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6. 그대 아직 살아 있는가. <백령도 1>

[운영자]

<연재 16회>

그대 아직 살아 있는가

   백령도(1)

박필수, 바오로 신부는 신도의 부친이 돌아가셔서 그 영결 미사를 주재하고 오후 늦은 시간에 성당으로 돌아왔다. 그는 성당 입구에서 교회와 울타리를 사이하고 있는 송영감과 마주쳤다. 송영감이 그를 보자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언놈이 남의 밭에다 말뚝을 박아.”

근래에 천주교 대교구에서는 각 지역 성당 소유의 땅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전국적으로 새로 측량을 하게 했다. 그런데 막상 측량을 해보니 이곳 백령도 성당의 경우도 성당과 울타리를 이웃하고 있는 송영감네 밭이 교회땅의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었다. 한두 평이 아니라 백여 평이 넘는 땅이다. 교회의 땅은 아무래도 관리가 쉽지 않다. 신부들은 한두 해 근무하다가 떠나고 사무장이나 관리사들은 그런데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주인 없는 땅이 되어 이웃 농부가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면 알 수가 없다. 전국적으로 그런 곳이 많아서 각 지역 성당의 땅을 측량케 한 것이다.

송영감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대대로 붙여 먹던 땅이다. 밭의 경계란 것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천주교측에서 측량을 한답시고 부산을 떨면서 여기저기 말뚝을 박더니 느닷없이 백여 평 땅을 그냥 내놓으란다. 될 법이나 한 일인가 말이다.

송영감은 노발대발해서 성당으로 달려가서 아무나 붙들고 호통이다. 그러나 성당을 관리하는 사무장이나 관리사는 이곳 대대로 살아 온 터줏대감인 송영감을 어려워해서 비실비실 비키기만 한다. 그런 일은 위에서 하는 일이라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 발뺌하기 바쁘다. 그러던 차에 박신부가 돌아오자 송영감은 본격적으로 삿대질을 해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봐요. 신부면 다요? 어째 이게 당신네 땅이란 게요?”

“측량 결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누구 맘대로. 그딴 것으로 촌무지렁이를 위협하자는 수작이제.”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 밭은 대대로 우리가 붙여 온 거여. 당신은 뭐가 잘나서 남 안하던 짓을 하는 거여.”

“허, 영감님. 경우 있게 따지셔야지 행패를 부리듯 해서야 되겠습니까?”

“행패라니? 야. 이놈. 네놈이 신부냐? 이웃집 어려운 것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하느님이 그렇게 가르치더냐?”

영감이 이렇게 막나오는 데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일도 아니다.

“영감님.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측량의 결과가 명백한데 영감님이 억울하면 법에 호소해야지요.”

“왜, 내가 법에 호소해. 이 땅은 우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거여. 절대로 안 되는 거라.”

“그렇게 억지 쓸 일이 아닙니다.”

“억지라니. 뭐가 억지여. 하느님 믿는다는 것들이 억지지. 하느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 교회엘 가 보라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 뺨까지 내주라는 게 성경 말씀이야.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주라는 게 성경 말씀이고.”

이곳 주민들의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연화리에 있는 중화동 교회에 다닌다. 송영감도 초등학교 시절엔 중화동 교회엘 다녔었다. 그러다 보니 들은 풍월이 있어서 저절로 성경구절을 들먹이게 되는 것이다.

“영감님. 천주님은 관대하십니다. 그렇지만 경우에 맞아야지요.”

“경우라고? 어느 게 경우인가? 남의 재산 가로채는 게 경우야?”

송영감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삿대질을 하는데 경우고 뭐고 없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싸움을 걸어오니 박신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맨다. 그런 난감한 중에 문득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사목회장 이이규(李二圭)다. 이름에 이(二)가 둘 겹쳐 있어서 사람들은 그냥 이규씨라 부른다. 박신부가 곤욕을 당하고 있다고 여겨서 사무장이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이규씨의 자택은 진촌 선착장 부근이어서 걸어서도 십여 분 안팎의 거리지만 워낙 성격이 괄괄한 그라 자신의 횟집 영업용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 온 것이다. 건장한 체격의 이규씨가 송영감의 앞을 막아선다.

“이보라우. 송영감. 내래 오기 전에 전화로 대충 들었수다. 남의 땅을 대대로 붙여 먹었으면 고맙다고 해야디요.”

“아니, 이사장. 이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요. 생각해보슈. 조상대대로 붙여 먹던 땅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내놓으라고 하는 게 경우에 맞는 일이요?”

“측량은 중앙교구에서 시켜서 내가 주도했디요. 신부를 보고 행패를 하면 아이되오. 측량의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니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서로 의논해야디 안캈소. 막무가내로 목소리만 높여서 될 일입네까?”

“의논이고 자시고 없수다. 내 땅은 절대로 내 놓지 못하오.”

“허허. 내레 송영감 고집 잘 알디요. 하지만서두 측량 결과가 그리 나왔으니께 방법이 없수다. 송영감이 재판을 해서 이기면 몰라두. 그러니까니 어떤 좋은 방법이 있는지 함께 찾아 보아야지 않습네까? 우리가 억지로 남의 땅 뺏고자 그러겠소?”

이규씨는 그런 식으로 송영감을 달랜다. 송염감도 이규씨에게만은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보다 몇 살 연상이기도 하지만 이규씨는 백령도에서 알아주는 유지다. 그는 진촌 선착장 부근에서 큰 횟집이 딸린 민박집을 경영하고 승합차로 여행사의 손님을 받아서 관광시키는 일도 한다. 사항포쪽엔 가두리어장도 갖고 있고 큰 발동선 한 척도 소유하고 있다. 거기에다 까나리액젖 공장도 갖고 있으니 알짜 부자다.

젊었을 때는 힘꼴이나 썼던 사람이다. 원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사람이다. 젊은 시절 평북 유격대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일명 동키부대라고 하는 유격부대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된 것이다. 백령도에서는 황해도 몽금포와 장산곶이 지척이다. 그래서 실향민의 상당수가 고향 그리운 마음에서 육지로 떠나지 못하고 이곳에 그냥 정착했다. 이규씨도 그런 실향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해서 송영감은 이곳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다. 진촌 사람치고 송만갑(宋萬甲)의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니지 못한다 할 정도로 땅 부자다. 아들이 네 명이나 되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말썽을 부려 그때마다 땅을 팔아서 뒤를 대야 했다. 그래도 아직 남은 땅이 상당하다. 이곳이 섬이고 군사지역이라 땅 값이 별로 없었는데 70년대 개발 붐과 더불어 이곳 땅값도 제법 올랐다. 그러다 보니 송영감의 토박이다운 텃세도 만만치 않게 되었다. 억센 실향민의 기세에 눌리던 토박이들이 땅을 기반으로 점차 힘을 회복하고 있는 터였다.

이규씨는 송영감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것을 보고는 차를 부른다. 그리고 박신부와 송염감을 태우고 사항포쪽으로 나간다. 그는 선착장 부근에 자신의 회집이 있지만 그곳을 피해서 다른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거기에도 이규씨의 가두리어장이 있고 까나리액젖 공장이 있으니 남의 터전이 아니다. 그는 두무진 횟집에서 자리를 잡고는 두 사람에게 술을 권한다.

“송영감. 우리가 어디 한두 해 사귀는 뜨내기입네까? 언제까지 불화하고 지낼 수는 없는 일 아니갔소? 가만 따져 보자. 내레 경오생이니 송영감은 정축생이던가?”

“을해생이요.”

“나보다 다섯 살 밑이네. 하긴 타관으로 나가면 십년 차이도 벗으로 친다는 거이니 다 벗이지만 내 고향 정주에는 두 살 터울로 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한참 밑의 아우 같구먼.”

이규씨는 그렇게 나이로 송영감을 제압하고는 말을 잇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송영감의 말도 맞디요. 대대로 부쳐오던 땅이니 말이웨다. 그러나 박신부의 입장이 되고 보면 또 그럴밖에 없는 일이디요. 측량의 결과가 그렇다니 말이웨다. 그게 박신부 개인 땅이라면 포기할 수도 있어도 교회땅은 그렇게 못하디요.”

다른 두 사람은 술잔을 받은 채 듣기만 한다.

“내 생각엔 그렇디요. 일단 측량의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니까니 송영감이 그 땅을 사면 되겠지만, 송영감이 사지도 않을 테고, 교회는 교회대로 명분 없이 팔지도 못할 테고. 교회재산이란 대대손손 이어지는 것이어서 막상 팔려들면 바디칸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데 그게 또 조련치 않다 말이웨다.”

사목회장 이규씨는 이쪽저쪽 사정을 두루 살피는 식으로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니 좋은 방법은 송영감이 그 땅을 교회의 것이라 인정하고 그 대신 송영감이 과거처럼 그 땅을 그냥 부치는 방법도 있을 것인데, 이를테면 송영감의 집이 성당 바로 옆이니 송영감이 천주교당엘 다니는 거이 좋겠다 그 말이디요. 같은 교우끼리 땅 좀 붙여 먹는 일이야 아무것도 아닙네다. 한 집안 식구가 되는 게 아니갔소.”

그러나 송영감은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물론 송영감이 어릴 때 중화동 교회 신자였다는 것은 짐작하디요. 이곳 사람들 대부분 어릴 때는 중화동 교회 신자였다니 말이웨다. 하지만 천주교나 개신독교나 그게 그거디요. 성경말씀도 같고, 교리도 다르지 않디요.”

이규씨는 원래 말솜씨가 좋다. 말이 청산유수니 누가 가로챌 틈도 없다.

“송영감이 천주교회엘 들어와서 성당을 관리하면 성당주인이 되는 겁네다. 성당의 천주교 땅을 다 관리하믄 참으로 좋디요. 그깐 백여 평 땅 갖고 티격태격 할 이유도 없디요.”

이규씨는 송영감을 설득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쯤에서 술이나 들어야겠다고 판단한다.

“아무튼 찾으면 방법이야 나올 거이고. 자 오늘은 술이나 듭세다. 이웃끼리 얼굴 붉여서 될 일이 아니고. 더구나 신부님은 하느님 일을 대행하는 분인데 그런 분과 다투면 벌받습네다.”

그렇게 해서 세 사람은 권커니 마시거니 하느라 푹 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