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4년7월1일 안동댐건설로 인하여 길안면에서 임동면으로 행정구역 변경되었다.
1993년12월31일 임하댐 완공으로 수몰 되었다.
⊙지례(知禮·芝澧) 옛날부터 약초인 芝草가 많고, 물이 맑아 芝澧라 부르다가, 1900년경에 禮文을 잘 알고 行한다 하여 知禮라고 부른다는 유래가 있다. 마을 뒤쪽엔 靈芝山이 있고 앞에는 맑은 물이 흘러 芝澧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형이 지레처럼 생겨서 지레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知禮마을은 의성金氏집성촌이다. 숙종임금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1695)과 그의 중형(仲兄) 방형(邦衡)의 자손이 340여년간 동족 부락을 이루어 주경야독하며 살아온 전형적 사림(士林)의 마을이었다.
지촌은 의성 김씨 내앞파의 대조(大祖) 청계 김진(金璡)의 현손(玄孫)이며 학봉 김성일의 백씨인 약봉 김극일의 증손자이며 표은(瓢隱) 김시온(金是
)의 넷째 아들이었다. 38세에 문과 급제하여 40세에 제원(堤原)찰방(察訪)이었을 무렵 지례(芝澧)에 집을 짓고 호를 지촌이라 하였으니 지례의 입향조가 된다.
지촌이 지례마을에 자리 잡게 된 것은 병자호란 때 도연에 은거한 아버지 표은 김시온의 사상적 영향이었다. 김시온은 나라가 망하자 청에 항거하여 과거를 포기하고 도연명(陶淵明)의 이름을 딴 도연(지명,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에 하나 뿐인 도연폭포가 있는 곳으로 산수가 빼어남)에 은거하여 스스로를 숭정처사(崇禎處士)라 자호(自號)하고 평생 독서하고 제자를 길렀던 것이다. 그러한 아버지의 아들 지촌은 조선 현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지만 은둔(隱遁)생활을 좋아하여 그의 집을 도연에서 10리나 더 상류인 지례에 지었다.
芝村은 청렴하여 한때 영암군수를 지내고 돌아올 땐 수레에 국화꽃 화분 하나 뿐이었다고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는 전한다. 志村은 58세 되던 해 남인세력이 물러나던 경신출척(庚申黜陟)을 당해 벼슬을 그만두고 지례에 돌아와 9년을 지냈다.
기름진 마을 앞들은 1959년9월15일 사라호 태풍때 제방 붕괴로 유실 되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2년제 지례소학교 해방후 길산국민학교가 있고 面事務所 지례출장소가 있었다.
현재는 임하댐 공사로 수몰되어 종택은 임동면 박곡리 산769번지 지례예술촌으로 보존되어 있다.
⊙궁낭이·국란(菊蘭) 국화와 난초를 많이 가꾼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洛東江의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을 따라서 위치한 마을로 두 자연 부락으로 나누어졌는데 윗쪽을 웃궁낭이·웃궁냉이(上菊蘭)이라고 부른다. 이 곳은 金氏들이 집단부락을 이루고 있고, 아랫쪽에 위치한 마을을 하궁낭이·아랫궁낭이·하국란(下菊蘭)이라고 하는데, 李氏들이 주성이다. 흔히 하는 말에 들은(聽)궁낭이지 볼(視)궁낭이는 못된다는 라는 말이 있다.
⊙뒷바들·뒷들·후평(後坪) 이 마을은 洛東江 지류인 반변천(半邊川) 한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知禮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마을 뒤쪽에 들(坪)이 있다고 해서 뒷바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특산물로는 고추와 담배 등이고 옛날부터 의성金氏와 고성李氏들이 모여 사는 부락이었으나 현재는 임하댐 공사로 수몰되었다.
⊙내굽·내구비·천곡(川曲) 뒷바들에서 남쪽으로 1km 정도 떨어지 곳에 반변천(半邊川)을 거슬러 올라가면 산기슭에 위치하였으며 냇물이 마을을 구비쳐 흐르고 있다고 하여 내구비 또는 천곡(川曲)이라 하다가 지금은 내굽으로 부른다. 옛날부터 의성金氏들의 집성촌이며 마을 뒷산에는 송이버섯이 생산되며 수십 년 전에 건축한 한옥 민가가 특수한 구조와 솜씨로 건축되어 보존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임하댐 공사로 수몰로 인하여 오류헌(五柳軒)은 임하면 임하리282번지로 이건(移建)해서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다.
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의 셋째 아들 목와(木窩) 김원중(金遠重)이 천곡에 분가하면서 1678년(숙종 4)에 건립한 것이다....현재는 김원택 소유다.
⊙감동이·甘洞·감동리(甘洞里) 감나무가 많은 마을이라고 해서 감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지금은 수백년된 감나무는 없어졌다.특산물로는 담배,고추등이고 맑은샘은 여름에도 손을담그면 뼈가시릴 정도였다.현재는 上甘洞은 白石광산으로 형질 변경으로 없어진 상태다. 임동에서 지동까지 포장도로가되어 있다. 요즘은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