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23 01:36 PM 참 산다는 게 별건가요.
참 산다는 게 별건가요. 비갠 날 용담의 봄빛이 햇볕에 말라가고 시샘하여 아직은 투정부리는 겨울.
황금새도 맷새도 박새까지 죽은 삭정이 끝에 앉아 놀고 뜨락에 새쑥이 국화순이랑 파랗게 돋고 지난 가을에 누렇게 죽어간 상추순, 딸기순이 바위 틈엔 꼬챙이같던 영산홍 새눈이 되돋습니다.
바람은 사나흘 잠을 들지못해 풍경만을 웅웅 울립니다.
누가 있어 이 시간 용담에서 이들을 만나게 했나요. 때가 이르러서 제 오고 싶은 때에 제 올 곳으로 온게고 때가 이르면 제 가고 싶은 때에 제 갈 곳으로 갈 것인데 누가 있어 이 봄 용담에서 이들을 맺어주었나요.
맺고 푸는 게 아닌것이 인연이라서 이 봄 이 마당 이 들판 이 용담천 둑길에 이 하늘 솔가지 끝을 스치는듯 만났다가 지나가고 지나갔다간 다시 만나면 그 뿐.
그립고 아프고 해야하고 버리고 얻고 보고 듣고 가고 오는 것까지 다 자연에 두고요.
그냥 그냥 그리우면 그리워하고 아프면 아파하고 해야할 일이 있으면 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버리고 싶으면 버리고 얻고 싶은 것은 취하면 그 뿐.
하지만요. 보고픈 게 있다면 이것만은 견뎌보아야 하나요?. 듣고 싶은 것까지도 귀를 꽉 막아보고요?
자유로워 부럽나요? 창공(蒼空)을 날으는 새가요.
참새는 소리개를 두려워 떨고 소리개는 독수리가 날면 숨기에 바쁩니다. 멧새는 겨울 눈 속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사람들의 총소리는 얼마나 경기(驚氣)들리는 일인가요? 혼미(昏迷)한 맷새가 거실 유리에 부딪쳐 죽어가기도 합니다.
거칠 것이 없다고요? 바람이요.
가다보면 바위에 막히고 오다보면 나무에 걸리고 죄없는 풍경(風磬) 경쇠(磬釗)를 밤새 두드리고 빚더미에 잰걸음하는 용이아주머니네 표고버석 비닐하우스는 왜 때려 부숩니까? 엇그제도 원경이네 돼지 축사 지붕이 날라가버렸습니다.
막힘이 없다구요? 용담천 흐르는 물이요.
흐르다보면 보(堡)는 곳곳이 있어 괴이면 썩습니다. 군의원(君議員)도 힘있는 자리라고 백자리 전 군의원이 한다는 김치공장에서 뿜는 폐수와 거품이 지랄병에 쓰러진 광인(狂人)의 입가처럼 게거품을 물고 흐르는 게 아니고 둥둥 떠갑니다.
부러워할 것도 없고 거침없는 게 없고 막힘없는 게 없습니다.
다만 때로 속이 상합니다. 원시에서 농경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농군이나 목축업에 목을 맨 이들의 재산인데
일전 경산의 소에 웬 광우병입니까? 소가 털오라기 하나까지 사람에게 준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소가 비단을 탐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상철이 아저씨네 돼지는 진주를 바라지 않는데 웬 콜레라입니까? 삽겹살에 쐬주는 오늘 밤에도 그리운 이들의 자리에서 기가막힌 정담인데요. 돼지콜레라는 정녕 웬 말입니까?
콜레스톨이 적다고 노인회장님이 즐겨 자시는 오리와 지난 겨울 광명에서 딸과 먹던 닭고기는 맛만 있었는데 조류독감은 또 웬 것입니까?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치킨을 얼마나 맛나게 먹습니까? 고개숙인 아버지가 소주 한잔 걸치고 미안한 마음에 손에 들고 들어가면 이제야 아비 체면이 서는데요.
여의도와 세종로 효자동과 과천 등지에 인간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듯한 신선도 아니고 속인(俗人)도 아닌 비선비속(非仙非俗)의 사람들. 소만도 못한 것들이 광우병에 걸렸다는 말과 돼지만도 못한 놈들이 콜레라에 걸렸다는 말은커녕 늘 자신들이 공언(公言)한 말과 약속을 금새 까먹어 '새대가리' 라고 부르는 자(者)들에게 조류독감에 걸렸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혹시 방송이나 신문, 인테넷까지 광우병에 콜레라에 조류독감에 걸려 언론(言論) 공기(公器)가 제 기능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아니면 이노매 병(病)들까지도 이노매 힘이 무서워 피해갔는지요? 하는 짓동머리가 더러워 도망을 갔는지요? 아니면 내 자신이 병이 들어 귀가 멀었는가요?
쓸데없이 떠들어대고 창업(創業) 1순위래서 부랴부랴 없는 돈내어 문을열고 본전도 찾기 전에 문닫고 징징짜는 치킨집 오리집 주인들을 위로한답시고 한편으로는 총선에 싸움박질을 하면서 추풍에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표(標)를 주어담을 요량으로 '먹세. 먹세!' 날리 법석을 떠는 높은 이들 가진 이들 십만 선량들에게 언론까지 대량살상무기 광우병에 돼지콜레라랑 조류독감 균이나 한 봉지 씩 선사하면 어떨까? 높은 이들 가진 이들 십만 선량들 방송국과 신문사에 여쭈어 보려 합니다.
아, 죽은 삭정이에 앉은 노랑부리멧새 한 마리가 깃을 부르르 털며 웃고 있네요. - 히히히힛! 참 산다는 게 별건가요. 따지긴 . . . .
맞습니다. 참 산다는 게 별건가요.
사나흘 따뜻하던 이른 봄빛이 골난 겨울 꼬리에 골통을 맞고 뇌를 다쳐 부들부들 떨며 남향 양지녘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며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며 황금새를 안고 있네요. 맷새도 품고 박새까지 끼고 뜨락에 파랗게 돋는 쑥싹이랑 국화순이랑 지난 가을에 누렇게 죽어간 상추순, 딸기순까지 영산홍 꼬챙이같은 죽은 가지에 눈을 뜬 새눈을 보고 있네요.
사나흘 잠을 들지 못하던 바람이 양자산 자락 어느 곳에서 잠이들었는지 풍경이 한가롭고 용담은 고요(孤謠)를 응얼거립니다.
누가 있어 이 시간 용담에서 이들을 잠재우던가요.
때가 이르러서 제 깨고 싶은 때에 깨고 때가 이르면 제 자고 싶은 때에 자는데 누가 있어 이 봄 용담에서 이들을 재우고 깨우던가요.
올 겨울이니 겨울이 간들 서운할 일이 무에고 갈 봄이니 새 봄이 왔다고 반가울 일이 그 무엡니까? 어짜피 가고오는 게 산다는 건데요.
낄낄낄, 어머니. 참 산다는 게 별건가요. 여의도로 향하던 마음을 접고 무궁화 가지 끝을 휘감은 두어 점 구름만 보고 있으면 되겠지요? 그냥요.
용담강(龍潭岡) 금서재(琴書齋) 창가에서 참 산다는 게 별건가요. 여전히 익지 않은 술이 구름만 보고 있습니다. 원풍(原風) 김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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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1 06:48 PM
덕산이 놓아버린 몽둥이(棒)로 누구의 머리통을 깨부수랴?
서울로 간다. 꽁공 언 용담을 버리고 서울로 간다.
과속(過速)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버리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용담에서 꽝광 얼어 한자(尺)는 실히될 얼음 밑으로 흐르는 용담천 둑방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나온 신작로(新作路) 역시 추위에 떨고 있었다.
덜덜거리며 기어 온 버스는 양평(冷平)을 거쳐 남한강(南漢江) 풍광(風光)을 따라 서울로 간다. 팔당대교를 지나 구리시을 지나는데 비행기가 무거운 소리를 내며 머리위로 날아간다.
워커힐을 지나며 시골 버스는 온달장군의 결기(決氣)에 찬 아차산을 보며 고구려를 그리워한다. 야무진 여인 평강공주의 반짝이는 눈빛을 그린다.
얼어 이어진 강 남북 사이에 고개숙인 덕산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덕산은 용담의 회초리를 들고 날아가는 물새를 노려보고 있었다. 덕산이 놓아버린 몽둥이(棒)로 누구의 머리통을 깨부수랴?
덕산(德山宣鑑) 주(周)씨가 사천(四川)에서 태어나던 780년 겨울이나 이제의 덕익은 술이 바람 결에 보는 남한강 겨울이나 다르랴 같으랴? 덕산이 남한강 풍광(風光)에 비친 것은 아마도 용담(龍潭)에서 떡장수 노파에게 귀싸때기를 맞고 비로소 정신이 번쩍들어 낸 소울음이 들리는듯 해서 일 것이다.
6조(祖) 혜능(慧能)이 그러했듯이 금강경(金剛經)에 통달하여 금강경 강해는 그를 따를 이가 없었다. 해서 별명이 북방의 주금강(周金剛). 읽고 또 읽고 좌선에 수행으로 닦고 또 닦아도 깨닫아 부처가 되기에 평생 어렵다고 했다던가. 신수(伸秀)대사들이.
남방에 성(盛)한 선종(禪宗)은 직관(直觀)과 영감(靈感)으로 순간 깨닫아 소울음 소리를 내고 부처가 된다니 웬 이런 불학무식한 놈들을 보았나? 도(道)를 깨우치고 선(禪)을 알아 부처가 되는 일이 여반장(如反掌)처럼 쉬이되다니.
화가난 덕산은 한 손에 몽둥이(棒)를 들고 등에는 금강경을 풀어놓은 청룡소초(靑龍疏秒)를 지고 호남 용담으로 향해 길을 밟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로 향해 길을 놓는데. . . .
덕산은 산을 넘고 물길을 따라 밤 이슬을 이불삼아 잠이 들고 굶기를 밥먹듯이 하며 배는 등에 붙고 눈앞에 빙빙도는 오란 하늘을 보며 용담(龍潭) 턱에 도달하니 떡장수 늙은 노파의 떡바구니가 눈에 띤다.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라 했던가? - 할머니, 떡 두개만 사서 요기나 할까 합니다. 두개의 떡을 내놓으며 노파가 씩 웃으며 말했단다. - 등에 진 게 무엇이요? - 책입니다. - 책이라면 무슨 책이오? - 청룡소초(靑龍疏秒)라고 합니다.
노파가 다시 씩 웃는다. 덕산은 의아해 눈만 껌뻑거린다. - 거기에는 무슨 경(經)이 들어 있오? - 금강경(金剛經)이 강해되어 있습니다. 금강경에 도통한 덕산이 으시대며 씩씩하게 말했다.
노파가 늙은 허리를 펴며 말했다. - 내가 질문을 하나 할테니 옳은 답을 하면 공짜로 점심(點心)을 드리리이다. 덕산은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했단다. - 좋습니다. - 금강경에는 어제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過去心不可得), 오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現在心不可得), 후제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未來心不可得) , 그대는 그대의 점(點)을 어느 마음(心)에 찍으려하오?
불가사의한 선문(禪問)에 덕산의 등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꿀먹은 벙어리가 어디 있는가? 침먹은 지네가 어찌하여 빌빌대는가? 말문이 막힌 덕산은 무엇을 하였던가? - 모르겠습니다. 덕산의 고개가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두개의 손에 든 떡을 떡바구니를 도로 담아 챙긴 노파가 표표히 사라지며 말한다. - 답을 못했으니 점심은 못 드리겠오. 다른 데 가서 요기를 하오.
몽둥이로 돈오(頓悟)를 깨부수기 위해 달려 온 덕산은 떡은커녕 늙은 떡장수 노파에게 그만 보기좋게 한방 얻어 맞고 말았다.
쫄쫄 굶은 채 용담(龍潭)으로 다가가지만 덕산의 호기는 아직도 그의 안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용담선사(龍潭禪師)를 만나자 덕산은 배배꼬며 묻는다. - 용담에 왔는데 용도 못도 보이지 않으니 웬일입니까? - 이미 용이 사는 못에 이르렀거늘 무슨 말인가? 덕산은 또 다시 식은 땀을 흘렸다. - 오늘은 그만 돌아가서 자거라.
덕산이 돌아서 나오는데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 밖이 너무 어둡습니다. 용담이 불을 댕긴 지촉(紙燭)*을 내밀었다. 덕산이 손을 뻗어 받으려 하자 용담은 확~ 입김을 불었다. 불은 꺼졌다. 밖은 여전히 칠흑같은 어둠 뿐이었다. 빛은 무에고 어둠은 어딨는가?
이튿날 불을 얻어 청룡소초를 불사르며 - 이제 혀 끝을 의심치 않겠습니다. 온갖 말재주를 다 부려도 깃털 하나를 공중에 날린 것 같고 온갖 재간을 다 부려봐도 물 한 방울을 바다에 던진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깜감한 어둠 속은 홀로 가야 한다. 누가 있어 데려다 줄 것인가? 더러운 서울로 혼자 가야간다. 누가 있어 용담을 버리고 서울로 가는 길을 일러 줄 것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한다.
정신없이 달려오던 집착을 죽이고 애욕(愛慾)의 단단한 끔마져 끊어 던지고 피안(彼岸)의 세상에서 울고 있는 용담에서 시멘트처럼 굳어진 의식(意識)의 껍질 속으로 흐르는 양자산 비탈을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 온 비어버린 논 길 역시 추위에 떨고 있었다.
툴툴거리며 달리는 버스는 잠실(蠶室)을 지나 팔팔(捌捌)대교를 지나 풍광(風光)을 따라 여의도로 간다. 국립묘지를 지나 한강철교를 지나는데 국철(國鐵)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머리위로 지나간다. 다리를 건넌다.
노량나루 건너 용산강 언덕 용산정(龍山亭)에서 나라와 민인(民人)을 걱정하며 수심(愁心)에 찬 맹대감의 물기어린 눈매를 그리워한다. - 저 노량나루의 배들은 모다 몇척이나 되느냐? 세조가 묻는다. - 삼백이십 척은 넉근이 될 것입니다. - 오백 척은 남을 것입니다. - 아닙니다. 사백오십척을 넘지는 않을듯싶습니다
답답한 세조가 묵묵부답으로 서 있는 맹대감에게 묻는다. - 경(卿)은? 맹대감이 서슴없이 답한다. - 두척입니다. - 무어라? - 하나는 실리(實利)의 배요, 다른 하나는 명리(名利)의 배일뿐입니다.
하늘을 뚫듯이 서있는 마천루(摩天樓) 사이에 귓불이 얼얼한 국회(國害)가 궁상맞게 서 있었다. 덕산이 태워버린 청룡소초(靑龍疏秒)의 재가루를 모아 누구의 콧구멍에 쑤셔 넣을 것이랴? 덕산이 놓아버린 몽둥이(棒)로 누구의 머리통을 깨부수랴? 노파의 질문을 누구에게 던지랴? 누구의 터진 배를 되 쫄쫄이 굶기랴?
누누세월을 흘러 온 한강(韓江)을 바라다 보며 조선을 그리워한다. 외씨버선의 여인 아~ 어머니. 하마, 평생 짓무른 늙은 여인의 눈. 그 눈빛.
어머니. 덕산이 놓아버린 몽둥이(棒)로 누구의 머리통을 깨부셔야 합니까? 홀로 머리칼을 쥐어 튿다 부술 머리통은 바로 제 것임을 알게 하여 주소서.
하모, 지는 노을 빛.
용담강(龍潭岡) 금서재(琴書齋) 창가에서 덕산이 놓아버린 몽둥이(棒)로 누구의 머리통을 깨부수랴? 홀로 고민하며 스스로의 머리통을 부수다. 원풍(原風) 김년오
* 주(註): 신수(伸秀)를 중심으로 갈고 닦고닦아 단계적으로 깨닫음에 이르는 점수(漸修)의 북종(北宗)은 6조 혜능(慧能)을 시작으로 직관과 영감으로 단번에 깨닫는 돈오(頓悟)의 남종을 싸가지없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촉(紙燭) : 불을 달리기 위해 초를 먹인 종이 끈 한강(韓江) : 한강(漢江)은 한강(韓江)이 맞다. 이제라도 고쳐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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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6 02:14 AM
빈 술잔을 멍멍 짖는 개 밥그릇으로 내 주다.
보름달이 휘영청 떴는가? 내가 보는 달은 오늘 보는 달이고 네가 보는 달은 네가 보는 달이다.
1582년 서산(西山)은 간월도에서 뜨는 달을 보고 뜨는 달을 보고 부처가 되었다.
네가 보는 달이 내가 보는 달이 서산이 보는 달하고 무엇이 다르더냐?
내가보는 달이 네가 보는 달이 서산이 보는 달이 오늘 보이는 보름달과 무에 다를 게 있을 소냐?
<윤동주의 별을 보는 마음>에 있는 별과 소크라테스가 마누라에게 쫓겨 옥중 창살 사이로 보던 별 조주의 밥상머리의 별이 어찌 다를 게 있을 것이냐. 추억의 어제의 별과 신비의 오늘의 별과 동경의 내일의 별이 다 하나이거늘
별이 떨어져 땅에 돌처럼 있다면 별이 별일 것인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이 밤 하늘에 빛나고 있다면 그가 별일것을 . . .
손가락이 손가락을 만질 수가 있는가? 흐르는 물이 뒤를 볼 수 있는가? 거울이 제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가? 제가 저를 스스로 저라고 할 수 있느가?
바람은 바람믈 제 스스로 바람이래서 걸리 것이 없고 물은 물이라서 흐르노라면 제 스스로 막힐 일이 없는데 거울은 거울이래서 거울 제 스스로가 더러워 질 수가 없는데
저기 웬 그물이 있어 맷새를 잡으며 저기 원 뚝이 있어 송사리를 막을 것인가! 오호! 거기 네가 거을이더냐. 스스로 비추어 보이더냐!
보릅달이 휘영청 떴다. 내가 보는 달은 오늘 보는 달이다. 네가 보는 달은 네가 보는 달이 아니다.
2004년 원풍(原風)은 용담강(龍潭岡)에서 빙빙도는 쥐불놀이 깡통을 뜨는 달로 보고 서로 엉켜 취해 도는 달을 보고 멍멍 짖는 개 소리를 듣으며 잠이 든다.
아, 어디서 들려오는가. 오호, 어머니. 늘 곁에 계시는 어머니.
여전히 보름달은 조금 보자란듯해서 오늘도 타오르는 달짚의 불꽃을 연꽃으로 연꽃으로 알며 꾸우뻑 꾸웁벅 절을 합니다.
안녕~
우리가 보는 달을 수수만년 뒤 또 우리가 보기를 . . .
용담마을 대보름 달짚을 함께 태우고 돌아와서 빈 술잔을 멍멍 짖는 개 밥그릇으로 내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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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31 <사카모도 료마>와 오래 전에 만남
1 참 오래 전 <사카모도 료마>와 만났다. 그날이 우리의 오늘이 아니길 늘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고 희망하던 그날이 늘 오늘이었다.
내가 그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료마를 죽이고 료마를 버리고 료마를 베고 나까지 베어버려야 하는데 나와 료마는 늘 수심찬 얼굴을 하고 서로 바라만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료마가 동경만(東京灣)을 바라다보고 있을 때 나는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2 인간은 깨끗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으로 다 되는 게 아니야. 그 청정무구하고도 자유자재한 정신, 이것이야 말로 내가 할 일! 내가 할 일을 발견하고 불처럼 타 올랐을 때가 고귀한 거야.
맑디맑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게 되면 그 동안 가물거며 슴벅거려지기만 하던 더러워진 눈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되지. 이 세상을 위해 최대로 헌신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되면 그땐 가만히 있을 수 없을만큼 가슴이 불타오른다!
물론 우리는 그런 일을 지금 찾고 있는 중일거야. 나라를 위해 평생 몸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일이 과연 무엇일까? 조바심을 내면서말야. “
우리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러한 인물을 기성 정치인들에게서만 찾아내려는 것은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민중 속에서 인물을 찾아야 된단 말인가?”
그런 인물은 기성 정치인 중에 있는 것인지. 관료나 성직자나 학자 또는 농사꾼이나 상인 중에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성 정치인들에게만 맡기는 세상은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토사의 토노사마뿐만 아니라 사츠마의 토노사마도, 쵸슈의 토노사마만 해도 학문 수업이니 무사수행이니 하는 명목으로 장래성있는 젊은이들에게 견문을 넓혀주려 하고 있는 거란 말야. 그런 젊은이들이 제법 많았을텐데 . . . . .
료마씨도 그런 젊은이들 중 하나였을거야. 그런데 료마씨는 지금의 일본이 걱정되지 않나?”
난 . . . 어떻게 하면 나라를 구할 수 있는가 하는, 바로 그런 나라 살리기 방법이 있다면 목숨을 걸어도 되겠는데 . . . . . .”
조바심을 내느라 일을 잘못하거나, 남들이 말하는 걸 그대로 믿어 꼭두각시처럼 놀아나선 안 돼.
하지만 수업이란 무엇이 옳고 또 내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昰寬「?찾아내게 될 때까지 겪게되는 갖은 고생과 초조함을 견디어 내는 것을 말하는거야.
남들의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는 안돼. 스스로의 맑은 마음 눈으로 찾아내야지. 이런 고생을 마다한다면 그건 수업이 아니야. 알았다면 빨리 찾도록 해야지. 남자가 할 일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이 국난 시대에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가를 . . .
여기서‘수업의 의미'는 자기 논리로 마음 속에 단단히 새겨넣는 것이다.
남자는 누구나 최상의 일을 하고 싶은 거라구. 최상의 일이란 남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일을 말하는데, 그러다가 차차 나라를 위해, 세계를 위해 공헌을 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것이지. 그런데 말이야. 최상의 일을 하려면 최상의 인물이 되어야만 해.
최상의 수업이란 ..... 말하자면 갖가지 오탁(汚濁)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최상의 일을 찾는 것을 말하지.
이때 정신이 백치 상태여선 안돼. 백치는 무엇이 이 세상의 汚濁이 되는지, 무엇이 최상의 일이 되는지를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총명하면 얼마든지 가능해. 항상 최상이 되는 대상에 부딛치면서 자신의 영혼을 소중히 갈고 닦는 거야.”
소중히 갈고 닦는 일이란 그래. 스승만해도 절대로 이류 스승을 모셔서는 안돼. 이류 스승이란 체하면서 자신의 앞일만을 보는 사람이야. 최상의 스승을 찾을 수 없다면 그때는 천지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거야. 천지 자연에는 문자로 써서 담을 수 없는 여러가지 진리가 숨겨져있어.
즉 인간이 만든 문자가 아닌, 진실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대문자(大文字), 다시 말해 진짜 학문(學問)이라는거지. 이 처럼 살아있는 문자(文字)를 청정무구하고도 오탁(汚濁)에 물들지 않은 맑은 눈으로 읽어간다. 이것이 최상의 수업이지.”
인생의 재미는 동시대의 사람들과 해후하는데서도 있지만, 동시에 서로 마주쳤지만 모르는 채 지나가는데서도 또 별 맛이 있는 것이다.
3 꾸우뻑 꾸우뻑 꾸우뻑 꾸우뻑 꾸우뻑 꾸우뻑
한겨울 철없는 무당벌레가 창가를 기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철을 알던 료마와 덜익은 술, 원풍이 서로 보고 절을 하고 있다.
또, 꾸우뻑 꾸우뻑 또한, 꾸웁벅 ~
<사카모도 료마>와 오래 전에 만남을 잊지 못하여 술잔을 비우다. 김년오
사카모도 료마와 이미 신지식인 매형 오카가미 신스케와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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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見' ,'我見' ,'我見' ... ------------------------------------------------------------
용담이 장마비에 씻기면
장마비가 용담이 씻어 내리니 용담의 푸르름이 더한가? 용담이 장마비에 씻기니 제 푸르름이 한결 더한가?
요즘 기인 장마에 맑끔이 씻긴 용담은 진한 녹색의 카펫을 깔고 누어 코발트 불루가 사라진 칙칙한 잿빛 하늘을 보아도 마냥 좋단다.
녹색 신라의 카펫 우흐로 토박이 백로의 비상(飛翔)이 한가롭고 새년에 찾아 온 재두루미의 나래짓이 여유롭고 올 여름 는 식구 원앙 한쌍의 유영(游泳)이 아릅답다.
먹어도먹어도 허기지던 날의 아픔을 치유한 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는 용담의 나날은 기껏 내려와 아직은 낯설어 울타리 곁을 서서이다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뒷걸음 치며 물렀다가 또 다가와 큰 눈을 끔벅이며 눈치를 보다가 아직은 익지 낯을 가리며 게면쩍은 도래짓하다 슬금슬금 뒷산으로 사라지는 노루 한 마리가 있어 더할 수 없는 귀한 행운일 수 밖에 없다.
금서재(琴書齋) 창가 어두운 여름 밤 주적주적 떨어지는 낙수의 합창 따다닥따다닥 디딤돌 치는 경쾌한 소리 가락 또르락또르락 흐디희 눈보라 잎을 때리는 빗박자 후두둑후두둑 백단심 한빛의 웅얼거림
용담은 어느새 침잠(沈潛)하는 태고(太古)처럼 심연(深淵), 그 잴 수 없는 깊이로 광대무비(廣大無匪), 가를 수 없는 넓이로 태극(太極), 시간을 알 수 없는 공간(空間)으로 사색(思索)도 잃고 침묵(沈默)도 잊고 사유(思惟)마져 버리고 시작도 끝마져 없는 빔(噓,空) 음(陰)도 양(陽)까지 버린 합(合) 용담은 이제 용담이 아니다.
알았는가? 깨달았는가? 아견(我見)!
나를 보았는가? 나를 찾았는가? 보았으매 찾았고 찾았으매 보았다. 찾았으매 또한 보지 않았는가. 아견, 아견, 아견, 아견.
유명이무형(有名而無形) 무형이유용(無形而有用) 유명이무형이라함은 유형이가 무형이 아우가 아니고 이름은 있으나 형체가 없다함이며 무형이유용이라함은 무형이가 유용이 형이 아니고 형체가 없으나 그 쓰임새가 있다는 말인데
공(孔)씨 성을 쓰신 분의 무용지물(無用之物) 쓰임새가 없는 것은 쓸데가 없다는 뜻이나 노(老)씨 성을 가지신 분의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데없는 것이야말로 그 쓰임새가 있다는 의미는 엎어치나 뒤치나 매 한가지이듯 한 몸일 수 밖에.
찰나(刹那)의 생각이 아름다운 것은 영롱한 무지개를 머금은 이슬 방울같고 순간의 생각이 사나운 것은 광기(狂氣)어린 바람에 부딪치는 벼락과 같다. 허나 이슬 방울이나 우레 벼락이 자연을 어미로 현상을 아비로 둔 한 새끼가 아닐 것이랴.
한 여름 밤 장마비가 잠못이뤄 서성이던 풍경을 훌 때리고 미친듯 고함을 치며 어둠을 뒤흔들자 컹컹 놀라 짖는 마을 개소리에 졸던 초등(哨燈)이 온 몸을 부르르 떨면 용담은 어느 새 부시시 헝클어진 머리칼을 긁는다.
장마비가 용담이 씻어 내리면 산문(散文)이 된다던가? 용담이 장마비에 씻기면 시(詩)가 된다던가?
이밤 기인 장마에 맑끔이 씻긴 용담이 흑단같은 머리칼을 베고 누어 녹색 카펫이 사라진 시공(時空)을 잊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말이 없어 마냥 좋아라.
한기(桓紀) 9202년 오월 스무이틀 인시(寅時) 본래의 바람은 잠을 잃고 빗속에서 풍경과 노니는데 익을 줄 모르는 술은 여전히 독 속에 있도다. 김년오
* 눈보라 백단심 한빛은 무궁화 꽃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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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9 안자와 익은 술 한 잔 놓는 꿈을 꾸다(안자춘추)
요즘은 안자춘추(安子春秋)를 통해 안영(晏*)을 만나고 있습니다.
사마천조차도 <史記> 안자열전에서 “가령 안자가 지금 다시 있다면 내 비록 그를 위해 마부가 된다한들 기쁨과 흠모로 모시리라. ?????假令晏子而在, ?????余雖爲之執鞭, ?????所*慕焉”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자를 일컬어 세상에 살면서 2인자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한 사람이 바로 그라고 합니다.
BC ~500년을 전후로 공자와 노자와 동시대를 산 인물인 안자는 춘추시대 가장 웃기는 인금인 제환공을 도와 36년을 병란에서 벗어나 무난한 시절을 구가한 인물로 관중과 더불어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두명재상 중의 한 인물입니다.
춘추시대 초기에 환공을 도와 九合諸侯한 관중이 있었다면 말기에 제나라 靈公과 莊公, 景公(재위 BC547~490)을 보필하며 기울어가는 세기 말의 禮敎를 잡아보려고 애쓴 인물이 안자입니다.
특히, 공자아의 관계를 읽다 보면 그의 예지와 통찰력에서 나오는 治國安民은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공자가 주유하던 중 제나라에 와 경공을 섬기려 설하자 이를 막은 사람이 안자입니다. ?? 중니가 경공을 만나자 경공이 이를 즐거워 하며 이계(爾稽) 땅을 봉해 주고 등용을 하려 하며 안자에게 묻습니다. 이때 안자가 이렇게 반대를 하였습니다.
- 안됩니다. 저들은 오만하면서 자기 뜻만을 고집하여 따르게 하려 하므로 이로써는 아랫 사람을 교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또 악곡을 좋아하여 백성을 늘어지게 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몸소 백성을 다스리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명령만 세워놓고 일에는 게을러 직무를 맡길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장례에 너무 많은 돈을 들여 백성들의 살림을 허비하게 하고 나라를 가난하게 하며, 상喪을 너무 오래 끌어 슬퍼하느라 세월을 낭비케 하니 백성을 자애롭게 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실행하기 힘든 것은 감추고 복장을 특이하게 하여 얼굴 꾸미기에만 힘쓰고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것에만 힘씁니다. 따라서 무리를 이끄는 것으로 백성을 따르게 할 測?없습니다.
威儀(권위의식)만을 중시하면 백성의 행동이 천박해지기 시작하고 명성만 번드르하게 꾸미면 세상의 덕이 저마다 쇠퇴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 공구는 음악을 풍성케하여 세상을 사치에 빠지게 하며 무리를 모으고 등강( 登降)의 예를 복잡하게 하여 무리에게 뽐내고 있습니다. 많이 배운다?하여 세상에 모범을 보이는 것도 아니며, 많이 생각한다고 해서 백성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백성들의 수명을 두배로 늘인다고 해도 그들이 원하는 교육을 다 배울 수 없고, 살아있는 동안 그들이 요구하는 예를 다 행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재물을 쌓아도 그들이 말하는 즐거움을 다 채울 수가 없습니다. . . . . 지금 그런 자들에게 봉읍을 주어 우리나라의 풍습을 바꾸게 한다면 이는 민중을 인도하고 백성을 안존시키는 도리가 아닙니다.
경공이 금새 기가 죽어 “ 알았습니다”하고 후한 예물만 주고 치도(治道)에 대해 묻지 않니 예물만 받고 마침내 제나라를 떠났다고 합니다.??
노나라에서 재상을 할 때 역시 안자에 의해 축출 당했고, 공자는 이를 마지막으로 경세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오늘 무서리 내린 반백의 용담들판을 보며 안자의 말을 되삭임하며 소나무 등걸에 자자구구(字字句句) 새겨 봅니다. 오늘 날 우리가 들어야 할 것들이 노래가 아니고 민인(民人)들의 아파하는 신음이고 인민(人民)들의 허탈해진 빈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요즘 겨울이 너무 푸근해서 성에 차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마음에 겨울 추위를 좋아하고 따뜻함을 싫어하는 게 아니고 겨울이 겨울답지 않음에서 늘 내가 나답지 않음을 탓하는 것입니다.
겨울은 추워야 하고 여름은 뜨거워야 하며 이십은 이십다워야 하고 오십은 오십다워야 한다는 것을 까마귀?살점을 구경도 하지 않았는데도 품성이 비루하여 늘 까먹습니다.
?? 단기4336년 계미(癸未) 섣달열엿새 무서리 허연 용담들판 보며 ?? 용담강(龍潭岡) 금서제(琴書齋) 창가에서 ?? 안자와 익은 술 한 잔 놓는 꿈을 꾸다.??김 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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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진 땅, 밭가는 이를 그리며
형, 늘 앞으로 달려가는 열정을 부러워 합니다. 달리기에는 사심이 없어 더 부럽습니다. 열정에는 차가움이 있어 더 신뢰합니다. 미소에는 동심이 있어 기분이 항상 좋습니다.
한나라당이 이래서는 안됩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패배주의는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인데 말입니다. 지나친 총명(聰明)은 자신의 패배주의와 열등감을 볼 줄 모릅니다.
아니 보아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에 두려워 합니다. 여기에서 자유스러워야 합니다.
한나라당의 적은 노무현이 아닙니다. 한나라당의 경쟁 대상은 신당이 아닙니다. 한나라당의 경쟁 대상은 한나라당 스스로 입니다. 진정한 경쟁 대상은 국민입니다.
한나라당은 스스로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극복의 대상은 스스로에의 불신입니다. 극복의 대상은 국민의 불신입니다.
국민은 여(與)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야(野)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여(與)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야(野)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여야(與野)를 따지지 않습니다. 다만 민인(民人)을 사랑하는 것들 사랑합니다.
특검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검찰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해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대선자금 정국을 피해가서는 안됩니다. 대선자금의 고해성사를 해야합니다. 정치적 꽁수를 부려서는 안됩니다. 음해니 공작이니 야당죽이기 등의 정신적 콤플렉스에서 당당하게 안민정치(安民政治)를 해야합니다.
민주당 역시 그렇습니다. 신당은 계모의 데려온 자식 팥쥐의 철없는 의시댐을 경계해야 합니다. 다 나라와 안민(安民)을 먼저 생각했으면 합니다.
미국을 위시하여 세계 경제는 분명 살아납니다. 우리의 정치가 본의건 아니건 이를 외면하거나 실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민생 문제를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사실 그 어떤 것보다 이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시장(市場)이 살아야 정치가 사는 겁니다. 겐치나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나 이에야스도 공성(攻城) 후 우선 시장을 폅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3년간 세금을 받지 않습니다. 김두한이든 이정재든 상인을 괴롭히는 그 어떠한 자도 용서치 않습니다. 어느 성민 누구건 가리지 않습니다. 와서 마음 편히 장사를 하게 합니다.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사이에서 헤메던 클린턴도 용서를 받습니다. 아니 대단한 사람이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싸우는 부시 부자(父子)보다 끝을 잘못 사용했던 클린턴을 더 좋아합니다. 이게 속성이 아닌가요?
주공(周公)이 이윤(伊尹) 따랐고 관중(管仲)이 주공(周公)을 닮으려 했으며 공구(孔丘)가 주공(周公)을 그리워한 것이 다 이 때문입니다.
한초쟁패(漢楚爭覇)에서 이름도 없는 건달(乾達) 유형(劉邦)이 하늘을 뽑을 수 있는 힘의 항우(項羽)를 이기고 한(漢)을 창업(創業)한 것은 한신의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고 장량의 삼략(三略)이 아니고 한중(韓中) 땅 오창(敖倉)의 곡물이었습니다.
북제를 뒤엎고 수(隋)를 세운 문제(文帝) 역시 세금을 없애고 인민(人民)이 편하게 생업에 열중하게 할 줄을 알았습니다. 피폐하고 황폐했던 중원의 그 많은 인총(人叢)이 스스로 편하여 일을 사랑하자 모든 군현(郡縣)의 창고가 3년이 지나니 곡물을 쌓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마 밑까지 쌓으라고 하자 곧 처마까지도 넘칩니다. 창고를 수도 없이 짓고도 더 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양견(楊堅)이 아버지를 시해하고 양제(楊帝)가 된 후 대운하를 건설하고 수백만 군사를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하며 곳간을 마구 탕진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남은 곡물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당태종(唐太宗) 이세민 부자(父子)가 당을 세우고 20년을 퍼먹으며 당(唐)의 통치 기반을 구축한 비용으로 쓰였다니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황노사상(黃老思想)을 아십니까? 중국의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사상(思想) '치자(治者)는 민인(民人)의 생업에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오늘 날에도 치자(治者)들은 이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왜 이것을 잊고 잃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의 혼미한 정국의 원인은 노무현입니다. 노무현은 전정권(前政權)의 설거지를 하면서 밭을 땅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면 도와야 하고 협력해야 했습니다. 발을 걸고 옷자락을 잡아서는 안됩니다.
곳곳이 굳어진 이 땅을 누군가가 갈아야 합니다. 지난 200여년 동안 두 사람이 갈려고 애를 썼습니다.
정조(正祖) 임금의 화복화(花復花)는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권강화(王權强化)에 휩쓸려 실패를 하고 오백년 사직(社稷)을 닫는 기화(機禍)가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34년11개월 16일간의 나라잃은 설음을 지나 박정희라는 군인이 나와 밭을 갈았고 상당부분 한편으로는 성공을 했습니다. 총칼과 긴급조치(緊急措置)로 서툴고 무섭게 갈았어도 지금 사람들은 고마워합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뱃으라'는 그의 말을 사랑합니다. 이제 지난 40여년 굳어진 이 땅 천년이 바뀌면서 급변하는 문명 속에 홀로 놓인 이 땅을 누군가가 갈아 체쳐야 합니다.
땅은 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민인(民人) 역시 가는 이를 사랑합니다. 민(民)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땅과 사람을 사랑하는 이를 돕습니다. 이게 역사(歷史)인 것을 왜 모르는지?
민인(民人)을 위한 밭갈이는 비록 서툴더러도 불안해하지 말고 도와야 합니다. 서툴고 불안하기에 더욱 마음을 합쳐야 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데에는 적(敵)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생각은 소인배(小人輩)의 짓입니다. 그러한 짓동머리는 소인배(小人輩)의 몫입니다.
이로 인해 정국은 회오리치고 혼미해지고 있습니다. 지구당을 폐지한다고 변하지는 않습니다. 후원회제도를 없앤다고 개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정치권 여야당에서 이야기되는 갖가지 제도의 폐지론이 우리 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은 시도를 해 봐야 합니다. 다시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이러한 시도가 노무현의 공(功)이 아니더라도 그에 의해 지금까지 딱딱하게 굳어진 이 사회가 상당 부분 파헤쳐지고 뒤집어 질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땅을 가는 일과 같습니다. 땅을 갈자는데 잘 갈고 못 가는 게 없습니다. 땅은 누가 빨리 갈고 느리게 가는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땅은 무엇으로 파헤치고 갈아제치고 헤집어 놓는지를 가리지 않습니다. 땅은 경험많고 유능한 농부가 힘센 황소에 보습을 달아 매끄럽게 갈거나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가진 총명한 청년이 컴바인으로 로타리*를 친다고 해서 반기지 않습니다. 아울러 땅은 경험없는 젊은이가 작대기로 파헤친다고 해서 찡그리지 않습니다. 가로로 갈고 세로로 간다고 해서 거부하지 않습니다. 어쨋든 간 땅에서는 씨가 발아되게 마련입니다. 싹이나고 자랍니다. 땅은 자기(自己)를 갈아주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누구고 가리지 않는 게 땅입니다.
땅은 서투름에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익숙해진 눈으로 보려하지 않습니다. 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관습과 습관에 의한 시각으로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만이 서투름에 불안해합니다. 나름대로 익숙해진 눈으로 보며 이를 두려워합니다. 관습과 습관에 의한 시각으로만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이를 제 눈에 맞추려하고 제 익숙해진 관습이나 습성에 따라 긁고 가려 합니다. 때로는 거부하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싸우려(투쟁) 합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게 아닙니다. 자연(自然)은 그렇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연(自然)을 안다고 하지만 알지 못합니다. 이른 봄에 또는 늦 겨울에 성애가 일고 서리가 내리는 것은 자연(自然)이 자연(自然)을 자연스럽게 뒤집고 일구는 일임을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역사는 필연(必然)에 의해 의도되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사람들의 유식에 의한 교만입니다.
땅은 땅을 사랑하는 이를 사랑합니다. 유능한 사람의 짓이라고 더 사랑하고 서투른 사람이라고 덜 사랑하지 않습니다. 땅은 땅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이는 누구나 받아 드립니다.
지금 정치를 누구의 탓이나 덕분이라고 알거나 생각하기 전에 땅이나 자연을 먼저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스러운 눈으로 보면 오히려 정확하게 적어도 그 윤곽만이라도 보일 것 입니다.
노무현이 위대한 대통령은 아니거나 또는 되지 못할지언정 분명 변화를 시도한 이로는 기억될 것입니다. 대통령 자리에 노무현이가 앉던 이회창이가 앉던 민인(民人)은 스스로를 내어놓고 변하는 이(者)면 누구든지 사랑합니다.
저는 이 점을 봅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줍잖은 자연론(自然論)을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부디 더욱 건강하시길 희망합니다. 민인(民人) 모두 인민(人民) 모두 말입니다. 너나 모두 건강하길 기대(期待) 합니다.
용담강(龍潭岡) 금서재(琴書齋)에서 어줍잖은 자연론(自然論)을 생각하며 바람에 술 잔이나 걸쳐 놓습니다. 취하거나 말거나 . . . 원풍(原風) 김년오.
* 주해(註解) 로타리 : 봄날 컴바인으로 땅을 갈아 고랑을 만드는 일 이윤(伊尹) : 중국의 상고대의 나라 하(夏)은(殷)주(周) 당시 은의 탕(湯) 임금을 도와 은(殷)나라를 세운 재상. 주공(周公) : 주나라 문왕이 죽을 때 문왕의 아들 성왕(成王)은 7살이었고, 주공은 문왕의 아우이자 성왕의 숙부이다. 숙부인 주공은 어린 조카 성왕을 품에 안고 주나라 문물과 예절을 세웠다. 관중(管仲) : 춘추시대의 오패(五覇) 중의 첫 손에 꼽히는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천하를 제패(制覇)한 재상으로 <백성 곳간이 차지 않고는 예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공구(孔丘) : 공자(孔子) 한초쟁패(漢楚爭覇) : 진시황이 죽고 오광과 진승에 의해 중원은 대혼란에 빠지며 결국 초나라 명문가 출신의 항우와 패현의 건달 출신 유방이 싸운다. 유형(劉邦) : (BC247~BC195)한(漢)나라 초대 황제(皇帝)로 패현(沛縣) 중양리의 농가에서 출생하여 항우와 쟁패 중에 백전백패 끝에 승리하여 한(漢)나라 창업하였는데, 원래 똑독한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다. 성은 유(劉)고 이름을 방(邦)이라 불렀는데, 방(邦)이란 이름이 아니고 '형님'이란 뜻이다. 김형, 이형이라 부르기도 하고 성을 모르는 낯선이를 노형(老兄)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참고로 유방의 집안은 어느 누구도 똑바른 이름을 가진이가 없었다고 한다. 사기(史記)에 보면 - 성은 유씨, 자는 계(季), 아버지는 태공(太公), 어머니는 오(*)라고 한다. 자(字)인 계(季)는 막내라는 뜻이고, 태공(太公)이란 그냥 할아버지, 오(*)는 할머니이다. 큰형은 백(伯)이고 작은 형은 중(仲)이다. 백은 그냥 큰형, 중은 작은 형이란 뜻이다. 백부(伯父)님! 중부(仲父)님 하듯이.
항우(項羽) : (BC232~BC202) 이름은 적(籍). 초나라 최후의 명장 항연(項燕)의 손자로 키가 8척으로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뒤엎을 수 있을(力拔山 氣蓋世)만한 장사. 진승 오광의 난(亂) 이후 숙부 항량(項粱)과 함께 거병을 하여 유방(劉邦)과 쟁패 끝에 패하고 오강(烏江)에서 애인 우미인(虞美人)을 품에 안고 자살을 한다. 한신의 다다익선(多多益善) : 한신(BC?~BC196)한나라 개국 3걸(傑)중의 한 사람. 회음이라는 도시의 누항(陋巷) 출신으로 처음에는 항량과 항우를 섬겼으나 알아주지 않자 소하(蕭何)의 추천으로 유방에게 투신하여 전략 전술면으로 유방이 승리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가난한 건달 시절 건달의 사타구니 밑을 기어간 굴욕을 참은 고사로 유명하고, 한이 창업한 후 한고조 유방과의 대화 중 장수들의 군사적 능력이 화제에 올랐다. 유방이 묻는다. '나는?' '폐하는 고작 한 10만이면 족할 겁니다. 그 이상은 무립니다.' '너는?' '다다익선(多多益善: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장량의 삼략(三略) : (BC?~BC168) 자는 자방(子房)한(韓)나라 귀족 출신. 한신 소하와 함께 창업 3걸. 젊은 시절 꿈에 한 도인이 병서를 한 권 주고 간다. 이 책이 황석공의 삼략(三略)이다. 관중(關中) 땅 오창(敖倉) : 성고성 영양성 근동의 오산(敖山)에 있는 곡물 저장 창고의 총칭. 직경 11미터, 깊이 7미터의 황토층의 땅을 파고 벽에 제습제를 바르고 다진 다음 곡물을 쏟아 부은 자연 창고로 보통 5~7년을 간 보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1969년 낙양에서만 261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화복화(花復花) : 고 정조 임금 시절을 이조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명신 채제공은 이를 화복화(花復花), 꽃이 진 자리에 다시 꽃을 피운다'는 뜻이며 목화(木花)를 말하기도 한다.
참고 : 영조의 탕평책은 파당을 초월한 등용이었고, 정조는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고 파당의 폐해를 없애고자 노력을 하였으나. 1800년 정조의 죽음으로 개혁은 실패로 끝이나고, 서로 견제할 수 있는 당파가 혁파되면서 박태원 김조순의 세력 다툼 끝에 김조순의 승리로 인해 안동김문(安東金門)의 60년 척족정치가 시작되고 이 안동김문의 세도정치가 종국에는 이조의 멸망의 기화가 된다.
로타리 : 봄날 컴바인으로 땅을 갈아 고랑을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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