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정흥숙 교수의 오리엔탈리즘의 연구에 관련된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 직물에 나타난 신와즈리(Chinoiserie) 영향에 관한 연구입니다.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 직물에 나타난 신와즈리
(Chinoiserie) 영향에 관한 연구
교수 : 정 흥 숙
강사 : 박 형 애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A Study on the Influence of the Chinoiserie of French
Textiles in the Rococo Period (18th Century)
Prof. Heungsook Grace Chung, Ph.D
Lecturer : Hyungai Park
Dept. of Clothing & Textiles
College of Human Ecology
Chung-Ang University
ABSTRACT
After cultural interchange between Oriental and Occidental continent had started, two different continents influenced each other in many fields by heterogeneous culture. Those cultural contacts made mutually spirited and changed. The cultural influences between two different continents created new terminology called 'Orientalism'. The Orientalism has subdivided into more detailed branches. One of the subdivision of Orientalism is 'Chinoiserie', European art style such as architecture, technical art, painting, clothing and textiles with Chinese taste. The Chinoiserie appeared occasionally from ancient times to Middle Age through Renaissance, it reached the climax on beginning of eighteen centuries, and it was shrouded in mystery with combination of Oriental exotic mood and architectural structure in Rococo style.
Many literatures have been studi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architecture sculpture, painting and technical art in the Rococo style. However, the research for the distinct characteristics, of the artistic harmony on the Chinoiserie in Rococo style have not done in depth.
This research is focused on the one of the Orientalism in the European art style, Chinese style 'Chinoiserie'. The research is also investigated major trading means, The East Indies, at that time and historical background and French spirit in that period.
The chapter three discussed on the influences for Rococo architecture, furniture, ceramics, clothing and textiles. The chapter four mentioned French textiles influenced by Chinoiserie. Specially, the textiles are closely related to human being and can be expressed for the emotion and the sense of beauty. The textiles can be a medium of expression of human beings' artistic style. Therefore, this research emphasized on French ornament in the interior and the main subject matter of Chinese painted silk on 'Chinoiserie' on the Rococo period.
Ⅰ. 서론
서양에서는 동양에 관하여 서술하거나 묘사할 때 서양인의 시각에서 가리키는 용어를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으로 창출해냈는데 이단어의 출발점을 서양의 학자들은 대충 18세기로 잡고 있고1) 이 단어가 수용하는 범위는 다양하며, 넓고 복합적이다. 지리적으로 서양에서 동양에 해당되는 말은 오리엔트(Orient)로,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의 이동(以東)을 가리킨 명칭으로 오늘날의 서아시아와 이집트 지역(Middle East)을 지칭한다. 그 후 동양세계가 서양에 알려지게 됨으로써 중국, 한국, 일본, 시베리아 동부 그리고 동남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을 포함시켜 극동(Far East)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나 오늘날 넓은 의미의 동양에는 극동을 포함한 아시아 전지역과 유럽인의 오리엔트 개념까지 포함된다.2)
이러한 지리적인 위치의 구분 외에도 언어, 관습, 인종 등의 이유로 세계사나 예술사 혹은 문화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동양과 서양은 종종 분리된 존재로 생각되어 왔고 최근까지도 상호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미비한 실정이다.
복식사의 연구에 있어 동·서양 직물의 상호 연관성은 직물이 인간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카튼(cotton)과 씰크(silk)의 원산지인 인도와 중국은 서양의 직물 디자인과 기술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역으로, 서양도 동양의 직물에 영향을 끼쳤는데, 동양에서는 종종 서양의 기념비 등에 새겨진 역사적인 사실이나 고전적인 주제를 모티브로 하여 자수를 했고3)특히 동·서양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는 유럽으로 수출되는 일부 직물을 유럽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 생산하기도 하였다.4) 이러한 현상은 17세기 이후 유럽의 무역선들이 규칙적으로 동양에 드나들게 되면서부터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서양의 많은 사교모임에서 동양의 직물은 서구 취향에 이용되었는데 이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 대한 이국적인 호기심과 신비감을 연상케 해 이 시대의 실내장식과 복식 등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영향은 단지 직물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고 건축·조각·공예·회화와 같은 모든 조형예술분야에 반영되었다.
예술에 있어서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의 고유하고 다양하며 현대적이거나 전통적인 특성이 예술양식에 표현된 것을 말하며5) 복식학에서의 오리엔탈리즘 패션(Orientalism Fashion)이란 동양의 각나라의 민족의상이나 풍속이 반영된 디자인을 말한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다양하고 넓은 범위 속에서도 어떤 특정한 나라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신와즈리(Chinoiserie), 재포니즘(Japonism), 튀르뀌리(Turquerie) 등의 용어가 나타나기도 했다.6)
신와즈리는 프랑스어로 중국을 칭하는 시누와즈(Chinois)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럽과 동아시아(East Asia)간의 교역을 통해 중국풍이나 유사 중국의(pseudo-Chinese) 디자인 모티프가 17세기후반부터 19세기초까지 유럽의 예술양식(특히 공예품)에 나타난 것을 말한다.7)
18세기의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에 나타난 로코코(Rococo)의 예술사적인 특징은 많은 문헌에서 언급되었으나 그 시기의 예술사조에 뚜렷하게 나타나 로코코 양식과 조화를 이루어 이국취향과 신비스런 분위기를 표현했던 신와즈리의 영향에 관한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었으므로 본 논문은 18세기의 유럽의 예술양식 등에 나타났던 오리엔탈리즘 중 특히 프랑스에서 '신와즈리'라 불렸던 중국풍의 영향에 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본 내용에서는 먼저 그 당시의 주요교역 수단이었던 동인도회사와 프랑스의 역사적 배경 등 18세기 프랑스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Ⅲ장에서는 예술양식사적 배경으로 프랑스 로코코 양식 및 건축, 가구, 도자기, 복식, 직물 등에 표현된 신와즈리 영향에 대하여, Ⅳ장에서는 프랑스 직물문양에 나타난 신와즈리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특히 직물은 인간의 생활용품 가운데서 가장 인간과 밀접하면서 인간의 생활감정과 미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양식을 잘 반영하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Rococo 시대의 프랑스의 실내장식과 복식의 주 소재였던 중국의 채색 씰크(painted silk)의 문양에 나타난 신와즈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였다.
본 연구방법으로서는 18세기의 유럽의 예술양식과 복식사, 직물의 문양 등에 관련된 국내·외 문헌, 석·박사 논문, 박물관 간행물, 사진자료 등을 중심으로 조사하였다.
연구의 범위로는 프랑스의 로코코 문화가 가장 번영한 시기인 1715년부터 1792년까지를 한정하였다. 또한 그 시기의 서양이란 개념은 주로 유럽을 지칭하므로 서양이란 용어 대신에 유럽이란 용어로 대체했다.
Ⅱ. 18세기의 시대적 배경
1. 동인도 회사의 활동배경
십자군 운동 이래로 유럽의 귀족사회와 부유한 시민들은 동양의 물산, 특히 그들의 사치품들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들의 욕구를 불러일으킨 품목들로는 동양의 견직물, 향료(후추), 보석, 귀금속 등이었다. 이들 동양의 상품들은 대개가 아라비아인들에 의해 지중해에 전달되고 다시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지중해를 거쳐 유럽에 수입되는 것이 상례였다. 13세기에 쓰여진 베니스인(Venetian) 마르코폴로(Marcopolo; 1254-1323)의 「동방견문록(The Book of Various Experiences)」8)으로 인해 유럽인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은 가일층 자극되었다.
그 후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고대의 학문 예술을 기저로 한 인간 중심의 문화, 즉 르네상스(Renaissance)가 유럽의 근대화를 촉진시켰고 이 르네상스의 영향은 신항로의 개척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의 근대화 과정은 씰크로드(Silk Roads)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서양에 전래된 제지법·인쇄술·나침판·화약 등이 매개로 작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9)
신대륙의 발견은 동인도 및 동양의 시장, 아메리카 식민지와 기타 여러 식민지와의 통상을 증가시켰다.10) 각국의 동인도 회사는 16세기말부터 17세기 초엽 영국·프랑스·네델란드 등이 왕실의 원조 하에 동양에 대한 독점 무역권을 부여받아 동인도에 설립한 각 나라의 민간기업으로, 동인도의 특산품인 후추, 커피, 사탕수수, 카튼 등의 무역 독점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상업전을 벌였다.
1652년부터 영국과 네델란드의 주도권 싸움에서 영국이 승리를 했고 그 후 카튼을 중심으로하는 인도 무역에 주력을 쏟아 온 영국의 동인도회사(1600년 설립)는 인도에서 프랑스 동인도회사와 격렬하게 다투게 되었다. 결국 1757년, 인도의 플래시(Plassy) 싸움을 계기로 하여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무역을 거의 독점함과 동시에 세계의 해상권을 독점하기 시작했다.11)
이 시기의 중국은 외국과의 교역이 활발하지 못했던 명왕조(Ming Dynasty; 1368-1644)가 붕괴되고 청왕조(Quing Dynasty; 1644-1911)가 창건되면서 서양과의 무역이 활발히 재개되었다. 이때 중국의 Canton(廣東)은 유럽인들과의 교역의 주요 항구로 영국의 동인도 회사의 선박을 중심으로 프랑스, 네델란드 등의 유럽 여러 나라의 많은 선박이 내항하여 중국의 공예품 등을 수입했다. 서양의 이탈리아 항구도시, 포르투갈, 영국, 네델란드에 전해진 중국의 수출품들은 동양의 문화와 관습이 나타나는 도자기·차(tea)·씰크 등이었다.12)이중 중국의 씰크는 상대적으로 직물의 가벼운 무게와 운송의 편리함뿐만 아니고 신비롭고 화려한 문양으로 인해 유럽상선들의 주요 구매품이 되었다. 이 시기는 복식의 형태보다도 사용된 직물의 종류가 유행을 결정하던 풍조였으므로 수입된 귀중한 씰크는 대부분 예외없이 유럽 귀족들의 복식으로 만들어졌다.
2. 프랑스의 역사적인 배경
프랑스는 화려한 궁전 생활을 영위하며 바로크(Baroque)시대의 막을 내린 루이 14세(Louis ⅩⅣ; 1643-1715)의 서거 후 오를레앙(Orleans)공에 의한 섭정시대(1715-1723년간)를 거쳐 루이 15세(Louis ⅩⅤ; 1715-1774)와 루이 16세(Louis ⅩⅥ; 1774-1792)의 로코코시대를 맞는다. 루이 15세의 섭정시대부터 루이 16세시대의 초기까지 가장 화려했던 프랑스의 로코코문화는 유럽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유럽 각국은 앞다투어 프랑스의 문화를 추종했다.13)
하지만 화려한 문화적인 배경과는 달리 프랑스 왕실의 재정은 루이 14세 말년의 반프랑스동맹에 맞서 치른 전쟁과 루이 15세때의 영국과의 식민지 쟁탈로 인한 7년전쟁(1756-1763), 루이 16세의 아메리카 독립전쟁의 지원 등 잦은 전쟁과 왕실의 재정 낭비로 인한 국고 고갈이라는 재정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시기의 프랑스는 교육받은 많은 시민들이 사회아 정치에 참여하여 귀족과 고관들의 세력이 둔화되고, 사회·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르네상스시대부터 싹트기 시작했던 지적 혁명은 18세기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성립하여 다른 지역에도 널리 전파된 계몽사상(the enlightenment)으로 성립됐다.
계몽사상은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관념의 도전이며 새로운 정치이론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경험론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정치적·경제적·사상적으로 계몽주의사상을 받아들인 신흥 부르즈와즈(bourgeoisie)의 성장이 이루어져 마침내 프랑스혁명(the French Revolution; 1789-1794)에서 행동으로 옮겨졌다.
무능하고 결단력을 결핍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Marie Antoinette;1755-1793)를 처형시키기까지 한 프랑스 혁명은 전형적인 시민혁명이었다. 혁명의 결과, 정치적으로는 전제적인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시민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봉건적인 잔재를 제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순조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14) 이러한 혁명정신은 이웃나라들에까지 파급되어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에 충돌을 야기시켰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국 속에서도 유럽은 새로운 산업기술과 생산의 대변화의 시기를 맞게된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중기 영국에서 시작하여 유럽 각국 및 세계 여러 나라에까지 전파되어 현대인의 물질적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증기를 동력으로 하는 완전 기계화된 방적기와 직조기의 발명으로 인해 우수하고 다양한 직물을 빠른 속도로 직조해 낼 수 있게 되어 직조생산 업계의 번성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산업혁명은 전성시대를 맞게 됐으며 근대 복식의 발달을 가져왔다.
한편 이러한 유럽의 정치적·경제적인 격동의 시대에도 동양과의 교역은 계속되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인도나 페르시아 등과의 접촉을 통해 유럽인들은 동양의 예술과 더욱더 친숙해졌으며 그 시대의 가구나 색채의 조화, 공예품 등에 동양풍이 적용되었다. 페르시아와 인도의 소품들과 중국의 공예품들이 이 시대의 중요 실내 장식품이었고 유럽의 귀족들은 다투어 동양의 직물을 비싼 값에 구입하였다.15) 따라서 영국과 프랑스는 국내의 직물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러한 직물의 수입을 금하였으나16) 오히려 구매욕구를 자극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수입된 직물로 만든 복식은 특권층의 상징으로 더욱더 가지기 어려운 물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Ⅲ. 예술양식사적 배경
18세기의 프랑스는 정치적·경제적으로 태양왕인 루이 14세 시대의 위세를 점차적으로 잃어갔지만, 여전히 유럽 대륙의 중심을 이룬 대국으로 사회적·문화적으로 17세기에 이어서 계속 지도적인 입장에 있었으며 프랑스적 사고가 유럽을 온통 지배했다. 이 시대는, 사상적으로는 이성만능의 시대이고, 사회적으로는 향락추구의 시대였다. 17세기에 증대하던 상업력과 결탁해서 강대한 왕국들을 이룩해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통으로 내려오는 귀족계급과 나란히 부유한 시민계급이 지배세력의 일원으로서 기반을 쌓았다. 그들은 신분적으로 귀족계급과 거의 비슷하게 강해지자 사회적·사상적으로 18세기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이 시대에는 계몽주의와 함께 미술면에서는 로코코양식이 태어났다.17)
로코코란 말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로카이유(rocaille)와 코키유(coquille) 두단어가 합쳐진 글자로, 로카이유는 자갈을 의미하고 코키유는 조개껍데기를 말한다.18) 본래는 당시 귀족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식양식 내지 공예품에 대하여 쓰인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18세기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미술 전반에 걸친 양식 개념이 되었다.
로코코 미술의 성격은 루이 14세 시대의 장중한 위압감, 화려한 의식을 갖춘 궁정 생활이 낳은 바로크미술과는 달리, 가볍고 섬세한 색채와 문양으로 현란하기는 하지만 아주 세련된 귀족 취향의 미술이었다. 그 주체가 되었던 장식미술은 아름답고 화려하고 경쾌하게 약동하는 곡선의 활용과 좌우균형을 파괴한 자유로운 형식을 특징으로 하여, 장식적으로 문양화된 모티브와 자연주의적인 모티브가 뒤얽힌 것으로서 경쾌하게 공간 속에서 전개된 화려하고 친숙한 양식이다.19)
로코코양식은 그 당시의 프랑스 상류귀족여성들의 취미와 사회참여를 반영하며 재력과 야심있는 사교계의 마담들은 사회의 유명인사들을 로코코 살롱에 초대해 토론과 파티를 즐겼다. 이러한 프랑스 상류계급의 생활태도는 그 당시 유럽의 상류계급사회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루이 15세의 평민출신의 연인 마담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 1721-1764) 는 당시의 문학 및 미술의 대 후원자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수입물품을 보급하는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당시의 로코코 미술에서는 장식 모티프로 중국풍 인물이나 정경을 도입한 형식이 유행했는데 이렇게 중국문물에서 발상 또는 표현의 원천을 구한 문예·예술상의 한 경향 및 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신와즈리'라 했다.20)
신와즈리의 경향은 고대 말기 이후 중세에서도 나타났으나, 근세에 이르러 유럽인들의 대항해 무역시대에 중국이나 극동의 문물수집 증대에 따라 현저해졌으며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걸친 유럽에서 그 절정에 달해 중국 및 극동풍의 문양이나 풍물들이 건축양식, 가구, 도자기, 복식, 직물 등에 표현되었다.
중국 건축양식의 파고다(pagoda)는 유럽에 있어서 가장 광범위하고 쉽게 인식된 중국 심볼(symbol)이 되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Versailles) 정원에 있는 자기의 트리아농 궁전(The Trianon de Porcelain; 1670년 건립)은 루이 14세의 연인 마담 몽테스판(Madame de Montespan)이 광택나는 백색의 타일과 금박칠, 중국풍의 씰크커텐을 기조로 세련되게 실내장식한 조그마한 이궁(離宮;별채)으로 중국 건축양식의 파고다(pagoda)를 정원에 장식했다. 이후 각국의 궁전이나 별궁의 정원에 신와즈리 파고다 및 키오스크(kiosk; 정자)가 세워졌고 실내장식에도 신와즈리 양식이 도입되었다.
가구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 및 지역의 양식을 대담하게 절충 또는 혼합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영국인 토마스 취펜데일(Thomas Chippindale; 1718-1779)에 의해 중국과 고전주의의 영향이 섞인 중국식 취펜데일(Chinese Chippindale)양식의 가구가 탄생했다. 그 외에도 중국풍의 파고다나 중국 풍경 등의 신와즈리 문양을 가구의 덮개 직물에서도 볼 수 있다.
유럽인의 중국 도자기에 대한 흥미는 중세 말부터 엿보이나 16세기말부터 중국의 공예품이 다량으로 수입되자 유럽의 왕후 귀족들이 다투어 수집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단순한 수집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으나 17세기초에 도자기 제조법의 비밀을 발견한 후 곧 동양의 모방품을 만들어내게 되었다.21) 네델란드의 푸른 델프트도기(Delft ware)는 중국식 도자기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 그림의 디자인에 중국풍 문양을 그린 것으로 유럽 각지에 널리 수출되었고 유럽인의 생활에서 차(tea) 마시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이러한 동양의 공예품과 그 모방품을 실내의 장식에 활용하게 되었고 근세 서구 도자기에 대한 중국의 영향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신고전주의의 등장으로 이 유행은 쇠퇴하게 되었으나, 현재도 엑조티시즘(exoticism; 이국취미)의 대표적인 것으로 잔존하고 있다.
18세기 복식에서도 다양한 동양풍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로브(robe) 또는 드레싱 가운(dressing gown)으로 불리우던 반얀(banyan)은 동인도계(East Indian)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 시대의 남성들이 많이 착용한 실내복이며 이외에도 여행자나 외교관들의 초상에서 동양에서 구입한 이국적인 복식을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18세기에 유행하던 상류층의 여흥에도 중국풍의 영향이 나타나 기마곡예와 왕실내의 가장 무도회, 축제시의 그림자 연극, 발레 의상 등에 파고다모양의 모자나 중국의 문양, 파고다 슬리브 등 중국풍의 요소를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부채가 귀부인들에게 중요한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이전시대인 17세기의 바로크회화에 나타난 여인들이 손수건을 한손에 늘어뜨리게 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비해 18세기의 귀부인들은 손수건 대신에 접는 부채(folding fan)을 흔히 지니고 다녔다. 접는 부채는 얼굴 표정을 감추고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한 필수품으로서22) 이용되었으며 이는 중국풍의 한 영향으로, 중국에서 부채는 중국의 명왕조때 유행했고 남녀 모두 지니고 다녔었다. 중국의 접는 부채는 포르투갈과의 교역으로 16세기때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중요한 소지품의 하나가 되어 손수건을 대신하게 되었다.23)
로코코시대에는 피그테일(pigtail; 변발)이라 불리우는 머리모양이 유행하였었다. 이는 중국으로부터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초기에는 군인들의 머리형이었던 단정하고 편리하게 땋은 머리가 일반인들에게 보급된 것이다. 이것은 13세기에 몽고족이 중국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원(Yuan Dynasty; 1279-1368)이라는 자신들의 왕조를 창건하고 원주민인 한족에게 그들 고유의 머리 스타일인 변발을 강요한 것이24) 17세기초에 유럽에 전파된 것이다.
중국이 서양에 끼친 영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씰크의 전파로 중국에서 B.C. 4000년경에 씰크가 생산된 이후 씰크로드를 통해 씰크가 서서히 서양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오늘날의 이란, 시리아, 이라크 지역의 고대의 파르티안(Parthians), 싸싸니안(Sasanian)등의 왕조를 거쳐 B.C. 1세기 로마제국(Roman Empire; B.C. 750-A.D. 476)에 전해진 후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A.D. 395-1453)시대에 본격적인 생산기술의 발달이 시작되었다.
씰크의 생산기술이 전래된 이후 중국의 문양은 14세기의 이탈리안 씰크에서 보이는 용, 개, 사자, 불사조와 독일의 리넨(linen)의 바탕에 기하학적인 격자무늬,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에서 생산된 대 여섯개의 타피스트리에 중국의 문양이 나타난 것처럼 서양세계의 직물디자인에 끊임없이 반영되었다.25)
Ⅳ. 18세기의 프랑스직물에 나타난 신와즈리
18세기의 유럽의 씰크 생산업은 주로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독점되었는데 프랑스의 리용(Lyon)은 17, 18세기 대부분에 걸쳐 유럽의 중요한 드로우 룸(drawloom)26) 문양의 씰크 생산지였다. 이것은 루이 14세의 후원과 기술자들의 뛰어난 능력, 그리고 쟝 르벨(Jean Revel), 필립 드 라살(Philippe de Lasalle), 쟝 필르망(Jean Phillement)과 같은 디자이너들의 재능 덕분이었다.27)
이 시대의 주도적인 직물의 문양은 17세기의 무늬가 크고 대담하며 형식화된 꽃무늬 문양으로, 바로크 양식에서 부정형이나 유동적인 조형요소들이 표현되었던 것과는 달리 좀더 가벼운 재질 자잘한 문양, 작은 크기의 꽃 문양, 신비하고도 밝은 분위기, 여성적이면서 감각적인 세련된 화려함으로 표현되었다. 주로 사용된 문양은 꽃, 꽃과 과일, 꽃과 리본, 레이스 무늬, 꽃과 코키유, 꽃과 정원의 풍경, 꽃 바구니 등으로 꽃이 주요 주제였다. 문양에 사용된 색상은 17세기의 흰색 바탕에 황금색의 조화나 검정색 바탕에 황금색의 조화를 피하고 자색, 황색, 엷은 장미색, 빛바랜 녹색 등의 색상을 주로 사용하였다.28)
또한 동양문화의 영향으로 신와즈리 문양이 유행하였는데 중국인들의 생활모습, 인물, 풍경, 아이들의 모습, 파고다 등이 주된 모티브로 애용되었다.29)
Fig.15-a는 엷은 베이지색 바탕에 황금색과 짙은 갈색의 색상으로 표현된 신와즈리 문양의 직물이다. 화면을 아래위로 반을 나눈 듯한 구성인데 아래 부분에는 정자가 세워진 강변과 뱃놀이를 즐기는 정경이며 윗 부분에는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 부르는 새와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와 새장을 열고 있는 듯한 아름다운 중국여인을 도안했으며 부인의 뒤쪽에는 많은 자식을 상징한다는 석류 과일나무가 있다.
Fig.15-b는 1775년에 카튼에 프린트된 것으로 중국식의 돌 난간 위의 정자와 전원풍경, 중국식 건축물, 차를 마시거나 담소하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즐겁게 노는 어린이의 모습들이 보이는 목가적인 풍경의 신와즈리 디자인으로 직물의 문양이라기 보다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Fig.16-a는 18세기에 프랑스의 쌔틴(satin)으로 만든 웨이스트 코트(waist coat)로 나무 위에서 노는 변발의 중국 소년의 모습이 췌인 스티치로 자수 놓아진 신와즈리 문양이다.
Fig.16-b는 변방의 마을 풍경으로 성곽과 탑, 중국의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과 군인들이 카튼에 프린트 된 것으로 원근감의 수법이 가미되어 공간의 멋을 느끼게 한다.
당시의 직물에 나타난 신와즈리 양식은 다른 로코코 직물 무늬들과 함께 혼합된 형태로 많이 디자인되었고 당시의 주도적인 분위기였던 경쾌함과 로코코 형식의 섬세한 아름다움과도 조화를 이루었다. 이러한 신와즈리 양식의 직물은 복식의 소재로 즐겨 사용되었는데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의 박물관의 실존 유물 복식이나 회화에 그려진 인물의 복식에서 신와즈리 문양의 직물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Fig.17은 로코코 말기의 대표적인 로브 아 라 폴로네즈(robe 㭁 la polonaise)로 오버스커트를 여러 개의 드레이프로 부풀려서 양옆과 힙 쪽에 놓이게 한 것으로 스커트의 폭도 좁고 길이도 약간 짧아서 활동하기에 간편한 로브이다.30) 왼쪽의 흰색 바탕의 로브와 오른쪽의 노란색 바탕의 로브는 모두 중국의 채색 씰크로 문양이 수공으로 그려진 것이다. 문양으로는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의 꽃무늬와 신와즈리의 흐르는 듯한 곡선의 연결선(줄기)의 모티브가 혼합된 디자인으로 이런 디자인을 '바자르(bazarre)'로 일컬어지기도 했다.31)
Fig.18은 프랑소와 위베르 드르에(Francois Hubert Drouaes)가 1764년에 그린 로브아 라 프랑세즈(robe a la francaise)를 입고 있는 마담 퐁파두르(Madame Pompadour)의 초상화로 공식 예복이 아닌 평상복의 차림새이다. 로브 아 라 프랑세즈는 상체는 꼭 끼고 스커트는 양옆으로 벌어지며 뒤에는 와토 주름(watteau pleats)를 넣어 풍성하게 한 로우브를 말한다. 32) 로브에 별로 장식이 없으므로 중국의 채색 씰크의 꽃문양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의 채색 씰크에서 보이는 꽃 무늬는 그 당시 유럽 로코코양식의 주 소재였던 꽃 문양과는 차이점을 보여준다. 유럽의 꽃 무늬를 동양과 비교한다면, 그 차이점은 누가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동양의 꽃 무늬는 형태가 단순화된 문양인데 비해 유럽의 꽃 무늬는 사실적인 묘사와 입체감이 표현되었다.33)
Fig.3-a는 1760년대의 프랑스의 궁정 예복인 로브 아 라 프랑세즈로 길이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고 걸을 때마다 와토 주름의 뒷 부분이 아름답게 너울거리는 가운으로34) 은실이 섞인 브로케이드 씰크에 은실로 짠 레이스장식이 있다.
Fig.3-b는 의 세부면으로 중국의 신와즈리 문양으로 파고다 장식의 중국식 정자를 디자인하였다. 정자옆의 야자나무는 중국식 문양은 아니지만 역시 동양의 이국적인 문양으로 동양의 이국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여 사용되기도 했으며 사용된 이 브로케이드는 프랑스의 리용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 시기의 신와즈리 문양의 직물 생산지로는 중국에서 수입한 채색 씰크외에도 리용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국내 생산도 있었다. 또한 역으로 로코코 직물 디자인도 유럽의 직물 공장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생산되어 수입되었는데 이는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중국으로 씰크를 주문을 할 때 그 시기의 유행한 직물 디자인을 중국에 보내서 중국의 예술가들에게 모방시켜 그리게 한 것으로 꽃무늬가 주된 것이었지만 과일이나 새, 곤충 등의 그 당시에 유행한 로코코문양으로 색상이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이 주문에 따른 물품들은 약 14개월 후 런던(London)에 도착하였고 다시 유럽으로 재수출되었다.
따라서 유럽의 많은 박물관의 복식유물 중 문양만 가지고는 유럽에서 생산되었는지 중국에서 생산되었는지 정확하게 씰크의 생산지를 알아낼 수 없게 되었다. 이 당시에 사용된 씰크의 원산지를 구별하기 위한 노력이 직물사학자에 의해 끊임없이 연구되었으며 몇 가지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중국의 채색 씰크(painted silk)는 문양이 수공으로 그려진 것으로 천 위에 은색의 안료로 바탕선을 그린 후 조심스럽게 선안이 채색되었다. 하지만 유럽의 그 당시에 생산된 씰크에서는 은색의 안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송왕조(Song Dynasty;960-1279)시대부터 문양의 색조를 강조하기 위해 흰색의 안료를 채색할 부분의 바탕에 먼저 칠하고 그 위에 다른 색상을 덧칠함으로써 깊은 농도의 입체감을 주었다. 따라서 중국의 채색씰크는 유럽에서 생산된 씰크(흰색바탕을 안 칠함)보다 두껍고, 불투명한 느낌을 준다.
또한 유럽산과는 달리 중국의 씰크는 직물의 가장자리선인 쎌베지(salvage)가 직물의 바탕색과는 대조적인 색상이고 쎌베지에는 템플 홀(temple hole)이라 불리는 구멍이 있었다. 프린트된 씰크인 경우 대부분이 우드 블락(woodblock) 프린트이지만 붓으로 프린트된 바탕선을 벗어나게 덧칠함으로써 자유롭게 그려진 느낌을 주었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씰크는 주로 평직의 태피터(taffeat)와 쌔틴(satin), 거즈(gauzes) 등으로 문양이 채색되거나 자수가 놓인 것 또는 두 가지가 함께 사용된 종류가 있었는데 채색씰크는 자수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디자인이 표현될 수 있었으므로 채색 씰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35)
Ⅴ. 결론
동·서양의 문화적인 접촉이 시작된 이후 다방면에서 동·서양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왔으며 이질 문화의 접촉이 서로간에 활기를 주고 변화시켜왔다. 이러한 문화적인 상호 영향성은 '오리엔탈리즘'이란 용어를 창출했고 오리엔탈리즘의 범위 속에 세분화되어 표현된 용어인 '신와즈리(Chinoiserie)'는 중국의 취향이 유럽의 예술양식, 즉 건축·공예·회화·복식·직물 등의 디자인에 표현된 양식을 말한다. 신와즈리는 서양의 고대를 거쳐 중세시대, 르네상스시기까지도 간간히 나타났지만 17세기 후반을 거쳐 18세기에 절정을 이루며 로코코의 예술양식과 결합하여 동양의 이국취향과 신비스런 분위기를 표현했다.
본 논문은 주로 Rococo시대(18세기)의 프랑스의 복식과 실내장식 등에 사용된 씰크에 나타난 신와즈리 문양만을 서술하였는데 18세기 유럽에서 인기있던 직물로는 씰크 외에도 날염된 면직물이 있었다. 특히 인도에서 수입된 날염직물인 췬츠(chintz)는 중국산 씰크와 거의 동시에 거의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사용된 직물로 인도풍의 문양 외에도 중국풍의 문양이 나타난다. 이외에도 프랑스에서 생산된 면직물의 문양에도 중국의 이국적인 정경이 문양으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뜨왈 드 쥬이(Toiles de Jouy)라는 프랑스에서 생산된 날염직물 등의 문양에도 신와즈리 디자인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사용된 대부분의 직물에는 신와즈리 문양·색상 등이 반영되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와즈리는 복식과 직물에서 19세기 20세기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패션 트랜드에서 복식의 씰루엣이나 직물의 문양, 또는 색상의 조화 등에서 계속적으로 되풀이되어서 나타나는 하나의 사조가 되어왔다.
본 논문은 프랑스의 신와즈리의 영향을 프랑스의 로코코 에술양식과 결부된 것으로 연구·조사 범위를 한정했다. 그 당시의 신와즈리 영향이 단지 프랑스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고 영국이나 그 외 유럽에까지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만을 배경으로 한 것은 신와즈리란 용어의 출발점이 프랑스였기 때문이다.
본 논문이 계속해서 19세기의 동양문화가 서양문화에 끼친 영향 중 복식과 직물에 관한 후속 연구의 선행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앞으로 복식사(직물사 포함) 분야에서 19·20세기에 강하게 나타났던 신와즈리를 포함한 모든 동양풍에 대한 연구가 18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박물관의 역사 복식이나 직물연구에 있어서 직물 문양의 시각적인 판독만으로는 직물이 만들어진 연대와 생산지들을 판별해낼 수 없으므로 복식사 분야에서의 이러한 역사 유물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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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 저술은 Marco Polo가 중국의 원왕조의 쿠빌라이(Kubilai Khan) 황제아래서 경험한 것 을 소개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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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인도제도(East Indies)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제도를 가리키는 역사적인 명칭. 근대초 기 유럽인들이 동남 아시아에 진출했을 때 이미 알고 있었던 인도 대륙을 기준으로하여 그 동쪽에 위치하는 섬들을 막연히 총칭했던 이름으로, 네델란드, 영국이 다 함께 이 지방 특산물의 독점을 목표로 설립한 무역회사의 명칭에도 동인도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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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정흥숙. Op. Cit., p.266.
25. Textiles 5,000 years, Ed. Jennifer Harris, Harry N. Abrans, INC., 1993, pp.8-13.
26. 드로우 룸(draw loom)은 정교한 직물을 짜는데 이용된 직기로 중국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발명된 것으로 본다. 2명의 직공이 필요한 직기로 harness는 직기 장면에 앉아있는 직공이 조작했고 pattern sheds는 직기위에 앉아있는 draw-boy가 조작했다. 19세기초기에 자카드식 문직기(jacquard loom)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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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정흥숙. Op. Cit., pp.24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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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정흥숙. Op, Cit.,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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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정흥숙. Op. Cit., pp.24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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