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학술 강연회
[제도 교육·대안 교육을 통해 본 교육 개혁의 방향]
대구교육대학교 초등교육학과 학/술/준/비/위/원/회
여 는 시
오늘 하루
도 종 환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책 한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래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지만
만나서 오래 기쁜사람보다는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나는 또 내가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을 것인가
미워하는 마음은 많았으나 사랑하는 마음은 갈수록 작아지고
분노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이해하는 말들은 줄어 들었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며
모르게 거칠어지는 내 언어만큼 거칠어져 있는 마음이
골목을 들어설 때마다 덜컹거렸다.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혁명의 미래를 꿈꾸었다.
글 순 서
학생회장 인사말
학술 강연회를 기획하며...
교육바라보기
교육개혁을 보는 관점 / 정재걸 (교육학과 교수님)
강연기획글
생명을 먹고 크는 아이들 / 정승록 (민들레 만들래, 동촌초등학교 교사)
학술 강연회 일정
학술준비위원회 소리
인사말
『교육』이란 단어를 깊이 생각해봅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우린 교육을 받고 있고,
선생님이 되어서는 아이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흔히 교육을 "百年之大計" 라 합니다. 하지만 지
금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을 생각해봅니다. 엄청
난 사교육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부모 님들, 입
시를 위해 공부를 강요받다 쓰러져가는 학생들, 제
도의 횡포에 양심을 저버릴 수 밖에 없는 선생님들.......
그럼, 지금 교대의 모습,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참교육
에 대한 열정은 임용고시를 위한 학점에 가려져 이땅의 교육의
미래는 보장받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교육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교육에 대한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책을 읽
고 공부를 하는지요? 이런 현실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교육은 정
권의 시녀가 아닌, 진실을 말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도에 더 이
상 바랄 것이 없는 이땅의 현실 속에서 교육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참교
육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깨뜨려나갑시다. 그것이 예비교사로서
240 초등교육인들의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가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육 세미나를 위해 수고 하고 계신 학술준비위
원회 연구 위원들과 여러가지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깊
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참된 공동체를 가꾸어가는
11대 초등교육학과 학생회장 김철한
학술강연회를 기획하며
'온 누리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자기 손안에 있는 듯 그 반짝이는 두 눈으로 자연을 어루만지는 아이, 특유의 어눌한 표정으로 손에 묻은 흙을 바라보며 이만큼 크게 웃을 수 있는 아이, 학교 가는 도중에 친구가 다쳐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수업에 조금 늦더라도 그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가슴 따뜻한 아이, 구구단 외우는 데에는 비록 자신이 없지만 새 이름·나무 이름·꽃 이름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며 스스로를 대견해 할 줄 아는 아이...' 이런 아이들과 마주하고 싶다. 아니 이런 아이들이 홀대 당하지 않고 어깨를 펼 수 있는 그런 사회와 만나고 싶다.
'대학은 없다.' 감히 첫머리에 이 말을 쓰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의 대학은 자생적·주체적·생산적인 상아탑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개인의 안전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삼아,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일에는 조금의 관심도 두려 하지 않는 극도의 개인주의, 고민과 자유라는 날개를 달고 젊음의 힘을 마음껏 발산해야 될 이 시기에 직업을 위해 도서관과 강의실만을 오가는 황폐해진 대학생, 뚜렷한 자신만의 기준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人. 이것이 바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의 '대단한(大) 학생'의 위치가 아니던가?
스스로를 예비교사라 이름짓는 우리들, 우리들은 여기에서 예외라고 큰소리 칠 수 있는가, '예비교사'라는 단어에 걸맞는 준비를 우리들 자신 지금 해나가고 있는 건가?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야말로 새로운 길 찾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
교육 개혁. 이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이제는 많이 작아진 듯 하다. 너무도 자주 떠올려지는 이야깃거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필요성의 크기가 줄어들어 정말이지 이 단어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만치 우리 교육이 제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는 것일까? 아주 오랜 시간동안 우리는 사회의 불안과 혼란의 근거를 교육의 부재(不在)로 제시해 왔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으려는 의지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 번번히 파묻혀야 했고, 뜻있는 교사·학생·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교육당국의 철저한 방해아래 무시되어 왔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육 개혁'이 아닌 '교육 혁명'을 이야기하려 한다. 더 이상 구호만이 난무했던 지난날의 즉흥적인 미래 제시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 한다. 새로움이 가질 수 있는 이론적 체계성의 부족이 두드러져 보일 지라도, 그것은 오늘날의 보이기식 개혁과제 추진과는 또다른 우리의 접근일 수 있으리라. 그 새로움의 길의 처음을 학술 강연회를 통해 시작하려 한다. 오늘 하루로 길 찾기의 결과를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가슴 속 어느 곳엔가 자리잡고 있을 그 지극한 열정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교육 97 김정국
교육 바라보기
교육개혁을 보는 관점
정재걸(교육학과 교수)
1.
우리는 80년 7.30 교육개혁으로부터 최근 국민정부의 교육개혁에 이르기까지 18년 동안 교육개혁의 구호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다 보니 요즈음 2-30대 청년들뿐만 아니라 나같은 중늙은이도 평생 교육개혁 속에서만 산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18년간 개혁을 했는데 왜 또 교육개혁인가? 이 질문을 구체화하면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된다. "80년의 교육개혁과 노태우 정부 시절 교육개혁심의회의 교육개혁, 문민정부의 교육개혁, 그리고 현재 국민 정부의 교육개혁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80년 7.30교육개혁의 제목이 "과열과외 해소를 통한 학교교육의 정상화"이고 오늘날 국민정부의 교육개혁 또한 입시문제 해결과 학교교육의 정상화일진대 외관상 개혁의 목적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혁의 동기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개혁의 동기는 정치적 동기, 경제적 동기, 교육적(혹은 사회복지적) 동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정치적 동기는 교육개혁을 정권의 정당성 창출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말하고, 경제적 동기는 기업의 교육에 대한 수요를 우선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말하며, 교육적 동기는 사회복지적 차원에서 가급적 많은 국민들에게 높은 수준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개혁을 말한다. 물론 이 세가지 동기 중 어느 하나만을 위한 교육개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강조점이 어디에 있느냐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80년 전두환 정부의 교육개혁은 그 개혁의 동기가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있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즉 광주학살을 통한 집권이라는 정치적 정당성 결여를 교육개혁으로 만회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의 교육개혁 목적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1985년 구성된 교육개혁심의회의 기본방향이 교육의 자율화와 수월성으로 나타나듯이 개혁내용에 기업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6-70년대 국가에 의해 보호받으며 육성된 기업이 이제 자신을 키워준 국가의 간섭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변화를 "교육의 시민사회화"라고 부른 적이 있다.([동향과 전망],1989년 겨울호)
그렇다면 문민정부의 교육개혁의 동기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문민정부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세계화"이듯이 이 시기 교육개혁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동인은 역시 경제였다. 세계화란 말 그대로 국경없는 경제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교육 또한 이러한 국가경쟁력 확보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2.
국민의 정부라고 불리워지기를 원하는 김대중 정부의 교육개혁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까? 취임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새 정부의 정책방향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라고 하였다. 이를 사람들은 "민주적 시장경제론"이라고 표현하는 바, 여기에 대해서는 두가지 상반되는 해석이 내려지고 있다. 그 한가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일시하는 것으로서 이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고전주의 경제학의 현대적인 부활로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니즘이라는 신보수주의 정치의 경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가지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제시한 사회적 시장경제론의 한국적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신자유주의 정책에다가 사회복지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앞의 것이라고 한다면, 김대중 정부의 교육개혁은 문민정부의 것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해석이 맞다면 국민의 정부의 개혁은 기업의 요구 뿐만 아니라 국민의 요구, 즉 복지적 차원에서의 교육개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회의가 만든 대통령 선거공약 속에서는 후자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즉 대학교육의 자율화, 사학지원 확대, 능력중심 사회 실현이라는 과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방향이라고 한다면, 교육재정 확보, 과외해소,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교원처우개선, 학교급식, 특수교육 등의 항목은 사회복지적 정책 방향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민련과 공동으로 만든 인수위 100대 과제나 이해찬 교육부 장관의 취임 기자회견을 보면 사회복지적 정책 방향은 실종되어 있다. 인수위 100대 과제가 보수적인 자민련과 공동 제작한 것이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운동권 출신이라고 하는 이 장관의 발언은 어떻게 된 것일까? 자신의 급진성을 희석시켜 보려는 의도된 행동인가?
3.
향후 국민의 정부의 교육개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암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의 전개과정에서 우리가 항상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그것이 "누구를 위한 교육개혁"인가 하는 점이다.
교육개혁이 신자유주의로 기울면 교육은 철저하게 시장 경제의 논리로 이해될 것이고, 수월성 확보라는 이름하에 학교와 학교, 교사와 교사, 학생과 학생간의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다. 또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름하에 민족이나 전통보다는 서구적 가치와 문화를 우선시하게 될 것이며, 민족문화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으로서가 아니라, "상품"으로서 가르쳐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교육을 통해 경제 활동의 한 구성원이 되는 것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받은 사람이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아가 우주 삼라만상의 한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조화롭게 사는 것이다.
강연 기획글
생명을 먹고 크는 아이들
민들레만들래
왜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가?
교육개혁 이후, 학교현장을 가장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열린교육'이다. 기간의 획일적 교육에서 탈피하여 교육과정을 유연성있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매력적인 교육이였다. 이는 교육내용과 방법, 조직의 자율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국에 수많은 학교들이 시범학교니, 연구학교니 하며 시달려야 했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그저 그들을 베끼기에 정신이 없었다. 처음 의도야 어쨋든, 급속하게 팽창한 열린교육은 그들이 목표로했던 인성교육과 세계화를 주도해 갈 창조적이고 능동적(자기주도적)인 인간을 기르기 위한 교육으로 자리잡기보다는 학교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실적을 많이 남기기 위한 쓸데없는 교육으로 남게 되었다. 교육을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라 정의했을 때, 이 정의의 핵심은 변화에 있다. 변화는 성과 위주 혹은 결과에 치중한 과정을 무시하는 양적 팽창으로서 변화가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자기 나름의 안목으로 바라보는 내적 성장과 관조를 중심으로 하는 질적 변화 즉, 생활양식의 변화에 있다. 이러한 면에서 열린교육은 그들이 스스로 정의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우리는 얼마전 한국열린교육학회 주최 추계 연구발표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열린교육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중지능 이론을 적용한 열린 수업'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발표회는 아동 각각의 개성 발굴과 개발, 신장에 중심을 둔 교육이었다. 이를테면 언어적, 논리 - 수학적 지능을 함양하기 위한 개별화 학습, 혹은 수업의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춘 기존 열린교육과는 달리 아동의 각각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개성, 저마다 제 빛깔을 갖는 개성화에 중점을 둔 교육이다. 발표회 날 오전에 서울에서 내노라하는 사립초등학교를 방문해 2학년 어느 한 반 수업을 참관하였다. 수업은 견우와 직녀 동화 듣기, 낱말카드 분류하기, 동화 감상하기, 뒷이야기 꾸미기, 모둠 활동으로 꾸민 뒷이야기를 다중지능 계발 적용(만화, 그림동화, 인형극, 무용, 음악, 시, 노래로 발표하기), 정리 순이였다. 그런데 뒷이야기를 인형극으로 꾸민 어느 한 모둠의 발표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이 꾸민 이야기의 줄거리는 '견우와 직녀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도망을 가 버렸다'는 거다. 이 발표가 끝나자 아이들은 웃고, 참관오신 선생님도 웃고, 담임 선생님도 웃었다. 웃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는 그것은 마치 잔인한 일본 폭력만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도 같다. 이러한 수업의 결과는 무의식중에 생명을 업신여기는 생각을 아이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게 만든다. 이것은 개성화 교육이 저마다 갖고있는 독특한 제빛깔을 존중하는 교육이 아니라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직업교육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열린교육의 방향이 개별화를 통한 학습력 신장에서 아동 각자가 갖고있는 개성을 발굴하고 신장한다는 쪽으로 한층 더 열림으로 향하고 있긴 하나 이러한 교육이 결국 어떠한 인간을 지향하는지, 교육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내멋대로 내 갈길 가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앞뒤가 바뀐 꼴이다.
기존 제도 교육을 극복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열린교육이 이지경이면 그 이전의, 아직 열린교육을 받아들이지 않은 많은 학교의 교육이야 더 말할 것 어디 있겠는가? 획일과 통제, 명령과 복종,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한 이기주의, 그리고 낱낱이 흩어진 생명력 없는 지식! 이것이 오늘 한국 제도교육의 현실이다.
대안교육의 바탕 - 생명 존중, 주민 자치와 공동체
요즘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대안교육)이 한참이다. 현재 활동 중(매스컴에 소개된)인 대안학교만 해도 십여 개나 된다. 대안 교육의 바탕은 <인간 중심의 교육 - 지식(학문)중심교육에 대한 비판으로 강조한 말 -, 삶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교육, 되살림의 교육>이란 교육의 본질에서 나왔으며 이를 가장 중요한 세계관, 인생관, 교육관의 중심점으로 삼고 있다. 이런 노력은 단순한 기존 제도교육에 대한 거부에 머무는 데서 더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실현시키려 하고, 사회 전체를 거듭나게 하려는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다. 그러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안교육의 노력은 <새로운 교육문화를 만들려는 사회운동>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는 <생명가치의 존중>이며 둘째는 <당사자의 관점과 주민자치와 공동체>의 원칙이다.
'생명가치의 존중'은 파멸 직전에 있는 지구공동체의 살림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자연친화적이거나 환경의 보존, 그래서 인간에게 좀 더 유리한 환경으로 가꾸자는 의미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상생(相生) 혹은 공존이다.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 세계를 생명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세계관을 뜻한다. 발아래서 꼼지락대는 미물의 세계와 희뿌연 도시의 대기 너머에 있는 산과 들, 바다와 하늘.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경외의 마음을 지니는 교육, 전지구적으로 사고하는 삶이 그 알맹이다.
'당사자의 관점과 주민 자치 공동체'는 삶과 앎이 일치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하는 의지와 실천이다. 이 사상은 더불어 사는 삶과 그 터전, 개인의 삶과 사회가 동시에 변화하는 창조적 활동, 생활 속에서 체득된 삶의 원리를 바탕으로 지역의 생태적, 문화적, 인간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삶의 양식 체득, 전지구적 사고와 지역적 삶의 조화를 뜻한다.
한마디로 대안교육은 생명 중심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 터전을 함께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교육이자 바로 그 자체이다.
민들레 만들래가 세우려고 하는 학교
교육이념과 그 목적
<민들레 만들래>의 정식 명칭은 <자치 상생 공동체학교를 세우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며 서로 돕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너무 길어서 줄인 이름이다. 이 모임의 목적은 이 긴 이름에 나와 있듯이 자치상생 공동체 학교(민들레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자치 상생 공동체학교란 자치 상생 공동체교육을 학교라는 것을 통해 실현코자는 것이다. 자치 상생 공동체 교육이란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공동체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어른들 속에서 아이들이 그들의 인격을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동안 개인과 공동체와 자연의 조화를 위한 삶과 앎의 참된 일치를 배워가면 차츰 스스로 생활하는 힘이 생기고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가며 서로를 생각해서 공동체의 일과 자연의 흐름에도 기쁘게 참여하여 보다 참다운 삶을 살려는 따뜻하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들레 학교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평등을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과 사회 모두가 생명존중의 참된 앎과 삶에 이르도록 돕고자하는 교육을 학교에서 실현코자 한다.
우리는 <자연, 자유, 자생, 자치>를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는데 그것을 풀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평등을 조정하는 과정을 자치라고 보고 있으며, 이들 두 대치 가치관을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길을 찾을 수 있게 돕는 과정이 교육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가 보다 따뜻하고 인격적인 환경 속에서 이뤄질수록,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의 가장 뛰어난 스승인 자연 속에서 이뤄질 때, 보다 바람직한 자유의 형태를 지니게 된다고 믿는다. 보다 바람직한 형태의 자유란 곧 자신의 모습을 한껏 드러낼 수 있으면서도 이웃한 이들,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고싶어하고, 참된 삶을 함께 추구하려는 열린 자세를 지니려 하는 것이다. 앎의 과정 또한 지금의 단절되고 지나치게 지식위주의 형식논리에 치우친 것에서 벗어나, 이어지고 통합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서 자신의 관심사를 실생활에서 실현해나갈 전문성을 지닌 삶의 실력자로 자라게 도우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집중과 확산을 통한 가치접근>이라는 교육과정으로 체계를 찾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가 다다르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과 인간, 개인과 사회, 영혼과 자아가 서로를 존중하여 살리고 공존하는 상생(相生)의 공동체이다.
교육 방법의 특징과 활동 방식 그리고 교육환경
개인의 자유를 먼저 꽃피게 하는데서 출발한다. 아이 하나하나에 깃든 독특함을 살려내지 않고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싹틀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자유가 제대로 꽃피려면 환경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일곱 번의 계절학교를 해오는 동안 사람이 꾸면낸 환경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늘 '자연'과 '자연스러움'을 중시해왔다. 시간 중심의 '프로그램'이란 건 거의 없고 공간과 흐름 중심의 '활동'이 준비되어 있다.
민들레 학교에선 아이 스스로 자기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게 어른이 가치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행위자체를 거의 금기시 하고 있다. 심지어 가치전수의 선봉장이랄 수 있는 <교사, 선생님>이란 말까지 가치 공동 발견의 봉사자란 의미를 지닌 <언니>란 말로 바꾸었다.
그러나 자유는 출발점이며 도착점에는 <공동체(또는 이웃)를 향한 자기 헌신>이 있다.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자발적인 헌신으로 개인의 자유는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늘 공동체의 환경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 계절학교의 경우 모둠공동체 속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있는데 이는 관리의 편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이 서로 부딪치는 동안 이웃과 공동체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앎(지식의 습득)의 과정 또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평등을 조정하는 과정과 한 흐름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나름대로 만들고 있는 것이 <집중과 확산을 통한 가치 접근>이란 교육과정이다. 우리의 흔들림 없이 분명한 믿음의 근거는 <모든 개체는 그 자체로 넉넉함을 지니고 있으며 그 넉넉함은 이웃한 것들과 서로 돕는 연관에 의해 더욱 풍부해진다>는 점이다. <집중과 확산을 통한 가치 접근>이란 교육과정도 역시 이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개체가 지닌 구체 상황에 집중하면 그 내용물의 넉넉한 연관고리를 통해 사고와 활동의 확산이 일어나고, 그러는 사이에 참된 가치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흔히 통합적 교육과정의 운영이다. 그러나 기존 제도교육에서 말하는 통합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보통 제도교육에서 통합 방식은 주로 주제통합이다. 한 주제를 갖고 국어, 수학, 사회, 자연, 예체능 따위를 적절하게 배치시켜 교과에서 요구하는 지적 요소들을 배우는 과정으로 짜여져 있다. 결국 낱낱이 흩어진 지식을 억지로 합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들레 학교는 통합교육과정으로 운영하되 긍극적으로 생명을 존중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간으로 자라기를 돕는다. 이를테면 석탄이라는 주제를 통합 교육과정으로 운영 할 때 기존 제도 교육은 성분조사(자연), 쓰임새(사회), 모양 그리기(미술), 석탄에 관련 된 경험 이야기하기(국어) 따위로 접근한다. 그러나 민들레학교는 석탄자원의 유한성, 석탄의 쓰임이 결국 환경파괴와 생태계를 혼란으로 빠트려 우리 모두가 죽음에 다다름을 깨닫고 새로운 대체 에너지의 개발를 통해 우리가 발딛고 있는 터전을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낱낱이 흩어진 단절된 지식이 아니라 생태계의 흐름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전적이면서도 우리 모두를 살림으로 이끄는 상생을 위한 지식이자 삶이다. 결국 이러한 교육은 자연스럽게 생명 존중과 따뜻한 마음을 갖는 아이들로 자람을 돕는다.
민들레 학교는 교육환경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육환경은 한마디로 삶이 녹아 있는 터전(지역)과 대자연이다. 그러나 건물학교를 준비하는 민들레로선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 안과 그 주위의 환경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학교안과 그 주위 환경 마련의 핵심은 자연스러움, 혹은 자연답게 꾸미는 것이다. 좀더 넓게 이야기하면 생활 속에서, 혹은 눈에 뛸 만큼의 인위적인 것을 반대한다는 말이다.
물론, 자연친화적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여럿이 함께 공동체성을 느끼며 가꿀 수 있는 바탕을 담은 환경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거기에 아동의 신체적 발달과 인지적 발달에 맞는 기본 교양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기존 제도학교의 체육시간에 하는 '균형 잡기' 공부를 한다고 하자. 운동장 한가운데 평균대를 서너 개 놓고 아이들은 일렬로 줄을 서게 한 다음 한사람씩 평균대에 오른다. 한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다음 사람이 오르고 또……. 한 시간에 서너 번 평균대를 올라가면 시간이 다 가버리는 그런 재미없는 활동이 아니라, 시원한 냇물이 흐르는 냇가에 외나무다리가 있고 그 옆에 넓적한 돌로 징검다리를 놓아 조심스럽게 한사람씩, 혹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건너기도 하고, 힘껏 뛰어 건너며 몸의 균형을 잡는 그런 환경이 필요하다. 뛰다가 넘어지고 또 미끄러지고……. 학교 건물은 냇물 이쪽에 있고 기숙사는 냇물 저쪽에 있어 아침, 저녁으로, 혹은 깜깜한 밤에 건너며 생활하는 것도 좋겠다. 하나 더 예를 들면 봄에 감자를 심는 활동을 한다고 하자.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땅을 일구고 짬짬이 삽을 들고 퐁퐁 타기 놀이도 해보고, 밭이랑을 만들어 정성껏 씨를 심으며 생명의 소중함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밭이랑과 이랑 사이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뛰어오르기'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그런 환경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제도학교 하는 뜀틀 넘기와 같은...... 밭 골에 심겨진 감자 씨를 밟지 않으려고 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가슴속엔 자연스럽게 생명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리잡게 된다.
이렇듯 교육의 바탕 생각(철학)과 아동의 인지적, 신체적 발달을 고려한 교육환경 혹은 활동 환경이 마치 자연 그대로 인냥 꼼꼼히 따지고 챙겨야 한다. 생활 속에 녹아있는 활동이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과 놀이의 분리가 아닌 그 것의 통합 활동이 가능한 환경, 민들레 학교는 그런 환경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키 위해 노력 중에 있다.
희망과 도전
민들레 학교는 지난 몇 년 동안의 꿈꾸기 단계에서 벗어나 터마련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여기서 터란 땅이란 뜻과 내용이란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땅을 마련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내용을 마련하려면 실천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 대부분 현직교사나 학생이어서 돈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게 현실과의 문제라면 문제다. 하지만 엄청난 돈을 들여야 세울 수 있는 학교 자체를 부정하므로 큰돈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우리의 손으로 모으려고 하며 뜻있는 따뜻한 후원의 손길도 기다린다.
그 다음 단계는 건물학교 세우기 단계로서, 그동안 모은 기금과 준비한 내용으로 실제의 학교를 세우고자 한다. 장소는 자연의 환경이 잘 살아나 있으며 마을의 정서가 그런 대로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면 좋겠다.
문제는 초등학교가 국가의 의무교육기관이기 때문에 국가가 제시하는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따르지 않는 그런 학교가 실제로 가능하겠는가 하는 데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몇 년 뒤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 일을 시작한지 3년째이지만 그동안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다. 이런 수준이라면 앞으로 몇 년쯤 뒤에는 집단주의와 일제 진행을 전제로 하고 있는 국가교육에 대한 불신과 반기로 재택교육(홈스쿨링)을 받는 불취학 아동이 크게 늘어나 이에 대해 국가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 본다. 또 주민 자치의식과 생명존중 사상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스며들어가 지금의 차원과는 다른 의식수준의 교육을 바라게 될 것이며 자기의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 그런 교육이 가능하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바라건 바라지 않건 참다운 교육을 향한 발걸음을 머뭇거릴 수는 없는 일이며 설령 그런 학교를 세우지 못하거나 세워도 실패를 한다해도 때가 안맞아서 그러려니 할 뿐이다. 서두르지 않지만 게으름 피우지도 않겠다. 때를 기다리며 애를 쓰는 것이 우리가 갖출 자세라 믿는다.
우리는 자치 상생 공동체교육이라는 어설프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다. 그런 교육이 실현 가능한 것임을 본보기학교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며 다른 지역에서도 실현되기를 깊이 바라고 있다. 아니 국가의 공교육에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어 참다운 변화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우린 번듯한 건물도, 민들레 이름으로 된 땅도 없다. 하지만 생명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언니들이 있고, 해맑은 우리 아이들이 있어 희망차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문화를 만들려는 도전이 있다. 그래서 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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ㅓㅗㅗ호ㅏ 당일
학과장님 인사말 / 사회자: 김철한(학생회장)
소모임 공연 (사피엔스) / 수화 + 율동
기획 의도 및 강연자 소개 / 사회자: 김정국
강연 하나 / 임성무 선생님(전교조 대구지부 초등지회, 월곡초등)
강연 둘 / 정승록 선생님(민들레 만들래, 동촌초등학교)
소모임 공연 (노리아리) / 손유희
질의 및 토론
마무리하는 시간
우리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련다
학술준비위 연구위원의 소리
이렇게 작은 우리가 모였다. 비록 큰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소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교육 현실이 아닌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교육人 모두가 교육에 대해서 새로이 & 더 깊이 볼 수 있기를...
-96 이은정
2학년 겨울까지는 교육 앞에서 허울좋은 자신이 있었지만 이듬해 봄부터는 그 이름 앞에서 다시 출발점에 선 기분이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오고가는 말들 속에 교육에 대한 꿈과 희망이 묻어나고 서로가 힘이 될 수 있기에 함께 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시간을 통해서 진실로 교육을 향하는 길에 환한 등불을 밝히고 싶다.
-96 (나무를 닮고 싶은)혜진
교육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3년이 되어 가는데, 교육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세미나 준비에 참여하게 되었다. 굉장히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교육에 관해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얼마후의 달라진 내 모습을 기대하며...
-96 윤지혜
교육! 이 말이 내 가슴에 그렇게 와 닿은 것이 바로 작년 이맘때이다. 내가 교육에 대해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행복할 수 있는 교육,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감, 이런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교육이었음 좋겠다.
-97 우정
우리 나라 교육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교육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까지 10여년 동안 제도교육을 받아왔던 나에게 대안교육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제도교육은 무조건 나쁘고 대안교육은 전적으로 옳다라는 흑백논리식의 사고는 위험하단 걸 세미나 준비를 하면서 배웠다. 앞으로 교사가 될 나이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올바르고 진정한 교육관을 정립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또 배워야겠다.
-97 박진희
교육이라는 두 글자... 내가 앞으로 평생 생각해야 하고 행하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해서 그 동안 너무 등한시해왔다. 그러나 이번 학술 연구위원을 하면서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왔던 내 자신이 부끄럽지만 앞으로는 열심히 생각하면서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다.
-97 예일희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한마디씩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어떠한 것인가를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됩니까?
저는 그 한 사람이 되고자 지금 첫 발을 내딛었으며, 이 활동을 통해서 미미하나마 아이들의 밝은 미래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98 이호영
저는 교육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저는 대안 교육의 모델과 실천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교육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낌을 잡은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THANK YOU.
-98 윤문석
첫모임에서 들은 '대안교육'이라는 말은 제게는 너무 생소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배들과 자료를 통해 그것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강연회를 준비하면서 '교육'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98 진금애
현재 나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자기 주장이 확실했습니다. 우리만큼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게 항상 비판적 사고를 지녔으면 합니다.
-98 김재훈
대안교육.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무언가 조금은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안 교육뿐 아니라 교육 자체도 머리 속에 맴돌기만 할 뿐 선뜻 밖으로 표현하기가 어색하다. 이번 강연회 준비하는데 도움이 된 것이 없는 듯 해서 부끄럽다. 이번 강연회 준비한다고 포항도 못 간 ○○오빠와 동분서주한 다른 선배들에게 감사를...
-98 차현미
학술준비 연구를 하며 '교육'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내게 교육은 추상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남은 시간동안 추상적인 그것에 구체적으로 알게 될 날이 오길 바라며 여기에 참여합니다.
-98 남윤정
약 한달 반동안 이곳에 집중해 왔다. 힘들었던 만큼 내 소중한 사람들이 무엇인가 자그마한 꿈 하나를 지녔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리 없이 고민을 같이 해온 연구위원들, 특히나 한참 자유로움을 느껴야 할 시기에 선뜻 학술준비위에 참여해준 98후배님들에게 따뜻한 고마움을 전한다. 모두들 가치 있는 삶에 근접할 수 있기를 바라며..
-97 김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