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방 동쪽 끝에 있는 섬 사할린.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편으로 2시간 반 남짓한 이곳은 1939년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탄광과 벌목, 도로공사 등에 노동자로 끌려와 조국이 해방되고서도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수많은 고려인들의 눈물과 한숨이 서린 땅이다. 현재 이곳에는 고려인 2세를 중심으로 3~5세가 되는 한인 4만여 명이 오랫동안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소수민족으로 방치되어 우리 말과 글, 우리 전통문화를 거의 잊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사할린 주의 수도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자리한 한인문화센터에는 장구와 북, 징, 단소 등 풍물 가락과 가야금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정헌)가 사할린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에게 잊혀져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파견한 전통예술강사 목진호(40·연희발전연구소 소장) 씨와 황혜진(30·숙명가야금연주단 단원) 씨가 현지 고려인들과 러시아인들에게 국악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국악축전(나라음악큰잔치)의 사할린 공연으로 시작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사할린의 만남이 2006년 숙명가야금연주단의 공연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통예술강사 파견이라는 첫 열매를 맺었다.
![탈춤 수업](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8%2Fimg%2F080228_28.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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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국립대 강의 모습](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8%2Fimg%2F080228_29.gif) |
▲ 탈춤 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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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할린국립대 강의 모습 |
“저희들이 지난해 2월 12일에 사할린에 들어가서 한인문화센터에 처음으로 문화학교를 열었는데 반응이 굉장했어요. 한인 동포분들과 새고려신문 등 현지 교민신문들이 넘칠 정도로좋아하시더군요. 왜 일찍 전통예술강사를 파견하지 않았는지 안타까울 정도였어요”
최근 경남고성오광대보존회(회장 이윤석)의 초청을 받고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 사할린 국립대학생들을 인솔해서 잠시 귀국한 목진호 씨와 황혜진 씨는 “제자들에게 한국에서 우리의 다양한 전통예술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며 밝게 웃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대학생들은 한인 3세인 조타냐(한국 이름 조미녀·19·사할린국립대 생태학 2년)를 비롯해 모두 한인문화학교의 춤 동아리 ‘윙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 회원들이다.
목진호 씨는 “제자들이 한국에서 1주일 간 머물면서 생각보다 한국 사람과 한국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느끼는 것 같아서 보람이 컸다”며 “3월에 다시 사할린에 가면 더욱 열심히 가르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혜진 씨는 “문화학교에는 풍물 동아리 ‘울림’과 ‘불씨’, 춤 동아리 ‘윙스’, 민요 동아리 ‘가인’, 가야금 동아리 ‘가얏고’ 등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고 귀띔했다.
목진호 씨와 황혜진 씨는 지난해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인터넷공개(특채) 모집한 전통예술강사 파견 계약직으로 선정돼 한국 전통예술의 불모지에 국악의 싹을 피우려고 노력해왔다.
![목진호](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8%2Fimg%2F080228_30.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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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진호 씨는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지만 후손들이 남아있고, 전쟁의 잔재와 후유증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며 “그런 역사적인 자리에 전통문화예술을 가지고서 후손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인문화센터와 에트노스예술학교 조선예술과, 제4학교, 제9학생, 제30학교, 코르사코프 한인회 등 6곳에서 현지 고려인과 러시아인 약 150명에게 봉산탈춤과 경기 당굿, 사물놀이를 강습해왔다.
또 포로나이스크와 와흐루쉐브, 워스토크의 한인회를 찾아다니며 한국문화 강습회도 했다. 그는 “동아리를 조직했는데 생각보다 학생들이 열심히 해서 5월 27일에는 제1회 문화학교 발표회를 가질 수 있을 정도였다.
학생 63명이 무대에 올라 춤, 민요, 가야금, 단소, 사물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공연했는데 교민들의 반응이 엄청났다”고 회상했다. 올해 1월에는 제2회 문화학교 발표회도 벌였다.
▶ 목진호 |
황혜진 씨는 가야금과 단소, 국악놀이를 가르쳐왔다. 특히 그는 에트노스예술학교에서 북한의 21현의 가야금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 가야금 12현의 깊고 아름다운 선율을 익혀주는데 힘을 기울였다. 러시아 문화 명예교수인 에이지노바 나탈리야(63) 교장이 러시아 민속예술을 가르치려고 지난 1991년 설립된 에트노스예술학교는 1995년 9월에는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조선과를 신설해 고려인 3세들에게 조선역사와 조선음악, 조선무용, 가야금, 장구, 피아노, 시창(조선노래)을 가르치고 있다.
“에트노스예술학교에 갔더니 북한 강사들이 파견되어서 4년 동안 학생들에게 북한의 21현 개량가야금을 가르쳐왔더라고요. 그래서 전통적인 곡을 배우기보다는 6~7명이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앙상블 위주로 된 창작곡을 많이 배우고 연주해왔어요. 저는 학생들이 우리의 전통적인 12현 가야금을 받아들일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12현 가야금을 통해서 더 깊은 전통의 멋을 알려주자고 결심했어요.”
▶ 황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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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8%2Fimg%2F080228_31.gif) |
그는 “학생들이 우리 전통12현 가야금의 농현을 몰라 왼손을 사용해 농현을 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북한 가야금을 배워서 그런지 12현 가야금을 빨리 받아들이면서 왼손의 농현에 너무 재미있어 했다”면서 “음을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신기해하고 더 깊이 배우려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할린 국립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8%2Fimg%2F080228_32.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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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지난 8월의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다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서 한인문화센터를 찾았을 때, 장구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이다.
“눈물나게 감동 받았어요. 사할린으로 돌아가면서 우리가 없을 때 학생들이 처음 보여주었던 열의와 분위기가 사그라지지 않을까 걱정했더랬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러시아 행사에도 참여하고 자기네끼리 곡을 만들어 공연도 할 정도로 즐기면서 우리 전통음악을 배우고 있더군요. 그때 계속 이런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 사할린 국립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
목진호 씨는 올해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사할린에 파견하는 전통예술강사에 지원했다. 그는 올해는 사할린에 한국 전통문화예술 교육을 제도화할 계획이 있다. 사할린에 4만여 명이라는 적지 않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파견하는 강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사할린 자체 내에서 강사를 길러내어 한국전통문화가 러시아 땅에서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해 러시아 쪽의 사할린 문화담당 국장 블라지미르를 만나 자신이 구상하는 제도를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잠정적으로 받아냈다. 그는 “앞으로 사할린예술전문대학에 한국예술과를 설립해 2년 또는 4년 과정의 한국 전통예술 강사를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황혜진 씨는 올해는 숙명가야금연주단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통예술강사에 지원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항상 마음은 사할린에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정부와 관련기관, 기업들이 사할린의 고려인들에게 더 지속적인 지원을 바라고 있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서 가야금 6대를 가지고 갔지만 배우려는 학생들은 많은데 악기가 터무니없이 부족해 애를 먹었어요.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 한번 입고 버리는 한복을 사할린에 지원하면 좋겠어요. 학생들은 한복이 없어서 공연할 때마다 낡고 떨어진 한복을 입거나 심지어 옷고름도 없는 한복을 입고 연주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거든요”
![문장끝](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home2005%2Fbodo%2Fimages%2Fd_logo.jpg)
▶ 에트노스예술학교 학생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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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노스예술학교 학생들과](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8%2Fimg%2F080228_33.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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