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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 탐사기획 스크랩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22
裕耕 박노철 추천 0 조회 99 13.05.03 08: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호남 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22

 

지방의 모든 수령(方伯守令/방백수령) 들은 백성을 편안(鎭安/진안)하게 다스리는 구나.

 

하늘의 뜻에 따라 삼태육경(三台六卿)이 선정을 펼칠 것을 가르치는 순천(順天)이다. 모든 고을의 방백수령(方伯守令)도 삼태육경의 본을 받아 백성을 편안케 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편안한 백성의 삶을 살피러 진안(鎭安)고을로 들어선다.

 

<진안 공용터미널 앞>

2012년 추석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1천여 년 전 신라 유리왕(32)이 두 왕녀에게 6부의 여자들을 둘로 나누어 7월 보름달부터 6부의 뜰에 모여 을야(乙夜)까지 베짜기를 시켰다.

8월 보름날까지 하여 그 성적을 평가하여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을 대접했다. 이 때 노래하고 춤추며 온갖 놀이를 다했는데 이를 가배(嘉俳)’라 했다. 가배가위의 음차표기다. 크다이니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인 것이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계절이 되는 추석에는 아이들이며 남의 집 머슴살이 하는 일꾼들까지도 새 옷을 입게 되는데 이 옷을 추석빔이라 했다.

추석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햅쌀로 밥하고 술을 빚고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그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했다. 가을걷이를 해서 수확을 하면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하고 사람이 먹는 건데, 이 추석 차례가 천신의식이기도 했다.

차례가 끝나면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하는데, 추석 전에 미리 말끔히 벌초를 해놓는다. 이는 무성한 여름풀이 말라 산불위험도 있거니와, 벌초를 하지 못하면 선조에 대한 불효로 여겨 자손들이 남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추석 명절에 차례와 성묘를 못 하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자손 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성묘를 마치고 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강강수월래, 고싸움놀이, 자치기, 애기줄다리기, 제기차기, 도깨비놀이, 연날리기, 투호, 놋다리밟기, 윷놀이, 공기놀이, 고누놀이 등을 하며 즐겼다

이 때의 주요 먹거리는 송편, 토란탕, 닭찜, 배숙(배의 껍질을 벗겨 삶은 뒤에 통후추를 드문드문 박고 끓인 꿀물이나 설탕물 속에 담근 한국 전통 화채 음식), 햇밤과 대추, 사과 등 햇과일, 버섯 요리, 각종 전과 화양적(쇠고기 산적) 등 푸짐했는데, 풍성한 가을걷이와 더불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며 사람들의 마음이 한껏 넉넉한 날이 바로 추석이었다.

 

<진안 시장>

어떻거나 어릴 적에 참으로 기다리던 날이었다. 먹을 것도 풍성하고, 긴팔 옷 얻어 입고 고무신 말고 운동화까지 신으면 입이 귀에 걸렸다.

더하여 온 가족이 어깨를 부비며 집안이 북적대고, 돼지 멱따고, 닭 모가지도 비트니 온 동네가 들썩들썩 신바람 나는 날이었다.

또 면민 체육대회가 여러 날 전부터 마을, 마을을 달구었다. 한바탕 풍악이 울려 퍼지는 콩클대회는 특히나 처녀 총각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진안천> 

이 좋은 명절이 끼어 있는 날짜에 고을의 관리들이 백성들을 평안하고 넉넉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함을 일깨우는 고을 진안을 찾음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진안천>

무슨 한가하게 정치얘길 한다고 눈 흘길지 모르지만 올핸 대선이 있다.

추석에 모인 가족, 친지,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만나면 나누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1219일의 대통령 선거에 미칠 것이다.

나그네의 집도 마찬가지다. 흰구름을 제치고 붉그스레 둥근달을 보면서 저게 달무리인가, 달노을인가 하며 달구경도 하고 대선 인물평도 나눴다.

그래도 가족들과의 대화는 점잖았지만 지인들과 만나니 입도 험해진다.

문도리코 같은 놈이 또 하나 나왔대. 운동이나 하지, 달구똥밭에는 뭘 쳐먹겠다고 들어가. 들어가긴.”

지난 런던 올림픽 유도에 출전했던 김재범이 박근혜 닭캠프에 합류한 얘기부터 나왔다. 좋은 말이 나올리 없다.

이마빡에 피도 채 안 마른 놈이 싹이 노래. 지가 무슨 대단한 영웅이나 된듯 하나보지. 하긴 운동만 한 놈이 머리에 똥이 들었겠지.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했어.”

그 녀석이야 쥐새끼 살 구멍 찾듯 영리하게 지 살길 찾은 거 아니겠어? 그런데 손숙은 또 뭐야? 김대중 때 장관 한 년이 닭에게 가다니? !”

하지만 위 손숙 건은 사실무근이라고 본인이 해명했다 해서 다음 인간으로 넘어갔다.

(위의 글 일부를 다시 또 수정해야겠다. 추석 쇠고 산소 다녀와 인터넷 뉴스를 보니 김재범이가 무슨 위원장인가 대표 자리를 사퇴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물의를 일으켰으니 위 글 삭제는 하지 않고 사퇴했다는 사실만 덧붙인다. 아무튼 잘 생각했다. 운동하는 놈이 운동이나 열심히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쥐새끼 똥구녘 빨던 이순재, 최불암, 노주현 등 그 미친놈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달구똥구녘 빨더만 쯔쯔쯧!”

옛날 땡전 뉴스라고 알제. 29만 원짜리. 그때는 아예 9시 뉴스를 안보고 살았는데, 이번에도 그 인간들 낯바닥 보기 싫어 티비에 순대, 불알, 쥐현 등 낮 바닥 비치는 순간 바로 돌려버린지 오래네. 앞으로 그것들 나오는 광고 제품도 안 살라네.”

내 말이 그 말이네.”

쥐새끼 나오면서 그런 연놈들이 어디 한둘인가? 비비케이 또라이들인 고승덕, 나경원, 홍준표에 보온병 포탄 안상수, 그리고 제수추행 김형태, 문도리코 문대성에 이어 이한구, 현영희, 홍사덕 아이고 썩을 놈들 많기도 하네. 입이 다 아프네.”

진통인가 통진인가도 있어. 이석기, 이정희, 김재연, 오병윤 이년놈들도 같은 부류로 분류가 되네.”

, 그래서 요새 3위 일체라는 말이 있어. ! 거룩하도다. 그분의 이름 이정희, 그분의 이미지 이인제, 그분의 딸 박근혜로다. 그래서 모두들 대통령에 나오려고 환장을 한 거라네.”

박정희 이름도 셋이야. 일본 이름으로 알려진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는 지 스스로 지었고, 그 뒤에 오까모도 미노루(岡本實)’라고 했지. 다까끼(高木)는 고령 박씨에서 따온 것이고 마사오(正雄)는 정희를 변용한 것이래. 다까끼는 그래도 박씨에 근거를 둔거니까 조선인 흔적이라도 있네만, ‘오까모도 미노루(岡本實)’는 완전히 뼛속까지 왜놈이지. 만주에서 독립군을 잡아 죽이려니 그래야했겠지.”

박정희의 한자 박()을 풀면 집권 10() 8()년의 점괘()고 정()을 풀면 한번()에 멈춘다(), ()를 풀면 자기() 신하()에게 총 네발()이니, 일테면 집권 18년에 자기 신하에게 총 네발로 죽을 점괘라는 말이 1980년에 인구에 회자되었어. 29만원짜리가 그 서울의 봄을 군홧발로 짓밟아버렸지만 말야. 운이 없고 재수도 더러웠어. 우리들이.”

잠깐 침묵이 있었지만, 그건 잠시고 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어쩜 그렇게 딱 떨어지는 말들일까?”

그래, 그렇네. 하하하! 으하하하!”

한바탕 화기애애 웃음바다가 된다.

그건 그렇고 대통령감으론 누가 좋아? 정해버리세.”

닭그네는 오늘 닭튀김으로 가름해버리세. , 색누린가? 성누린가? 햇갈리네. 그 똥누린당인가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과 관련한 증인 채택을 거부하기로 했다잖아. 불과 일주일 전 달구새끼가 ‘5.16, 유신, 그리고 민혁당인가 인혁당 사건인가도 구별 못했지만 사과 한다고는 했잖아. 그런데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거부라니. 그 암탉 년은 절대 안 돼.”

아따. 오전에 사과 먹고 오후에 말춤 추는 그런 미치고 환장한 년은 나도 첨 봤네. 그나저나 정해보세. 문재인인가? 안철순가?”

주체성이 뚜렷하고 확실한 문재인이 좋은데, 그게 또 민주당이란 말이야. 난 민주당 싫어. 싫어도 너어무 싫어.”

그래. 민주당이나 새누리나 비슷한 점이 많아. 나도 김진표, 박주선 같은 인간들 때문에 맘 버린지 오래야.”

절 싫음 중이 떠나면 되지만, 이건 꼭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니 생각을 밝혀보기로 하세. 난 안철수는 좋긴 한데 당선 되면 김대중이가 29만원짜리 전두환이 사면해주듯, 노무현이가 달구새끼에게 연정하자고 하듯 처신할 거 같아. 너무 물렁해 보인단 말야. 정체성이 걱정 돼는 거야.”

내 말이 그 말이야. 둘이 딱 합쳐서 한 몸으로 만들면 안 될까?”

그래서 나는 민주당이 환골탈태하면 문재인 찍고, 안철수가 정치보복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과거를 정리한다고 약속하면 안철수 찍을 거여. 달구똥구녘이 역사에 맡기자고 하는 말 들으면서 3년 묵은 김치가닥이 나올락 했거든.”

둘이 합쳐지지 않고 선택해야 한다면 어쩔 거여?”

둘 중에 하나를 죽여서라도 단일화하라고 해야제. 아니 우리가 여론으로 시켜야제.”

아따, 나는 어서 새롭게 진보당이 나섰으면 좋겠어. 이정희, 이석기, 오병윤 같은 시궁창 쥐새끼 같은 인간들 말고, 진짜 노동자들을 위하는 사람들이 빨리 뭉쳤으면 좋겠어.”

강기갑이 낙향 하는 날, 난 슬퍼서 술 한 잔 펏네. 경남 사천에 한 번 놀러들 가세. 기갑씨 힘내라고 소주나 한 잔 나누고 오세.”

그래, 좋은 세상 함께 만들어야제. 우리가 의리 빼면 시체 아닌가?”

좋은 세상? 아따 아직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길 기다리는 격이니, 우선 대통령 깜이나 정해보더라고.”

그래, 우리 표도 가만있자. 우리들 가족들을 모두 합치면 30? 40표는 되겠네. 일단 문재인에게 희망을 걸어보기로 하면 어떤가?”

그래.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일단 그렇게 맘을 두고 지켜보세.”

, 건배하세. 오늘은 건배사를 한국의 희망을 위해로 하세.”

좋았어. 1219일에 한 번 웃어보세.”

한국의 희망을 위해, 건배!”

또 화기애애, 술 몇 잔 걸치니 이제 화기알알이다. 일단 대선과 관련된 정치쪽 얘기는 그 정도에서 마무리 됐다.

 

<진안의 상징산 마이산> 

이렇게 추석명절의 민족 대이동과 함께 민심이 널리 옮겨지듯, 진안 고을 백성의 평안함이 우리 민심의 척도가 되어 옮겨질 것이다. 그래서 진안은 한 고을의 이름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모든 터전을 일컬음 아닐까?

방백수령 진안하니 태평성대 진안민이라.’ 호남가 한가락이 절로 나온다.

 

전주, 완주의 들녘에서 구불구불 고갯길을 올라 진안 고을로 들어선다. 고원지형으로 여겨지는 진안하면 떠오르는 게 몇 가지 있다. 앞 뒤 순서야 다르겠지만, 운일암 반일암의 운장산,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과 탑골, 용담댐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소박한 산천과 사람살이의 인심이다.

3십년도 더 됐다. ‘운일암 반일암해 절반, 구름 절반의 골짜기의 특성을 말하는 이름이라는 걸 알았다. 그 운일암 반일암을 처음 찾았을 때는 이곳이 이 세상 끝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골짜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골짜기를 벗어나니 드넓은 들판이었다. 세상이 참 넓구나 생각했었다.

마이산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기이한 형상의 산세였다. 진안읍 쪽에서 마이산을 넘으면 기기묘묘한 탑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탑골이 나온다. 사람의 손으로 어찌 세웠을까? 고개 갸웃 거리게 하는 신비한 곳이다.

용담댐은 수많은 수몰민을 만들면서 오랜 삶의 흔적을 물속에 담가버렸다. 인간을 더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지만, 무엇이든 빼앗긴 자의 슬픔은 당사자만 아는 일이다. 용담댐 푸른 물살 지나치면서 그 속에 깃든 역사와 문화, 사랑, 다툼, 슬픔, 기쁨, 희망과 절망 등 가난하고 지난했을 삶에 얼켜있는 옛 사람들, 옛 이야기가 그리웠다. 이 용담댐은 호남가의 가사에 또 나오니 한 번 더 찾아볼 작정이다.

 

<볼수록 신기하다>

진안면 주천면 주양리로 흘러 내리는 운일암 반일암의 계곡물, 그 계곡물에 이마의 땀을 훔치고 옛 이야기 몇 들어 보았다.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게 그저 재미와 흥미만으로 꾸며진 게 아니다. 그 속에 사람들의 생각과 움직임, 그 시대의 풍광과 인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산과 물과 인심의 고을 진안 고을 사람들, 그들은 과연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을까?

 

용담면 와룡리 원와령 마을에 깃든 옛 애기다.

호랑이 담배 필 땔까? 이 마을에 힘이 좋은 마음씨 좋은 장사가 살았다. 그런데 또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 있어 이 장사와는 늘 대립하였다.

어느 해 칠석날이었다. 마을에서 술내기를 하는데 마음씨 나쁜 장사가 맘씨 좋은 장사에게 네 힘이 좋으면 얼마나 좋으냐고 시비를 걸었다. 맘씨 좋은 장사는 참다못해 네 머리는 도끼보다 강하니 큰 정자나무가 갈라질 것이다.’ 나쁜 장사의 머리를 정자나무에 내리치니 그만 죽고 말았다. 사람을 죽인 죄인이 된 장사는 완주군 동상면 은천리 마을에 들어가 숨어 살게 되었다.

맘씨 좋은 장사는 행실이 변했다. 고산에 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여러 사람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새재에 올라 이 세상에 힘센 놈이 있으면 나오너라.’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에 차력을 하는 국사철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국사철은 손에 부채를 들고 장사에게 이 부채를 당겨 보아라!’ 하였다.

이까짓 거하면서 장사가 부채를 당겼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장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국사철은 장사에게 바지를 걷어 올리라고 한 뒤 부채살로 종아리를 때렸다. 장사의 종아리에서는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이 일이 있고부터 장사는 힘을 믿고 행패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

얼마 뒤 국사철이 오미라는 마을에 이르게 되었다. 마을어귀에는 바가지로 물을 긷는 우물이 있었다. 마침 우물가에는 예쁜 부인이 물을 긷고 난 뒤 바가지를 놓고 갔다. 국사철은 장난기가 들어 바가지가 우물에서 떨어 지지 않도록 술법을 썼다. 그런데 다시 온 그 부인이 어렵지 않게 바가지로 물을 길어가는 것이었다. 국사철은 의심이 들어 이번에는 바가지가 움직이지 않도록 더욱 센 술법을 걸었다. 하지만 그 부인은 다시 물을 길어가면서 고얀 놈! 오늘밤에 제 죽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장난질을 해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부인의 술법에 의해 국사철은 그날 밤 세상을 뜨고 말았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이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거다. 마치 대통령이 다 된 듯 거드름 피우는 달구새끼의 모습에 힘셈을 자랑하다 목숨 줄을 빼앗긴 장사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자중자애하라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방백수령이건, 백성이건 제 본분을 다하고 지켜야 진안민이 되는 것이다.

 

<수억년 전엔 바닷속이었다는 마이산 바위의 풍화혈(타포니) 모습>

이번엔 마이산 이야기다.

아득한 옛날에서도 또 옛날,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사는 부부산이 있었다. 부부산은 밤이 되면 남몰래 커지면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진안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부가 서울까지 가기 전에는 절대로 사람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었다. 남편 산은 밤이 되었으니, 빨리 가자고 서울 길을 재촉하였다. 아내 산은 애들이 피로하니 한숨자고 새벽에 가자고 했다.

사실 아내 산의 속셈은 인심 좋고 산수 좋아 구름도 쉬어가는 진안 땅에 눌러 앉고 싶었다. 결국 남편 산은 아내를 위하여 새벽녘에 떠나기로 하였다.

어느새 새벽이었다. 남편 산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옹달샘에 물 길러 나오기 전에 가자고 아내와 식구들을 깨우면서 부지런히 키를 키우기 시작하였다.

얼랠래, 산이 키를 키우네!”

마침 옹달샘에 물 길러 나온 아낙네가 산이 커지는 걸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부부산들의 키가 커지는 걸 동네 아낙네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오르던 부부산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화가 잔뜩 난 남편 산은 두 아이들을 아내 산으로부터 빼앗은 다음 아내 산을 꾸짖었다.

이런 이유로 오늘도 아내 산은 돌아서서 고갤 떨구고 있고, 남편 산은 가슴에 아들과 딸을 안고 화난 얼굴로 서있다. 세월이 흘러도 서로 마주하지 않으며 서있는 남편과 아내 두 봉우리가 마이산이다.

 

<탑사를 세운 이갑용 처사> 

이 이야기는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옛 이야기의 정석에는 조금 벗어난다. 해피 앤딩이 아닌 앵그리 앤딩이다. 하지만 앵그리 앤딩의 교훈은 더 엄중하다. 매사의 부지런함과 소통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진안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행복한 사람살이의 지침이다.

 

명절에 효도 얘기가 빠지면 되겠는가? 상전면 수동리 외송 마을의 죽도라는 곳의 이야기다. 그곳에 용바위가 있다 한다. 옛날 용이 등천할 때 발자국과 꼬리가 스쳤다는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용바위다. 이 용바위에서 또 한참을 올라가면 3개의 바위가 있으니 바로 삼형제 바위다.

이 외송 마을에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은 삼형제가 살았다. 이들은 밭을 일구고 나무하고 고기를 잡아 부모를 정성껏 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대처로 나가 돈을 벌어 오기로 약속하고 집을 떠났다.

5년 뒤 칠석날이 되었다. 다시 만나기로 약속 한 그날이었다. 3형제가 고향에 돌아오니 쏟아진 비로 냇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멀리 보이는 집은 잡초만 무성하고 사람 기척이 없었다.

형제들은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물살이 깊고 위험하였으나 부모를 뵙고 싶은 마음에 형제들은 손을 잡고 건넜다. 하지만 무서운 힘으로 내려 닥치는 물결에 그만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큰물이 지나간 뒤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바위 세 개가 있어 사람들은 삼형제의 넋이라 믿고 삼형제 바위라 불렀다. 삼형제 바위는 지금도 집 쪽을 바라보며 못 다한 효도를 한탄하듯, 형제의 우의를 나누듯 말없이 서있다.

 

<마이산 탑사>

상전면 갈현리 대곡마을에도 효행 얘기가 있다.

이 마을의 허씨 가문에도 효자가 있었다. 부친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정성껏 시묘살이를 했다.

하루는 호랑이가 와서 입을 벌리니 무섭고 황망중에 저고리를 벗어 던져 주었다. 하지만 호랑이는 저고리를 허씨에게 다시 던졌다.

허씨는 호랑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호랑이가 입을 쩍 벌렸다.

허씨가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네 목에 걸린 것을 빼 주겠다고 말하니 호랑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허씨는 호랑이 입에 손을 넣어 목에 걸려있는 비녀를 꺼내 주었다.

호랑이는 고맙다는 표정으로 제 등에 올라타라는 몸짓을 했다. 허씨가 등에 오르니 호랑이는 대덕산 남쪽 천장골로 갔다. 그리고 발로 땅을 파며 장시지낼 혈을 표시해 주는 것이었다. 허씨가 그곳에 부친의 묘를 쓴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뒤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한다.

 

이번엔 진안읍 정곡리의 슬픈 사랑 얘기다.

깊은 산골에 달래라는 처녀가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달래는 농사짓고 나물을 뜯어 10리 되는 장터 마을에 내다팔아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구해왔다.

그 산골에 암자가 있어 과거 공부하는 청년이 있었다. 산나물을 뜯으러 가는 달래는 종종 암자 가까이 가서 그 청년을 멀리서나마 보는 게 즐거운 비밀이었다. 암자의 청년도 달래를 의식했으나 과거공부에 매달려 꽃 같은 산골처녀를 그냥 꽃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암자가 텅 비고 청년이 남긴 글 한 장이 있었다.

과거에 오르면 꼭 찾아오리다.’

그때부터 달래는 청년이 급제하기만 빌었다. 그러나 달래는 날이 갈수록 마르면서 시름시름 앓았다. 날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어머니는 통곡하면서 딸이 날마다 올라가 있던 곳에 묻어주었다.

세월이 흘러 달래의 무덤은 간곳이 없고 그 자리에 바위가 생겼다. 사람들이 그 바위를 상사바위라고 불렀으니 젊은이를 기다리는 달래의 혼이 오늘도 모래재 길에 지켜서 있다.

그 상사바위는 부귀산줄기가 끊어지며 생긴 진안읍 정곡리 뒷산에 있다. 옛날 진안이 바다였을 때 배를 묶었던 쇠고리가 있다고 하며, 호랑이가 새끼를 낳아 이 바위 아래로 떨어뜨려 살아남은 새끼만 길렀다는 말도 전해오고 있다.

 

<마이산의 섬진강 발원지 용궁>

교훈 얘기, 효자 얘기, 사랑 얘기까지 했으니 추석 명절 얘기로는 이보다 더한 얘기가 또 있을까?

요즈음 게임기나 오락, 티비 시청에 빠져 할머니 할아버지의 구수한 옛 얘기는 전설이 되었다. 세상을 탓할 일은 아니나, 인간의 정이 사라지는 듯 섭섭한 건 사실이다.

여름 날 달려드는 모기를 모깃불과 부채로 ?으며 얘기를 들려주시던 돌아가신 할머님이 떠오르기도 하고, 형제간에 어두컴컴한 좁은 방에 나란히 누워 얘기를 나누던 시절이 그립다.

 

진안은 또 인삼의 고을이라고 한다. 금산이 가까워서인지 모르겠지만 깊은 산골에서 산삼인들 나오지 않을까 싶다.

또 선거 시에는 무진장이라고 무주, 진안, 장수의 세 고을을 함께 부르기도 하는데 인심(人心) 좋고, 인삼(人蔘) 나고, 빼어난 인물(人物)이 무진장한 3(三人)의 고을이라 여겨진다.

 

<탑사를 세운 이갑용 처사> 

진안에 왔으니 마이산을 들려 보고 가기로 했다. 삼십년 전이 처음이고 그 뒤로 두세 번 더 들린 곳이지만 매번 그 신기함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마이산은 지금부터 수억 년 전에 바다에서 융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이산 정상 부근에서 7천만 년 전의 물고기와 조개의 화석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름처럼 마이산(馬耳山)은 말의 귀처럼 불쑥 솟은 두 개의 봉우리를 각각 암마이봉, 수마이봉이라 부르는데, 암마이봉이 더 높다. 또 오랜 세월 모래와 자갈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바위에 움푹움푹 패인 구멍들이 특이한데, 이런 현상을 풍화혈(tafoni)’이라고 했다.

그리고 탑사 자리는 옛날 물속일 때의 용궁터라고 하는데 이곳 석탑은 이갑룡(1860~1957) 처사가 1885년에 입산수도하면서 30여 년간 쌓은 것이라 한다. 처사는 전주 이씨로 16살에 부모를 여의고 19세 때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한다. 그러던 중 25세 때 마이산에서 유, , 선에 바탕을 두고 용호세계의 실현을 위해 수도했다고 하는데 이 석탑도 그 수행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가공하지 않는 천연석으로 높이는 15m 정도, 둘레는 20m 가량이나 되는 거대한 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동화 속 세계에 들어선 느낌을 자아낸다. 1백년이 넘은 세월동안 태풍과 회오리바람에도 끄떡없이 서 있는 이곳은 지형적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곳이라 한다. 지난 828일 태풍 볼라벤 때 초속 30m가 넘는 강풍으로 탑사 근처의 나무가 통째로 부러지고 건물 장식과 주변 천막 등 시설물의 피해가 상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80여기의 석탑은 단 1기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탑사 주지 청파스님은 ‘80여기의 탑이 춤을 췄다며 바람이 강해 탑의 몸체인 탑신과 그 사이에 박아둔 샛돌이 흔들리면서 마치 탑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겠다.

 

<이번 태풍 볼라벤이 꺾어버린 나무> 

이 마이산 석탑은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인간의 염원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교훈이라 할 수 있겠다.

모두가 평안한 세상, 백성이 잘 사는 세상, 온 세상이 진안의 진안민이었으면 한다.

용담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며

호남가의 한 가락에 용이 사는 용담(龍潭)이 나온다. 이 용담은 현재 진안군의 용담면을 가리킨다. 이 용담면에 용담댐이 건설되어 대부분의 마을이 수몰이 되고 말았다.

용의 평안한 안식처인 용안처(龍安處) 용담(龍潭)의 맑은 물을 다시 찾아올 기약을 하며 호남가 따라 길을 떠난다.

고창성(高敞城)에 높이 앉아 나주(羅州)풍경을 바라보니

그렇게 고창을 찾아가며 진안을 일시 작별한다.

 

<용담댐의 두 용 머리 사진-진안군청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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