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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Z 아리랑요양원 스크랩 우즈베키스탄 저는 이제 카레이스키입니다
빅토르 추천 0 조회 196 09.03.28 22:1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편지 2 편>

                 

       저는 이제 한국인이면서도 카레이스키입니다.



■ 고향을 그리워하며


객지에 나와 있으니 고향 생각도 나곤 했지만 특히 저를 염려했던 분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詩經) 가운데 ‘험한 바위산에 올라서’ 라는 사언고시(四言古詩)가 불현듯 기억납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죽지 말고 살아 돌아오라는 내용입니다. 우즈벡에 나온 저를 보고 한 말 같습니다. 고려인노인 요양원 운영사업도 어찌보면 한 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는 전쟁터가 아니겠습니까.


? 험한 바위산에 올라서 (시경)

 

『험한 바위산에 올라가 / 아버지 계신 곳을 멀리 바라본다. / 아버님은 말씀하셨지, ‘아, 내아들아, / 싸움터에 나가면 종일 쉬지도 못한다. / 제발 신중히 행동하여라./ 그리고 돌아오라. 가고 말지 말아라’. / 초목 우거진 산에 올라가 / 어머니 계신 곳을 멀리 바라본다. / 어머님은 말씀하셨지, ‘ 아, 내 막내야, / 싸움터에 나가면 종일 자지도 못한다. / 제발 신중히 행동하여라 / 그리고 돌아오라. 버림받지 말고.’ / 산언덕에 올라가 / 형님 계신 곳을 멀리 바라본다. / 형님은 말씀하셨지, ‘아, 내 아우야, / 싸움터에 나가면 종일 함께 있어라. / 제발 신중히 행동하여라. / 그리고 돌아오라, 죽지 말고 말이다.’』


(아버지는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어 전쟁터에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못하면 안된다는 것이고, 어머니는 부상을 당하거나 하여 전우의 버림을 받지 말라는 것이고, 형님은 살아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죽지 말고 살아 돌아라는 뜻입니다)


? 나는 반 고흐와 이야기했다 (한대수)


『나는 어젯밤 반 고흐와 이야기했다. / 그는 아직도 귀가 아프다면서 테오가 그의 모든 그림을 태워 버렸냐고 물었다. / 나는 그의 초상화들은  쇼핑백 위에 찍혔으며, 해바라기는 이천이백만 불에 소더비에서 경매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 나는 어젯밤 니체와 이야기했다./  그는 하느님이 흠씬 두들겨 팼다고 말했다. / 나는 그에게 맞을만한 짓을 했냐고 물었다./  그는 "나는 잘못한 거 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어젯밤 루드비히와 이야기했다. / 그는 9번 교향곡 이후에 아무 것도 만들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고 했다. / 나는 그를 진정시킨 후 말했다. / "우리는 9번 이후는 감당할 수 없었을거야" / 나는 어젯밤 엄마와 이야기했다. / 엄마는 어서 자라고 하셨다.』


? 왕오천축국전 (혜초)


1)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 뜬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 나는 편지를 봉하여 구름편에 보내려 하나 / 바람은 빨라 내 말을 들으려고 돌아보지도 않네 /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 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 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나를 위하여 소식 전할까』


2) 『그대는 서번땅 먼 것을 한탄하니 / 나 동방으로 가는 길 먼 것을 한탄하네 / 거친 길에 굉장한 눈 산마루에 쌓였고 / 험한 산 골짜기엔 도적떼도 창궐하네 / 새들 날다가 깍아지른 산에 놀라고 / 사람들 좁은 다리 건너기를 어려워하네 / 평생에 급한 눈물 흘리는 일 없었는데 / 오늘만은 천 줄기 눈물 뿌려지네 』 


?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헌태)


『낳선 이국땅 외로운 생활 속에 잠이 오지 않아 몸을 이리저리 뒤척입니다. / 온갖 상념의 나래 끝에 고향에 계신 분들이 생각납니다. // 재단 총재께서는 ‘이 본부장, 잘 하겠지만 신중히 행동해주기 바래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지인들은 ‘헌태야, 잘 보내고 이메일을 통해 자주 연락하자’고 말하였습니다. / 어머니께서는 ‘막내야, 내 걱정 말고 니나 건강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한사람 한사람 얼굴을 방 천장에 떠올리니 다들 고맙고 그리운 분들입니다. / 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새벽?까지 잠을 설쳤습니다.』 


? 아, 고향생각할 겨를이 없구나 ! (이헌태)


『저 하늘 건너편 부모님과 자식이 있는 고향 소식을 잊고, / 하루하루 정신없이 또하나의 고향을 만들어 가고 있네 // 우렁찬 조국의 부름을 항시 가슴속에 넣고, 오로지 고려인노인 요양원의 성공만을 생각하고 있네 // 어려운 고려인노인들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 기쁜 마음으로 그리운 고향땅에 갈 비행기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네』

 

 

 

 

 

 

 


■ 13일 (화)

저는 1월 13일부터 23일까지 11일간 우즈벡 생활을 마치고 잠시 귀국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 구정도 있고, 한국에서 해야할 마무리 작업도 있고 겸사 겸사 돌아왔습니다. 


곧 우즈벡으로 돌아가면 두달동안 고려인노인요양원 운영법인을 세우고, 요양원 비품을 구입하고, 직원을 뽑고 입소노인을 선정하는 준비 작업을 합니다. 요양원 건물이 3월중순 준공되면, 만반의 준비를 거쳐 오는 4월에 오픈하고 저도 입주합니다.  


지난 11일간의 우즈벡 활동을 간단하게 보고합니다. 우즈벡 방문은 재단의 '우르타치르칙' 아동병원 지원사업과 합쳐 4번째입니다. 


저는 김형철 노인복지전문가(사회복지사)와 단둘이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1월 13일(화) 저녁 8시 우즈벡 수도 타쉬켄트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약 7시간 거리입니다. 영하 20도 엄동(嚴冬)의 작년 겨울날씨보다 포근한 청냉(淸冷)한 공기를 마십니다. 시내 중심가 그랜드미르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늦은 탓에 저녁식사도 거른 채 바로 취침에 들었습니다. 고려인노인요양원의 성공을 꿈꾸면서 차분한 첫날 밤을 보냈습니다.


■ 14일 (수)

오전에는 우즈벡 고려인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김기철씨(이천소방소 근무,119구조대원) 소개로 처남인 '유 세르게이' (38)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6년간 일하다 돌아간 컴퓨터, 건축, 전기, 보일러 기술을 가진 만능재주꾼입니다. 일단 믿을 수 있고, 만나보니 덩치도 있고, 인상도 서글서글하고 착하게 보여 당분간 운전기사로 채용했습니다. 


또 작은 키에 예쁘장한 우즈벡 동방대학교 한국어과교수 출신의 '김 따냐' 선생(33)을 소개받았습니다. 남편은 키 크고, 잘 생긴 타타르족으로 한국회사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시쳇말로 '쭉쭉 빵빵'의 상징인 우즈벡의 미인은 대게 타타르족입니다.


고려인노인요양원을 운영하려면 현지에 운영법인이 필요합니다. 현지변호사에 따르면 외국인은 NNO(비정부비영리기관)란 형태로 법무부에 신청해서 허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등록문제를 잘 해결할 분으로, 호텔경영 등 사업 수완이 좋은 '문 나탈리아' (54, 고려인문화협회 타쉬켄트주지부장)를 소개받았습니다. 며칠 후 고려신문에 고려인문화협회에 여성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기사의 커버 인물로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우즈벡에서 괜찮게 사는 여자들은 선진국 멋쟁이 이상으로 외모와 치장에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나탈리아 선생도 시선을 한눈에 끌 정도로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운전기사 우즈벡인 '알리'는 5년간 경북 고령에서 일했고, 지금은 고려인여인과 결혼해서 살고 있습니다.

           

당분간 재단 일을 도와줄 3분의 고려인을 소개했습니다. 고려인들은 러시아말은 잘 합니다. 그러나 우즈벡 독립 이후 통용되고 있는 우즈벡 말은 회화가능한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어는 차이가 많습니다.


세르게이는 개그콘서트 스리랑카출신 '블랑카' 흉내 발음인 "사장님, 비싸요"라는 어투이고, 나탈리아는 한국말을 얼핏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만, 북한식 발음으로 "알았소", "일없소(괜찮소)"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이에 비해 따냐는 한국어를 가르쳐서 그런지 그래도 발음이 천천히 또박또박한 편입니다. 그래서 가끔 세르게이와 나탈리아와의 대화도 따냐가 통역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요양원의 고려인노인과 대화하려면 러시아어를 배워야하는데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어서인지 매우 힘듭니다.     


3분 모두 다 잘 도와주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재단 사업의 출발이 순조로운 것은 낯선 곳, 특히나 지뢰밭과 덫(?)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잔뜩 겁을 먹고 온 저희들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즈벡에 사업하는 교민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사업 성공의 핵심은 한마디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실패"라고 확언을 하더라구요. 자본주의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도 물자가 부족한, 소위 경제가 어려운 나라에서는 사업과 직업, 돈과 물건, 약속과 신용에 대한 개념이 다소 약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가장 잘 필요한 나라입니다. 즉 '사람만이 성공입니다"로 고치면 무난합니다. 그래도 순박하고 착한 우즈벡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이어 저와 김형철씨 두 사람이 거주할 아파트를 보러 다녔습니다. 호텔은 너무 비싸서 오래 머물 수가 없고, 고려인노인요양원이 3월 완공 전까지 머물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두 곳을 보고난 뒤, 결국 활동에 편한 시내 중심가 9층짜리 6층 아파트로 결정했습니다. 거실과 침실 2개와 자그마한 키친, 목욕탕, 화장실이 있는 18평의 아담한 아파트로, 푹신한 소파와 양탄자, 특유 실내 냄새 등 우즈벡의 주거 문화를 잘 엿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후에는 한국대사관에 가서 영사님과 법인등록 및 비품 구입 등 현안에 대해 업무협의를 했습니다.


이 요양원은 외교통상부 지원사업으로, 재외동포재단이 자금을 대어 리모델링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를 대사관에서 집행하고 있고, 보건복지가족부 산하기관인 우리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서 운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현안은 대사관과 협의를 마쳐야합니다. 이어 요양원 건설회사 김민균 사장과 만나 공사 현황과 추가 필요시설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저녁에는 한인식당에서 김형철씨와 단둘이 쓸쓸하게 삼겹살에 간단한 반주를 곁들였습니다. 대사관 관계자와 우연찮게 조우, 합석했지만 모두 일찍 자리를 파하고 저희들은 바로 옆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 15일 (목)

오전 그랜드미르 호텔에서 첵크 아웃하고 바로 시내 거주 아파트(카자흐스탄대사관 옆)로 가서 집주인과 월임대 4백불로 계약을 맺고 짐을 풀었습니다. 외국인이라서 집주인이 여권을 갖고 관할경찰서에 가서 거주등록신고를 해야 하며, 1인당 100불 가량의 돈이 듭니다. 


짐을 푸니, 이제는 정말로 정든 대한민국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타향 우즈벡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내 집도 생겼으니 이곳에 정을 붙여야한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이제 저는 '한국인'이 아니고 '카레이스키'인 셈입니다. 아니 '한국인'이면서도 '카레이스키'입니다. '카레이스키'(러시아말로 한국인)는 그동안 숱한 고생도 하고 기적도 일구어 감동의 파노라마를 연출했지만 저는 고생도 하지 않고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아 어려운 고려인노인을 도우러 온 참으로 행복한 '카레이스키'입니다.


오후에는 고려인사회대표단체인 고려인문화협회를 방문했습니다. 잘 아는 '신 블라드미르' 회장은 외국출장 중이어서 협회 안에 있는 '문 나탈리아' 집무실에 잠시 들렀다가 함께 타쉬켄트 시내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유코리치르칙'지역 시온고 마을에 있는 요양원 공사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요양원 가는 도중에 왼쪽에 펼쳐진 흰 눈 덮힌, 늠름(凜凜)하고 장대(壯大)하고 호방(豪放)한 침칸산맥 (천산산맥 지류)이 눈부신 햇볕을 받아 병풍처럼 아름답게 펼쳐졌습니다. 비경에 감탄사가 연발로 터졌습니다. 저 긴 산맥 따라가면 중국이 나오고, 저 큰 산맥을 넘으가면 카자흐스탄 알타이가 나온다고 합니다.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경마장 가는 길이 아니라 요양원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어우릴 것 같습니다. 저에게 다가올 숱한 고생도 우즈벡의 이국적인 풍경을 위안 삼고, 스르르 녹이려고 합니다. 여기서 본 우즈벡 풍경은 광활한 중앙아시아 대자연 그자체인 우즈벡 전체 풍경의 한 부분입니다. 기대됩니다. 

 

 

 

 

 

 

등록문제를 협의하고 신고식도 할겸해서, 요양원 행정을 담당하는 면사무소격인 '양기 보졸' 구청의 부구청장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우즈벡에서 외국인 법인은 단지 법무부에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귀가 길에 날도 어둑어둑해져 인근에 있는 '유 세르게이' 부모님 집을 방문했습니다. 고려인의 생활을 직접 목격하고 싶어서입니다. 침칸산맥으로 더 깊이 다가서는 곳입니다. 이 지역은 가까이 백설(白雪)산맥으로 인해 여름에도 타쉬켄트 시내보다 10도 가량이 낮을 정도로 기온도 적당하고,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고, 눈 녹은 물도 좋아서 별장도 많고, 타쉬켄트 시내까지 출퇴근하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고지대에 놓여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2층 아담한 양옥집으로, 내부에는 큰 거실과 침대방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부친이 재주가 있어, 마당에는 정자도 있고 또 손수 만든 앙징맞은 깊은 수영장도 있었습니다. 

 

 

 

 

 

 

두 분은 저희들을 무척 반겼습니다. 하얀 쌀밥과 고추볶음, 호박볶음 반찬 등 상에 가득찬 고려음식이 하나같이 먹을 만했으며 특히 직접 빗은 속고기 만두는 한국 것과 맛이 정말 똑 같아서 손이 계속 갔습니다. 똑같은 핏줄을 느낍니다. 부모님같은 따뜻한 시골인심을 이역만리에서 느꼈습니다. 


부모님은 한국에 있는 딸(세르게이 여동생)과 알마타에 사는 여동생(세르게이 이모)과 화상전화에 재미를 붙여서 찰거머리처럼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저희들이 방문하는 도중에도 화상채팅을 하느라 왔다갔다 합니다. 잠시 저도 한국에 사는 여동생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건축업에 종사하셨던 아버지는 구세대에 맞지 않게 일찍 컴퓨터에 눈을 떴다고 합니다. 아들인 세르게이도 한국의 어느 젊은이 못지않게 컴퓨터 도사(道士)입니다.

 


타쉬켄트 시내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우즈벡 시골에서도 국제화상채팅을 하니, 아마 그 누구도 이런 세상을 상상못했을 것입니다. 놀라운 세상 !,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전세계 구석구석이 실핏줄처럼 하나로 묶일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서양의 연결, 문명의 연결, 관계의 연결의 의미를 지닌 '실크로드의 완성(完成)'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르게이 집안이 '실크로드의 중심부'에서 ' 실크로드의 완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모든 문명과 사람을 하나로 통하고, 하나로 묶는 '원대한 꿈의 실크로드'가 완성되는 날이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헌태 또 오버하네, 이것은 절대 오버가 아닙니다. 20년 후에 어떤 세상이 되어있는지 상상해보세요. 아마 당신이 '설마 그런 세상이'라고 놀라는 세상보다 훨씬 그 이상의 현실이 펼쳐질 것입니다.     


부모님 집에서 차로 10분가량 떨어진 세르게이 아파트를 방문해서 차 한잔 마셨습니다. 예쁜 부인과 딸(11살)이 있는데, 부인은 고려인여인과 러시아남자 사이의 혼혈이고 딸은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교에 다니며 공부도 무척 잘한다고 합니다. "크면 한국으로 유학 보낼 거냐"고 묻자 "러시아로 유학 보낼 것"이라고 답합니다. 한국보다 러시아쪽으로 방향을 돌린다니, 한국 가족도 역사의 흐름에서 간만에(?) 모계(母系) 중심으로 재편성 실시 중인데 혹시 여기서도.


부인이 수준급 점토공예기술을 갖고 있어 요양원 자원봉사자로 부탁했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현지 자원봉사자 1호가 탄생했습니다. 


우즈벡에서 고려인들은 고려인끼리 결혼한다고 하더니 따냐와 세르게이를 보면, 1937년 연해주에서 이주해온 1,2세대에 이어 3세대로 내려갈수록 현지인들과 피가 섞이는 것 같습니다.


구소련연방시절 100여개 민족 가운데 고려인이 가장 부지런하고 농사를 잘 짓는 것으로 소문났다고 합니다. 인민영웅이 가장 많이 탄생하고요. 요즘 고려인 젊은이들은 우즈벡 본국에서 그 열정과 능력을 감당 못해서 한국이나 러시아, 카자흐스탄으로 돈벌러 가서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타쉬켄트 시내 길거리에 나서면 흑인을 제외한 몽고계통의 동양과 서양의 혼혈인종 전시장 같습니다.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부이니 이해가 충분히 갈 만합니다.     


귀가하면서 몇 안되는 고급생활매장인 '미르 스토어'에서 냄비와 쓰레기통, 쌀과 달걀, 생수 등 간단한 생활필수품 구입했습니다. 우즈벡은 변변한 공산품 제조공장이 없어, 중국제는 값은 싸지만 그외 좋은 외제품은 한국 물가와 비교해도 결코 낮지 않습니다. 생수를 잔뜩 산 이유는 우즈벡 물이 석회질이 함유되어 이빨에 좋지않아 식수로 대용해야 합니다.


달러로 결재할 때도 많지만 대게 이 나라 화폐 '숨'으로 계산합니다. 1만숨이면 한국돈 1만원쯤 해당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1만숨이면 돈 한다발입니다. 늘 가방 가득 '숨'을 넣고 다니면서 결재를 하려니 번거롭습니다. 한 '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몇 만원짜리 사고 돈 새느라 '숨'이 넘어갈 지경입니다. 은행원 아니면 어느 국가 백성이 이렇게 돈 세는 재미가 있을까요. 우즈벡 국민들은 돈 세는 재미에 늘 행복하답니다. 돈이 없으면 돈 세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아닌가 ! 약 올리는 건가. 하여튼 식당에 가면 은행에 있는 지폐 세는 기계가 꼭 있습니다. 이런 고생도 외부경제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자구책이라고 하니 이해를 해 봅니다.   


집에 돌아와 물품을 정리하다보니, 완전히 청산(?) 되었다고 생각했던 확신하고 확신했던 '자취생활' 이 다시 화려하게 재개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이런 고생을 자임한 이상, 결코 '자취생활'이 고달프지가 않습니다.   

 

 

 


■ 16일 (금)

우즈벡 현지 아파트 생활 첫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간 밤에 따뜻했습니다. 객지에서 제일 서러운 게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것입니다. 일단 제1의 걱정은 해소되었습니다. 이 아파트는 지역난방 시스템입니다. 자원부국이라서 전기, 가스비는 저렴하다고 합니다. 가스 계량기는 집집마다 없습니다. 많이 쓰나, 적게 쓰나 일정 요금만 내면 된다고 하니 마냥 부러울 뿐입니다.


요즘 가스밭과 유전밭인 중앙아시아 지역을 놓고 세계 열강들이  벌이는 자원전쟁이 볼 만합니다. 저는 그 현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지하자원 무국(地下資源 無國) 대한민국과 비교가 됩니다.


한국은 그래도 똘똘이를 중심으로 그간 인적자원으로 버텼는데, 집채같은 파도로 덮치는 세계경제 위기 앞에서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에 쬐금만 기름이 나와 주지, 그러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인데. 이헌태, 에이, 이 도둑놈 심보야. 금수강산(錦繡江山)에 유전(油田)까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만고의 진리, 오버하면 안됩니다. 우리 조상이 뿌리 내린 터전에 만족하면서 이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합시다.


요즘 우리나라 회사들이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자원을 개발하는 모양입니다. 땅 위에는 금이 있지만 땅 밑에는 무슨 금이 있겠습니까. 혹시 땅 밑에 있는 것은 주인 구분도 그렇고, 나눠 쓰면 안될까요. 아닌가, 주인은 있으니 주인 허락 하에 개발해서 써야겠네. 


자원부국 우즈벡 만세 ! 우즈벡이여 번영하라 ! 제가 살 나라니까 칭찬하고 정을 붙이고 사랑해야죠.     

 

아침 5시쯤 눈을 깨고 창문을 열고 폐부로 첫 공기를 들이키니 깨끗하고 싸늘합니다. 오전 7시 30분쯤에는 날이 밝았는데도 달이 아직 밤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하늘에 걸려 있습니다. 아파트도 자고, 나무도 자고 있습니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저멀리 지나가는 노부인 한 명이 눈에 띕니다. 건너편 아파트 2백집 채 중 10집이 겨우 불켜져 있습니다. 한국의 아침풍경과는 영 딴 판입니다.


우즈벡 사람들은 느긋느긋하다고 합니다. 부인하는 분들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한국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이 이 나라에 오면 '일당오(一當五)' 역은 한다고 합니다.


전세계 약 1만개 민족 (전세계 나라는 240여개, 언어는 6809개, 구소련연방 104개 최다민족 등 종합검토) 가운데 바쁘고 분주하고 다이나믹한 '세계랭킹 1위' 인 한국 사람에게는 게으르게 비쳐질 수 있지만 이 나라 독특한 생활문화가 아니겠습니까. 또 물자부족에다가 오래 습성화된 사회주의생활 영향 탓에 '내물건 네물건 의식이 없다' 보니 더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구 가져간다고 합니다.


저보고 속 터지고 병이 생기니, '그러려니'하며 신경을 끄라면서 반드시 '도닦는 데 필요한 목탁을 꼭 가져가라'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세상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한국이 비정상이고 불쌍한 나라일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 반성합시다. 죽으면 다 그만이지 않습니까. 아닌가.


다시한번 정리합시다. 뭐든 했다하면 ‘세계랭킹’ 1위인 한국이 비정상 아닙니까. 가전제품과 조선, 반도체 시장점유율 세계1위, 또 정치인싸움도 세계1위, 사교육비 세계 1위, 저출산율 세계1위, 스트레스 세계1위 등 좋든 나쁘든 세계 1위가 100개는 넘지 않을까 싶네요. 이헌태 구라도 세계 1위. 뭐야. 하여튼 '모범과 우량'의 좋은 1위야 좋지만 '극성과 지랄'의 나쁜 1위로 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말이 나온 김에 한국도 단일민족 맞기는 맞습니까. 우즈벡에서 보니 고려인들 말고 도 우즈벡 현지인 중에 더러더러 생김새는 한국 사람과 닮은 데가 많던데, 한국사람도 수천년 동안 이러 저리 많이 섞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은 농촌에 가면 단일민족이 급속히 와해중입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다'가 아니고 '전 세계는 하나다'입니다.   


하여튼 아파트 창 밖 풍경을 보면 아침기상이 늦는 것 같습니다. 우즈벡 사람들은 밤을 존중하고 자연의 질서와 이치를  존중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고, 얼마나 자연이라는 주인에 말 잘 듣는 착한 백성입니다. 자연이 주인이고 우리가 머슴인데 우리는 머슴인 주제에 주인인 자연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손들어 반성합니다. 


한국 사람은 19세기 전구발명등 전기생활 이후 전기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사람들 같습니다. 아주 전기에 환장을 합니다. 전기가 없었으면 우짤 뻔했노 ! 밤새 일하기도 하고, 밤새 놀기도 하고, 전기 때문에 신이 났습니다. 전세계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 사람들은 수십억년 내려온 밤낮의 오묘한 자연이치를 파괴한 '자연파괴분자'입니다.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 자, 망하고".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순천자존 (順天者存), 역천자망(逆天者亡)' 즉, '하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생존하고, 하늘의 뜻에 거스르는 사람은 멸망한다' 이헌태. 뭐야. 이헌태. 너무 오버아닌가. 이건 내가 생각해도 오버같네. 전기를 통해 인간의 생활에 편리와 이익을 주는 것은 물론 밤까지 잘 활용(活用)하는 대한민국 만세 !. 그런데 밤의 유흥가 불야성(不夜城)은 전기악용(惡用) 케이스가 아닌가요.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렇지 경기만 좋아지면 저녁 먹고 2,3차에 밤새도록 술마시고 놀지 않아요. 전 세계 어느 민족이 이렇게 삽니까. 솔직히 말해 세계 어느 민족이 '가무의 민족'이 아닌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걸핏하면 단군이래 '가무의 민족' 이라서 그렇다나 어쩌다나, 이헌태 니도 잘 놀았잖아, 깨갱. 하여튼 전구를 만들어 처음 실용화한 에디슨이 한국 사람들을 보면 기가 딱 막힌다고 하네요. 만들어 놓은 것 없앨 수도 없고. 

  

밤낮을 다 이용하면 수명도 1.5배 더 늘어나는 효과가 있고 실제로 인생을 1.5배 더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스트레스만 1.5배 더 늘지 뭐. 실제로 스트레스는 3-5배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잘 때는 자야지. 부부도 이불속에서 함께 있어야 정이 더 들지요. 선진국은 출산율도 높이고.


이헌태, 자원문제에다가 느긋한 아침풍경까지, 갑자기 대한민국을 비판하면서 우즈벡을 치켜올려 세우고, 이상하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그게 좋은 것 아닙니까. 할 수 없네, 대한민국 만세 ! 우즈벡 만세! 이제 정리가 잘 되었네. 


오전에는 법무부 등록서류 리스트를 검토하고, 재단의 우즈벡 보건의료지원사업 파트너인 우춘 재단을 방문해서 이나모바 총재(전부총리)와 면담했습니다. 오는 2월 10일 이동클리닉 기증식 및 산모센터기능의  '소우셜메디컬센터' 건립 협약체결식과 장학금 지원 등에 대해서 협의했습니다.


오후에는 요양원 사업을 자문해주시는 허선행 세종한글학교 교장을 만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우즈벡에서는 한국은 선망의 대상입니다. 고려인은 물론 우즈벡인도 한국어 교육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세종한글학교에서도 저렴하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 제가 현지 핸드폰을 개통했습니다. 우즈벡에서도 핸드폰은 점차 필수품으로 되고 있습니다. 핸드폰 번호는 한국에서 걸 경우 99898-121-3450입니다. 정확히 한국이 4시간 빠릅니다. 한국에서 낮 12시면 우즈벡은 오전 8시입니다. 통화료가 비싸지 않으니 꼭 필요할 때,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글로 된 등록서류를 러시아어로 번역할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잘 하는 러시아 계통의 우즈벡 현지인입니다.


시내 한국인이 몰려 사는 곳에 위치한 꼬스삐딸리 바자르(시장)에 갔습니다.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물씬 코로 들어오면서, 우즈벡에 온 느낌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감자, 당근, 버섯, 토마토를 샀습니다.


시장 입구에 있는 한국물품판매점인 한중건강원 박강윤 회장(한-우즈친선 장학회장, 한-중앙아시아교류진흥회장)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 17일 (토)

우즈벡에 오고 난 뒤 눈 뜨면 매일 국선도 체조와 뜸을 합니다. 술을 잔뜩 마신 날도 딱 4시간만 자도 몸이 가뿐합니다. 아픈데 하나 없고 멀쩡한 것은 모두 이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의사분들과 한의사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겠지만 국민 여러분이 모두 배웠으면 합니다. 돈 안들고 누구나도 쉽게 배울 수 있는 '혁명적 건강법'이며 '건강강국'으로 가는 비결입니다. '의사 강국', '한의사 강국', '의료 강국', '의료제도 강국' 이 아니라 '국민건강 강국'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요양원 구입비품 가격을 조사하기위해 이 나라 최대 전자상가와 가구상가인 '나보이' 거리의 가게를 일일이 들어갔습니다. 전자제품은 AS나 헤르츠문제(우즈벡은 50헤르츠) 때문에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삼성전자제품과 LG전자제품을 균등하게 살 계획입니다. 한국 국내에서 구입하는 가격과 비슷합니다. 한국돈으로 10만원에서 40만원 수준의 이나라 사람들 월급 규모로서는 매우 비싼 것입니다.


가구의 경우, 외제품은 한국제품보다 훨씬 더 비싸고, 우즈벡 제품은 질이 낮아 가급적 한국에서 사올 계획입니다. 외제품은 주로 터키산, 러시아산이며 사무용품 의자 하나가 한국돈으로 주로 20만원에서 40만원쯤 합니다. 


그 외 주방물품, 치료물품, 생활용품 등은 모두 한국에서 사오려고 합니다. 외제품이 이렇게 비싼 것은 높은 세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즈벡은 빵과 전기, 가스 등 기본 생활서비스는 해결해주고 그외 공산품은 높은 세금을 매겨 필요한 사람만 사도록 하고 이를 국가 수입에 충당한다고 합니다. 


한국식당이 타쉬켄트 시내에 20여군데 있는데, 점심을 계속 식당과 메뉴를 바꾸면서 먹고있어 고역입니다. 따냐 선생은 매운 것을 먹지 못한다고 하고, 세르게이는 비빔밥에 고추장을 더 시켜 늘 먹습니다. 같은 고려인이라고 해도 식성이 다릅니다. 둘 다 한국생활을 했는데 세르게이는 한국음식과 고려음식, 우즈벡 음식 다 맛있다고 합니다. 라면과 피자는 별로고 김, 삼겹살, 족발, 보쌈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따냐에게는 한국에서 가져간 인스턴트 짜장을 주었고 세르게이는 김을 주었더니 좋아합니다. 두 사람에게는 집에 간직하고 있는 여성용 팩과 은수저 등 도 선물했습니다. 


오후에는 요양원과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우즈벡 유일의 국제규격 레이크골프장 이성희 사장을 만났습니다. 성공한 기업인으로 알려졌고 한국에서 그 분과 친하다고 하는 지인들이 많아 인사차 들렀습니다. 따뜻하게 반겨주었습니다.


골프장은 드넓은 목화밭과 듬성듬성 나무가 흩어져있는 우즈벡에서는 이색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골프 손님의 80%가 한국인이며, 우즈벡 대통령 등 고위 관료는 골프 문화가 없고 앞으로 잠재적 손님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즈벡은 국교가 이슬람입니다.


잠재적 고객이 현실적 고객으로 언제 탈바꿈할까 궁금합니다. 저는 잠시 골프문화는 이슬람문화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이슬람 두건을 쓰고 "굿 샷", 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이 "굿 샷",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닌가, 사장님, 종교인과 골프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 되실 것입니다. 종교들도 골프장에 갑시다. 아무리 생각을 양보해도 이상하긴 하네.   


귀가해서 인스턴트 짜장과 감자 볶음으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김형철씨가 요리를 잘 해 우즈벡의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저의 시름을 크게 덜었습니다.


이 나라는 식수가 좋지 않는데다 고기와 기름 음식이 많아서 심장병,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성인병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차문화가 발달되어 있어도 한국에 비해 평균수명도 10살 아래입니다.


우즈벡 사람들은 결혼을 대략 20살 정도에 하고 수명은 우리보다 10년 빠르고 결국 따지고 보면 결혼기간은 우리와 비슷합니다. 문명에 있어 우월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 지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다가 죽는 거지 뭐. 맞다, 이헌태. 세계 모든 민족 골고루 만세 !

   

■ 18일 (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전 고려인 청소아줌마 '우리카'가 왔습니다. 일주일간 쌓인 서류들을 정리하고 난 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꼬스삐딸리 시장에 가니 향신료 냄새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니 저도 서서히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 가게들이 휴무입니다. 이 나라도 근로시간이 주40시간이니 토,일은 쉽니다.

  

아파트 주변 동네를 탐방했습니다. 아파트, 그랜드미르 호텔, 꼬스삐딸리 시장, 한국대사관, 여행사 스카이114가 모든 도보로 가능한 인근지역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길 잃을 위험은 없습니다. 외진 밤길이 아니면 치안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스카이 114에서 본사에 업무보고를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라면에 밥 말아 먹고, 소주 반주로 이역만리 타향의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TV를 켜면 30여개의 러시아 방송과 2개의 우즈벡 방송이 나옵니다. 간혹 TV에서 한국드라마 ‘고주몽’도 나오고 제목은 모르겠지만 한국 일일연속극도 나오고, 일요일 특선 영화 때는 '집으로'도 방송했습니다. 할머니와 손자간의 미묘한 한국적 정서가 스며든 영화입니다만, 우즈벡에서도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무척 반가웠습니다. 우즈벡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이런 영화를 통해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습니다.  


■ 19일 (월)

오전 나탈리아와 등록문제를 점검하고 본부에 업무를 보고했습니다. 오후에는 한국대사관에서 요양원 현안에 대해서 계속 협의했습니다.


이어 한국교육원 내 한인회를 방문, 박양균 한인회장과 김성배 사무국장 면담하고 인사 겸 업무협의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교민은 대략 1600-1800명 정도이고 고려인은 15-16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요양원에서 노인들에게 필요한 재미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만큼, 자원봉사자 모집에 나서줄 것도 부탁했고 흔쾌히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교민들도 스스로 힘을 합쳐, 교민간 화합과 교류에 앞장서고 교민신문도 내고 유치원도 운영하고, 고려인사회를 돕기도 하고 등등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고려인은 지난 70년 동안 중앙아시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피는 같지만 의식은 중앙아시아 사람처럼 동화되었다고 보면 무난하다며 차이를 인정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헌태의 상상(想像). 고려인도 불과 100여년 전만해도 같은 땅에서 살던 같은 민족인데, 언젠가 우즈벡이나 한국 정부가 보내고 받아들여주는 제한이 없어져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몽땅 한국에서 살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 까를 생각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몽땅 다 남한에서 살겠다고 하면 어떻하겠습니까. 저야 무조건 찬성이죠. 아닌가. 하여튼 고려인도 우리와 같은 핏줄입니다. 내가 만난 고려인 가운데 혹시 우리 고조할아버지 친구 손자가 있는 줄 압니까.


이헌태의 주장(主張). 세계에 흩어진 우리 한민족의 역량을 모읍시다. 잡스럽게 너스레를 떨어도 정리 하나는 깔끔하게 확실하게 잘 하네.


현지에 와서 보니 일부 사람들은 간혹 물건이 없어져도 우즈벡 이 나라안에는 있다고 생각하는 소위 '위치 이동' 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고 조언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미 우즈벡에서 사업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 별의별 얘기를 다 들어서 잔뜩 긴장한 터여서 생생한 현지 얘기 한마디 한마디가 살이 되고 뼈가 될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 상황을 미리 파악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면 더 머리 아픈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인노인 요양원 운영은 워낙 보람찬 일이라 열과 성을 다하다 보면, 기대치 못한 행복도 많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20일 (화)

김정관 LG전자 지사장을 면담하고 현지 전자제품 구입에 대해 협의를 했습니다. 고려인 현지 딜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날 점심 때는 등록을 도와주고 있는 멋쟁이 고려인 아줌마 문나탈리아 딸인 '고 라리사 (33)'가 운영하는 고려인 식당에 갔습니다. 타쉬켄트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구일류크 시장 지역에 있는 '사반뚜이(명절) 식당' 입니다. 딸은 엄마를 닮아 귀엽고 앳된 여성이었습니다. 17살 짜리 아들이 있다고 합니다. 우즈벡에서는 여자는 17-18살, 남자는 20-21살 정도에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식탁 12개 정도로 고려 음식(飮食), 우즈벡 음식을 고루 갖춘 중규모의 보통수준 식당으로 손님들로 늘 붐비며, 특히 우즈벡 대표음식 양고기구이 ‘샤슬릭’ 요리가 일품이어서 타쉬켄트 시내에서도 찾아올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 일행을 대접한다고 한 상 떡 차려나왔습니다. 보신탕, 국수, 삭힌 생선회, 소고기고추볶음, 고추튀김, 김치 등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음식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먹을만 했습니다. 살코기가 담긴 보신탕의 말간 진국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고생으로 점철될 우즈벡 생활에 큰 선물이며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한반도음식과 고려음식의 차이. 한반도 음식은 남한음식과 북한음식으로, 남한음식은 전라도음식, 경상도 음식, 충청도음식, 강원도음식 등으로, 북한음식은 함경도 음식, 평안도음식, 황해도 음식 등으로 각각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남한음식과 북한음식은 약간 차이가 날 뿐이고, 한반도음식과 고려음식은 약간 차이가 더 날 뿐인 것 같습니다. 고려음식은 중앙아시아 풍토의 영향을 받은 한반도음식이지 않겠습니까. 큰 테두리에서는 모두 한반도음식이겠지요. 즉, 그나물에 그밥이요, 초록은 동색입니다. 다 같은 민족이요 다 같은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즈벡 보도카와 맥주로 삼성, LG 전자제품 보다 더 우수한 한국 최고 수출품인 '한국산 폭탄주'를 제조해서 돌렸습니다. 수준 높은 클래식(?)의 '딸랑딸랑' 효과음까지 곁들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렇게 세계에서 친선과 화합을 도모하는데 '효과만점 제품'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측하신대로 자연스럽게 친선과 화합은 따라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어 현지 가구공장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세르게이가 사는 곳의 유명 가구판매점과 가구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고려인 판매원과 공장근로자가 있어 반가웠습니다. 한국제품의 국내가격과 비슷해서, 조금 더 비싸더라도 내구성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사야할 것 같습니다.


우즈벡 가난한 시골 동네 골목시장을 구경했는데, 훈훈한 정감도 가고 풋풋한 사람냄새도 났습니다. 고려인도 눈에 띄고 고려반찬도 자판에 놓여있었습니다. 이런 먼 곳까지 우리 형제들이 살고 있다니 어찌보면 반갑고, 어찌보면 기가 막혔습니다. 사과와 땅콩, 가판대에 놓인 둥그런 우즈벡 빵인 '리뾰쉬까'를 하나 샀습니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한국에까지 공수해서 갖고 왔는데 우리 자식들은 본채 만채입니다. 혼자 먹었습니다.  

 

 

 

 

가구공장이 침칸산맥(천산산맥 지류)쪽이 가까워서 약간 더 접근했습니다. 저녁 으스름이 몰려 오길래 고속도로위 침칸산맥을 멋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호랑이 등처럼 쭉 이어진 설산 앞에서 일주일간의 스트레스가 확 풀렸습니다. 귀가길에 길 옆에 쌓인 눈도 만져보니 한국 눈과 똑같았습니다. 지구위의 눈과 자연은 다 같습니다. 지구위에서 유별난 것은 오직 인간입니다. 점심 성찬 탓에 저녁식사는 간단한 쥬스로 대신했습니다.

 

 

 

 


■ 21일 (수)

한밤중 오전 2시에 깨어나니 영국 BBC 방송에서 역사적인 미국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흑인 노예로 일어선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되다니, 누가 감히 상상을 했겠습니까. 오바마 대통령 아버지쪽 케냐 사람들의 토속춤 축제 장면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반대하는 백인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백인들의 모습도 방송을 탔습니다.


이런 방송을 보면서 우즈벡 민족이 60%이상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만 카작족, 러시아족, 타타르족, 고려인 등 다민족으로 이뤄진 우즈벡에 오니, 더욱 세계 모든 민족(民族)이 한 형제(兄弟)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인데, 어느 민족출신이 어디 있고, 어느 나라출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닌가. 죄송합니다. 죽으면 모두 하느님, 부처님 앞에 갈 몸인데 차별과 구별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슬람 국가에 왔으니 한 분을 더 붙여야겠습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오전에 본사에 업무보고하고 유재진 대우인터내셔날 부장을 만나 현지 노동법과 고용조건, 금융과 세금, 월급수준 등에 대해서 자문을 구했습니다.


점심때는 박양균 한인회장이 운영하는 금성인터내셔날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이 나라 최대 생산물인 면방직제품 공장의 기자재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인근 단골집인 고려인 보신탕집에서 또 맛난 개고기사냥에 나섰습니다.


이러다가 우즈벡에 있는 동안 개고기를 몇 마리가 작살 내려나. 불교신자인 우리 어머니 아시면 큰 일 나는데. 입 맛 적응이 안되는 특수 상황이니 이해하시겠지. 게다가 우즈벡은 이슬람 국가니 부처님의 관할지역에서 벗어난 것 아닙니까. 부처님은 우주를 관할하시는 분이라고요. 알겠습니다. 가급적 자제하겠습니다.


긴데, 어떤 분이 말씀하시더라구요. "사람이 개고기를 먹으면 그 개가 사람으로 환생하는데. 그래서 개고기를 자꾸 먹어야 사람으로 환생한다"고요. 큰 보시라나 어쩌나. 아닌가. 반찬으로 나온 김치 깍두기는 고려식이 아니라 한국식이었습니다. 일본처럼 반찬도 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인근, 고려인 집성촌 시온고 마을에 있는 재단의 요양원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미리 약속해둔 박강윤 회장을 만나서 노인회관과 고려인 집 2 곳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우즈벡 최대 고려인 집성촌으로, 지금은 600세대가 살고 있으며 70%가 고려인이며 고려인 800여명 중 500여명이 노인이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주로 어린이들로, 젊은이들은 돈 벌러 한국이나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외국으로 일하러 갔다고 합니다.


소련 연방시절에는 100여개 민족 중에서 가장 농사를 잘 짓고 잘 사는 민족으로 이름을 떨치더니, 우즈벡 독립 후에는 넘치는 열정과 능력이 우즈벡 본토에서는 만족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국으로 넘쳐흘러 가는 것입니다. 단군자손 한민족의 피는 어디를 가도 다르긴 다른 것 같습니다. 나쁜 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좋은 피도 아니고, 유별난 피라고 하면 무난하지 않겠습니까. 이거 욕들어 먹겠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피에 속하죠. 

 

 

 

 


고려인 각 가정은 얕은 담으로 쳐진 집 마당에서 텃밭을 일구어 채소를 심고, 닭을 키우면서 먹는 문제는 해결하고 있으며, 저렴한 가스 덕분에 난방상태도 좋고, 집 내부가 깔끔하고 그리고 연금을 받아 기초적인 노후생활은 보장받는 듯했습니다. 소련 연방시절에는 고려인들이 농사도 잘 짓고 부지런해서 우즈벡에서 부촌 행세를 했다고 합니다. 


시온고 마을 고려인은 오히려 잘 사는 편이고, 전국 지방 오지에 흩어져 있는 가난한 독거고려인을 재단에서 보살펴야할 것 같습니다. 이들이 요양원에 모셔야할 분인 것입니다.


참으로 난감한 것은 요양원 담벼락 바로 뒤가 시온고 노인회관이기 때문입니다. 노인회관에는 마을 노인들이 오전에 와서 놀다가 점심때는 각자 집으로 흩어져 가서 해결한다고 하는데 담넘어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이 잘먹고 재미있게 지내면 부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모두다 이역만리 조국을 떠나온 노인인데, 누구는 인삼뿌리 먹고 누구는 무시뿌리 먹나 그 식이 아닐까요. 시온고 마을 노인들도 마을잔치 등 지역사회 참여와 개방 형태로  가끔 신경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요양원을 떠나 타쉬켄트 시내로 돌아와서 우즈벡 정부인사, 고려인문화협회, 한국교민회 등 현지 관계자들을 모신 가운데 오는 2월 10일 갖기로 한 재단의 요양원설명회 행사장 섭외를 위해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방문하고, 바로 옆 비즈니스센터에 있는 김원우 삼성전자지사장을 만나 현지 전자제품 가격견적을 부탁했습니다.


저녁에는 한국식당 가마솥식당 가서 주방을 둘러보고 김세동 사장으로부터 현지 주방용품에 대해 자문을 구했습니다. 전자제품은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식당용 대형냉장고는 현지에 없지만 고장이 나도 간단하기 때문에 헤르츠에 맞춰 한국에서 갖고 오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집에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 22일 (목)

오전 재단 본사에 업무보고를 하고 이어 한국대사관을 방문해서 견제민 대사님을 면담하고 업무협의를 했습니다. 견 대사님은 애초부터 요양원을 구상하시고, 추진하시고, 재단에 운영을 부탁한 분이라서 늘 관심이 크시고 꼼꼼하게 조언해 주십니다. 워낙 세심하신 분이라서 뵐 때마다 늘 긴장해서 보고를 해야 합니다.   


점심 때는 김원우 삼성전자지사장과 판매회사 토우 이상희 이사와 면담하고 요양원 운영과 관련된 현지법과 금융, 통장, 세금 등에 대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김지사장은 모니터 2대와 프린트 1대를 기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심을 먹은 미가식당 김한이 사장의 안내로 직접 주방을 둘러보고 현지 주방용품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또 한인회를 다시 방문해서 요양원 프로그램 자원봉사자를 요청하는 자료를 전달한 뒤 이어 요양원 사업설명회 장소 선정을 위해서 그랜드미르 호텔과 쉐라톤 호텔을 방문했습니다.


저녁에는 신블라드미르 고려인문화협회회장과 나탈리아씨를 한국인 식당으로 초청해서 요양원 운영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한국정부의 고려인노인요양원 건립 및 운영사업은 고려인독거노인 복지에 기여하고 고려인사회에서도 조국에 대한 긍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사업이기 때문에 신 회장님도 개인적으로 협회장 재임기간 최대의 치적이 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특히 "신회장님이 사심없이 재단에 적극 협력해서 요양원사업이 성공하면 고려인사회에서도  동양의 피카소인 '신 니콜라이' 못지 않는 존경받는 인물이 될 것"이라면서 "협회와 재단이 힙을 합쳐 반드시 이 사업을 성공시키자"고 거듭 부탁했습니다. 신회장도 "신 니콜라이 보다도 더 훌륭한 고려인이 되겠다"고 답했습니다. 간단한 반주를 곁들이면서 양측의 우정을 더욱 굳건히 했습니다.


사실 이 요양원은 한국과 우즈벡 정부간의 협약에 의해, 우즈벡 정부가 요양원을 고려인문화협회에 기증하고 외교통상부에서 리모델링한 것입니다. 소유권은 고려인문화협회가 갖고 있으며, 재단은 5년간 무상사용계약을 통해 대신 운영하는 것입니다.


귀가 중 어둠이 쫙 깔린 시내 거리에는 경찰이 거리마다 쫙 깔려있었습니다. 사마르칸트를 방문하고 시내로 들어오는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일행을 안내하는 경찰오토바이 행렬이 막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 옆으로 나간 얘기,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저보다 3살 어립니다. 뭐야.


■ 23일 (금)

오전 본사에 업무 보고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김형철씨는 요양원을 다시 방문하여 비품 배치와 추가 필요 비품여부를 현장 확인하고, 저는 시내에 남아 요양원 자문역인 허선행 한글학교교장과 박강윤회장을 재차 방문하여 우즈벡 현지 사정에 대한 추가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 밥 말아 먹고, 저녁 10시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 구정을 보내고, 한국에서 할 일을 마무리하고 우즈벡으로 돌아가, 우즈벡 타향살이에 본격 돌입할 계획입니다.


이번 10일간의 준비방문은 그야말로 '강행군' 그 자체였습니다. 매일 거의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가끔 한 번씩 가는 출장이 아니라 당분간 오래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니 몸과 정신이 더 고달픈 것 같고, 음식도 문제고, 객지에 떨어진 외로움이 물밀듯 밀려오고, 여러 가지로 편치 않은 심사가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요양원 운영은 국가 지원사업으로서 너무나 중요하며, 또한 우즈벡 현지 고려인사회에서 거는 기대가 너무 크고, 또 재단이나 개인적으로도 보람도 너무 커서, 산적한 일과 고달픈 생활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도록 다짐했습니다.

 

방문의 결론이 중요합니다. 


광활한 대자연 우즈벡 만세(萬歲)! / 느긋하고 순박한 우즈벡 국민 만세 ! / 우즈벡과 대한민국 전세계 모든 국가, 모든 민족 만세 ! / 고려인노인 요양원의 성공을 위한 재단의 집념 만세 ! / 요양원 지원사업을 하는 대한민국 만세 ! / 모두 다 만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네요. 이헌태 만세 ! 마지막이 깽판치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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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4.07 00:11

    첫댓글 머나먄 타국에서 좋은 일 하십니따 건강 하시고 날마다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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