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東萊 鄭氏).(참의공파)
시조 정회문(鄭繪文)은 고려조에 동래군 향직의 우두머리인 안일호장이었으나 문헌이 실전되어 연대와 자세한 사적 및 전후 세계를 상고할 수 없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고려 중기에 상서좌복야를 지낸
문안공 정 목(文安公 鄭 穆;-1040 ~ 1106)의 조부로서 역시 동래군 보윤호장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1세조로,본관을 동래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온다.
동래 정씨는 조선시대에 정승 17명,대제학 2명,호당 7명,청백리 2명,공신 6명,장신 1명,문과급제자 198명을 배출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벌이다.
동래 정씨는 1세조 지원의 6세에서 교서랑<보>파(校書郞<輔>派)와
첨사공<필>파(詹事公<弼>派)의 두 파로 대별된다.
이 두파는 다시 크고 작은 파로 분파가 되는데,
교서랑파는,
전서공파,현령공파,양평공파,지우자공파,부윤공파,참의공파,주부공파,
학생공파등으로,
첨사공파는,
학생공파,교도공파,사과공파,부사직공파,집의공파,군수공파,익혜공파,
첨정공파,부사공파,처사공파,참봉공파,판서공파,녹사공파 등으로.
정 종(鄭 種;-자 민부,호 오노재,시호 양평공,경주부윤).
1442년(세종 24)무과에 급제,1453년 이징옥의 난이 일어나자 종성판관으로 이를 주살,1등공신에 책록 되었다.
1461년 중추원 부사로 정조사가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1467년 이시애의 난에 다시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으로 동평군에 봉해졌다.
이어 충청도 도절제사를 거쳐 1471년 경주부윤에 이르렀다.
교서랑파 중 양평공<종>파(襄平公<種>派).
항 렬 표.
25세;-동,용,운,징(東,龍,雲,徵),26세;-화,동,창,응(火,東,昌,應).
27세;-권,치,기,익(權,致,基,翼),28세;-수,원,조,환(壽,元,朝,煥).
29세;-두,진,인,구(斗,鎭,寅,龜),30세;-현,석,모,규(鉉,錫,謨,奎).
31세;-한,호,진,석(漢,浩,鎭,錫),32세;-식,연,영,순(植,然,泳,淳).
33세;-병,기,우,상(炳,基,愚,相).
이 외에도.
기우자공<비>파와,집의공<난손>파,익헌공<난종>파,판서공<섬>파,
참의공<절>파,녹사공<승>파도
같은 항렬을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