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Cover Story] 제 작품 50번이나 본다고요? 49번 볼 시간에 다른 경험하세요
히가시고가네이(도쿄)=최원석 기자 / 2013.10.05 03:05 / 조선
日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一聲
아이들이 6세 될 때까지 TV시청 제한 바람직, 대신 책을 읽고 사물을 느끼게 해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날것 포착하는 능력 잃게 돼
독서와 체험이 나의 힘, 읽고 상상하는 재미 놓치지 마라
3D가 대세지만 2D 고집하는 건 과잉 시대엔 오히려 빼고 또 빼야
책도 잡지도 많이 만들어져 가치 없어져 제대로 봐야될 것까지 지나쳐 버리게돼
日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 은퇴를 선언한 미야자키 감독에게 “더 이상 당신의 새 애니메이션을 볼 수 없어 슬프다”고 하자, 그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역시 그런 말을 들을 때 은퇴하는 편이 좋아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마지막에 영화 만들었을 때는 다들 ‘이 영감 빨리 죽어라’ 그랬거든요(웃음)”. /이덕훈 기자
도쿄 최대 번화가 신주쿠(新宿)에서 전철을 타고 서쪽으로 30분쯤 달려 대학 캠퍼스와 주택가로 둘러싸인 히가시고가네이(東小金井) 역에 닿았다. 목요일 오전 작은 역사의 한적함을 뒤로하고 북쪽 출구를 나서 골목을 돌아 10분쯤 걸었다. 주택들 사이에 숨어 있던 3층 건물이 나타났다.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 감독 창작의 산실인 지브리 스튜디오다.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 사무실에 남녀 직원 3명이 앉아 있고, 책상 밑으로 고양이 두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사무실 바깥벽에는 최근 개봉한 미야자키의 마지막 장편(그는 지난달 공식 은퇴했다)인 '바람이 분다'와, 지브리스튜디오의 공동 설립자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勳·78) 감독의 올 11월 개봉 예정작 '가구야 공주 이야기'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안쪽 중앙에는 직원들이 쉬거나 식사하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1층 면적은 다 합쳐봐야 한 150평이나 될까? 메인 건물 외에 제2, 제3 스튜디오가 바로 옆에 있긴 하지만, 규모가 고만고만해 인근 주택들에 비해 전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스튜디오를 나와 도보 5분 거리인 감독의 개인 사무실에 당도했다.(그는 스튜디오 외에 별도 사무실을 갖고 있다.) '플랜더스의 개'에 나올 법한 유럽풍 아기자기한 외관이 예뻤다. 문 앞에서 머뭇거리자 창문 안쪽에서 보고 있던 미야자키 감독이 문을 열고 나와 활짝 웃으며 손짓했다.
그의 30년 팬으로서 그의 사적 공간에서 가진 단독 인터뷰는 가슴 뛰는 일이었다. 일본에선 흔히 "지브리는 언론 홍보가 따로 필요 없다"고들 한다. 일본의 모든 담당 기자들이 미야자키 팬이기 때문이다. 1990년 전후로 중·고교를 다닌 기자는 친구들과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天空)의 성(城)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를 불법 복제 비디오로 돌려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1979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 성(城)'으로 장편 데뷔한 이래 '이웃집 토토로(1988)'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등 내놓는 작품마다 전 세계 어린이들, 나아가 많은 어른까지 매료시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에서만 2350만명을 동원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야자키 감독의 표정은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을 때의 약간 짓궂은 표정을 쏙 빼닮았다. 말은 아주 빨랐고, 말 중간 중간 아주 나직하게 "정말로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감독님은 작품에서 '살아라! 세상은 잔혹하지만,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메시지에서 관객들이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건 어쩌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저는 그런 격려를 원했던 것인지 몰라요. 제가 어떤 아이였느냐 하면 몸도 안 좋고 내향적이고 모순에 가득 찬 아이였거든요."
―감독님의 일에 대한 철학은 무엇입니까.
"'네게 주어진 것을 온 힘을 다해 이뤄라'는 말이 있는데요. 제 경우엔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든 다른 뭐를 선택했든 정말 열심히 하라' '자신의 빵을 기뻐하며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다가 배가 아플 수도 있고, 온갖 일들이 일어날 테지만요.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특별하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거나 하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창의성이 기업계의 화두가 된 시대에 미야자키 감독의 창의력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다양한 체험과 독서' 딱 두 가지를 강조했다.
기자가 "'이웃집 토토로'나 '모노노케 히메'는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수십 번 반복해서 봤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자 그는 뜻밖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발끈했다.
"제 작품을 50번 보는 대신 나머지 49번은 다른 경험을 해야죠. 반복해서 보는 49번의 시간에 무언가 잃고 있는 겁니다. 특히 어린이라면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할 기회를 놓치는 겁니다."
그는 "어린이가 여섯 살이 되기 전에는 TV도 보여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실과 TV 속의 것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나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영상으로 장사하며 이런 말을 하는 게 딜레마이긴 하죠"라고 덧붙였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는 경우도 많은데요.
"일러스트의 시대가 지나고, 영화의 시대, TV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영상은 개인적인 것이 돼 버렸습니다.(누구나 언제든 영상을 접한다는 의미) 그러다 보니 현실에 접근하는 능력은 점점 더 약해져 갑니다. 날 것 그대로를 포착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던 그는 간접 체험이라 할 수 있는 독서의 중요성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책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더라도 반드시 책부터 먼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셜록 홈스의 모험'을 책으로 보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꼭 책으로 먼저 읽어야 합니다. 문자로 읽었을 때의 놀라움을 영상으로 옮기면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언어로 읽는 것의 재미가 훨씬 강렬합니다. 어떤 무대인가, 어떤 풍경인가 스스로 생각하는 동안에 무엇인가와 만날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주요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난달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는 감독으로서 창작 활동을 그만둔다는 의미이지 지브리스튜디오에서 손을 뗀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개인 사무실에 일요일만 빼고 매일 출근하고, 지브리 미술관의 전시 작업에 관여하며, 지브리 사내 보육원인 '곰 세 마리 집'의 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 인터뷰가 이뤄진 것은 지난 8월 한국에 출간된 그의 저서 '책으로 가는 문'이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일본의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미야자키 감독이 오랫동안 즐겨 읽은 소년문고 400여권 중 50권을 추천해 놓은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가 해주고 싶은 말들이 각각의 책 소개에 메모 형식으로 달려 있다. 지브리스튜디오는 "책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 어린이들에게 책 읽기의 소중함을 전해 줄 수 있다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애초의 약속 때문에 질문 내용이 다소 제약을 받았지만, 거장의 내면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체험하려 하지 않는 젊은 세대
다시 체험 이야기로 돌아가자. 미야자키 감독은 요즘 젊은이들이 뭔가 저지르고, 시행착오를 하고, 체험하려 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굉장히 싫어하는 말인데요. 사람은 누구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폐가 됩니다. 정말 폐를 끼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 서로에게 아무도 없는 편이 좋을 거예요. 폐를 끼치지 않는 관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발톱을 세우지 않으면, 관계를 갖지 않으면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관계를 갖지 못하고 서로 폐를 끼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착한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병적인 오타쿠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건 사회가 쇠약해지는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건 선인이나 악인을 논하기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체험이 부족한 젊은이들로 인해 애니메이션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희는 뒤를 휙 돌아볼 때 눈의 초점이 먼저 돌아가고 나중에 고개가 돌아가는 표현 방법을 '미래 소년 코난'(1978년)에서 처음 시도했습니다(그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직접 시연해 보였다. 그때 모습은 일흔 넘은 노인이 아닌, 30년 전 TV에서 봤던 '미래 소년 코난'의 주인공들 얼굴 표정 그대로였다. 표정, 눈매, 입 모양, 고개를 돌릴 때의 경쾌한 움직임 등은 '빙의'라 할 만했다). 이렇게 말이에요. 아시겠죠?
우선 눈부터 시선이 '사악' 벗어납니다. 순간적이지만 고개보다 눈이 먼저인 거죠. 그런데 30년도 더 전에 했던 것을 이번 '바람이 분다'에서도 똑같이 하는 직원들이 있었어요. 매너리즘 덩어리인 겁니다. 좀 슬펐습니다(웃음). '내가 30년 전에 가르쳤던 것을 그대로 지금까지 하고 있단 말이야? 적당히 좀 해, 스스로 좀 생각하라고'라는 거죠.
예전 애니메이션에서는 인물의 눈동자가 가끔 깜박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에서는 눈 깜빡임을 일부러 다 지웠습니다. 실사 영화를 보면 실제로 배우들은 눈을 깜빡이지 않아요. 눈을 깜박일 때를 보면, 피곤해서가 아니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사악 뜨면서 연기를 할 때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동안 저희는 그냥 관성적으로 눈 깜박임을 넣어 온 것이었어요.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이 시작된 지 50년이 지났는데 말입니다. 옛날에 가르쳤던 것을 그냥 스스로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눈 깜박임은 넣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여겨 온 것뿐입니다.
제 아들(미야자키 고로 감독)도 애니메이션 일을 하고 있는데, 저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네가 정말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다면 좀 더 스스로 다른 것을 배워라. 지금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해라. 애니메이션으로부터 그림을 시작하지 마라. 실제의 것을 보고 스케치 데생으로부터 시작해라'라고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주실 말이 있다면?
"기술은 이 세계에 들어오면 금방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핵을 확실히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영향력과 표현력을 넓히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아도 좋아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이렇게 미숙한 실패를 하다니'라는 말을 들어도 좋아요. 잎을 피우는 필연의 힘을 가진 줄기만 있다면, 그 후 잎을 피우고 꾸미는 것은 서로 지혜를 짜내면 어떻게든 됩니다. 물론 최고의 이야기는 그러면서도 이파리와 그곳을 기어다니는 벌레들까지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겠지만요.
지금의 일본 문화는 모든 게 희박하고 만화적이 되어 모두가 얄팍함밖에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일본은 생산하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조금씩 의심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생활 자체가 서브컬처로 완전히 메워져 대단히 흐리멍덩해지고 있죠. 이건 민족을 망하게 하는 근원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미야자키 감독이 문 앞으로 나와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인터뷰가 끝난 뒤 미야자키 감독이 문 앞으로 나와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일행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덕훈 기자 3D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이유
요즘 애니메이션은 3D 컴퓨터그래픽이 대세이지만, 지브리스튜디오는 여전히 2D를 고수한다.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이 분다' 공개 기자회견 때 한 기자가 "3D를 만들 계획이 없느냐"고 묻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야자키 감독이 2D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과도 연결된다. 그는 "요즘 영화들은 과잉"이라고 말했다.
"과잉으로 세밀하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TV 영상을 보면, HD 영상이 돼서 화면도 아주 크고, 구석구석까지 다 보이죠. 하지만 그런 것까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 얼굴보다 더 큰 아나운서의 얼굴 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브리 미술관에서만 상영한 단편 애니메이션 '보물찾기'에는 음성도 아예 넣지 않았습니다. 빼고 빼고, 점점 더 빼다 보니 '대사도 필요 없어'라는 식이 된 거죠. 그랬더니 마음이 아주 후련해졌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구나'라고 생각했죠.
영화 '바람이 분다'도 그 연장선입니다. 돌비사운드로 여러 방향에 스피커를 배치해서 이런저런 입체 음향이 나오도록 하는 일을 '바람이 분다'에서는 아예 안 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20~30명이 꼭 웅성거려야 반드시 좋은 게 아닙니다. 2명으로도 잘할 수 있습니다. 옛날 라디오 드라마를 보면 다 그런 식이지요. 일본이 안고 있는 문화적인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겁니다. 너무 많은 양은 질 그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지금은 책도 잡지도 너무 많이 만들어져 한 권 한 권의 가치가 없어질 뿐 아니라, 제대로 봐둬야 하는 것까지 지나쳐 버리게 만듭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3D 애니메이션의 정상에는 미국 영화사 픽사(Pixar)가 있다. 그런데 픽사의 존 래스터 감독은 2009년 칸 영화제에서 "오래전부터 미야자키 감독의 엄청난 팬이었다"며 "'천공의 성 라퓨타'를 비롯해 그의 모든 영화를 좋아한다. 픽사의 모든 영화는 미야자키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2D이지만, 미야자키 영화의 묘사는 매우 생생하다. 그에게 묘사란 무엇일까.
"근육을 그린다고 해보죠. 근육이라는 것은 의지입니다. 의지를 근육이 나타내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서 있는 때에도 뭔가 근심에 사로잡혀 있거나, 필사적으로 뭔가를 생각할 때는 어딘가 몸이 굳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한 조금의 선의 차이로 인해 인물이 무언가 생각한다든지 걱정한다든지 하는 느낌이 나오게 되는 거죠.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라 근육의 일부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근육의 움직임이 옷에도 그대로 전해지게 됩니다. 머리카락도 그렇지요. 뭔가 기분이 좋다든지, 기분이 안 좋다든지 할 때 머리카락에도 나타납니다. 저희는 이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해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세계는 아주 심오한 겁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할까, 어떤 기분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게 되면, 갑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세계의 비밀로 통하는 문'이 열리게 됩니다. 애니메이터들에게 그런 것을 익혀달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고 있는데요. 생각만큼 잘되지 않네요(웃음).
세상은 아주 깊은 겁니다. 그런 것에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이 개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다른 뭔가가 더 없을까 계속 찾게 되겠지요. 많은 것이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세 차례 은퇴 번복했던 이유
미야자키 감독은 지난달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그는 전에 세 번이나 은퇴 선언을 했다가 번복한 전례가 있다. 체력적 한계를 이유로 물러나려 했던 그가 번번이 복귀한 것은 지브리스튜디오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란 것이 정설이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감독님의 뒤를 이을 뛰어난 젊은 인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애니메이션이 잔뜩 있는 시대에 그걸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어려운 겁니다. 모델이 너무 많은 거죠.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시대 쪽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이 강했던 겁니다. 요즘 애니메이션 하는 친구들은 대개 '미래 소년 코난'을 보고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다는 식이에요. '백 투 더 퓨처'인 거죠."
―지브리가 작품화하기도 했고 '책으로 가는 문'에서 감독님이 추천하기도 한 아동서 '마루 밑 아리에티'와도 연결되는 내용인데요. 작품 속의 인간 세상에서 사는 소인(小人)들이 사실 우리일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인간들은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지요. 엄청난 무력감입니다. 무력감의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부는 방사능이 지하수로 유출되는 것을 멈추겠다고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어느 시기까지 사람은 자신들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현대의 특징은 무력감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들 하지만, 결국 소인인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뒤 사무실 바깥으로 나와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그 모습을 포착하고 카메라 연사 버튼을 쉴 새 없이 눌러대자 '허, 참!'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까지 포즈를 취해 줬다. 아쉬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기억에 담고 싶은 마음을 알아줬기 때문이었을까?
미야자키의 작품 세계
미야자키의 작품 세계 ▲ 주요 작품과 특징(괄호 안은 발표 연도)
[Weekly BIZ] 미래 소년 코난·센과 치히로… 그의 작품은 만화영화 이상이다
황의웅 디지털 콘텐츠 회사 '돌도래' 대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저자
눈 내린 겨울날, 홍대 앞 거리를 지나다가 토토로 모양을 한 눈사람을 자주 목격한다. 인터넷에는 고무 찰흙, 종이, 천으로 만든 귀여운 토토로 사진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 캐릭터는 이렇게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1970년대 흑백 브라운관 시절부터 그의 작품은 우리를 웃기고 울렸으니까. 그가 만든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은 7080세대에게 깊은 추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래 소년 코난'은 재방영 요청이 쇄도할 만큼 그야말로 센세이션으로 기억된다.
지브리스튜디오 입구의 금속 간판. ▲ 지브리스튜디오 입구의 금속 간판. 나뭇잎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덕훈 기자
PC통신 동호회 활동과 비디오테이프 보급이 활발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지브리 작품의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미야자키 팬덤 문화는 이후 1990년대 초에 꽃을 피운다. 우리 젊은이들이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원정 관람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앞두곤 뜨거운 감자로서 우리 문화계의 경계 대상 1호가 되었다. 지브리 작품이 국내에 정식 수입되고 나선 철옹성 같던 디즈니의 인기도 서서히 무너졌다. 그리고 지금, 그의 현역 은퇴를 우리의 일인 양 갑론을박하며 더는 작품을 볼 수 없음에 아쉬워들 하고 있다.
'미야자키 문화'는 이처럼 긴 세월을 거쳐 일본 대중문화로는 드물게 우리 안에 안착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단순한 만화 영화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였다. 반전(反戰),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 수준 높은 영상미 등 미야자키 작품이 보여준 매력에 우리 대중문화는 깊은 영향을 받았다.
2005년 최고의 흥행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대표적이다. 박광현 감독은 '미래 소년 코난'을 최고의 영화로 꼽을 만큼 미야자키의 열렬 팬이다. 코난 일행이 살아가는 이상향의 섬 '하이하버'를 연상시키는 동막골의 모습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미야자키 작품의 음악을 전담하는 히사이시 조에게 음악을 부탁한 것도 같은 팬심의 발로다.
같은 해 개봉된 '청연'도 '붉은 돼지'가 기획의 롤 모델이었다. 이뿐이랴. 송일곤 감독은 '모노노케 히메'의 실제 배경인 야쿠시마 숲에 영감을 받아 '시간의 숲'이란 다큐멘터리를 작년에 발표했다. 봉준호 감독은 올해의 화제작 '설국열차'에서 청소년기에 인상 깊게 본 '미래 소년 코난'을 오마주하듯 인간 사회의 계급문제를 신랄히 다루었다. 이쯤 되면 미야자키 작품을 보며 자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우리 영화 작가들이 나뉠 판이다.
다른 문화 장르에 끼친 영향도 폭넓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음악 콘서트의 티켓을 구입해 관람하는 풍경은 미야자키 작품의 음악에 매료되면서부터다. 자우림의 김윤아가 '마녀 우편배달부 키키'를 보고 감명받아 지은 '키키'란 노래를 장나라가 부른 경우처럼 여러 대중가요에 창작 모티프를 제공했다.
도쿄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지브리 미술관은 꼭 들러야 할 성지와도 같다. 미술가들은 지브리 작품의 소재와 발상을 응용한다. 지브리 관련 서적들은 애니메이션 출판이란 새로운 시장을 열었고, 미야자키는 일본인으론 유일하게 국내 위인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면 다른 수입 대중문화에 비해 미야자키 문화의 파급 효과는 왜 이토록 지속적으로 유지된 걸까? 답은 간단하다. 작품에 담긴, 세상을 향한 본질적인 탐구가 우리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재미를 위해 적을 죽이기보다 식물의 작은 싹이 이 지구를 어떻게 살릴지를 그리려 애썼다. 장구하게 지나온 인간 역사의 어둠을 괴롭지만 되씹으려 노력했다.
넓고도 깊은 사고, 그동안 우리 대중문화에는 그 부분이 부족했다. 그것에 대한 갈증을 한동안 미야자키가 아쉽게나마 풀어주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은퇴한 이상, 남은 결핍을 보충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40여년 보며 느낀 것도 적지 않으니, 아쉬워 말고 우리 힘으로 직접 만들어갈 차례다.
[Weekly BIZ] "집사람이 영화 '바람이 분다' 만드는 걸 말렸지만…
난 단지 전쟁시대를 산 사람들 담고 싶었을 뿐"
히가시고가네이(도쿄)=최원석 기자 / 2013.10.05 03:05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목소리를 애써 밝게 내려고 했지만, 약간 풀이 죽어 있었다. 2차대전 당시 전투기 개발자를 그린 최신작 '바람이 분다'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군국주의 미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지난 7월 지브리스튜디오 소식지에서 아베의 헌법 개정 시도와 관련, "아베 정권의 역사 감각 부재에 질렸다"며 "생각이 부족한 인간은 헌법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맹비판해 일본 우익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분명히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뷰 날은 공교롭게도 그의 마지막 장편 '바람이 분다'가 한국 영화관에 처음 걸린 날이었다. 흥행 결과는 참패였다. 일본에서는 600만명을 동원했는데, 전작들에 비하면 부진한 편이었다. 미야자키의 한 지인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한국에서 비판을 받는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주인공이 전투기 개발자인데요. 주인공을 통해 무엇을 그리려 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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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라는 게 이것은 전쟁 때 직업이고, 이것은 평화로운 시대의 직업이고, 그런 식으로 나눌 수 없는 겁니다. 직업이라는 것은 반드시 인간 문명과 함께 가기 때문에 문명이 이상해져 버리면 반드시 그 직업도 이상해지게 됩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거죠. 실제로 호리코시 지로('바람이 분다'의 주인공)의 삶은 갈기갈기 찢어졌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에 대해 내부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한 직원이 말하더군요. '무기를 만든 사람에 대한 영화잖아요.' 저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사실 잘 몰랐지만, 결국 만들게 됐네요. 하지만 제가 무기를 좋아한다는 입장(그는 무기 마니아다. 하지만 지브리 공동 설립자인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그를 '무기를 좋아하는 반전주의자'라고 표현했다)에서 만든 부분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비행기 표현 방법도 아주 절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제 아내도 제게 그럽디다. '왜 이런 걸 만들어요? 토토로 후속편을 만들면 좋잖아요'라고요. 아들도 '아버지는 왜 전쟁에 쓰는 물건을 좋아하시나요?'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의 모순되는 부분인데요. 전쟁을 부정한다고 모든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모순 덩어리로부터 나왔다"고 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왔지만, 직장에서는 부하 직원들에게 "더 일해! 느려터졌잖아! 바보야!" 같은 난폭한 말을 내뱉는다는 것. 평온한 분위기에서 미소를 지으며 일을 시키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모순 없는 사람은 없어요. 모순을 부정한다면 그게 이상한 겁니다. 인간은 모순의 에너지로 나아간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무엇을 얘기하려 했습니까.
"전쟁에서 쓰였다는 것만으로 완전히 배제해 버리면 그 시대를 필사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놓치게 되지요. 호리코시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고성능 전투기를 만들어 다른 비행기를 공격하겠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당시 일본의 우수한 아이들은 전부 비행기 설계자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최첨단의 직업이었으니까요. 정말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