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상캐스터 김혜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기상정보 방송.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재미가 없었다. 간단하게 예보만을 전달하는 단순 평면적인 진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날씨와 어울리는 패션, 커피, 향수에 살림까지, 날씨와 관계된 색다른 정보들을 알려준다. 비처럼 촉촉하고, 눈처럼 포근하고, 바람처럼 시원한 기상 캐스터 3인의 매력 탐구 인터뷰.
새벽바람처럼 상쾌한 MBC 기상캐스터 김혜은
큼직큼직 뚜렷한 이목구비, 낭랑하고 똑 떨어지는 말투, 날씨에 따라 컬러풀한 의상을 직접 입어 날씨의 시각적 효과까지 전하는 MBC 기상 캐스터 김혜은. 그녀는 자신이 가진 이런 활기 넘치는 분위기 탓에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새벽 방송 진행자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매일 새벽 3시에 집을 나선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엄청 빨리(?) 출근하니 빨리 퇴근할 수 있느냐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녀의 총알 같은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추적해보자.
매일 새벽 2시 40분, 그녀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3개의 알람 시계가 일제히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뚜뚜뚜∼ 뚜뚜뚜∼’ 이어 3분여의 시간차를 두고 나머지 한 개의 알람 시계가 다시 울어대기 시작한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불상사(세 개의 알람을 듣지 못할 수도 있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마련한 자구책이다. 어쨌든 이렇게 한바탕 요란을 피우고 나면 그녀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대충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서는 시간은 새벽 3시, 목적지인 여의도 MBC에 도착하는 시간은 30분 지난 새벽 3시 30분이다. 이 시간부터 그녀의 본격적인 하루는 시작된다. 새벽 5시 54분에 있을 첫 방송을 위해 분장을 하고, 자료를 챙기고 그래픽을 만들고 하는 방송 준비를 하다보면 새벽 5시, 기상청으로부터 뜨끈뜨끈한 그날의 날씨 정보가 도착한다. 방송 시작 5분 전, 애국가가 끝나고 곧바로 기상캐스터 김혜은이 진행하는 ‘날씨와 건강’ 프로가 시작된다. 단 5분 동안의 방송이지만 온 국민에게 가장 먼저 그날의 날씨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사실상 그날의 시작을 알려주는 셈이다. ‘날씨와 건강’이 끝나고 연이어 6시 아침 뉴스가 방송되는 중간 중간 날씨 정보를 6번에 걸쳐 짤막하게 진행한 후 8시와 9시 30분 뉴스 등 아침 방송의 날씨 정보는 모두 그녀가 진행한다. 여기까지 마치면 아침 일은 대강 끝마친 셈.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모두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이후 시간은 다음날 방송을 위한 취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씨와 건강’ 중간 중간 들어가는 의사의 멘트나 시민들 거리 인터뷰를 하루 전에 제작해야 하거든요.”
취재 차량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동안 짤막하게 눈을 붙이는 것이 엄청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는 그녀는 그렇게 하루종일 현장을 뛰어다니다 회사로 복귀하는 시간이 빨라야 오후 4시, 늦으면 6시로 사실상 퇴근 시간인 셈이다.
“어지간해서 짬을 내기 힘들어요.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어찌어찌 2년여를 버티고는 있지만….”
김혜은은 지난 97년 12월 청주 MBC 아나운서로 방송 일을 시작했다. 그녀의 밝은 이미지 탓이었는지 입사 며칠 후 곧바로 서울 MBC 보도국 아나운서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때 맡은 일이 기상 캐스터였다.
“처음엔 아나운서가 꿈이었고 사실 기상 캐스터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일종의 과정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180°로 확 바뀌었어요. 기상 캐스터는 완벽한 전문직이고 저는 이 기상 캐스터라는 직업에 너무너무 깊은 애정을 느껴요.”
김혜은은 자신의 직업을 위해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2년제 기상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수료 후 이학사 자격을 취득, 한층 깊이 있는 기상 캐스터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사실 이번에 꼭 입학하려고 했는데, 개편과 동시에 새벽 방송을 맡아 또 한번 밀리게 됐어요.”
인생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게도 언제나 생각과는 정 다른 방향에서 결실을 맺곤 하는 모양이다. 김혜은의 경우도 딱 그렇다. 성악가 출신인 그녀가 정작 원했던 아나운서는 이제 그녀에게 결코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우연히 인연을 맺은 기상 캐스터가 그녀 삶의 전부가 된 것이다.
“이런 얘기는 너무 부끄럽지만 사실 얼마 전 엄청난 방송 사고를 냈었어요. 새벽 5시 54분 방송인데, 그날 아침에 눈을 뜨니 5시 50분이더라구요. 세상에…, 하늘이 노랗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기가 막힌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더라구요. 어떻게 하겠어요. 죽을 각오를 하고 출근했죠. 왜 사태가 그렇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저 딱 한마디만 했어요. ‘늦잠 잤습니다’.”
결국 그날 ‘날씨와 건강’은 결방됐고 6시 뉴스가 빈 자리를 채웠다. 다행히도 특별한 경고 조치나 시말서 없이 ‘새벽 방송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어! 그러나 그 딱 한번의 실수를 이미 치른 셈이야!’ 그 한마디로 그날의 악몽은 마무리됐다.
미운 정이 고운 정보다 질기고 오래간다고 했다. 고생도 마찬가지 같다. 힘들고 때론 고통스럽기도 한 새벽 방송이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보람은 그 어떤 것에도 비길 바가 아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아침을 여는 현장감 있는 목소리, 기상 캐스터 김혜은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