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상위에서 있었지만 운동을 잘하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의 반대였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도 그런 데로 잘했지만 운동도 잘했고 친구들도 많았고 학교에서 남자 아이들에게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인기가 많았다. 난 그 아이에게 질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점점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얼마 있지 않아 자연스럽게 대학을 이유로 집을 떠날 수 있었고 방학에나 잠시 집에 들려도 여행을 핑계로 집을 금방 떠났다. 그 때까지도 그 아이는 그 지역에 대학을 다니면서 집 안의 모든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때 알기로 우리 고등학교에서 꽤 인기가 많았던 나도 한 때 그를 몰래 짝사랑했던 아이스하키 선수 루이와 깊이 사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녀의 남편 역시 의사라고 했다. 그러나 나이가 무척 많을 거라는 새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한국에서 이혼을 하고 캐나다에 가 있는 7년 동안 그녀는 한 번도 그 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새 엄마가 여행 삼아 미국을 다녀오곤 할 뿐이었지 그리고 돌아온 새엄마의 어둔 그늘과 한숨은 그녀가 결코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오빠는 미국에서 좋은 아내와 아들들과 딸 아이 하나를 낳고 제법 이름 있는 회사에서 이사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때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1년에 한 번 씩 조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녀는 이 번 크리스마스 때에는 한국에서 보내자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적어도 아버지와 오빠에게는 한국이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단지 쓸쓸했다. 그리고 좋은 딸이 못 되어서 가족에게 행복도 사랑도 주지 못했던 것 같아서였다. 새 엄마가 그녀에게 나쁘게 대해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새 엄마가 자신에게 정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 역시 그 어떤 사랑의 표현도 하지 않은 포옹조차도 항시 어설프게 했던 건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한국으로 다시 떠나려 할 때 새 엄마도 많이 늙어 보였다. 나로 인해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행복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라 만큼은 그의 인생을 사랑하고 남들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느끼도록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지도 모른다. 늦은 잠에서 깨어나 TV 소리에 응접실로 나갔다. 로라가 일어나 TV를 보고 있었다. [로라 너 그 말 다 알 수 있어?] [응, 이제 다 알아들어] [그리고 나 이젠 한국말이 더 잘 나와!] 역시 아이들은 언어의 마술사들이다. 어떻게 저렇게 익숙지 않은 다른 언어를 빨리 습득할 수 있을까? 그녀는 아직도 TV 속의 말들을 많이 알아듣지 못했다. 로라는 그 사이 옆 집 아이와 자전거를 탄다고 밖으로 나가고 없다. 그녀는 별 의미 없이 로라가 켜 놓은 TV를 보고 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주제의 연속극을 주말이라 재방송하는 것 같았다. 대충 여자와 남자는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남자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하는 것 같은 드라마였다. 끄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TV를 그대로 켜 두었다. 사랑의 소리가 그리워서 였을까. 때로 그녀는 무력감인가 외로움인가 불안감인가 아무튼 알 수 없는 허허로움으로 몸서리 쳐질 때가 있다. 너무 혼자 오래 살아서인가? 쓸쓸하게 아파트 광장 아래 아이들 소리가 있는 베란다 쪽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로라의 소리도 들렸다. 주말이라 많은 아이들이 자전거도 타고 롤러스케이트도 타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로라는 로라보다 조금 커 보이는 말라깽이 소녀에게 자전거를 배우고 있었다. 자꾸 넘어지고 자꾸 넘어지고 넘어질 때마다 주위에서 구경하는 아이들 몇이 일어나 친절하게 로라를 일으켜 주고 있었다. 때로는 못미더운지 뒤에 로라가 넘어질 세라 자전거를 잡아주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 큰 자전거도 아니련만 로라는 자신을 닮아 운동 신경이 둔 한 듯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로라는 모든이에게 사랑을 받고 정을 나누며 받는 만큼의 넘치는 정을 되돌려 줄 줄 아는 아이인 것 같았다. 문득 그 때 그녀는 릴리아나가 생각났다. 오랫동안 릴리아나에게 무심하기만 했다. 그리고 릴리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몇 번을 걸어도 전화는 뚜. 뚜 거릴 뿐 아무도 받지 않았다. 문듣 나쁜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만은 피하고 싶어, 거실 쇼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서두르면 오늘 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알아보고 로라를 씻기고 서둘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싶어서 받았다. 나의 동작이 그렇게 빠른 적이 없었지 싶을 정도로 날쌨다. 그러나 별 말이 없이 끊어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허허로울 정도로 적막을 느낀 뒤 [탈칵]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그리고 막 돌아서려는데 전화벨을 또 울렸다. [따르릉] 그녀는 막연한 불안감에 전화를 받아 들었다. [나야] 릴리아나였다. 그녀 목소리는 작게 떨리고 있었고 뭔가 불안 해 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뭔가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말인가를 할 듯 할 듯 [릴리아나. 나 지금 서울로 가려 해. 기다려 줄 수 있어] 그러나 그녀는 급하게 올 필요 없다는 말과 지금 그의 남편과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를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뚜. 뚜.....] 전화는 그렇게 끊겼고 망연해진 그녀는 준비한 김에 로라와 수성 못에서 산책을 하고 외식을 할 양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직 찌는 듯한 여름은 아니었지만 초여름의 답답한 기온이 자욱한 도시의 매연과 함께 스물스러운 오후의 석양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대구의 여름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사으로 막혀있는 실 틀 사이에 삐쭉삐쭉 즐비한 아파트 사이에서 내뿜은 냉열기의 뜨거운 바람과 아스팔트의 이글거리는 뜨거움 그 안에 움푹 내려앉은 분지의 도시 봄에는 찾아드는 열병 같은 황사, 여름에는 숨이 목까지 차오를 정도로 답답한 한중탕, 색깔도 없는 가을, 눈도 없는 겨울. 그래서 이 답답한 도시는 우울증과 불면을 다고 살기에 충분했다. 거리는 밀려드는 차량 때문에 교통 체증이 심했다. 짜증스러워하는 택시기사의 난폭 운전에 여기저기서 불쑥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몇 번이나 놀라며 수성 못에 도착했다. 그나마 이곳의 공기는 가슴이 탁 트이는 것도 같았지만 조그마한 연못 같은 곳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여유스러워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캐나다에서는 지평선이 보이는 바다 같은 강들이 많은데... 그녀는 문득 지산동에 있는 아파트 단지를 캐나다에 옮겨놓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외로이 끝없이 펼쳐진,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풀로 둘러 싼 들판 밖에 없는 캐나다에 이렇게 복잡한 지산동을 옮겨 놓는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사춘기적 발상을 해보며 로라와 손을 잡고 걸었다. 그녀가 산책하는 수성 못 근처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 뿐 만 아니라 가 쪽으로 파란 잔디가 펼쳐진 필드 안에 노인들이 세상 급할 것 없는 듯 한가로운 몸짓으로 포캣볼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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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
즐감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