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선교에서 방송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방송을 통한 북한선교에 힘써야 한다.”
북한선교와 방송에 대한 글은 이것이 전제이고 또 결론이다.
그러나 이 간단하고 분명한 명제는 금방 다음과 같은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북한에서 과연 외부의 방송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의 고개를 넘어가면 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에서 외부 방송, 특히 몰래 선교방송을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방송내용이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이 글은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같이 찾아보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방송”은 주로 라디오 방송을 가리킨다. 현대는 TV의 영향이 커서 이미 오래 전에 “백라일텔”(“라디오에 백 번 출연하는 것보다 텔레비전에 한 번 출연하는 것이 낫다.”)이라는 말이 생겼지만 북한에서 남한의 TV에 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나 듣는가?
방송은 우선 들려야 하는데 국내의 중파방송(AM)들의 중앙사 방송은 북한의 많은 지역에서 청취가 가능한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다. 특히 KBS의 한민족방송이나 극동방송의 경우에는 대출력, 지향성, 스카이웨이브(공간파) 등 북에서 잘 들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므로 더욱 문제될 것이 없다.
요즘은 북한에 라디오가 많이 유입되고 있으며 북한 주민들이 단파나 FM, MP3 등을 통해서도 외부의 방송을 듣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필자는 북방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극동방송에서 23년간 근무했는데 맡은 업무가 바로 북방선교이었다.
극동방송에서 방송본부장을 비롯하여 여러 직책을 맡았었지만 전문성 등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북방선교 관련 업무가 늘 손에서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극동방송의 한 지방사에서는 “통선돌북”, 다른 지방사에서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이라는 통일과 북한선교 전문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통선돌북”은 “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해 시선과 관심을 돌이켜 북을 향하자”는 뜻으로 신명기 2장 3절에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이 있는데 “돌북”은 거기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은 열왕기상 18장 31절에 있는 말씀을 따 온 것이다.
그런 관계로 자연히 “북한에서 과연 외부의 방송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가?”는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여러 모로 알아보았는데 그 결과, 북한에서는 외부의 방송을 듣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몰래 남의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90년대에 탈북민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많아지자 정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축소하였는데 극동방송에서는 남한에 와서 필요한 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나가는 탈북민들을 돕기 위해 생활필수품을 지원하였다(이 일은 그 뒤 영락교회로 이관되었다.). 그 때는 사회로 나가는 탈북민들은 극동방송에 와서 아침 채플에서 인사를 하고 지원품을 전달 받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되어 있었다.
그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 앞의 두 질문을 빼놓지 않았는데 한 탈북민이 “외부에서 라디오를 가지고 들어오거나 선물로 받았을 때는 사회안전부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전부에서는 북한방송만 들을 수 있도록 다이얼을 땜질을 하고 봉인을 합니다. 그 봉인을 풀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해서 땜질을 풀고 남한방송을 많이 들었습니다. 종종 불시에 검열을 나와서 봉인이 잘 되어있나 확인하기 때문에 봉인한 것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데 여러 번 손을 대다보면 이것이 너덜너덜해지거든요. 저는 자동차 검사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검사를 마치면 봉인을 합니다. 제가 일하던 곳에서 사용하는 봉인이 라디오에 붙이는 봉인이 비슷해서 그거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라는 말하는 것을 재미있게 들었다.
북의 고위층들은 라디오는 물론 TV 시청도 자유로운 것 같다. 북의 체육계 중요인사였다가 탈북한 분이 “거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참 시원하게 방송하더군.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그 사람들은 사라지고 싱거운 소리만 나오더구먼.” 하는데 그 내용과 어투에서 북에 있을 때 남한방송을 일상적으로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아무개”는 “노동당 간부들에게”를 비롯한 라디오의 공산주의 비판 대북 프로그램의 마이크를 잡던 인사들이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남한이 이른 바 햇볕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 때를 말한다.
종종 북한을 방문하는데 2002년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을 때도 평양에 있었다. 그 때 관광총국에서 나온 중년의 여자안내원에게 “어제 8강 진출전이 있었는데 참 궁금하네요.” 했더니 김일성대학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안내원은 “한국이 이겼어요.” 했다. 의외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알아요?” 했더니 “나는 대진표 그려놓고 이긴 팀은 O표, 진 팀은 X표 하면서 보고 있는 걸요.”했다.
두어 해 전에, 통전부에서 나온 안내원(참사)에게 남에서 간 일행을 소개하면서 “여기 이 분이 최근에 TV에 나와서 북을 많이 도와야 한다고 했지요.” 했더니 그 안내원은 “미리 알았으면 나도 볼 걸. 여하튼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평양은 남한의 텔레비전은 시청권에서도 벗어나고 남한과 북한은 NTSC 방식, PAL 방식 다른 것들이 있어서 남한 텔레비전 시청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어서 역시 의외였으나 그 이상은 묻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어서 입을 다물었다.
반면에 교원대학을 나와 인민학교 교사를 하다가 탈북한 한 여성과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확인한 일도 있었다.
“집에 라디오가 있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저희 집에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까벨선(케이블)을 깔아 라디오를 설치해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장이 나도 수리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라디오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고 들을 필요도 느끼지 않고 듣는 것을 오히려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북한 주민들은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런 말을 하면 탈나는 일이 많은데 라디오 같은 것을 듣고 정치에 대한 말 같은 것을 옮기다가 탈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부부가 남한 방송을 몰래 같이 들었는데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을 할 때 부인이 그걸 고발해서 남편이 처형당한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은 있습니다. 탈북해서 중국에 있을 때 ‘나 사실 북한에 있을 때 남한 방송 몰래 들었다.’하는 사람들은 더러 만났고 최근에는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기는 했습니다.”
여하튼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북에는 남한의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 정설인데 그들이 즐겨 듣는 외부의 방송은 ①KBS 사회교육방송(현 한민족방송) ②자유 아세아방송(RFA: 이 방송은 남한의 방송이 아니다) ③극동방송 순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북한에서 과연 외부의 방송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가?”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처럼 비교적 긍정적인 답을 얻을 수 있는데 “북한에서 외부 방송, 특히 선교방송을 몰래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방송내용이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북의 서해안 어느 도시에서 주민들이 극동방송을 듣고 집단회심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어 모두 수감되었는데 감옥에서도 시간을 정해 기도하고 신앙을 지키다가 일부는 처형되고 많은 숫자는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보도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 모두는 불확실한 첩보이고, 첩보 가운데에서도 신뢰도가 높지 않은 득문사항(得聞事項)이다.
필자는 “호기심에서 들었으나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는 대답을 제일 많이 들었다. “‘무슨 이런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거야?’ 했습니다.” 하는 대답도 있었다.
탈북자로서 북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강철호 씨(「조선일보」기자, 「수용소의 노래」저자)가 지난 10월 기독교통일포럼에서 강연을 하면서 방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북에 라디오를 많이 보내야 한다고 하고, 북의 주민들, 특히 변방지역의 경비병들이 한 달만 남한방송을 계속해서 들으면 거의 대부분이 변화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자기도 북에 있을 때 남한방송을 들었는데 극동방송도 들었다고 하기에 반가워서 ”극동방송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질문했더니 ”잠깐 들어서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방송을 통해 ‘하나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는 간단한 대답이었다.
두어 분이 “방송을 들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합창(찬양)은 이상하게 감동적이었습니다.”라고 해서 대북 프로그램에서 찬양은 가급적 독창 대신에 합창을 사용하도록 조치한 일이 있었다.
예전에 신앙생활을 하던 나이 많은 분이나 이른바 “지하교회” 교인과의 면담이 가능하면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남한의 선교방송이 북한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먼저 “강하게 치고 도망가기”식의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복음을 짧고 강하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 주민들은 외부의 방송을 여유 있게 오래 들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됨으로 기독교 복음의 진수, 반기독교 이론의 잘못된 점들을 촌철살인(寸鐵殺人)식으로 자주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해방 전 북한지역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당신이 살고 있는 그곳에 과거에 이런 교회가 있었다. 이런 인물이 있었다. 교회가 이런 좋은 일을 했다.” 이런 것을 알려주라는 것이다.
1990년의 일이다. ‘1995년이 되면 광복 50년(희년)이 되는데 어떤 특집을 준비할까?’ 생각하다가 “북녘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5년 간 방송하기로 하였다. 북한의 각 지역을 “현행” 행정구역에 따라 찾아가며 과거 그곳에 어떤 교회가 있었고, 어떤 기독교 인사가 있었으며 교회는 어떤 인물을 하였는지, 그 지역과 그 교회의 역사는 어떻하였는지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기간을 5년으로 잡은 것은 한 주일에 한 지역을 찾아가는데 북한의 시와 군이 대개 250개 안팎이기 때문이다. 보람도 있었고 힘도 들었다. 북한의 “현행” 행정구역에 따라 찾아가는데 북한은 1952년의 “군․면․리 통폐합”시 행정구역을 대폭 개편했고 그 뒤에도 꾸준히 손질을 하고 있는데 그 폭과 내용이 대단해서 천지개벽은 아니지만 행정구역 개벽이 된 상태여서 힘들었고, 그곳에 있었던 교회를 찾아내고 그와 관련된 사항을 알아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북한에서의 반응은 물론 알 수 없었지만 국내에서의 호응은 참 좋았다( 이 프로그램 원고가 「무너진 제단을 세운다」라는 책자로 발간되었다.)
내친 김에 중국대륙 동북지역에 있었던 교회들도 다뤘다. 중국에 잘 알고 깊이 존경하는 노 목사님이 한 분 계신데 이 분은 말이 별로 없고 한 마디를 해도 조심해서 하는 분인데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거 참 좋더군요. 그런데 동북에 있던 교회들에 대해서는 왜 안 해 주십니까?' 짧게 말해주신 것이 계기가 되었다.
“국도1호선을 따라서”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다.
목포에서 출발해서 신의주까지 가는 국도1호선이 통과하는 개성․사리원․평양․정주, 이런 지역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아시다시피 이 곳들은 한국 장로교의 주류를 이룬 서북지역이어서 교회와 관련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많이 나왔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국도3호선(남해에서 자강도 초산까지)을 따라서” “국도5호선(거제에서 자강도 중강진까지)을 따라서” “국도7호선(부산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을 따라서”도 제작했을 것이다.
또 북한의 절기에 맞춘 프로그램도 효과적이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기 때문에 어린이에 대한 내용을 많이 방송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어린이날(국제아동절)이 6월 1일이다. 북의 주님이 5월 5일에 어린이에 대한 방송을 듣는다면 “아, 남한에서는 5월 5일이 어린이날이고 어린이날이 되면 이런 행사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는 되겠지만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북의 어린이날에 맞춰 어린이에 대한 내용을 많이 방송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북에는 직업과 관계된 기념일이 많다. 기계절(2월 20일)․어부절(3월 22일)․탄부절(4월 24일)․건설자절(5월 21일)․광부절(7월 1일)․임업노동자절(8월 10일)․금속노동자절(10월9일), 그밖에도 수없이 많은데 이런 날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전문대상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도 좋고, 그렇지 않고 이런 내용이 일반 프로그램에 은연 중에 녹아들어가도 좋다.
중국의 선례(先例)
우리는 방송을 통한 북한선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첩보라는데 문제가 있고 한계가 있다. 정확하지 않는 것을 첩보(諜報)라고 하는데 ‘첩(諜)’이란 글자가 재미 있다. 말(言)이 나뭇잎처럼 돌아다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첩보들을 모으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확인하고 평가하면 정보가 된다. 방송과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고 지하교회 이야기 등 북한의 교회와 관련된 소식들은 분단상황 때문에 첩보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있다. 중국의 선례이다.
1970년대 말에 중국이 개방정책을 취하기 전까지는 중국에서 남한의 선교방송을 듣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취하고 중국의 성도들이 외부로 편지를 보내는 일이 가능해졌을 때 “우리는 당신들의 방송을 열심히 듣는다. 당신들의 방송을 젖줄로 삼아 지난 30년간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받아 써가면서 듣는다. 고맙다.”는 편지를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놀라고 감격했다.
놀람과 감격과 흥분의 정도가 지나쳐서 피해를 입힌 일도 있었다. 편지 내용을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방송에 담거나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천 동포의 활동내용을 조심하지 않고 전파에 담았다가 당사자가 고초를 겪은 일들이 있었다. 현지에서 듣는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방송내용이 효과적이었는데 현지에서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이런 부작용이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은 중국에 비해 방송청취환경이 나쁘고 여러 가지가 엄혹하다. 그러나 중국도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때는 북한 못지않았는데 사람들은 그 때 더 열심히 외부의 방송을 들었다. S시의 한 성도는 “달과 별이 빛나는 고요한 밤에 반도체(트랜지스터)를 들고 들판에 나가 들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라는 시적인 편지를 보내왔는데 감시의 눈이 없는 곳에서 방송을 듣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몇 해 전에 중국 D시의 한 성도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 성도는 창을 가리키며 “문화대혁명 때는 저 창에 포단(담요)을 치고 방송을 들었지요.”라고 하여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북한이 개방되면 우리는 중국에서 온 편지와 같은 내용을 북한의 주민들, 특히 성도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5분 성경”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5분 동안 성경을 받아쓸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읽어주는 것이었는데 ‘공산권 동포들은 성경이 없으니까 이것을 듣고 받아쓰게 하자.’는 취지로 편성된 프로였다. 정상적인 속도가 아니니까 아나운서들이 맡기를 싫어했고 국내에서도 “어색하다.” 답답하다.“는 반응이 많아서 오래 가지 못했다. 그 때는 그것을 들으면서 성경을 받아쓰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중국이 개방된 다음에 보니까 그것을 듣고 받아쓴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을 알고 실무자들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는데 북한선교방송에서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떡을 물 위에 던지는 마음으로
전도서에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라는 말씀이 있다. 난해구(難解句) 가운데 하나로 번역본에 따라 번역도 다르고 해석이 여러 가지이다.
어떤 주석은 떡을 물 위에 던지면 물고기가 그 떡을 먹고 살찌게 되는데 그 물고기를 잡아먹으면 몇 배의 이익이 된다.”고 풀이했다.
이 말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떡을 물 위에 던지는 것 같아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 같지만 뒤에 열매가 반드시 있게 된다.”라고 소박하게 풀이할 수 있는데 방송을 통한 북한선교에 큰 가르침이 되고 격려가 되는 말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던져야 한다.
북한선교방송의 편성과 제작은 기술적으로 복잡한 문제이다. 심리전에는 전략심리전이 있고 전술심리전이 있는데 선교에서 군대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필자는 이 말을 장기형․단기형, 직접형․간접형, 또는 A형․ B형으로 바꾸어서 실무에 활용하였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이다. ‘이 방송을 통해서 북한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의지이다. 이런 의지가 있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사용하시며 길이 생기고 열매가 달린다. 극동방송이나 기독교방송 같은 선교방송은 방송사 전체가 이런 의지가 강해야 하고 방송요원들 하나하나에게 이런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일반방송, 특히 북에서 청취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진 KBS한민족방송이나 자유아시아방송이 방송요원 중에도 크리스천들이 여럿 있는데 그들도 이런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KBS는 공영방송이고, 자유아시아방송은 설교하지 말 것, 강의하지 말 것,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을 피할 것, 주관적인 표현을 피할 것, 어떤 아젠다도 제시하지 말 것, 사실전달에만 힘쓸 것이라는 지침을 가지고 있어서 선교행위가 불가능하게 여겨지지만 의지가 있으면 지침을 따르면서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음은 전문성이다.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한다. 북한주민들의 의식구조를 알아야 하고, 생활을 알아야 하고, 주체사상을 알아야 하고, 공산주의 이론을 알아야 하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행정구역을 알아야 하고 절기를 알아야 한다. 알고서 방송을 해야 한다.
‘븍한용 복음이 따로 있고 남한용 복음이 따로 있나? 그저 복음만 전하면 되는 것이지!’ 하는 분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말씀은 그 자체가 힘이 있어서 전하면 퍼져나가고 역사를 일으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알고서 방송을 통해 북한에 복음을 전할 때 같은 말을 해도 더 효과적이며 오류를 막을 수 있다.
북한선교에 있어서 방송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더라도 의지를 갖고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해 노력하며 방송을 통한 북한선교에 더욱 힘써야 한다.
방송과 북한선교는 결국 이런 명제로 회귀하는 수 밖에 없다.
[<한국선교 KMQ>. 2009년 가을호]
|