도 오빠와 나를 아예 성을 바꿔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릴 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인 몇 살이야?
보다 나는 아드님이 참 잘 생기셨네요 였지, 라고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방송은 이미 꽤 많이 진행된 듯 점점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대략 소설가 유하.
라는 타이틀을 보니 오빠에 대한 프로그램 같았다.
"마지막으로, 국내 활동 계획은 언제쯤?"
"아.. 한동안은 조금 쉴 생각이구요."
정말 방송인이라도 되는 마냥 오빠는 무진장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긴, 이런 거엔 익숙하니까.
사실 내가 기자가 된 후에 취재부에서 미국에 있는 오빠를 취재 하러 간다면서 몇몇 엘리트 급이 미국행을 했었지 아마.
내 친오빠라는 사실은 물론 숨기고 있다. 오빠 빽으로 어쩌니 저쩌니 하는 말도 듣기 싫고. 오빠가 유명인인거랑 나랑은 별개니까.
한참 텔레비젼을 들여보다가 이내 방송이 끝났다.
"이런, 이렇게 나올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카메라가 꺼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율이한테 찾아오는 게 아니었지.
그새 냄새를 맡아서는 기자들이 달라붙는데 도망가려다 친한 PD와 마주쳤다.
할 수 없이 방송에 임하기는 했는데.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호율과 저녁 식사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승하가 있었다. 언제 온 건지 쇼파에 정신 놓고 자고 있는 게 아직도 내겐 한참 어린 애처럼 보인다.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된 거지.
방에서 이불을 꺼내 덮어주고 , 외출하느라 어질렀던 집을 청소하려는데 바닥에 웬 옷가지가 놓여있었다.
승하 옷이네. 빨래하려면 세탁기에 넣어놓지, 하면서 옷을 드는데 뭔가 툭- 하고 떨어지는─
붕대?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문득 꿈결인지 잠결인지 어릴 때 듣던 동요가 들렸다.
이상한 꿈에 얼른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늦으면 안 되는데 하고 시계를 보니까, 꿈 타령 할 때가 아니구만!
오빠는 자기 방에서 자고 있고 나는 부랴부랴 씻고는 붕대를 확인했다.
고스란히 책상에 잘 놓여져 있는 붕대를 황급히 두르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또 택시를 타야겠다.
아침밥도 먹지 못한 채 사장님이 일러준 곳으로 향했다.
HY엔터테이먼트에도 스튜디오를 딸려 있을텐데 왜 매번 엔터테이먼트와는 좀 거리가 먼 곳에서 하는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니까 맥시가 말하기를, 우리의 얼굴은 데뷔 무대에서 첫 공개 할 거라는 소리를 들었단다.
왜지, 어디 성형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맥시가 보였다. 사장님도 계셨고.
근데 사장님은 안 바쁘나? 왜 맨 날 나와 있는 거지. 감시 하려는 건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허리가 꺾이도록 인사부터 한 후 사장님을 뵈었다.
"아, 승하군 잠깐."
"예?"
갑작스런 사장의 호출. 왜지? 아직 트레이닝 하려면 시간이 남았나? 그나저나 무섭게 왜 나만 부르는 거야. 맥시는?
어느새 난 사장과 둘이 어느 방으로 들어왔다. 방음 처리라도 되는 건지 무진장 조용한 방.
게다가 둘이 있자니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어색한 분위기.
사장님은 한동안 창문을 쳐다보다가 이내 나를 쳐다봤다. 나이를 묻는 게 실례라 묻지는 않았지만,
대략 우리 오빠 또래 정도 되 보이는 사장님은, 언제 봐도 미남이시구나.
"승하군."
"예?"
군. 이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지는 않다만.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건지? 부장님 앞에 서있는 것만큼이나 긴장 됐다.
"혹시, 형 있어?"
"아...네?"
형이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호, 혹시. 오빠를 말하는 건가? 그렇겠지? 소설가 유하. 라고 대답해야하나?
아냐. 아니지. 이런거 일일이 알릴필요는 없잖아. 가족관계 같은 것도 다 불어야해?
"아..아뇨. 없는데요."
"그래. 음.."
사장님과 둘이 대화를 나눌 때는 이때다 싶어 나가봐, 라는 말을 하시기 전에 나는 재빨리 말을 꺼냈다.
"아, 저기!"
"응?"
"저. 죄송한데요. 저.. 사정이 있어서 본명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그건 승하 군이 결정 하도록 해."
"아, 근데.. 제 본명이 유 승하 라는 건 감추고 싶어서요."
"어째서?"
"그게.. 사정이.."
"뭐, 이름 따위야 어찌됐든 상관없지. 알았어."
그리고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앞으로 얼마나 트레이닝을 받아야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luckless는 이미 작곡가 에게 곡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도 얼른 트레이닝을 마치고 노래를 받아서 녹음을 해야 할 텐데. 컴백 &데뷔무대는 대략 내년 초가 될 거 같다.
근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설마 아무런 정보도 못 얻으면 어떡하지? 슬슬 걱정이 밀려온다.
내가 여길 들어온 순간부터 이 오디션을 본 순간부터,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과연 이 잠입 취재를 잘 끝마칠 수 있을지.
부장님은 대체 마무리는 어떻게 지으려고 이따위 일을 벌인 건지.
사실 이게 현실임이 분명 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 나다.
빨리 끝이 나기만을 바랄뿐.
몇 주간의 트레이닝을 하면서 벌써 겨울이 찾아왔다. 시간은 참 빨랐다. 회사에 안 나간지도 벌써 몇 주더라?
이러다 해태 씨랑 나랑 아예 해고 된 것 같은 분위기일거 같은데? 가끔씩 취재부동료가의 안부 문자가 오곤 했지만 그냥 씹었다.
계절이 바뀌니 머리도 점점 길어서는 어깨를 스칠 정도로 길어버렸다. 얘 오디션으로 뽑힌 애 맞아?
라는 눈총을 받으며 열심히 데뷔 준비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머리 자를 시간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점점 내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서워!!"
승하 씨가 또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이렇게 자주 드나들어도 되는 건가.
하지만 승하 씨는 전혀 거리낌 없이 우리 집을 찾아주곤 했다. 요즘 연습하느라 바쁠 텐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오늘도 술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승하 씨.
"해태씨! 나 무서워."
"괜찮을 거에요.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이제 곧 정식 녹음 할 거래. 나 진짜 luckless의 멤버가 되는 건가?"
"오디션에 합격된 순간부터 멤버인걸요."
"해태 씨! 차라리 해태 씨가 붙었으면 좋았을걸. 나 매니저일 잘 할 수 있는데.."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지 승하 씨는 항상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머리도 어느새 길어서는 도저히 남자처럼 보이진 않는다. 근데 대체 어딜 보고 다들 남자라고 믿고 있는 거지.
행동이나 말하는 투가 여성스럽진 못하긴 하지만. 나는 그저 좋다.
"아아.. 이만 가봐야겠어."
"벌써요?"
"맨 날 신세져서 미안하잖아~ 아아, 누님한테 안부좀 전해주고!"
언제 누나랑은 친해진 건지, 다시 미국으로 올라간 누나한테 안부까지 전해달라는 승하 씨.
"바래다줄까요?"
"으응~ 아냐. 혼자 갈수 있어!"
"바래다줄게요."
"괜찮다니까 그러네~"
괜찮아 보이지 않아서 그렇죠. 외투를 걸치고 승하 씨와 같이 집을 나왔다.
"나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
"타세요."
내 차에 승하 씨를 태워보는 게 이제 몇 번이지? 이렇게 술 취한 상태에서는 많긴 하다.
언젠간 맨 정신으로 둘이 어디론가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은. 무리인가.
솔직히 남자로써 전혀 매력도 없고 멋도 없고, 키도 작은 나를 누가 봐주겠어.
승하 씨네 집에 다다르고, 어느새 잠이 들어있는 승하 씨. 안전벨트를 풀러주고는 어깨를 살짝 건드렸지만.
미동도 없었다. 어떡하지? 업고 들어갈 수도 없는거고.
"승하 씨, 일어나 봐요. 집 앞인데."
"음.. "
우선 차에서 내려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부축을 하려고 승하 씨의 팔을 붙잡았지만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 때문에 나도 모르게 팔을 놓아버렸다.
"우리 하, 친구?"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모자를 푹 눌러 써서 코 밑 부분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그런데..누구시죠?"
"승하 오빠 되는 사람. 술이 아주 떡이 됐구만."
그리고는 승하 씨를 한 번에 업는 그 사람. 승하 씨에게 이런 오빠가 있었나?
가족관계를 말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서 오늘 처음 알았다.
"고마웠어. 그럼 잘 가."
"아..네."
그리고 승하 씨를 업은 그 사람은 집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키도 크고, 멋있는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소설가..유하?"
14.
"네~ 오늘은 아주 어마어마한 컴백 무대가 기다리고 계신 거 아시죠?"
"벌써 부터 함성 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요, 빨리 만나보시죠. luckless!!"
언제 부터 정신 줄을 놓은 건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눈부신 조명아래, 앞은 까매서 하나도 보이질 않고,
꺄아아- 하는 함성소리가 귓바퀴를 울리면서 나는. 나는 노래를 했다.
"야, 정신 차려! 야!"
얼굴에 닿는 찬 기운이 방금 자판기에서 따온 음료수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었다.
한 하루는 반쯤 정신이 나간 나를 연신 흔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멤버들은 의외로 차분했다.
저 구석에서 해태 씨는 잘했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고, 나는 애써 웃음으로 답했다.
역시 데뷔 무대라는 것은, 나에겐 압박이자 긴장이 몹시 뒤섞여 무대를 끝마친 뒤에도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난, 정말 나는 luckless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승하! 아니.. 이젠 그 이름으로 불러야 하나?"
"난 도저히 못 부르겠어. 어떻게 지어도 그 딴 식으로 짓냐."
차 설휘와 한 하루가 투덜댔다. 남의 이름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람.
컴백하자마자 스케줄이 주르르 쏟아져서 우린 단 5분도 쉴 새도 없이 다름 스케줄로 이동해야했다. 대기실을 나왔다.
그리고 방송국을 나가려는데, 저 멀리서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탁- 하고 멈췄다.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빨리 가야한다며 재촉하는 한 하루. 하지만 난 안절부절 못하며, 결국 그와 맞닥뜨렸다.
"어..."
여긴 웬일이지, 꽃집은 이젠 아예 문 도혁한테 맡겨 두는 건가. 오빠!
오빠는 새해 들어 방송 일이 잦았다. 그래서 역시 아주 멋스럽게 차려입고는, 사장님과 함께 걸어 들어 왔다.
뭐지? 사장님과 언제 부터 그렇게 친한 사이였다고 저렇게 붙어 있는 거야? 아니 근데 날 왜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냐고!
"율아, 이 애들이.."
"응, lcukless야. 오늘 컴백했거든. 인사해."
그러자 일제히 소설가 유하 아니냐며 우리 오빠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멤버들. 그리고 나.
"아.. 그쪽 이름이?"
어째서, 왜, 내 이름만 물어 보는 건데? 눈치 깐 거 아냐? 떨리는 마음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유..."
"유?"
"유아독존 입니다."
방송국 한복판에서 이렇게 우르르 서있으면 지나다니는 사람 불편하잖아!
제발 이 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순간의 정적.
".. 본명인가?"
"아하하.. 예. 부모님이 워낙.. 사자성어를 좋아하셔서요, 도, 동생 이름은 유유상종이라..."
안해도 말을 또 내뱉어버렸다. 이러니까 더 횡설수설 해 보이는 거 아냐!
"그래."
그리고 오빠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 버렸다. 응? 이제 끝이야? 휴. 역시.
내가 지금 머리도 왁스로 어떻게 만져놨는지 집에서 부스스하게 있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고, 화장도 했으니까 못 알아보겠지.
목소리도 최대한 까느라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방송국을 나왔다.
"야, 너 유하랑 아는 사이야?"
벤에 오르자 한 하루가 물었다. 전-혀. 라고 대꾸하고는 시선을 회피했다.
"사실 나 유하 진~짜 팬이거든. 유하가 쓴 책 다 읽었어."
"그건.. 나도. 집에 전권이 다 있어."
"시형형도 그렇지?"
천 시형은 대꾸하진 않았지만 부정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맥시도 서점에 가서 여러 번 오빠의 책을 보았다며 맞장구 쳤다.
우리 오빠 책이 그렇게 재밌단 말이야? 친오빠면서 한 번도 읽어보진 않았다.
"미형의 얼굴도 부러울 따름이지. 그 나이의 저 얼굴이 말이 되냐."
한하루도 상당히 미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약간.. 누구랑 닮은 거 같지 않아?"
예리한 차 설휘에 발언에 혼자 뜨끔.
해태씨는 유하가 내 오빠라는걸 알고있다. 사실 컴백 전에 들켜버려서 사실 대로 말해버렸다.
떠벌리고 다닐 사람이 아니라는걸 잘 알기도 하고.
"뭐야, 유승하 라고 하지 않았어?"
분명 아침에 부랴부랴 집을 나가더너 승하가 확실 한데. 저렇게 잔뜩 꾸며놓은 모습을 보니깐 아닌것 같기도 하면서.
"아아, 본명이 아니더라고. 오류가 있었나봐."
"진짜?"
"본인이 그렇다는데. 아니, 근데 왜 그렇게 저 애한테 신경을 쓰는거야?"
"아니.. 아무것도."
몇달 전부터 행동이 수상했어. 저건 승하가 분명해.
"오빠, 나왔…"
"승하야아!"
잔뜩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니, 다짜고짜 내게 매달리는 두 사람. 응? 두 사람?
집에 오빠밖에 없을 텐데? 더군다나 오빠가 미쳤지 않고서야 갑자기 이럴리가…
"아빠..어, 엄마?!"
세상에. 내가 지금 꿈을 꾸고있는건가. 몇달동안 연락도 없던 아빠가 불쑥 집에 와있질 않나.
몇년 못봤던 얼굴인 엄마가 떡하니 집에 있질 않나!
"대, 대체.. 언제 온거야?"
"지금~"
아주 태연스럽게 말하며 엄마와 아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마치 어제도 여기서 같이 산 것 마냥 아빠는 텔레비젼을 시청하셨고, 엄마는 부엌에 들어가서…우당탕탕-
또 일을 냈다. 냄비를 굴러다니고 접시는 깨져있고. 더군다나 이게 밥인지 반찬인지 모를 음식들이 식탁에 한껏 차려져있었다.
난 지금 luckless 데뷔만 으로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갑자기 아빠랑 엄마는 왜 나타나는 거야!
아니, 아빠는 몰라도 엄마까지 왜 하필이면 지금! 안 그래도 오빠하나도 벅차죽겠는데.
"잘 먹겠습니다~"
어느새 우리 네 가족은 식탁에 오순도순 앉아있었다. 오빠도 내가 집에 온 후 몇분 뒤 바로 들어왔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아주 차분한 반응. 미국에서 엄마를 많이 봐와서 그런가. 하지만 나는 몇 년만이라구, 무려 몇 년!
"못 본새에 우리 승하, 많이 예뻐 졌네~"
"하하..엄마도."
"이 엄마는 매일 관리 받고 있으니까 하하."
역시, 예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우리 엄마.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도 어렸을 때도 청소년이었을 때도, 성인이 된 지금도 엄마의 얼굴은 전혀 변함이 없다.
소위 저런 걸 동안이라 부르는가. 뭐 나이는 못 속이는지 간간히 주름살과 나잇살들이 살짝, 아주 잘 찾아봐야 보이긴 하지만.
역시 톱 중에 톱 여배우라서 다른 건가.
"우리 승하, 기자일은 잘 하고 있구?"
"아..무, 물론이지!"
luckless의 특종을 잡아내기 위해서 내 이 한 몸 불 싸질러가지고, 내가 지금 호랑이 굴을 제 발로 들어갔어, 엄마.
이렇게 보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였다.
"그래그래, 우리 유하 소식은 들었구."
"엄마는요? 영화 드라마 촬영 끝난 거에요?"
"응~ 그래서 당분간 한국에서의 휴가!"
"당분간?"
"응응. 다음 촬영이 또 잡혀있거든."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우리 엄마는 대한민국의 톱 여배우이자 이젠 세계에까지 널리 알려진 배우이다.
그래서 어릴때 부터 난 엄마의 따뜻한 품은 커녕 보모나 아빠의 손으로 길러졌다.
항상 바쁜 엄마였기에 난 엄마의 젖 한번 물어본 기억도 없다. 그래서 매번 엄마 없는 애라고 놀림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너무나 유명하고도 손 닿을수 없을것 같이 남 같던 엄마였기에 남에게 발설해서도 안 된다,
라고 철저히 교육 받아왔고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아서 난 마치 아빠랑 오빠 이렇게 셋이 사는 가족 같았다.
어른이 된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아, 호율이는 잘 있구?"
"네. 회사가 더 커진 거 같던데요? 키우는 애들도 전부 톱 급이고요."
"그렇게 컷단 말이야? 한번 얼굴 좀 봐야겠네."
호율?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이름인데. 누구지?
"호율이가 누군데?"
그새 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사실 엄마의 이 요상스런 요리를 못 먹겠어서 일부러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사실 아빠에게서 들은 바로는 엄마는 어릴 때부터 배우의 끼가 흘렀다고 한다.
게다가 전형적인 부잣집 딸이어서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내 엄마긴 하지만)
"아아, 유하 절친. 승하는 모르려나?"
"한번도 소개 시켜준적이 없는걸요.
"그래, 아.. HY사장이라고 하면 알려나?"
"아..에?"
우, 우, 우리 사장님?! 하고 아는 사이였어? 오빠랑 엄마가? 엄마야.. 연예인이니까 그렇다 치고. 오빠는 뭐야?
유명한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절친이었어? 난 왜 몰랐지. 학생시절때 오빠는 한번도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적이 없다.
그거야 나도 그렇지만. (엄마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였지, 아마) 그래도 난 내 친구에 대해서 몇 번 말은 했었는데!
"승하가 호율이네 회사 luckless였나? 걔네를 엄청 좋아해요."
"어머 그래? 그럼 호율이한테 부탁해서 한번 만나볼래?"
"아, 아냐! 됐어..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닌데."
왜 과장하고 난리야. 그리고 앨범 준비하는 동안 얼굴 부대끼며 거의 같이 산 것 같이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얼굴들인데,
뭣 하러 계속 봐?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역시 뭔가를 감추고 남을 속인다는 건 참 할 짓이 못됐다.
15.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항상 조용한 적막과 아빠가 만들고 나간 따뜻한 반찬만이 날 반겼는데,
이제는 아빠뿐만이 아니라 오빠도, 게다가 엄마도 모두 집안을 가득 메웠다.
전에 오빠가 미국으로 간 후에 아빠와 둘이 살적에는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 가족 네 명이 다 채워지니 우리 집도 좀 좁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난 그게 더 좋았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 랄까. 매번 그리워하던 엄마가 이제는 집에 있다. 그리고 아침밥을…
"어, 엄마. 엄마는 그냥 쉬어. 내, 내가 할게."
"왜에~ 우리가 몇 년 만에 보는 건데. 이 엄마 밥이 그립지 않았어?"
사실 엄마랑 떨어져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요리.
아빠도 그 이유를 알기에 재빨리 부엌으로 들어와 엄마는 거실로 내보냈다.
"명색이 톱 배우 채 송희가 부엌일은 하는 건~"
"왜 이래! 나도 배우이기 전에 주부고 엄마야! 여보, 비켜 내가 할 거라니까?"
"아아, 엄마! 나나 빨리 나가봐야 돼. 요새 일이 바빠가지고.."
"그래도 아침은!"
"그럼 다녀올게!"
그리고 재빠른 몸짓으로 집밖으로 나왔다. 오빠는 일찌감치 눈치 채고는 이미 집에 없었다. 또 방송일이 있는 건가.
아 오빠랑 또 부딪히기 싫은데. 대체 소설가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연예인 뺨칠 정도로 바쁜 거야?
투덜대며 걷는데 골목 코너에서 기다리고 있는 해태 씨의 차가 보였다.
"여어~해태씨."
차안에 있다가 날 발견하고 내리는 해태 씨. 매니저라고 맨 날 데리러 와준다. 그리고 우리는 luckless숙소로 향했다.
재미없다. 요샌 유하 형님은 커녕 유 승하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게 꽃집이 영 재미없다.
뭐 꼭 형님이나 유 승하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지만은. 사장님도 없이 쓸쓸하기만 한 꽃집을 보는 일은 영 내 체질이 아니다.
사장님은 어디 도피라도 가신건지 영 소식이 없다. 유하 형님은 유명한 소설가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라,
요즘 텔레비젼에서 왕성한 활동 하시느라 바쁜 건 알겠지만, 대체 신문사에서 말단인 유 승하가 바쁠 건 또 뭐야?
심심풀이가 없다, 심심풀이가.
텔레비젼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제 했던 음악프로그램의 재방송이 나왔다.
연예인이고 음악이고 별로 관심이 없어서 돌릴까 했는데, 갑자기 크게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깜짝 놀라서 리모컨을 떨어트렸다.
대통령이라도 나왔나, 아니 대통령이래도 이런 함성 낼 리가 없지.
"네~ 오늘은 아주 어마어마한 컴백 무대가 기다리고 계신 거 아시죠?"
"벌써 부터 함성 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요, 빨리 만나보시죠. luckless!!"
luckless? 아아, 유 승하 방에 주르르 놓여져 있던 그 CD의 가수인가?
그리고 음악의 전주가 흐르자 팬들의 함성은 쥐 죽은듯이 조용해졌다. 노래가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신념인가.
노래가 시작되자 무대엔 마치 아무도 없는 듯 정말 조용했다. 처음 스타트는, 누구지. 까만 머리의 남자.
역시 연예인은 얼굴로 하는 건지 잘 생겨먹었다. 하긴, 못생기면 연예인 될 리가 없지. 그리고 무슨 외국애 하나도 보였다.
두 명은 기타와, 키보드를 하고 있고. 또 하나는…
"유승…!"
딸랑-하고 꽃가게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도혁아~"
하는 내 이름이 들렸다. 순간 놀래서 바닥에 떨어트렸던 리모컨을 발로 밟아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텔레비젼이 꺼졌다.
"사, 사장님!"
"이게 얼마만이야~"
"대체 어딜 다녀 오신거에요?"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마냥 사장님은 날 껴안고는 등을 퍽퍽 때렸다.
"일 안하고 뭐해?"
"아.. 손님이 아직.."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는건가.. 자, 일하자 일~"
"아.. 예!"
아니, 잠깐. 뭔가 잊은 거 같은데. 아 그래 맞아. 텔레비젼! luckless! 유 승하!
텔레비젼을 재빨리 켜고 싶었지만 사장님이 일안하고 무슨 텔레비젼이야!
라고 하실까봐 차마 전원 버튼은 누르지 못하고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리모컨을 들어 매만지고 있는 나였다. 분명 그 얼굴..
유 승하였는데. 잘못 본건가.
"어머! 니들이 그 말로만 듣던 합격자들?"
luckless의 단골 미용실이란 곳에 왔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가자 미용사들이, 심지어 손님들까지 우르르 우리에게로 몰렸다.
"야아~ 성호율 사장이 왜 이렇게 꽁꽁 숨겨두나 했더니, 네들이 그 보물들이야?"
"예..에?"
"되게 귀엽다~ 어머, 외국인!"
이 미용실에서 최고으뜸으로 보이는 한 아줌마가 연신 우리의 볼을 꼬집어댔다.
luckless와는 인연이 아주 깊은지 전혀 스스럼없어 보이는 행동과 말투.
사실 어제 데뷔 준비할 때도 제일 먼저 들른 게 여기였는데 두 번 째로 오니까 또 감회가 새로웠다. (어제는 이 아줌마가 외출 중)
우리들은 컨셉 대로 하나씩 메이크업과 헤어를 손보기 시작했다. 컨셉이라면, 사장님이 말씀해주셨는데 그새 까먹었다. 뭐였지.
천 시형은 시크.(무신경이 더 잘 어울리는데)
차 설휘는 까칠한 성격과는 전혀 반대지만 귀여움.(사실 지는 카리스마가 하고 싶덴다)
한 하루는 카리스마적인 반항아? (이건 뭐..) 그리고 맥시는 차 설휘와는 다른 귀여움으로 해외파식이랄까. 또 나는.. 나는.
나는 뭐지? 존재감 없는? 귀엽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고, 어정쩡한 나는. 어정쩡한게 컨셉? 일리가 없지. 분명 사장님이.
"띨띨?!"
"엇, 뭐?"
"아..아뇨."
마음속으로 생각 한다는 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차 설휘가 옆에서 기차화통을 삶아 먹었나, 라며 타박을 줬다.
아, 띨띨까지는 아니 였지만. 무슨 엉뚱함이었던가. 그랬던 거 같다. 나 그렇게 엉뚱하진 않은데. 컨셉이야 뭐 그렇지만.
4차원이라도 되라는 건가.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 컨셉이 뭐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잖아?
내 목표는 오직 이 그룹의 특종의 특종을 빼 넘기면 되는거 잖아! 본분을 잊지 말자 유 승하. 아니, 이젠 유아독존이었지.
내가 생각해도 이름 참.. 그럼 난 앞으로 독존이라고 불리는 거군. (벌써 본분 잊음)
"야, 뭘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냐?"
마음속의 말이 또 새어나갔는지.
"어..어?"
"자폐아 같애."
"아니..근데."
한 하루 이 녀석은 언제부터 쪼끄만 게 나한테만 반말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바보같이 웃었다. 이제 새해가 되어서 난 27살이라는 나이를 먹었는데!
나이 먹기 싫어서 일부러 떡국도 안먹!..으려고 했지만 반 그릇만 먹었다. 아무튼.
근데 아직 20살인 꼬맹이 주제에 어따 대고 반말이야 반말이? 내가 외면상으론 아직 23살의 남자이긴 하지만 말이야.
외면상으로도 무려 3살 차인데! 언젠간 한번 손 좀 봐줘야겠군. 하면서 치장을 마친 우리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사장님, 전화가…"
나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전화할 사람이 누구시더라.
"누구."
"채여사라고 전하면 아실거 라고.."
"아!"
그리고 난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아주머니!"
"어어, 아주머니가 뭐야, 얘도 참."
"아니, 채송희님 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하하, 그냥 편하게 불러. 바쁜가?"
"아뇨, 무슨 일 이세요?"
"잠깐 우리 집으로 와줄래?"
"예?"
"내가 가기는 좀 그래서 말이야."
"아, 예."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유하 네 집으로 차를 몰았다.
"어서와아~"
어마어마한 명성을 쌓은 톱 여배우치고는 아주 소박한 옷차림. 그리고 집. 유하 네 집에 온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다.
녀석이 미국에 간 후로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지. 아니, 가기 전에도 별로 온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랄까.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하지만 유명인들의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박한 집.
"호율아! 너도 늙었구나."
"어머니도 참.. 여전하시네요."
"하하, 얘기 들었어~ 네가 그렇게 유명한 프로듀서라며?"
"어머니도 미국에서 드라마 히트 치셨다면서요."
"아아, 그거야 뭐. 내가 이 나이 먹고 히트 안치면 되겠어? 하하 농담이고. 우리 유하 소설도 아주 불티나게 팔리더구나."
"그 녀석, 요새 방송일로 바빠요. 하도 여기저기서 부르는 데가 많아서. 소설가인지 연예인인지.."
"소설가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얼굴이 잖니? 내가 좀 자식들을 잘 낳아 놨지. 하하하-"
특유의 웃음도 변하지 않으신 어머니는 예전부터 고급스럽고 아름답고 고귀한 겉 자태와는 달리
털털한 웃음 때문에 나도 몰래 픽- 하고 웃었던 적도 많다.
하지만 용케 그 웃음을 일 하실 때에는 감추신다는 게 역시 여자의 내숭은 좀 무섭달까.
"바쁘신 사장을 불러내서 미안해. 나 무지 살금살금 한국에 온거거든."
"이미 눈치 챈 기자들도 있을 걸요?"
"아아, 안되는데. 난 좀 쉬려고 왔단 말이야. 호율이 얼굴도 볼 겸."
"밖에 나가시질 못하시겠네요, 제가 저녁 사드리고 싶었는데."
"으음.. 우리 호율이가 번 돈으로 밥 한번 먹어야 되는데! 이러고 나가면 안 들키지 않을까?"
대충 하나로 묶으신 긴 머리에 후줄근한 바지와 늘어난 목 티.
하지만 톱 배우티는 어디 가지 않는 듯 그것마저도 빛나 보이는 어머니셔서, 그러고 나가도 사람들이 몰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럼, 저희 집으로 가실까요?"
16.
"근데 그거 알아?"
리허설을 마치고 잠깐 끼니를 때우며 대기실에서 맨 마지막인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그러던 중 제일 막내 같지 않은 막내 한 하루가 대화의 창을 열었다.
"형들이 새로 들어왔잖아. 진짜 장난 아니래 팬들이랑 네티즌들이."
"왜?"
혹시, 너무 인기가 많아서?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첫 출연하고 팬 카페가 수십 개나 만들어지면 곤란…
"안티가 장난 아니라는데?"
나의 예상과는 전혀 반대되는 한 하루의 말 때문에 순간 헙-했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신세대인 한 하루가 제일 인터넷을 많이 애용해서 그런지,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듣고 온 건지 원.
"막 luckless의 왜 찬물뿌리냐면서, 새 멤버는 무슨, 이라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엄청 나. "
"그래?"
반면에 천 시형과 차 설휘는 인터넷 네티즌 악플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는지,
아니면 그런 거 일부러 신경 쓰기 싫어서 인터넷을 하지 않는 건지,
전혀 모르는 표정으로 한 하루의 얘기를 집중해서 들었다.(물론 천 시형은 자고 있는 듯 보였지만)
"게다가, 유아독존 너 이름을 제일 싫어하더라. 푸하하!"
"너..자꾸 반말할래?"
문도혁 자식도 그렇게 반말을 찍찍 해대더니 이 녀석도인가! 역시 저 노랑 대가리만이 똑같은게 아니였어.
문도혁은 1살 차이라고 치지만 이 녀석은! 한참 애가!
"너가 제일 만만한 걸?"
"이게..형한테!"
"우리, 싫어해?"
순간 주먹이 올라가려다 맥시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 바람에 사그라들었다.
"음.. 아니 근데. 그 세력이 반반 인가봐. 팬 카페 벌써 생겼을 걸?"
"오, 진짜?"
"근데 팬 카페를 가장한 안티카페도 있고.."
뭐야. 한 하루의 얘기를 계속 들어보니까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평소에 악플 같은 거 때문에 죽는 연예인들 보면 불쌍하다고도 느꼈지만 그냥 신경 안 쓰면 될 거 아냐, 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막상 장본인이 되어보니까 왜 그런지 다 이해가 될 거 같았다. 누가 내 욕을 대놓고 한다는데,
게다가 얼굴도 내밀지 않고 비겁하게 익명으로!
"누군지 잡히기만 해봐라..."
"뭐?"
"어, 아, 아니.. 하하."
"혼잣말 하는 덴 도가 텃 다니까. 아무튼 형들도 인터넷 안 하는 게 좋겠어."
뭐? 혼잣말 하는 덴 도가 텃 다니까, 지금 나 들으라고 한소리지? 이 자식.. 속으로 화를 억눌렀다.
"근데 넌 왜 하냐?"
"난 갓 십대에서 벗어난 청소년이라고! 아직 생일 안 지나서 만으로는 18살이거든?"
"아..그러셔."
정말 이 잠입취재가 끝날 동안은 인터넷 끊는 게 좋겠군.
"우와~ 호율이 집 짱 좋다!"
어려 보이려고 짱, 이라는 말을 쓰는 게 노골적으로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연거푸 짱이라고 외쳐댔다.
어머니 정도면 이런 오피스텔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실 텐데, 마치 평범한 아주머니가 부잣집을 둘러보는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는 어머니.
"근데 나 너네 집에 들어올 때 파파라치한테 찍혔으면 어쩌지?"
"그렇게.. 한 이상은 누군지 못 알아볼걸요?"
비니를 머리뿐만이 아니라 눈을 다 덮게 쓰신 뒤 목도리는 마스크 하듯이 입을 아예 다 가린 어머니는 얼굴이 보이는데 라고는 코끝?
정도랄까. 아니 근데 집에 들어오셨는데도 왜 안 벗으시는지 물어보려다가 이내 훌훌 털어버리는 어머니에 말을 삼켰다.
"출장 뷔페 시켰어요."
"우리 집에서 시켜도 됐었는데~ 미안하게."
"아뇨, 제가 죄송하죠. 레스토랑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됐어~ 그런데 가면 동네방네 소문만 나고."
쇼파에 털썩 앉으시는 어머니. 아, 유하한테 연락해야겠지?
"어머니, 유하도 일 끝나면 이리로 오라고 할게요."
"그거 좋지~"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유하의 단축키를 눌렀다.
"아, 그리고 승하도!"
"예?"
승하? 승하라면…
"아. 안되겠다. 회사 때문에 못 나오겠지, 됐다."
"어머니, 승하가.. 누군데요?"
"아아.. 호율이 너도 모르나? 소개시켜 준적이 없다고는 했지만.. 내 딸!"
어머니께서 유하 말고 딸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아왔지만. 그 딸이…
"유 승하?"
무대에 서는 것은 두 번째 이다. 몇 번이고 연습했지만, 무대는 역시 긴장과 압박의 둘러 싸여서 지금 이순간은 내가 아닌 것 같다.
난 항상 방송 몇 시간 전에는 안 떨리다가 꼭 5분전, 이럴 때만 무지하게 떨어가지고 지금 전주가 흐르고 있는 이 순간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무대에 꼿꼿이 서서 있는 것도, 관객들을 바라보는 것도, 빨간불이 들어온 카메라의 시선을 맞추는 것도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나는,
아차 드디어 내 파트구나!
"후아..."
무대에서 내려오면 항상 머릿속은 하얘지는 게. 모니터를 안 하면 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긴장 풀어~ 잔뜩 얼었네 또."
한 하루는 나랑 언제 그렇게 친했다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격려해주는 척이야?
"됐네."
팔을 뿌리치자 왜 튕기냐면서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하는데! 아니, 붕대가 티나겠어! 얘는 갑자기 왜 급친이냐고!
"하야!"
이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와, 그리고 익숙한 애칭. 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고개.
"어?…"
일.났.다.
저벅저벅. 이 아니라 탁탁탁- 무진장 빠르게 저 멀리서 걸어오는 우리 오빠. 유하 소설가님!
왜에에! 제발 내 앞에 좀 나타나지 말란 말이야! 오빠.
"모두 안녕?"
어색한 저 인사는 또 뭐람. 우리들은 모두 오빠에게 인사를 했다. 그 와중에 맥시가 없다는 걸 깨달은 나. 어라, 어디 갔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잠깐 이 친구 좀 실례. 먼저들 가있어~"
다짜고짜 내 팔목을 잡는 오빠 때문에 심장이 정말 배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애들도 다보는 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러다 들키겠어!
"예? 아아..자, 잠깐..무슨 일…"
그리고 조그맣게 속삭이는 우리 오빠.
"따라와."
"너 승하 맞지? 어?"
"무슨..말씀이시..신지."
"장난 하지 말고 불어!"
텅 빈 대기실로 날 끌고 온 오빠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내게 물었다.
이런 무서운 얼굴 처음이라 나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라서 애꿎은 손가락만 매만지며 땅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왜 이런데 있는 거야? 왜 네가 이런 옷에, 화장에, 노래를 하고 있어 어?"
"저기..정말.. 왜 그러세요? 전.. 승한지 뭐 시긴지가 아니라.. 유아독존인데요.."
"유아독존 같은 소리하네! 유유상종은 또 뭐고!"
내가 그냥 횡설수설했던 말이었는데, 고걸 또 기억 하고 있는 오빠였다. 머리가 좋긴 하구나.
"하아.. 오빠가 다 이해해줄게. 응? 사실대로 말해."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유 승하! 그러면 과장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잖아! 가족들에게도 비밀 이랬는데!
잠입 취재하는 기자가 여기서 벌써 들켜버리면 체면이!
"아니에요! 왜 그러세요? 전 남자라니까요? 그 쪽 여동생이 아니라 구요!"
"내가.. 여동생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헙."
"이것 봐. 이 얼굴, 이 체격.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속이려면 차라리 특수분장을 하던가."
"아..그런 방법이."
"유 승하!"
"아..오빠 잘못했어!"
역시 난 그냥 무너져버렸다.
부시럭- 응? 뭔가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았어? 분명 이 대기실 텅 비어있었는데. 아차.
그러고 보니 아까는 너무 당황해서 몰랐는데, 여기 우리가 아까 있었던 우리 대기실이잖아?
"저기.."
어눌한 한국말이 내 귀에 박혔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17.
엎친 데 덮친 격 이라고 했던가. 그래, 설상가상. 하필이면 빈 대기실에 맥시가 남아있었다니.
아마 핸드폰을 두고나왔는지(현재 손에 들고 있다) 다시 찾으려 들어와서 우리가 들어오자 급히 화장대 밑으로 숨은 거라고 생각된다.
괜히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혼자 있는 대기실에 갑자기 누군가 들어오면 숨어야겠다는 심리였겠지.(그런 경험이 있었다)
"승하..여자? 오빠..?"
오빠도 참 난감하지 않을 수 없는지 아까보다 한숨을 더 길게 내뱉었다.
"맥시.. 미안한데.. 내가, 나중에 말해줄게? 응?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넘어가줘."
"승하. 역시. 여자 맞지?"
"어..어?"
"승하. 여자다. 그치? 내가. 알았어. 그럴 줄. 알았어."
"어..근데 비밀이야! 이거 모두 secret! 오케이?"
"응! 비밀!"
"그럼 먼저 가봐, 난 뒤 따라서 갈게."
"응!"
그리고 순순히 대기실을 나가는 맥시. 대기실에 있던 게 맥시여서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제대로 된 설명 좀 해줄래?"
"도혁아! 어마어마한 주문이 들어왔어!"
"예..에?"
한동안 손님이 없어서 꽃에 물이나 주고 있던 내게 사장님이 급히 외치셨다. 어마어마한 주문?
"장미 천 송이!"
"예?"
"얼른얼른 준비해~ 꽃다발로는 무리니까 큰 바구니로 해야겠다."
이 시점에 웬 장미 천 송이? 누가 프로포즈라도 할려나? 아직 겨울날씨가 남아있는 이 쌀쌀한 날에?
뭐 봄이 다가오고 있긴 하지만은. 하지만 뭣 하러 천 송이를 사. 돈 아깝게.
내가 꽃집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서도 꽃에 돈쓰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가 꽃을 팔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돈 내면서 꽃 사가는 사람들은 돈이 넘쳐나나. 차라리 먹는 거에 쓰겠다. 아니면 밀린 방세라도.
"주소는 여기. 차타고 가는 게 좋겠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뭐라고?"
"이게 다 일이야, 오빠. 응? 이해해 준 뎄지?"
나는 최대한 요약에 요악을 거듭해 오빠에게 이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다음 스케줄이 luckless 컴백으로 인한 기자회견이 있어서 늦으면 안 되는 중요한 것 이었기에.
사실은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긴 하지만 오빠를 벗어나려고 일부러 다급한척 했다.
"뭐야..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래서 네가 정식으로 오디션에 붙은 거야? 진짜로?"
"그렇다고 남자행세를.. 금방 들킬게 분명해!"
"아냐! 이제까지 안 들킨 거 보면 아무도 몰라."
"네가 아무리 남자 같다고는 해도.."
그렇게 사실 확인 안 시켜줘도 다 아는 사실이야 오빠.
"아무튼, 이 일 끝날 때까지는 비밀이니까.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 절친 이라는 사장님한테도 절대 비밀이야!"
맞아. 하필이면 오빠 절친이 사장님일건 뭐야. 만약 오빠가 이 사실을 사장한테 불기라도 한다면. 난 정말 끝장이야.
아무리 내 친오빠라고는 해도. 오빠도 절친이랑 비밀 얘기 같은 거 자주 나눴을 텐데. 이 얘기를 하면 정말…오빠도 아냐!
"후..그래. 우리 하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
"정말이지? 응? 오빠만 믿을게."
"그치만, 무슨 일 있을 땐. 이 오빠에게 먼저 알려. 알았지?"
"물론이지! 나 정말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걱정 불들어매라구."
그리고 오빠는 날 한번 꽈악 안은 뒤에 토닥여주면서 말했다.
"어른이 되도 변한 게 없냐 넌."
"꽃 배달 왔는데요."
굉장히 어마어마한 오피스텔. 나 같은 건 아무리 알바를 많이 뛴다 해도 절대 살수 없을 것 같은 오피스텔에 지금 나는 들어와 있다.
그것도 맨 꼭대기 층. 이런 곳에 웬 꽃 배달이람? 아니, 오히려 감사해야 되나. 이런 곳에 들어올 수도 있고 말이야.
초인종을 딩동- 하고 누르자 그제 서야 현관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
굉장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남자가 나왔다. 괜시리 몸에 힘이 들어가고 꽃바구니를 한 아름 품에 안은 채로 나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와아- 하고 탄성이 나올 뻔 했다. 이렇게 넓을 수가. 대체 얼마를 쏟아 부어야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는 거지?
"여기다 놔주세요."
"어머~ 웬 꽃?"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테이블에 꽃바구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앞엔.
"채..채송희!"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분명, 분명 내 앞에 있는 게 배우.. 채 송희가 맞는 거지?
요즘 한국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서 외국에 있다는 것만 알았는데?
사장님이 하도 채 송희 채송희 하셔서 별로 관심 없던 나도 이 여배우가 나온 작품을 몇 개 챙겨봤었다.
알고 보니 무진장 유명하다던데? 지금.. 내 앞에 있는 거 맞아?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괜찮아, 호율아."
"아, 죄, 죄송합니다! "
"꽃값 받았으면 나가주세요."
"아..네."
딱딱한 남자의 말투에 기분이 상할 법도 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 였다. 나, 나 지금 채 송희 본거 맞지?
사인이라도 부탁했어야했나? 이거 특종 아니야? 유 승하한테 알려주면 좋아하려나? 아니지, 사장님! 사장님한테!
"U플라워에서 시켰어요."
"어머, 그랬어? 남편이 무지 좋아하겠는 걸? 너무 예쁘다."
승하와 헤어진 후 나는 율이 네로 향했다. 갑자기 왜 엄마가 거기 계신건지.
일 끝나면 바로 오라는 율이의 전화를 받고는 벌써 도착했다.
주차를 한 뒤 오피스텔로 들어가려는데, 뭔가 팍- 하고 뛰어나오는 바람에 부딪혀버렸다. 선글라스를 끼긴 했는데... 어?
"도혁이?"
"어..혀, 형님!"
"네가 왜 여기.."
"꽃 배달이요. 그럼 이만!"
뭔가 바쁜 일이 있는지 잽싸게 오피스텔을 빠져나가는 도혁. 꽃집이 그렇게 바빴나?
아빠가 오랜만에 나가셔서 그런지. 엘레베이터에 오르고 맨 꼭대기 층을 눌렀다.
"어서와~"
엄마는 장미를 한 아름 안고 있었다.
"뭐야, 우리 집에서 장미 시킨 거야?"
"응. 어머니 귀국 축하 기념으로."
"차라리 화환을 시키지 그랬어. 아빠가 좋아 할 텐데."
"그치만 어머니는 장미를 좋아하시니까."
녀석, 우리 부모님 생각해주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외투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출장 뷔페 시켰는데, 좀만 기다려 배고프지?"
"어어, 마침 출출하던 참이다."
"얘들아! 나 장미 목욕 좀 하면 안 될까?"
"예? 이제 곧 뷔페 올 텐데."
"좀 늦게 오라 그래! 갑자기 장미 속에 풍덩 빠지고 싶은 거 있지~"
그리고는 장미를 들고 욕실로 들어 가버리는 엄마.
"엄마도 참."
안 그래도 조금 심난했는데 이렇게 엄마랑 율이랑 같이 있으니 훨씬 마음 편했다. 승하가 그런 일을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그동안 회사 나간다면서 이런 일을 꾸며왔다는 게. 난 참, 그 부장이란 녀석이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일로 인해 승하한테 피해가 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유하."
"어..어?"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아니, 그냥 피곤해서."
맞아. 호율이가 luckless를 최대한으로 밀고 있던 거 같던데. 승하가 걔네의 취약한 점이라도 빼내간다면, 호
율이 에게도 피해가 갈 텐데 말이야.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인 건지. 난 대체 어떻게 해야 되지? 호율이에게 말해야하나?
안 돼. 승하가.. '오빠 절친이라는 사장한테도 절대 비밀이야!'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했으니까.
"너, 동생 얘기는 왜 나한테 한 번도 안했냐."
"어..어?"
왜 갑자기. 동생 얘기가 나오는 거지? 설마. 벌써 승하에 대해서 알고 있나?
"luckless 새 멤버로 뽑힌 유 승하 말이야. 너 동생 맞지?"
"아.. 무슨 소리야?"
"너 여동생 있잖아. 근데 그 여동생이 우리멤버에 들어왔다는 건, 남자라고 속인거지?"
"율아.."
"이거.. 좀 곤란 하게 됐는데."
큰일이다. 이러다가 승하게 그 멤버에서 잘리기라도 한다면, 회사에서도 잘리는 건가? 아냐. 오히려 그게 나을지도 몰라.
이렇게 계속 속이는 것보단... 그래도 승하가 모처럼 자기 힘으로 얻은 직장인데. 하지만 승하 하나는 내가 먹여 살릴수 있잖아.
아니, 그래도…!
"내 동생이름이 유 승하긴 한데. luckless에 뽑힌 애랑은 별개인거 같다. 왜 갑자기 그딴 소리야?"
"뭐? 아니.. 너가 유독 그 애한테 관심이.."
"아니, 난 내 동생하고 이름이 비슷 하길래. 그랬더니 남자잖아? 내 동생은 여자라고."
"아..그랬어?"
"동명이인인가보지."
"그럼 너 나랑 여태 지내오면서 왜 동생은 한 번도 안 소개해줬어?"
"그건..."
율이와 내가 처음 만난 건, 그 일이 있은 후 별로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너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아...하. 그랬었나."
"어렸을 때 너도 남에 집에서 노는 건 불편하다고, 우리 매일 밖에서만 놀았잖아. 기억 안나?"
"음.. 그랬긴 했지."
"그렇게 내 동생이 보고 싶었어? 이거 위험한데.. 내 동생 노리는 거야?"
"내가 미쳤냐. 호연이 죽은 지 몇 년 됐다고."
순간의 정적. 순간 호연이라는 두 글자가 이렇게 쉽게 입 밖으로 꺼내도 되는 이름인지 몰랐다.
너무 당황해서 입이 절로 다물어 졌다. 그저 난 호율만 바라봤다. 하지만 본인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있었다.
"왜 그렇게 심각해. 못할 말 한 것도 아니고."
"아...그래."
"곧 있음 기일이네. 같이 가줄 거지?"
"물론이지."
호연이 죽은 지 몇 년 됐다고 했나...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바보 녀석.
18.
"야, 근데."
이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전환 시키려고 꺼낸 말이 아니었다. 호율의 얘기에 당황한 내가 횡설수설하며 꺼낸 말도 아니었다.
"그 뽑힌 애 말이야. 본명이 유승하 아니라며?"
"아.."
호율이 순간 아차, 했는지 하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승하도 나한테 안 들키려 이름을 급히 바꾼 건지, 이미 다 알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 웃긴 상황이 아니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랑 얘기를 끝낸 후 대기실을 나오자 해태 씨가 보였다.
"어? 안 갔어?"
"그래도 기다려야 될 거 같아서.."
괜히 찡- 해졌다. 분명 다 나만 놔두고 쌩- 하니 갔을 줄 알았는데. 역시 착한 해태 씨! 하긴, 우리 둘 다 같은 처지여서 그런가.
같은 처지끼리 챙겨야지 그래.
"다른 애들은? 운전 해서 가야되잖아."
"설휘 군이 운전 한다고 해서요."
"그 녀석.. 면허증 있었나. 아니, 제일 맏이인 천 시형이 안하고 왜."
"자던데요."
그 녀석이 뭐 그렇지. 나는 해태 씨와 방송국을 나와 해태 씨의 차에 올랐다.
"유하 씨..아니, 오빠한테 들켰어요?"
"어.."
"어떡해요?"
"그냥 사실대로 말했어. 오빠는 그런 거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사람이 아니니까.. 아, 해태 씨 얘기는 안했으니까 걱정 마."
"아..네."
혹시라도, 내가 들키더라도 해태 씨만은 사수 해야 돼! 얌전하고 조용한 해태 씨는 존재감도 별로 없고, (미안한 말이지만)
착실해서 특종 같은 건 잘 캐낼 수 있을 거야. 숫기가 없어서 문제지만.
"사장님, 사장님!"
꽃집을 박차고 들어갔다. 멀뚱히 있던 사장님은 왜 그렇게 난리냐며 나를 다그쳤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나는 크게 외쳤다.
"채..채..채송희!!"
"어?"
이해가 안 간다는 사장님의 표정. 내 말을 들으면 분명 놀라서 뒤로 까무러 치실지도 몰라!
"채송희를 봤어요!!"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사장님은 그저 하하하 웃기만 하셨다. 뭐야 이 반응 기대한 거 아닌데.
기뻐하면서 놀라실 사장님의 반응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그래? 예쁘지?"
"아..예..근데.. 왜 이렇게 안 놀라세요?"
"나는 맨 날 보는 걸?"
"예에?"
"내 아내인걸."
마, 마, 말도 안돼! 사장님..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그런 장난 누가 믿을 것 같아요?
아무리 제가 사장님을 잘 따르고 사장님 말에 껌뻑해도 그런 거짓말은 좀...
"못 믿나 보네? 정말이야. 사진 보여줄까?"
그러면서 사장니은 지갑에 떡하니 꽂혀 있는 채송희에 사진을 보여줬다. 뭐야, 결혼사진도 아니고. 그냥 사진을 뿐이잖아.
열혈 팬들이라면 사진 가지고 다니는 건 당연 한 거잖아?
"사장님.. 저기.."
"이래도 못 믿네? 호적이라도 띄어야 믿겠어?"
"저, 저, 정말이세요?"
"그럼~"
"정말 몰랐었는데 그동안!"
"당연하지. 너한테 우리 집사람 얘기 할 상황도 없었고. 너도 내 집사람 관심도 없었고 말이야."
채송희라면 얘기가 다르죠!
"근데, 이거 말하고 다니면 안 돼."
"..예?"
"난 도혁이 믿으니깐 상관없지만."
"절대, 절대 말 안해요!"
"응. 알아. 도혁이 착한 거."
나에게 이런 말 해주시는 거, 정말 사장님뿐이에요. 감동의 물결도 잠시. 잠깐. 그렇다면, 유하 형님은 무론, 유 승하도...
채송희의 자식들?! 이거 정말 특종이다.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지러워!
이게 바로 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이야기와 같은 상황? 나는 꽃들을 바라보면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말하고 싶어.
떠들고 싶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채송희가 채송희가! 바로 우리 사장님 부인! 이거 메스컴에 흘리면 엄청난 돈이…
아. 정신 차리자 문 도혁. 너가 아무리 가난하고 방세가 몇 달이나 밀렸다고 해도. 그렇게 더러운 놈은 아니잖아.
순간 돈 때문에 혹 할 뻔 했지만. 사장님도 날 저렇게 믿어주시고…. 날 저렇게 믿어주는 사람… 전에는 단 한명도 없었으니까.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난 늦지 않게 기자회견에 도착했고, 미리 와있던 luckless와 합류했다.
회견장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들. 눈이 부셔서 살짝 찡그렸지만 입 꼬리를 빙긋 올리며 미소로 답했다.
웃는 얼굴.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이 세계에선 억지웃음을 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누가 그랬었나.
아무튼, 기분이 나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언제나 웃음을 비쳐 내보이는 그 신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데뷔 전에 맥시와 같이 거울을 보면서 계속 입 꼬리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었다.
괜히 기분 안 좋은 거 내 비쳤다가 이상한 소문이 돌 수도 있고, 또 상대방의 기분도 나빠질 수 도 있고.
팬들도 좋아하는 가수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라면서, 온갖 설명을 해대던 한 하루 였지 아마?
왜 지가 우리한테 설교를 해. 사장님도 아니고. 팀의 가장 막내 주제에.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선배긴 하지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벌써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질문들을 받고 있는 우리 였다.
그러자 리더인 천 시형은 대답을 척척 잘했다. 평소엔 말도 없고, 무뚝뚝함에 무신경까지.
그러던 녀석이 지금은, 대답을 굉장히 잘 한다. 하지만 원 성격이 있는 탓인지 잘 웃지는 않는다.
가끔씩 미소만 지어보일뿐. (그것도 굉장한 광경이다) 웃음이 중요하댔는데 이이 녀석은 예외라는 듯.
그리고 차 설휘도 잘 대답하고 있고, 한 하루도 역시.
"아, 그럼 새 멤버들에게 질문 하겠습니다."
뜨든. 드디어 우리다.
"유아독존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본명이세요?"
"아..예.. 부모님들이 사자성어를 좋아하셔서.."
"맥시군? 한국어는 아직 서툴다고 들었는데."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잘 봐주세요."
"그럼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그건, 리더인 천 시형이 하는 게 좋을 듯한데.
내가 옆을 흘끔흘끔 처다 보자 모두가 입을 열 생각은 안하고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다. 응? 뭔데 그 반응들은?
그때 바로 옆에 앉은 차 설휘가 내게 뭐라고 속삭였다.
"지금 기자들은, 우리 컴백도 컴백이지만 너네 들에게 더 관심이 쏠려있어. 대답 잘해."
"아..응."
그래, 맥시는 아직 한국어가 서투니까. 내가 해야겠지. 하면서 고개를 들어 기자들을 쳐다보는데, 후 아.
이것도 무대에 서는 것 못지않게 떨렸다. 회견장을 가득 메운 기자들과 카메라 장비들. 숨이 막힐 정도로 터져대는 플래시.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저와 맥시가 합류한 luckless는요, 기존의 luckless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멋지고 좋은 모습 보여 드릴 거구요.
아, 그리고 앨범 나온 지 2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폭발적인 관심, 판매량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런 높은 기대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아독존이라고?"
"야, 저거 승하 씨 닮지 않았어?"
"어..진짜!"
"하지만 해외 취재 갔잖아. 아직 연락 없는 거 보면.. 혹시, 우리도 모르는 새에 잘렸나?"
부원들이 현재 생방송 되고 있는 luckless의 기자회견을 보고 수군거렸다.
그건 우리 취재부 뿐 만이 아니라, 우리 신문사 전체가 그러했다. 물론 승하를 모르는 사람들도 신문사에선 많았지만.
같은 층을 쓰고 있는 편집부라던가, 하는 사람들은 승하 씨를 알고 있어서 불안하긴 했다.
가끔씩 내게 승하 씨와 해태 씨의 행방을 묻는 부원들이 있었지만.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괜히 이상한 소문 돌지 말아야 할 텐데.
내가 역시, 괜한 짓을 한 걸까.
"저..부장님."
"네?"
"커피 가지고 왔는데.."
"아..고마워요."
딴생각을 하다가 커피 심부름 시킨 것도 잊어버렸다.
"기자회견 끝나가네."
막 엄마의 샤워가 끝나고 뷔페가 도착했을 땐, 기자회견도 끝났다. 승하가 참 말도 잘하네.
기자라서 말을 잘 해야겠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무대체질은 아닌데 말이야.
"무슨 기자회견?"
엄마가 장미향을 풍기며 내 옆자리로 앉았다.
"아아.. 호율이가 키운 luckless 컴백 했다고.."
"으흠~ 그렇게 유명해?"
"그렇다던데요."
"아아, 샤워했더니 배고프다. 마침 왔네~"
다행이다. 엄마가 별 관심 안가지셔서. 괜히 승하 보면서, 승하다 승하! 하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어차피 엄마가 한국에 있는 이상 승하가 텔레비젼에 나오는걸 보게 될 텐데. 그때도 딱 잡아 떼야하나.
역시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승하의 얘기를 듣고 나니까 머리가 더 복잡해져버렸다.
"유하야~ 너도 어서 먹어. 맛있다!"
"네."
승하가 저러는걸 알면 저 천진한 엄마가 가만히 있을까.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숨겨야겠군.
19.
"어제 기자 회견 잘 봤어요."
오랜만의 부장님의 호출. 나도 이젠 전국에 알려진 공인 이다보니,
근처 음식점이나 같은데 갔다간 무슨 불상사가 일어날지 몰라 친히 자신의 집으로 나와 해태 씨를 부른 부장님이었다.
스케줄은 2시간 후에 있어서 아직은 널널한 상황. 우리는 나란히 부엌 식탁에 앉았다.
아직 점심 전이라 부장님이 요리를 해주시려는 듯 앞치마를 두른 부장님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이제 30살이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노총각 티가 좀 나긴하지만 받쳐주는 얼굴 덕인지 혼자 살아도 빛이 난달까.
"말 잘하던걸요? 승하 씨.""아..하하. 그래요?""할만은 해요?""뭐.. 이제 몸이 익숙해져 버렸달까. 제가 적응 능력 하다는 뛰어나…""해태 씨는요?""네...저도. 잘하고 있어요."
남의 말 끊는건 알아줘야한다니까. 부장님이 먼저 내놓은 차를 한잔 다 마신 뒤 이어 나오는 부장님의 요리!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이건…뭡니까 부장님.
"컵..라면?""사양 말고 드세요."
이런 건 사양하고도 남겠다! 하지만 우린 아까도 말했다 시피 점심 전이라, 부장님이 다시 뺏어갈까 싶어 재빨리 젓가락을 들었다.
역시 혼자 사는 노총각이 뭐 그렇지. 맨 날 라면 아니면 외식으로 끼니를 떼우시나? 이러니까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하시는 구나.
노총각 히스테리 부리는 부장님들. 아니 근데 부장님은 컵라면 물 끓이는데 저 화려한 앞치마는 대체 왜 입으셨던 건데?
무슨 중식 일식 한식은 다 만들어 보일 줄 아는 앞치마.
그리고 지금 부장님이랑 해태 씨랑 같이 식탁에 오순도순 앉아 컵라면을 먹는 상황이란.
"뭐, 그 동안 알아 낸 거 있어요?""아.. 저 사소한 걸 지는 몰라도.."
해태 씨는 컵라면은 먹다 말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수첩?
나도 그동안 트레이닝 하네 뭐네 하면서도 열심히 취재할 마음으로 녀석들을 살폈었는데!
뭐하나 특종의 특자도 없어서 시시하던 차였는데. 해태 씨는 뭔가를 적은 듯 수첩을 펼쳤다.
"천시형 군의 나이가.. 실제나이가 아니더라구요. 원래는 저희와 동갑이던데요?"
뭐어어어어?!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이렇게 깜빡 속았을 줄은! 그 얼굴이 나랑 동갑이란 말이야? 어쩐지.. 주름이 군데 군데 보이..
지도 않았잖아! 탱탱하기 그지없던 피부였는데 어째서! 아니 근데 해태 씨는 그런 걸 다 언제 알아 낸 거야?
내가 그동안 띵가띵가 놀았던 것도 아니고! 데뷔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지만!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해태 씨?""아..지갑에 주민등록증을.. 아 숙소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대체 언제 그걸 해태 씨만 발견 한 거지!
"근데 이런 것 같곤 특종이라고 하기엔..""아..역시 그렇죠.."
그리고는 해태 씨는 주눅 든 듯 소심하게 다시 수첩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좋은 정보에요. 아, 승하 씨는 뭔가 없으세요?""..예?""해태씨도 그렇지만 멤버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게 승하 씨 잖아요. ""아..그, 그렇긴 하지만! 전..아직..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해태 씨가 알아 낸거..그거..그래도 팬들을 속여 왔던 거니까..확 까발리면...""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래서는 내가 밀려! 해태씨보다 내가 더 빨리 알아내야해! 아, 아니지. 우린 같은 동지니까 이런 거에 승부욕 가질 필요 없나.
그래도.. 부장님이 갑자기. "특종을 못 잡으신 분은.. 안타깝게도…" 해고입니다!! 이러면 정말. 안 돼. 정신 빠짝 차려야 해.
"뭐? 천시형이. 27살이라고?""아니야! 이제 막 24살인데..""나이 깎은 거래!! 말도 안 돼!"
역시 그냥 그룹이 아니라 luckless라서 그런가. 사소한 일 하나가지고도 굉장히 큰 파장이 일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새어 나간거야?"
숙소에 모인 우리들. 차설휘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고 한하루는 열 받는다면서 애꿎은 쇼파를 발로 퍽퍽 차댄다.
그에 비해 정작 장본인은 식탁 의자에 앉아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장면이란.
"요새 기자들 아주 혈안이라니까, 이런 거라도 캐내고 싶은 거겠지.""꼬투리 하나 잡아서 이렇게 난리니 원."
한하루 차설휘에 이어 내가 입을 열었다. 그들의 말에 정곡을 찔린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아..근데 난 시형이 형이.. 27살이었을 줄은..우리보다 한참 형이었네."
나랑 동갑이었다니 짜식. 이러니까 괜히 친근감 드는데?
"아니 근데 나이야 속일수도 있지 뭘 그래? 하하.."
이 험악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보고자 열심히 말을 꺼냈지만 금새 착 가라앉아 버리는 분위기.
아니, 그런데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맥시의 시선이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거지?
분명 어제 기자회견이 끝나고 맥시를 몰래 따로 불러 설명 해줬는데. 하지만 기자라느니, 특종이라느니,
라는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개인사정으로 인해 잠깐 남자행세를 하고 있다고 얼버무렸다.(나이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자 맥시는 곧이곧대로 믿고는 날 도와주겠다고 눈에 불을 붙이면서 말하긴 했는데, 뭔 소린지.
자기도 비밀 지키는데 협력해 주겠다는 건가?
"아씨, 짜증나. 컴백하자마자 기분 잡치네."
한하루가 계속 날뛰자 그 녀석을 가라앉히는 목소리.
"그렇게 열 낼 거 없어."
드디어 한마디 했다. 저 녀석은. 한하루와 차설휘는 대체 어떻게 저 녀석과 팀을 이루면서 같이 지내 온건지.
말도 엄청 없고 자기가 무슨 과묵함의 소유자인줄 아나.
혼자 맨 날 동 떨어져있는 듯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를 포커페이스를 지키면서. 하지만 일할 때는 또 엄청 열심히 해요.
노래는...말할 것도 없고. 아니 근데 자기 일인데 저렇게 또 침착할건 뭐야?
우리가 퍼트려서 미안하긴 하지만 저런 반응보단 한하루나 차설휘처럼 저런 모습을 예상했었는데.
"나이야 아무 상관도 없잖아. 애초에 난 숨길 생각도 없었고.""그치만.. 팬들은 자기들을 속였 다네 어쩐다네 하면서..""나이 땐문에 없어져버릴 팬 같은건, 나도 필요 없어."
저 당당함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래? 너넨 팬 없으면 그냥 끝이야 끝! 바닥으로 내팽겨쳐질 거라고.
이 바닥도 인기 없으면 모 아니면 도잖아? 천시형의 저 높다리 높은 콧대를 보니 굉장히 승부욕이 솟아올랐다.
기자가 자기 팀에 숨어 들어온 것도 모르면서? 허. 대단한 자심감인데? 그래서 연예인하나? 두고 봐라.
이 luckless 라는 그룹을 아주 묵사발을 만들어서….
아니, 묵사발까지는 아니어도 (자신도 앨범을 꾸준히 사고 있기에) 밑바닥이 어떤지 경험하게 해주겠어.(덤으로 월급 좀 더 인상)
그러기 위해선 특종을 찾아야하는데. 어마어마한 특종말이야. 어디 없나?
정작 호랑이굴에 들어와도 굴러들어오는 특종이 없으니 원.
"이럴 시간이나 있으면 연습이나 하자."가장 여유롭게 커피 마시고 있던 사람이 누군데? "아, 아무튼! 다음 주 내 졸업식인거 다들 알지?""벌써 그렇게 됐나?""다들 와서 꽃다발이나 줘. 기대할게~"
한하루 녀석. 고등학교 졸업식이구나. 이제야 그 지긋지긋한 고등학교를 졸업한단 말이야?
"근데 어디 고였는데?""너어! 같은 멤버끼리 관심 좀 가져라!"
나한테 말할게 아니라 저어기 리더 천시형한테 절실히 필요한 말 같은데 이 녀석아.
"세흥 고등학교!""아..그랬.."뭐? 세흥 고? 나돈데? 뭐야 이 녀석 내 후배였어?"야아~ 반갑다!"
나도 모르게 녀석을 와락 껴안고 말았다. 붕대 했지? 응 오케이.
같은 학교 출신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내가 졸업한지 한.. 7년도 더 됐나? 아무튼 같은 학교 출신이 이렇게 반가운지 몰랐다.
그래서 학연이는 게 생기는 거군. 근데 갑자기 나와 한하루를 휙- 하니 떼어놓는.. 맥시?
"아야..왜 그래?""아, 아니. 하루가 답답해하는 거. 같아서."
내가 확실히 세게 껴안았긴 했지.
"근데 뭐가 반갑다는 거야? 혹시, 너도 세흥 고 졸업생이냐?""응! 내가 너보다 한참!..."
또 말실수 나올 뻔 했다.
"아, 아니. 아무튼 내 후배라니. 하하하.""아.. 너 후배라니."
왜 표정이 그따구 인데? 기분 나쁠 새도 없이 갑자기 맥시가 날 다른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갑작스런 맥시의 행동에 당황했다. 얘가 어디 아픈가, 갑자기 왜 그러지?
"왜 그래?""승하! 조심해야지.""어..응?""그렇게. 포옹. 여자란 거 들키면 어떡해.""아아..그렇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맥시의 과잉보호 덕분에 왠지 더 들킬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20.
다음날이 되자 상황은 바로 어제와는 전혀 반대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알고 있던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뒤집힐 수 있는 거지? 이것이 luckless의 힘인가?
luckless는 10대 팬들도 어마어마했지만 20대 팬들도 상당했다.
20대 초반인 팬들은 천시형의 실제나이가 27살인 게 공개되자 거의 대부분, 아 난 연상이 좋더라 라는 식의 의견들이었고,
20대 후반 팬들은 연하는 싫었는데 동갑이니 차라리 더 좋다면서 긍정적인 주장을 내보였다. 1
0대 팬들은 아쉬워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나이 차이는 상관없다며 뭐 이런 식 들의 의견들이라,
금새 luckless의 평판은 좋아졌다. 콩깍지가 아주 제대로 씌였구만. 팬들이. 이래서 천시형 저게 기세 등등 했던 거야?
왠지 얄밉네. 잔뜩 짜증내던 차 설휘와 한 하루도 금새 얼굴이 펴져있고. 천 시형은 뭐 어제나 그제나 오늘이나 변함없고.
맥시는 내게 주의를 잔뜩 기울이고 있고. 여러모로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형들! 우리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다~"
숙소에 모여 있는 우리. 다음 스케줄로 이동하려는데 한 하루가 컴퓨터를 껴안고는 뭘 그렇게 주절대는 건지.
"나이공개 때문에 더 그런가?"
"역효과가 안 나서 다행이네."
"아아, 다음 스케줄은 뭔데?"
꼭 저런 녀석 한둘 있다. 컴퓨터만 하면서 매니저 해태 씨 얘기 안 듣더니,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뒷북치면서 다시 묻는 애들.
"아아, 우리 특집이라는데? 아마 얘네들 얘기를 주로 하겠지 뭐."
그에 비해 차 설휘는 대충대충 사는 것처럼 보여도 들을 건 꼼꼼히 듣는지 한 하루에게 설명해준다.
근데 천 시형은 들은 거야 만 거야.
"야, 네가 형 좀 챙겨서 나와."
차 설휘가 내게 말하더니 모두들 숙소를 우르르 나가는 게 아닌가? 뭐야. 형을 챙기라니…
저 녀석 자는거 였어? 어느 샌가 숙소엔 나와 천시형 둘만이 남았다. 용케 앉아서 잘도 자네. 중심도 안 잃어버…
투욱-
"어억!"
어떻게 말 하자마자 옆으로 엎어지냐! 내가 이 빠른 순발력을 발휘해서 간신히 바닥과 얼굴이 마찰되기 전에 붙잡긴 했지만.
뭔가 이상한 포즈가 되버렸다. 녀석의 머리통이 내 가슴팍에… 재빨리 치워버렸다.
근데 힘 조절이 너무 안 된 건지 나도 모르게 휙- 하고 밀쳐버려서 오히려 반대편으로 떨어져버렸다.
"엇..혀, 형!"
"아아..."
그 바람에 잠이 깬건지. 휴 다행이다. 머리를 짚으며 신음을 내는 천 시형. 많이 아팠나? 그렇게 세게 던지지도 않았는데...
"형! 빨리 가야돼. 모두 기다려."
"깨우려면 얌전히 깨우던가."
"어..어? 아니, 형이.. 자다가 넘어 지길래.."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자기 혼자 숙소를 나가버리는 천시형. 내가 다시 깨워주나 봐라.
"네~ 바로 오늘! 장장 2시간이나 생방송으로 진행될! 두구 두구 두구.. luckless의 특집 쇼!"
아, 이런거 였구나. 더군다나.. 새, 생방송이라니? 이거 무슨 토크쇼 같은 건데 2시간씩이나?
무대 위는 한 3분정도면 노래만 하고 내려오지만은, 이렇게 오래 카메라 앞에서 방송을 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우리 다섯 명 모두 주루룩 세트에 세팅된 의자에 앉았고, 카메라는 이미 돌고 있고! 방송은 이미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luckless입니다."
저 메인 MC로 보이는 남자는, 평소에 텔레비젼에서 많이 보던 사람이다! 아 무지 떨린다.
다리 떠는 게 방송에서 보이면 어떡하지? 최대한 허벅지를 두 손 으로 최대한 누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특별 MC 봉민달입니다~ luckless는 예전에도 많이 봐왔었지만, 새 멤버가 투입된 건 오늘이 처음인데요~
와아 뭔가 명수가 늘어서 그런지, 꽉 찬 느낌 좋은데요?"
역시 MC는 말발이 장난이 아니다.
"우선, 새 멤버들 자기소개 한번?"
"아.. 안녕하세요. 맥시. 입니다."
"오~ 혼혈아라고 들었는데, 어디?"
"어머니가 영국 분 이세요."
"아하! 그럼 그쪽은?"
"아, 저는 유아독존입니다."
"예에? 본명이세요?"
"아..네. 거의 매번 듣는 질문이라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랄까요..하하."
내, 내가 이런 멘트까지 날리고. 무의식이란 정말 대단하구나. 이미 정신이 반쯤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것 같다.
"와아~ 차설휘군 못지않게 굉장히 여성스러운 외모시네요."
뜨끔. 내, 내가 여성스럽다고? 설마.
"이런 게 바로 꽃미남의 얼굴인가요? 하하하. 역시 luckless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비주얼이 장난이 아닌데요.
설마, 새 멤버들 얼굴만 보고 뽑은 건 아니겠죠?"
"전혀요~"
"하하, 농담입니다. 그럼 실력 한번 보고 들어갈까요? luckless무대 부탁드립니다!"
아아.. 난 또. 개인 적으로 노래를 시킨다거나, 개인기를 시킨다거나 하는 건 줄 알았네. 차라리 다 같이 하는 게 낫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방청객들 환호와 박수소리가 엄청났고,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은 우리는 토크를 이어나갔다.
"두 분, 이렇게 luckless와 같이 무대에 설줄 예상은 했었나요?"
"사실.. 예상도 못했었죠. 저는 그냥 오디션에 참가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 했어요."
우리 맥시 말 참 잘한다. 그리고 이어 MC가 내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데.
"아..저도 물론. 지금이 꿈같죠."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난 그저 평범한 기자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수가 되어서 카메라 앞에 앉아서 방송을 하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오디션에 참가한 계기는? 우선 맥시군."
"저는 아버지가 한국에서 일을 하셔서, 몇 년 전에 영국에서 어머니와 같이 올라왔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이어서. 우연히 이 오디션소식을 듣고 참가했어요."
"아아~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도 다 알아 들을 수는 있겠네요, 하하. 유아독존..아니, 뭐라고 불러야 되죠?"
"그냥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럼, 독존 군? 푸하하. 죄송해요. 이름이 너무 개성적이셔서.."
"아뇨, 매번 듣던 말이라 이젠 괜찮아요. 아 저는…"
이름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나의 계기는 뭐지?
부장님의 강력한 지원으로 인해 이 오디션을…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luckless의 특종을 잡아 제가 한번 출세를 해보고자..
도 안되고. 우리 신문사 취재부 기상 한번 높이 올리기 위해…도 아무것도 안되잖아!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 짧은 시간 내에 나는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아.. 어머니의 꿈이..가수셨거든요. 근데 이루지 못하셔서, 제가 대신 이뤄드리려 구요.
아 물론 저도 어머니의 영향으로 가수가 꿈이어서요."
잘도 지어 낸다 유 승하. 너 소설 써도 되겠어! 여기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라고 하면 더 감동 일 텐데, 멀쩡히 살아있는 우리 엄마가 들으면 괜히 화라도 낼까봐. 아, 아니지.
나는 지금 유 승하가 아니라, 유아독존이잖아? 유아독존이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든. 내가 지어내면 되는 거잖아.
"아, 어머니를 굉장히 생각하시 네요~ 효자네, 효자. 그럼 지금 어머니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
순간 조용해진 세트장. 고개 숙인 내가 다 느낄 정도였으니까 아무도 말없이 내게 시선이 집중 되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저기..독존 군..?"
"아..죄송해요..어머니.. 안계시거든요.."
"안계시다면..아아.."
유 승하! 넌 천재야! 대단해. 나 차라리 연기 할걸 그랬나? 어느새 내 눈가가 촉촉히 젖는 걸 느꼈다.
사실, 입을 가리는 척 하면서 몰래 하품을 하긴 했지만.
"그렇군요. 이거 죄송해서..."
MC까지 죄송하게 만드는 나의 연기란. 아아아, 나 직업 바꿀까봐!
"아, 아니에요. 괜히 이런 얘기는 해서.."
"자자, 그럼 화제를 바꿔볼까요~? "
눈물을 닦는 척 하면서 소매로 훔치고는 애써 웃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이건 꼭 모니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댓글 재밋어요
감사합니다 ㅠ.ㅠ
흥미진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