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新) 행정수도, 충남 연기군의 현장을 밟게 되면서 전국 영적 현장르포를 시작한 지 벌써 1년 6개월, 어느새 16번째 지역을 선정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의 발걸음을 이끄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예전에는 별로 관심 대상에 끼지도 못했던 지역인데, 최근 한반도 전체를 들끓게 하고 있는 곳. 신 행정수도로 확정된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일대이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충남 연기·공주 지구를 신행정수도건설 입지로 최종 확정하면서 밝힌 선정 이유는 이러했다. “신행정수도 입지로 최종 확정된 연기·공주 지구는 충남 연기군 남·동·금남 면과 공주시 장기면 일대 2160만평이다. 중심부에서 해발 260m의 전월산과 254m의 원사봉이 우뚝 솟아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안산’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아래에로는 금강과 미호천이 합류해 동에서 서로 큰 강줄기가 굽어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말 그대로 명당이다. 이곳은 특히 인구중심점 및 산업중심점인 지역으로 충분한 발전잠재력을 갖추고 있으며, 도시에서 가장 필요한 상수원으로 들 수 있는 대청호가 18km 거리에 있고 사통팔달의 교통여건도 최종입지로 선정된 배경 가운데 하나이다…”
정리해보자면 풍수지리학적, 교통, 남한의 중심점 역할 등이 선정 이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행정수도의 건설은 시작 전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치는 등, 그리 쉽지만은 않을 듯 싶다. 수도권 주민들의 집 값 하락 등 개인적인 경제 손실 등은 차치하고라도, 6백년 역사의 수도인 서울의 역사성을 비롯해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역량을 어떻게 분산시켜야할지,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전국 영적 현장르포를 통해, 각 지역마다 흑암문화가 강하게 역사하는 현장들을 확인하면서, 우리 현장르포팀은 당연히 충남 연기군이 신행정수도로 선정된 영적인 배경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단의 숨은 전략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조선시대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설봉산 석왕사기(雪峰山 釋王寺記)’에 따르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함께 서울을 수도로 확정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무학대사는 “한양이 좋기는 하나 잘 해야 6백년이나 될 것이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6백여년이 흐른 근현대사에서, 수도 서울의 이전은 다른 정권 하에서도 매번 거론되는 내용이었고, 지금은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 고승 가운데 풍수지리적으로 최고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험함이 뛰어났다는 무학 대사의 예언은 적중하는 셈인데. 그렇다면 신 행정수도의 출발부터, 우리는 사단의 전략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어떠했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거룩하고, 진리의 성읍이었던 예루살렘은, 사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 가장 우상을 많이 섬기고 범죄한 도시여서, 하나님의 탄식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즉 한 국가의 센터 역할을 하는 수도는, 그야말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 셈이다.
◆ 연기군의 두 가지 인심(人心) 충남 연기군은 위로는 천안, 동과 서로는 공주와 청주, 남쪽으로는 대전으로 둘러쌓여 있는 위아래로 길쭉한 형세를 띠고 있다. 하지만 신 행정수도로 확정된 연기군 남면 일대는, ‘신 행정수도라면 북한산 정도의 산세를 배경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기존 관념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남면 중심부에 있는 해발 260m의 전월산과 254m의 원수산은, 얼른 보아 어느 지역이나 흔히 있음직한 동네 뒷산 정도의 크기에, 앞에 펼쳐진 장남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해도 멀리는 계룡산과 금강으로 경계를 이루는, 아무리 보아도 협소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치원의 이름을 딴 조치원읍을 중심으로 사통팔달의 도로가 뚫리고, 철도가 놓여지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연기군에 들어서자 마자 전혀 상반대는 두 가지 인심과 대면하게 되었다. ‘신 행정수도 연기군 확정 환영’이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기대 심리와 함께, 또 하나는 사실 지역 주민 대부분의 인심이라 할 수 있는 ‘신 행정수도 결사 반대’라는 플래카드였던 것.
큰 도로 옆에는 어김없이 ‘땅을 사고 판다’는 부동산들이 줄을 서있고, 사실 이 곳의 아파트와 땅 값은 오를 대로 올라 있는데. 실제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은 몇 달 사이에 4배, 5배로 오른 집 값에 어이없어 하면서, 실제는 매매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귀뜸을 해주었다.
어쨌든 조금은 막연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영적인 배후가 있을까라는 기대감 속에서 연기군 영적 현장을 밟게 된 것이다. 더 솔직한 표현을 하자면 지난 달 23일부터 24일까지 1박 2일의 현장 르포 기간 중에서 첫 날은, 영적인 흐름을 파악하기가 영 쉽지 않았다. 다락방전도운동이 뿌리내린 지역도 아닐 뿐만 아니라, 타향인들에게 너무나 낯선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1. 연기군 조치원읍에 위치한 오봉산 입구에 세워진, 남신상과 여신상 등 우상 형상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 2.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으로, 지금 연기군은 두 가지 인심으로 나뉘어져 있다.<사진은 행정수도 결사반대를 알리는 플래카드> 3. 오봉산 뒤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321지정된 460년 된 봉산 향나무. 생긴 모습이 용이 서려 있는 것과 흡사하다. 4. 연기군의 자랑거리인 고복저수지 전경. 5. 고복저수지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금강산선녀 보살, 번개도사가 운영하는 무속인의 집. 6.7 연기군의 대표적 사찰로 손꼽히는 비암사 전경, 주지인 비구니 스님은 ‘비암사가 백제의 중흥을 위해 세워진 절’이라고 소개했다. 8. 바위산장 주인 김영자 씨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는 모습. 9. 고복저수지 근처에 세워진 연기대첩비.
◆ 조치원의 진산(鎭山)이라는 오봉산, 봉산 향나무 오봉산은 조치원의 서남쪽에 위치한 조치원의 진산(鎭山)이다. 높이가 262m이며 다섯 개의 봉으로 이루어져 오봉(五峰)산이라는데. 조치원읍에서 차로 10분도 채 안되는 곳에 위치, 평상시에도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오봉산 입구에는 천하대장군 모양을 본뜬 발 바닥 모양의 남신상과 여신상을 비롯해 솟대와 돌탑 등이 세워져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5개의 봉이 풍수지리상의 의미로 이름이 붙여져 있던 것. 제1봉은 정상봉으로 목형봉(木形峰), 제2봉은 평상봉으로 화형봉(火形峰), 제3봉은 토형봉(土形峰), 제4봉은 금형봉(金形峰), 제5봉은 수형봉(水形峰)으로 오행을 갖추었다. 그래서인지 오봉산 중턱의 약수터에는 기우제와 산신제를 지냈다는 것.
또한 이 오봉산은 강화 최씨와 인연이 깊다. 천연기념물 321호로 지정, 약 460년 된 봉산 향나무가 있다. 너무 신기한 것은 향나무가 옆으로 퍼져나가서 마치 우산을 펼친 것 같이 되는데 수관 넓이가 무려 20㎡나 된다는 점. 나무 줄기는 마치 용이 서려 있는 것 같은 모양인데, 전설에 따르면 이 향나무가 무성하면 길조라고 하며 고사의 형태가 나타나면 불길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연기로 수도 이전 찬성하는 사람 없지요. 서울 사람들 괜히 와서 집 값만 올려놓고, 이곳 사람들만 못살게 만들고 있어요.” 오봉산에서 매일 등산로를 청소하며, 자신도 역시 강화 최씨라고 밝힌 50대 지역 주민의 말이다.
◆ 군립공원 고복저수지 근처에서 만난 무속인 부부 조치원읍을 조금만 벗어나면 서면 고복리 일대 1,949㎢의 넓은 면적의 고복 저수지를 만나게 된다. 낚시꾼들에게는 이미 이름난 낚시터이면서, 주변에는 철따라 벚꽃, 코스모스, 갈대들이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으며, 백로 서식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연기군청에서 연기군 관광코스로 가장 손꼽는 곳이기도 하다.
호수지 주변을 한바퀴 돌다가 호수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위치에,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간판이 있었다. ‘금강선녀보살, 번개도사’라는 간판이었다. 보통은 역 주변이나 못사는 지역에서 집단 군락을 이루며 무속 깃발을 내걸고 있는 것이 무속인의 형편인데, 한 눈에 보아도 펜션 모양의 2층 짜리 근사한 집에 무당 깃발이 꽂혀져 있는 것이었다. 외진 곳이라서 그런 지, 아니면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심한 탓인지, 문에는 현대식 무인경비시스템인 새콤까지 설치해놓고 있었다. 낯선 방문객들의 초인종 소리에, 인터폰에서는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젊은 부부가 나와서, 잔뜩 경계 태세를 보이면서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해왔다. 10여분의 서로에 대한 탐색 절차 끝에, 겨우 문 안으로 들어가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는데.
이후로 장작 3시간이나 대화가 이어졌다. 집 주인 최정열 씨(42)와 손현경 씨(30)는 부부 무당이었다. 그러니 남편 최 씨는 법사, 아내 손 씨는 보살이었다. 현장 르포팀의 무례한 방문, 무속의 세계에 대한 무지를 한참이나 훈계하듯 따지면서도 이들 무속인 부부는 “다른 사람들이면 어림도 없는데 이렇게 낯선 사람들과 장시간 대화를 한다”면서 3시간 내내 정말 영적으로 무장해제 당한 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들 부부는 먼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무속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 무속인들이 섬기고 있는 신령님은 인간들을 보살피고, 어떻게든 인간들이 잘 살도록 해주는 분들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귀신하고는 너무나 다른 존재입니다. 그 신(神)의 세계는 우리 인간들은 정말 알 수 없는 너무나 영험한 세계이고, 정말 무서운 세계입니다. 그래서 우리같은 무속인들은 살아가는 세계가 다릅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살아가는 것 등 매사에 조심스럽고, 아주 조그마한 것 하나라도 신령님에게 물어보는 것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도 모두 신기(神奇)가 있는데, 우리 같은 무속인들에게 특별히 신령님이 차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제자로 선택된 것이지요. 그러면 산신, 조상신, 용왕신, 동자신과 같은 신령님들이 무속인들에게 찾아오는데, 그 가운데 어떤 신을 몸주로 모시느냐에 따라 무당의 역할이 조금씩 다르고 영험함도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무속인들이 최영장군 신을 모셨다느니, 사명대사 신을 모셨다느니 하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최영 장군이니, 사명대사니 하는 것은 그 줄(계통)을 잡고 신령님이 찾아오신다는 말입니다.”
대화 가운데 이들 부부는, 복음 가진 우리들에게 무속 현장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무속인들이 제대로 몸주를 모시고, 내림굿을 해야 하는데, 많은 무속인들 가운데는 잡신이 잘못 들어오거나 허주를 모시면서 미쳐버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 거기에다 수백만원씩 내림굿을 잘못 하면서, 고통 받는 무속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치유 클리닉’ 같은 것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최씨 역시 한 때 미쳐서 돌아다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
이들 무속인 부부가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보통 무속인들이 부부가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은 부부 금슬까지 자랑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같은 몸주를 섬기다 보니까 서로 영이 통하는 겁니다. 우리 법사님은 영이 굉장히 맑고 도사 줄이 있고, 저는 할머니가 점을 잘 치게 해줍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굿을 해도 한 마음으로 하게 되고,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이 신명이 나서 공수를 하게 되면, 바로 다른 한 사람도 신명이 나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완벽하게 할 수 있어요. 또 우리 법사님은 이 세계에서 늘 공부하는 자세로 임하고, 절대 우리 분수 이상의 돈 욕심을 내지 않아요.” 손 보살의 말이다.
영적으로는 서로가 원수인 셈인데, 이들 부부는 나중에 너무나 신이 나서, 우리 현장르포 팀들의 개인 점까지 봐준다는 것이었다. 손씨는 거의 강제적으로 관상, 생년월일, 이름으로 개별적으로 점을 쳐주었는데. 인간적으로는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우리 팀에게는 다시 한번 ‘흑암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팀의 일원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접의 의미를 선포하자마자, 특히 손 씨는 금새 살기를 띄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최 법사는 교회도 다녀보고, 술집, 당구장, 주먹세계 등 안해본 것이 없었지만 결국 무속의 세계를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손 씨의 지난 과거는, 복음 가진 우리들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내용이었다. 4살 때부터 신기가 있었고,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아가면서 교회를 다니고, 찬양대 리더였을 만큼 열심이었다는 것. 그 신기를 눌러보려고 안해본 것이 없었다. 간호사, 심지어 술집까지 다녀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세계에 들어온 지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다’고 고백했다.
한편 연기가 신 행정수도가 될 것을 미리 알았고, 이 지역에 땅 투자도 했다는 이들, 그야말로 가장 영발이 정점이라고 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거짓의 아비를 진리로 알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구원의 계획을 갖고 계시는 것일까, 아님 평생토록 운명과 저주 속에서 사단의 거짓말쟁이로 살아가게 될 것일까…. 자꾸만 손 씨의 8년 동안의 신앙생활이, 우리들을 애통하게 했다. 혹시나 이들 무속인 부부의 현장 내용이, 복음 가진 수많은 동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된다면, 하나 된 우리의 기도가 구원의 역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 연기군 농민들을 살 만하게 만든다는 포도와 복숭아, 고복저수지에 세워진 연기대첩비, 그리고 바위산장 식당 주인 김영자 씨 충남 연기군은 한 눈에 보아도 비옥한 토지들이 펼쳐져 있으며, 전형적인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다. 특히 이 지역의 특산물로는 머루포도와 복숭아를 손꼽는다. 초가을 복숭아 밭과 포도 밭들이 즐비한데, 나무들 마다 탐스러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이 과일들을 수확하며 도심에 내다파느라 바쁜 일손이 한창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작년 한 해 동안 복숭아로 벌어들인 수입이 백 억원을 넘었다는 것. 드문드문 보는 집들의 속내를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농촌 마을 치고는 그럴 듯한 가옥들이 대부분이었다.
포도, 복숭아 밭에 들러싸여 있으며 고복저수지 근처에 있는 ‘바위산장’ 식당에서 때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나님의 축복된 만남을 갖게 되었다. 8년 동안 교회 다녔다는 무속인 현장을 뒤로 한 지라, 조금은 마음이 무거웠던 차였는데, 식당 주인 김영자 씨가 짧은 시간 동안 복음을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복된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늘 하나님을 믿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았다는 김 씨는, 너무나 기다렸다는 듯이 복음 메시지를 들으며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었다. 이처럼 예비된 만남은, 어느새 현장르포를 통한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되었다.
한편 고복저수지 한 켠에는 주민들이나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연기군의 상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연기대첩비가 우뚝 솟아 있다. 연기대첩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세종실록지리지에 상세하게 전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고려 충렬왕 17년 몽고족의 침입을 막아내었던, 우리나라 7대 대첩 중 하나인 연기대첩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애국심과 호국충절 등을 승화시킬 수 있는 정신의 구심으로 삼기 위해 건립된 기념비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곳 연기군은 유난히 충신정려, 열려열부, 효자정려를 기념하는 사당이 많다고 한다.
◇ 1. 2 전월산에서 바라다보이는 연기군 남면 일대 모습. 이곳에 신행정수도가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3. 전월산 중턱에 세워진 산신각의 모습. 4. 전월산이 영산임을 알려주며 산의 정상에 자리한 용샘. 5. 지역 주민들에게 전설이 되고 있는 며느리바위, 이곳에서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돌을 쌓거나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6. 7 풍수지리적으로 전월산이 보통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전월산 산제당의 모습, 이곳에는 무속인의 길을 가고 있는 용응종 씨가 들어와 기도를 하고 있었다.
◆ 연기군의 대표적 사찰로 꼽히는 비암사 전의면에는 연기군의 대표적 사찰로 꼽히는 비암사가 있다. 이젠 길이 제법 닦여져 있어 차가 절 입구까지 올라가지만 불과 2, 3년 전만 해도 여간해서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고 한다.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백제의 멸망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한 번 백제의 중흥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절이라는 것. 비암사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건축양식이 화려해서 지금도 새로 절을 짓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온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3층 석탑 정상부에서 국보로 지정된 아미타불 삼존석상과 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 미륵보살반가석상 등이 발견되어 백제시대 석불로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었는데. 이처럼 국보가 나온 사찰이 됨에 따라 최근에는 정부로부터 많은 재정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절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증축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큰 절의 말사(末寺)라고는 하지만, 산 정상 근처에 아담하게 자리하는 비암사의 전경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 폭의 그림 만큼이나 빼어난 풍경이었다.
백제의 중흥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절답게, 비암사에는 매년 4월 25일 연기 군수도 참여하는 백제문화제를 지낸다. 꽤 규모있는 문화제로써, 대웅전 앞에는 다른 절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당간지주가 우뚝 세워져 있다. 이곳에 주지로 온 지 3개월 되었다는 비구니 스님은 “백제문화제 때 당간지주에 괘불을 모셔놓고 행사를 한다”는 설명을 했다. 이것을 일컬어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고 하는데, 즉 불교에서 야외에서 베푸는 강좌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서로 다투며 떠드는 시끄러운 판을 보고 ‘야단법석(惹端法席)을 떤다’고 하는데, 원래는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어쨌든 천 년 넘은 고찰의 소원이 이뤄지는 것일까? 백제의 땅에서 신 행정수도가 들어서니 말이다.
◆ 전월산(轉月山) 정상에는 용샘, 중턱에는 산제당, 그리고 산제당에서 만난 무속인 용응종 씨 현장르포 둘째 날인 24일 아침, 청와대를 비롯해 행정수도의 주 시설이 들어선다는 연기군 남면으로 향했다. 남면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전형적인 농촌마을 그대로였다. 마을 뒤로는 전월산(轉月山)과 원수산(元首山)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마을 앞에는 바둑판처럼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장남 평야, 그리고 한쪽으로 꽤 넓은 강폭의 금강 지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신행정수도 반대’라는 플래카드이다. 얼른 보아도 한 나라의 행정수도가 들어올 만한, 널따른 규모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영적인 것은 어떠한가. 그야말로 동네 뒷산 크기 정도에 불과한 전월산인지라, 동네나 산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따라서 지역 주민들의 현장 이야기가 이 지역 정보의 전부였다. 마을 초입의 ‘양화 슈퍼’, 시골 동네의 잡화점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신행정수도가 된다고 결정되면서부터 외지 사람들이 무진장 몰려와요.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기는 한데, 뭐 별로 볼 게 있나요. 그러나저러나 우리들은 반대입니다. 누가 고향 떠나서 살고 싶겠어요. 특히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은요.” 양화 슈퍼 주인 이영자 씨의 말이다. 마을의 주산(主山) 역할을 하는 전월산의 유래나, 영적인 배경에 될 만한 것을 물었지만, 특별한 대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다만 전월산 위에 용샘(龍泉)이나 6백년 된 은행나무가 좀 다를 것이라는 것. 그냥 나서기가 아쉬워 “교회에 다니시냐”는 질문에, “아들이 대전에서 목사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에 대해서 물었을 때,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현장르포팀에 늘 동행하는 수원 임마누엘교회 정현국 목사는 다시 한 번 영접의 의미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짧은 메시지와 함께 영접기도와 축복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을은 부안(扶安) 임(林)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중앙에는 부안임씨 중시조 전서공 임난수 장군 사당이 건립되고, 그 옆에는 그가 심었다는 6백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세워져 있다. 그 동안 영적인 관점에서 본 지역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알게 된, 공통된 한 가진 점은 마을의 주산 역할을 하는 산의 영적인 영향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월산을 오르면서, 우리의 궁금증은 더해져갔는데. 그러나 그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드러났다. 등산로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무속인이 세운 전월산 산신각이 세워져 있었다. 무속인이 상주해 있지는 않았지만, 돌탑과 빌기 위해 만들어놓은 제당 등이 조성돼 있었던 것.
산 정상에는 신기하기까지 한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 정상 한가운데 지름 30cm, 깊이는 1m 50cm 정도 되는 조그만한 샘이 있는 것이었다. ‘달이 돈다(轉月)’는 뜻을 가진, 이름대로라면 음(陰)의 기운이 강하고, 여성성(性)을 가졌을 전월산. 이곳에 다른 산과는 다르게 샘이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100m 정도 내려오면 유명한 전설을 가지고 있는 ‘며느리바위’가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인심 고약한 부잣집 며느리가 구두쇠 시아버지 몰래 한 스님한테 쌀을 시주했는데, 스님은 ‘내일 전월산으로 올라가고, 무슨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했다. 다음 날 며느리는 스님 말 그대로 전월산에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천둥 번개가 치면서 갑작스레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며느리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는데, 마을은 비로 잠기고 있었고 며느리는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며느리 바위라고 부르면서 이루지 못한 일이 있으면 며느리 바위 밑에 와서 촛불을 켜놓고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며느리 바위에 갔을 때 돌탑을 쌓아놓고 빌었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한편 전월산은 신행정수도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군에서 공원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산 중턱 즈음에 내려왔을 때, 산 이정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용샘과 며느리바위에 대한 유래를 전해 듣게 들었는데. 금강에서 사는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전월산으로 떨어져 용샘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것. 신기하게도 용샘의 근원이 되는 물이 계룡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고 한다.
현장르포 팀은 전월산의 영험함에 대해 사실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는 현장을 확인하게 되었다. 중턱에 세워진, 역사가 340년 되었다는 ‘전월산 산제당’이라는 신당을 발견한 것이다. 이곳에는 8년 동안 충북 증평에서 주지를 하다가, 무속 세계에 대한 끌림 때문에 이곳까지 왔다는 용응종씨가 제당을 지키고 있었다. 용씨는 4년 전, 이 마을의 안위를 지켜주는 산신에게 제단을 쌓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현판식까지 해줬다고 알려줬다. 또 과거 산제당을 지켜왔던 조순봉 보살의 아들은 성공하여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으며, 일년에 한 차례는 꼭 방문하다는 것과 지금은 마을에 사는 정 보살이라는 사람이 산제당을 지켜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용 씨는 자신은 신령의 인도로 전월산에 와서 제단도 쌓고 공부도 하기 위해 들어와 있다고 밝혔다.
“전월산의 규모는 작지만 산이 ‘숭고하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기운이 너무나 청백해서 이곳에 올 때는 목욕재계하고, 늘 흰 옷에 흰 고무신을 신게 됩니다. 산 정상에 저렇게 용샘이 있다는 것은, 물의 기운이 모여있는 곳으로 영산(靈山)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어요. 보통 산이 아닙니다. 계룡산이 남자에 해당하는 산이라면, 이곳 전월산은 여자에 해당되는 산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이 양과 음이 조화를 이루는 지역입니다.” 용씨의 설명이다.
◆ 한 나라의 정치, 미래가 결정되어질 신행정수도, 흑암 무너지는 기도 구체적이어야 신행정수도가 들어서는 지역 역시 영적으로 보통 현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충남 연기는 보통 사람들에게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지만, 신행정수도로 확정되기 까지는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또 다른 흑암 세력의 배경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2007년까지 단계적인 절차에 따라 신행정수도가 들어설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 역시, 영적인 힘을 모아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 미래가 결정되어질 지역에 흑암의 문화가 무너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쉬운대로 전월산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지속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험할 수 있었다. 늦은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간 연기군 남면의 일송정 식당의 주인 이래길 씨와 시어머니인 임헌순 씨가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것이다. 동네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에 대한 신뢰 때문에 기독교가 싫다는 이들은 고부 간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는지, 모든 기도에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멘’을 연달아 말할 정도였다.
연기군의 현장 르포의 마지막 코스는 해발 460m의 운주산성이었다. 길이가 무려 3,210m에 이르는 외성과 안쪽 내성이 있는 규모가 큰 산성으로, 예전의 연기군 규모를 짐작케 하는 곳이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시122편)
다윗이 성전에 올라갈 때 지은 시이다. 6백년 역사의 서울과는 다른, 신행정수도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 현장이 함께 세워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세계복음화를 언약으로 품고 공동체 시대를 열어가는 전국과 세계의 지체들의 기도제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