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시집갈 때 가마를 못 태우고
아버지 가신 날엔 곡소리도 못 했는데
젖먹이 양인에게는 존댓말을 쓰라 하네
노비보다 못하다고 눈 흘겨 외면 말고
피 냄새 역겹거든 멀찍이 물러서라
죄 없이 무르팍 꿇은 백정도 사람이다
밤새워 몸 씻으면 뼈조차 맑아져서
패랭이 비린내도 훨훨 벗어 던져볼까
펄펄펄 냄비가 끓는 산기슭 외로운 섬
저울 같은 평등 세상, 사람답게 살아보자
가시풀로 혀를 찔러 피 삼킨 낙타처럼
형평사* 붉은 외침이 먼 새벽을 두드린다
* 1923년 5월, 백정을 주축으로한 천민 계급이 평등을 기치로 조직했던 단체. 진
주에서 시작하여 1924년 전국에 지사 12개소, 분사 67개소를 두었다. 2023년, 올
해가 형평사 창립 100주년이다.
-《나래시조》 2023,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